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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네트 그룹의 조병태 회장은, 모자로 세계를 재패한 사업가입니다. 그는 본래 핸드볼 국가대표 코치였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모자를 판매하여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조회장은 처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뉴욕의 빈민가에 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월세마저도 밀려서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그에게 그의 아내는 “사람이 힘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하나님께 당신의 짐을 맡겨보는 것이 어때요. 그러면,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을거예요”라며, 위로하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불교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절에 다녔지만, 어려움에 처하면서 아내를 따라, 브루클린 한인교회에 등록하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했을 때, 목사님은 오늘 본문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때, “돈 없는 자도 오라”는 말씀에 조병태 회장은 위로를 받고 하나님께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축복해 주십시오. 축복해 주시면, 평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는 기업광고를 인쇄한 모자를 개발하여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뉴욕 양키즈 선수단의 모자와 여러 분야에서 모자 10만개를 주문받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업으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자는, 사이즈에 상관없이 쓸 수 있도록 모자둘레를 밴드로 처리했기에, 모자를 쓰는 사람은, 모자가 머리에 착 달라붙는 착용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조병태 회장은 이 모자로 특허출원까지 했습니다. 그가 뉴욕 아름다운 교회에서 장로로 섬길 때, “저희 회사의 경영주는 하나님이시고 저는 사환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며, 하나님의 도우심에 영광돌리며, 자신은 그 앞에 겸손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조병태 회장은 오직 하나님께 나가기를 힘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복된 기업가로, 미국 모자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애 3: 33를 보시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 118: 25을 보시면, 시인이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복된 삶을 살고,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시 34: 8을 보시면, 다윗이 고백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하나님을 만나 경험할 것을 말씀드린 것처럼, 다윗은 일평생동안 하나님과 함께 했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습니다. 다윗은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하시죠? 상처로 인해 답답하시죠? 이와같이, 실의와 절망이 있을 때, 즉시 하나님께로 나가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는, “구원”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물”, “포도주”, “젖”이라는 표현모두가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목마른 자”는 구원에 갈급해 하는 자들을 상징하며, “돈 없는 자”는 구원에 이를 만한 어떤 조건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초청하여, 영원한 구원의 언약을 체결하실 것을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값없는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셨습니다. 여기서, 마 11: 28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시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조건없는 은혜로운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여, 하나님께서 “만민의 증인이요,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세우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구원의 언약을 통해, 값없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선한 것임을 인정하며, 그 진실성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과 인생의 본질적인 차이를 겸손한 자세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며, 영광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 - 2절을 보시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목마른 자입니다.
하나님은 본문 1절에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우리를 초청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본문 2절을 보시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피곤하며, 상처로 인해 답답함으로 실의와 절망에 있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타는 목마름으로 나가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 타는 목마름 같은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은 실의와 절망에 빠진 우리에게, 축복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자, 남왕국 유다가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자 유다는 다시 죄의 자리로 돌아감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바벨론에게 멸망당합니다. 그들의 후손들은 바벨론에서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었고,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모두 멸망하여,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축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전체의 요지는, “오라” “들으라” “찾으라”입니다.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희망을 찾으라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의 기쁨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로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웹스터 사전에 보면, “희망”에 대해 “성취에 대한 기대나 믿음이 동반되는 열망, 획득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바라기,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기”라고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18세의 나이로 징집되어 독일 전선에 투입 되지만, 영국군의 포로가 됩니다. 그가 징집될 때, 히틀러는 독일 병사들에게 괴테의 시집과 니체의 책을 나눠 주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한 군목으로부터, 시편이 부록으로 달린 신약 성경을 받고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희망이 사라진 황폐한 그의 마음 속에서 뜨거움이 솟았습니다. 그것은, 희망이었습니다. 그 희망이 그에게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공급했고, 전쟁이 끝나자 몰트만은 석방 되었습니다. 그는 석방 되자마자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신학에 입문해 “희망의 신학”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비록 부패함에 둘러싸여 있지만 완전함과 우주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일이 완성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유일한 역사적 증거는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 뿐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시면,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삶 속에서 지치고, 상처입은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신 겁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무엇으로도 상처입은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타는 목마름과 같은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나감으로, 희망을 되찾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3 - 4절을 보시면,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 앞의 2절에 이어, 본문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들으라”입니다. 본문 3절을 보시면,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는 누구입니까? 그는, 이사야가 아니라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와 연원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니 허황된 수고에 골몰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귀를 기울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연결하여,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이어, 본문 3절의 후반부를 보시면,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인 “영원한 언약”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복된 사람입니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을 “복되다”라고 하지만, 본문에서의 복된 사람은 이 보다 더 큰 복된 사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렘 11: 4을 보시면,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건 불이행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은 무효가 되는 겁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조상들이 그러했기에, 그의 후손들이 바벨론에서 이처럼 고통 가운데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다시,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며, 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합니다. 하지만,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부인한다면,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를 모른다면,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시면,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천국에 입성하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귀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5 - 6절을 보시면,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잊어버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 5절을 보시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르며, 그 나라가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고 합니다. 이는, 마 11: 12의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는 말씀과도 같습니다. 이를 현대어 역으로 보시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 6절을 보시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가 언제입니까? 욥이 언제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까? 자신이 헤어나오기 힘든 고난을 당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볼 때, 우리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낄 때 보다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더 많이 찾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난 속에 있을 때, 삶 속에서 잊어버린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짖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시작에서 말씀드린 조병태 회장이 하나님을 찾은 시기가 언제입니까? 고난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야구선수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날아오는 공을 타격했을 때, 손이 울리는 증세라고 합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야구배트를 꽉 쥐고 휘둘러 홈런이나 안타를 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꽉 쥐지 못함으로 인해 타격했을 때, 손이 울림으로 뼈가 다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야구 선수들에게는 중요한 모토가 있는 데 그것은, “꽉 잡든지 아니면 놓아 버려라!”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을 꽉 붙잡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어느 때든 항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열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늘 계시며, 우리가 돌이켜서 하나님 찾기를 간곡히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더욱 깨어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 나가심으로,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