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人터뷰] 위성우, “아내의 수술, 감독이란 자리의 덧없음이여”2017.12.30 오후 02:20 | 기사원문
해외야구 이영미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카리스마 있는 지도력으로 우리은행의 5연패를 이뤄낸 위성우 감독. 현재 KB스타즈와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인데 올시즌을 준비하면서 위 감독은 팀과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 중에는 아내의 건강 문제도 포함돼 있었다.(사진=이영미)> 지난 10월 28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선 2017-2018 신한은행 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우리은행 위비의 개막전이 열렸다. 우리은행은 통합 5연패의 저력을 보여주기는커녕 경기 초반부터 신한은행에 끌려 다니다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59-66으로 패하고 말았다. 위성우 감독의 첫 개막전 패배였다.
경기 후 인터뷰실을 찾았던 위 감독의 표정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는 완패를 인정하면서 신한은행이 준비를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진단한 패배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초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로운 선수들도 있고 외국인 선수들도 기존 선수들과 제대로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서로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최대한 빨리 적응시키는 것이 문제다. 오늘부터 시즌이 시작됐으니 차분하게 다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12월 24일, 인천 도원체육관 인근의 한 커피숍. 시즌 초반 2연패를 당하며 삐걱거렸던 우리은행을 전반기 13승4패로 단독 1위에 올려놓은 위성우 감독이 기자 앞에 앉아 있었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팀의 미래가 불투명해보일 정도로 암담했던 팀을 1위 팀으로 변화시킨 비결이 궁금했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즌 초반 팀이 흔들렸던 이유
전반기를 1위로 마감했다. 시즌 개막전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을 때만 해도 올시즌 우리은행이 힘든 시즌을 보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사실 시즌 초반에 우리가 힘들었던 여러 가지 요인들 중 ‘나’도 포함돼 있었다. 다섯 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선수들도 지쳤고 나도 지쳤다. 그래서 지난 시즌을 마친 후 이례적으로 휴가를 길게 줬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더 쉬고 싶었다. 비시즌 때 제대로 쉰 적이 없어서 휴가를 통해 재충전하고 싶었다. 비시즌 동안의 훈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입장에선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휴가 기간이 어느 정도였나.
“두 달 가량 쉬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한 달 조금 넘게 휴가를 줬는데 이번에는 휴가 기간을 늘렸다. 대신 훈련 시작할 때 모두 최고의 몸 상태로 훈련할 수 있도록 몸을 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선수들을 믿고 진심을 담아 부탁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부탁이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던 건가.
“훈련 첫 날부터 내 예상이 어긋나고 있다는 걸 절감했다. 그렇게 몸을 만들어 오라고 부탁했건만 일부 선수들은 체중 관리가 전혀 안 돼 있었다. 4~5kg 이상 더 체중이 늘어난 상태였다. 선수들에게 실망감이 컸다. 선수들을 믿고 기회를 줬는데 프로들이 이런 식으로 몸을 만들어 오나 싶더라. 더욱이 양지희의 은퇴로 유일한 센터였던 이선화는 복귀 첫 날 운동하고 선수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이래저래 정신적인 혼란이 극에 달했던 순간이었다.”
휴가 기간을 여유있게 늘린 부분을 후회했겠다.
“선수들이 프로다운 모습을 보일 거라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깨져 안타까웠다. 휴가 중간 중간에 선수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체크한다고 했는데 그조차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감독이란 버티고 인내하는 자리 지난 시즌 종료 후 이례적으로 선수들에게 긴 휴가를 줬던 위성우 감독. 그러나 일부 선수들이 몸을 제대로 만들어 오지 않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계속됐다고 말한다.(사진=우리은행)>
위성우 감독도 그토록 긴 휴가는 처음이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휴가를 길게 쓸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 있었다.”
어떤 속사정 말인가.
“아내가 많이 아팠다. 작년에 한 시상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오후 4시에 아내의 수술이 예정돼 있었다. 처형이 아내 옆을 지키고 있던 터라 난 시상식 마치고 곧장 병원으로 향하면 수술실 들어가기 전 아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 일정이 앞당겨졌고 시상식 중에 아내가 수술실로 들어갔다는 처형의 메시지를 받았다. 시상식을 마치고 병원을 찾았는데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아내를 보니까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라.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감독직을 껴안고 놓지를 못하는 건지, 아내의 병도 눈치 채지 못하고 가족들을 멀리한 채 선수들만 챙기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내의 수술은 잘 마무리됐지만 내가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래서 대표팀 감독직도 정중히 고사했다. 그동안 시즌 마치고 대표팀을 이끄느라 개인 시간이 절대 부족했다. 이번만큼은 시즌 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표팀 감독은 맡지 않겠다고 협회에 미리 의견을 전달해 놓았다. 개인적인 문제로 휴가를 길게 쓴 것이다.”
