말씀 신앙
마태복음 8:5-13
마태복음의 주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1장에서는 왕의 족보가 나오고, 2장에서는 동방박사들이 왕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고 경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헤롯은 어린 왕을 죽이려고 2살 이하의 남아를 죽입니다. 그래서 헤롯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헤롯이 죽자 왕이신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랍니다. 왕은 자라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이때 하늘이 열려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립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왕의 대관식입니다.
그리고 왕은 성령에게 이끌려 세상 왕인 마귀와 싸우려 광야에 갑니다. 그곳에서 40일을 금식 하신 후에 세상 왕인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이깁니다.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7장에서 이 세상에 오신 진짜 왕의 가르침이 선포됩니다. 팔복을 말씀하시고, 구약을 재 해석해 줍니다. 새로운 왕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8장이 시작됩니다. 8-9장에는 왕이 행하는 10가지 치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가 나병 환자를 치유합니다. 나병 환자가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합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해졌습니다. 왕의 말씀의 능력이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가 중풍병자 치유입니다. 중풍병자도 나병과 같이 하나님께 저주 받고, 죽음과 같은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중풍병자는 예수님과 아무런 면식이 없이 고침을 받습니다. 중풍병자 보다는 백부장의 믿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칭찬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종주국이 있습니다. 태권도는 한국입니다. 유도는 일본, 축구는 영국, 야구는 미국이 종주국입니다. 종주국은 다른 나라보다 더 잘해야 합니다. 그런 부담감이 있습니다. 믿음의 종주국은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을 선택해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야곱은 천사와 싸움에서 이긴 다음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네가 하나님과 사람을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일에는 이스라엘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백부장이 믿음의 종주국 사람들도 듣어 보지 못한 믿음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으로 보고 놀랍게 여기면서 칭찬합니다. 믿음의 종주국의 명예와 영광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느낌이 듭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유대인의 전유물이었는데, 그 위치와 영광이 이방인에게 넘어가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말씀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고 하자 백부장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나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는다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입니다. 백부장입니다. 내 아래의 군사가 있습니다. 그 군사에게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내 종에게 이것을 하면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에는 5명의 여자가 나옵니다. 그 중 3명은 이방 여자입니다. 이 세 여자의 공통점은 창조적인 믿음의 소유자들입니다. 첫 번째는 다말입니다. 다말은 가나안 여자입니다. 시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태어난 사람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예수님의 조상들입니다. 유다는 임신한 다말에게 “그는 나보다 옳다”고 말합니다. 다말의 행동은 자신보다는 씨족 사회인 공동체를 사랑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보다는 공동체 유지가 우선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라합입니다. 라합은 가나안 여자입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 침입한 이스라엘 정탐꾼 두 명을 구해줍니다. 정탐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습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으로 라합은 여리고 성이 망할 때 자신과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는 룻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모압 땅으로 이민을 간 나오미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세 명의 과부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큰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 땅에 남았지만 둘째 며느리 룻은 어머니를 따라갑니다. 룻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어머니가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산 결과 베들레헴에서 와서 보아스와 결혼해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부장의 신앙은 말씀 신앙입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예수님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시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십시오.” 여기서 ‘감당하다’라는 말은 ‘–에 도달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에 도달하기에 ‘충분한’, ‘매우 족한’이라는 뜻입니다.
‘감당’이라는 말은 마태복음 3:11절에서 자질이나 자격에 대해서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말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감당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이런 분이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5:9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도 직분에 대한 자격에 대해서 말합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를 불러 사도로 세운 예수님을 모든 자격의 충분한 근권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님이 불러 세웠으니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비난할 때, 바울은 예수님과의 관계성에서 내가 사도로서 충분하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시고, 직분을 주시고,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 분의 사랑과 은혜로 충분합니다.
스트롱 맨(Strong Man)이라고 제목이 붙혀진 그림이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아파트 이층 난간 위로 피아노를 들어 올리고 있는 그림입니다. 삼손처럼 괴력을 가진 남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남자는 괴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피아노는 강력한 두선에 매여 있었고 선의 끝은 옥상 위의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피아노를 들어 올린 비결은 위에 매여져 있는 끈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말씀이 붙들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가짜 약이 있습니다. 겉 포장지에 약 성분이 적혀있습니다. 효능도 적혀있습니다. 먹으면 좋아지고, 건강해진다고 믿고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먹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무런 효능이 없습니다. 부작용만 생겼습니다. 건강을 잃었습니다. 속았습니다. 진짜는 먹어보면 압니다. 표면에 약의 효능에 대해서 쓰여 있지 않아도 먹어보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 광고에 “드신 날과 드시지 않은 날을 비교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들어 있습니다. 캡슐 속에는 약이 담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의 능력을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원합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