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별, 떨고 있다! (隨筆)
影園 / 김인희
봄을 재촉했을까. 비가 그친 뒤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정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겨우내 작은 꽃눈을 달고 있었던 목련의 가지마다 한껏 생수를 들이켜고 생명이 꿈틀대고 있다. 목련의 발치에 수북하게 쌓였던 낙엽을 걷어내니 초록색 수선화 잎이 꼬물꼬물 수선을 떨고 있다. 저만치에서는 붓꽃이 꼿꼿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봄이 기지개를 켜려던 찰나 꽃샘바람이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으로 나뭇가지를 휩싸고 대지에 고개를 내민 새싹을 위협한다. 이맘때 한차례 몸살을 앓게 한다.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을 좋아하면서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어김없이 전율하곤 한다. 거룩한 의식이리라. 깊은 잠에 취한 나목의 살갗을 찢고 꽃별을 피우기 위한 하늘과 땅의 연합작전이리라.
박사 인희에게!
내 바로 위의 언니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고향으로 보내온 편지의 서두였다. 나하고 세 살 터울인 언니의 편지를 받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향은 산골이었다. 스무 채 남짓한 집들은 작은 버섯들이 옹기종이 사이좋게 모여 앉은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이웃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는 걸어서 한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였다.
그 길을 오가면서 봄에는 냇가에서 버들강아지가 통통하게 물오르는 것을 보았다. 산비탈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어우러져서 어여쁘게 피어있는 것을 보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진분홍 빛깔의 자운영 꽃을 한 움큼 꺾었던 기억이 있다. 여름 장마철에는 우산을 쓴 것이 무색하게 온몸이 흠뻑 젖은 모습으로 등교하기도 했다. 파란 하늘이 높았던 가을, 무리 지어 핀 코스모스 꽃 속에 팔을 베고 누워서 눈물을 글썽이던 소녀시절이었다. 오동통한 단발머리, 그 시절의 내 사진을 보고 성인 된 자녀들이 짱뚱이를 닮았다고 했다.
교수 인희에게!
언니가 규칙적으로 보내주는 손 편지는 박사 인희에게, 교수 인희에게 하고 반복했다. 마치 음악을 연주하다가 같은 공간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도돌이표와 같았다. 그때 언니가 보내주는 편지가 좋았다. 밤하늘 아스라이 빛나는 별과 같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막연했지만 기분 좋은 말이었다.
내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의 경리로 취직했을 때 언니는 결혼을 했다. 내가 다니던 직장과 언니의 집이 같은 소재지에 있어서 주말에는 언니에게 자주 갔었다. 언니는 우리 육 남매 중 가장 마음이 따뜻하고 착했다. 언니는 교회에 다니면서 아프거나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었던 기억이 있다. 언니가 예쁜 딸을 낳고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할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아기가 6개월이 되어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을 무렵 언니는 갑작스럽게 사고로 하늘나라 사람이 되었다.
나의 스무 살 시절은 누구처럼 꽃다운 시절은 아니었다. 가장 친근했던 언니를 가슴에 묻고 어린 조카를 걱정하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지낸 날이 많았다. 자애로우셨던 아버지께서 호랑이 같은 모습으로 언니를 잊어야 한다고 하셨을 때 원망스러웠다. 세월이 흐른 후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었다. 언니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화장을 하지 않고 지내셨다.
세월이 시나브로 흐르고 소녀는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딸과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다. 대처에서 시골로 옮겨와서 평범하게 살게 되었다. 언니가 편지를 보내주었던 기억조차 잊고 지냈다. 두 자녀를 품에 안고 대학교 입학원서를 쓸 때는 대학교만 졸업할 작정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학생들 학습지도할 때 나르시시스트가 되었다. 한 단계 높은 꿈을 향하여 까치발 하고 손을 뻗쳤다. 거기까지였다. 내가 다다를 경지의 한계는 거기가 끝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을까.
별의 경지를 향하여 여장을 채비하고 당차게 떠날 수 있게 한 위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별을 향한 여정에 첫 발을 내딛기까지 숱한 망설임으로 괴로워했다. 세상이 들이대는 잣대에 온몸이 재단되는 통증이 있었다. 그 순간 절정을 느꼈다. 지천명의 중턱에서 책을 안고 캠퍼스에서 그토록 좋아했던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하늘이 준 축복이었으리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수업하는 시간이 마냥 황홀했다. 교수님들과 문학과 문법에 대해 토론하고 이국의 별들과 웃으면서 보냈던 시간이 순식간이었다.
마지막 관문, 거대한 산맥을 정복하는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성큼성큼 선걸음으로 다가오는 결정의 시간 앞에서 호흡이 멎을 것만 같았던 시간과 시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과제를 매듭짓고 하늘을 향해 엎드렸다. 눈물 속에 스치는 별, 별, 별.
주말에 30년 지기 친구와 식사를 했다. 친구는 긴 시간 동안 나 자신에게 휘두른 가혹한 채찍의 힘을 알고 있다고 했다. 문학을 사랑하는 진정한 글쟁이가 바로 나라고 했다. 그리고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친구의 음성이 떨렸다. 나는 친구에게 고맙다고 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친구가 하는 말이 축복이 아니겠는가. 나를 인정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는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은 별, 떨고 있다!
첫댓글 문학은 사랑하는 사람의 소유입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도 가끔은 문학을 사랑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꾼 은 더욱 착해지기 위해서
착하기 위해서 문학을 사랑 하는것 입니다
작은 별 !
떨지 마십시요 어딘가에서 밝고 큰 별이 시인 김인희 박사를 바라보며 지켜 주실것 입니다
문학이라는 별 하나 가슴에 품고 예까지 왔습니다.
참으로 긴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착하고 따뜻한 글을 쓰겠다는 첫 다짐을 되새깁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