한 팀을 이끄는 감독의 고뇌, 가장의 책임감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을 것 같다.
“1999년에 결혼해서 18년 동안 아내와 동고동락했다. 그런데 2개월 휴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수 때는 운동한다고, 코치, 감독하고 나선 선수들 훈련시킨다고 가정을 소홀히 했다. 딸이 한 명인데 내 딸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제대로 지켜보지도 못했다. 그 와중에 아내가 수술까지 하게 됐으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기분이 들더라.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우승 감독이 뭐라고, 그 또한 잠시 잠깐의 기쁨일 뿐인데…. 세상 어떤 즐거움도 가족 다음이다. 가정을 제대로 못 지키는 지도자가 선수들을 이끌어간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런 갈등이 계속 됐기 때문에 시즌 마치고 곧장 휴가를 떠난 것이다.”
지금 아내 분의 건강은 어느 정도인가.
“많이 좋아졌다. 휴가 동안 산책도 많이 다니고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아내 이름이 ‘이미영’이다. 급한 성격의 남편을 만나 심하게 고생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집안에 큰 일이 벌어져도 지나간 다음에 얘기해준다. 아빠니까 알고는 있어야 한다면서. 내가 예민한 걸 아니까 시즌 중에는 신경 쓸 만한 일들을 만들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이 한가득인데 아내에게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참 고맙고 좋은 사람이다.”
우왕좌왕, 우여곡절의 시즌 준비 우리은행의 중심축인 박혜진과 임영희.(사진=우리은행)>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시즌 준비를 위해 모였는데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할 만큼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멘붕’이었을 것 같다.
“어수선했다. 모두 준비가 안됐다. 김정은도 FA를 통해 우리 팀에 왔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임영희와 박혜진은 대표팀에 합류하느라 자리를 비웠다. 최은실마저 햄스트링으로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외국인 선수 2명을 새로 뽑았는데 한 명은 시즌 개막 3주 전에 합류했고 다른 선수는 부상으로 대체 용병을 써야 했다. 대체 용병을 쓰는 대신 아예 선수를 교체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부랴부랴 외국인 선수를 찾았고, 어렵게 만난 선수가 어천와였다. 아이샤 서덜랜드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데려왔다가 시즌 초반 교체했다. 개막 2주 전까지 팀이 정비되지 못한 채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들었던 생각이 ‘이러다 올시즌 꼴찌하겠다’였다.”
그런데 2연패 후 5연승을 이뤘다. 어떻게 그토록 빨리 팀을 재정비했는지 궁금하다.
“운이 좋았던 게 시즌 초반 게임 일정이 우리한테 유리했다. 개막전 이후에는 4일 간격으로 경기가 펼쳐졌다. 그 4일 동안 손발을 맞춰봤던 게 경기에서 나타났다. 사실 1라운드는 버리고 가려 했었다. 선수들이 제대로 훈련을 시작한 건 개막 이틀 전부터였다. 제대로 손발을 맞춘 상태가 아니라 시즌 초반 승리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상대팀도 우리처럼 어수선했던 부분이 있었다. 덕분에 승수를 챙길 수 있었다.”
당시 선수들에게 주문했던 내용이 무엇이었나.
“휴가를 마치고 복귀해서 훈련하는 첫 날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시즌 중이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크니 모두 훈련 중이라고 생각하고 경기 결과에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얘기했다. 시즌 중에는 강도 높은 훈련을 하지 못하는데 선수들이 느낀 게 많았는지 훈련 시간 동안 집중을 잘했다. 김정은은 열심히 쫓아오고, 임영희, 박혜진이 중심을 잡아주니까 5연패를 이룬 저력이 조금씩 나타나더라.”
센터 양지희와 이선화의 은퇴 <우리은행의 기둥 역할을 맡았던 양지희의 은퇴. 위성우 감독은 우리은행에서 양지희 없는 시즌을 처음으로 경험 중이다.(사진=우리은행)>
지금 얘기만 들어도 시즌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지도자 생활하면서 가장 큰 경험과 공부를 한 것 같다. 코치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경험을 했다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냈다는 게 대견할 정도이다. 선수들, 코치들 모두 말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선화 선수의 은퇴는 정말 깜짝 뉴스였다. 혹시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선수와의 갈등이 존재했는지 알고 싶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 휴가 동안 제일 열심히 챙긴 선수가 이선화였다. 전화할 때마다 양지희의 빈자리를 네가 대신해줘야 하니까 열심히 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선화가 있었기 때문에 양지희의 은퇴를 결정했던 것이고 센터 보강 없이 팀 전력을 만든 것이었다. 그랬는데 복귀해서 보니 몸이 안 만들어졌고 첫 날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 다음에 은퇴하겠다고 하니 그 실망감이 굉장히 컸다. 그만두겠다며 찾아왔을 때는 더 이상 만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좋게 얘기하고 마무리했다. 양지희 없는 농구를 처음 해보는 시즌을 앞두고 양지희를 대신한 선수가 사라진 현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곤 했었다.”
양지희 선수의 은퇴가 두고두고 아쉬웠겠다.
“그러나 지희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몸 싸움을 많이 하는 센터이다 보니 온몸이 부상 병동이었다. 원래는 이번 시즌까지 마치고 은퇴할 예정이었는데 지희가 더 늦기 전에 공부하고 싶다면서 은퇴 얘기를 꺼내더라. 더 붙잡는 건 내 욕심이었다. 지희의 인생을 위해서라도 놔줘야만 했다. 지금은 미국에서 소원대로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
우리은행 선수들 중 훈련이 힘들다고 그만 둔 선수들이 있었다. 위 감독의 훈련 방법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 선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이전에는 나보다 선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했다. 선수가 감독의 스타일을 따라와야지 감독이 선수 스타일을 맞춰주는 건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다.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내가 좀 더 부드럽게 대해줬더라면 그들이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감독 입장에서 궁합이 맞는 선수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그 표현은 내 기준으로 보는 것이다. 나랑 맞는 선수들은 어느 팀을 가도 다 잘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난 힘들 때,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독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그 고비를 넘긴 선수는 크게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그걸 받아들인 선수라면 나랑 궁합이 맞는 선수이다.”
“땀 흘린 훈련량 만큼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은행 선수들한테 들은 바로는 위성우 감독은 훈련 중독자라고 하더라. 그만큼 훈련량이 많다는 얘기일 텐데.
“난 남들과 똑같이 해서 우승할 만한 능력이 없다. 적은 훈련량으로 우승할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에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는 노력과 결과이다. 노력한 만큼 그 결과가 뒤따른다. 나도 가끔은 선수들에게 큰소리 안치고 경기를 이끌어가고 싶다. 웃으면서 박수치고 ‘독사’란 소리 안 들으면서 팀을 이끌고 싶은데 그럴 만한 능력이 안 된다. 남자 농구에서 유재학 감독과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유재학 감독이나 추일승 감독은 선수들에게 절대 큰소리치지 않으신다. 선수들이 알아서 하게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런 점에서 난 두 감독님들의 하수이다.”
이제 후반기가 시작된다. 정상의 자리를 지킨다는 게 또 다른 숙제일 것이다. 그 숙제를 완성시키는 것도 어려운 부부일 것이고.
“후반기 동안 계속 1위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대한 빨리 복귀해야 하고 외국인 선수들도 체력적인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결국 KB스타즈와의 싸움이 될 텐데 난 이미 KB를 우승팀으로 못 박고 우승팀을 상대로 도전한다는 자세로 후반기를 치를 예정이다. KB스타즈의 박지수 활약이 대단하다. 한국 여자농구에 큰 역할을 할 선수이다. 박지수가 버티는 KB스타즈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올해도 외줄타기는 계속되고 있다. 5연패를 했다고 해서 우승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절감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목표는 우승이다.” <우승을 향해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위성우 감독. 정상에 있는 감독은 기쁨보다 그걸 지켜야 하는 어려움이 더 큰 것 같다.(사진=우리은행)> <이영미 기자>
기사제공 이영미 칼럼
헤럴드스포츠 대표기자, 네이버 '이영미의 스포츠 인 스토리' 칼럼 연재. 추신수&류현진 MLB일기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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