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헬 3,1-11; 루카 9,18-22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입니다. 158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신 빈첸시오 성인은 1600년 사제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어느 날 죽어가는 가난한 농부의 병자성사를 집전하면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깊이 깨닫게 된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애덕회’(confrérie de la charité)를 설립하여 본당 신자들과 함께 가난한 가정을 돕는 일을 하셨고, ‘라자로회’라고도 불리는 ‘선교 사제회’를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루이즈 드 마리악 성녀를 만나 ‘애덕의 수녀회’를 설립하셨는데 이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1660년 선종하신 후 1737년에 성인품에 오르셨고, 1885년, 레오 13세 교황님에 의해 모든 자선사업 단체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성인의 삶에 감화된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이 1833년에 설립한 평신도 단체입니다.
빈첸시오 성인은 “가난한 이들은, 가난한 이가 되기로 작정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대신한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에서 인간의 모습마저 잃으시어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시고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로 보이셨지만, 그로 인해 자신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분으로 보이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 본당의 사회복지 분과에서 가난한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돕는 활동을 하고 계시고, 우리는 주일 헌금과 사회복지 후원금, 한 끼 100원 나눔 운동 등을 통해 가난한 분들을 돕는 일에 함께 하고 있는데요, 우리의 도움이, 빈첸시오 성인의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사랑과 섬김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코헬렛은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 코헬렛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때’를 잘 분별하는 것이 지혜이고,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붙잡히셨을 때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루카 22,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가 오래가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을 쥘 때가 있으면 내려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권력자가, 마치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합니다. 싸울 때가 있으면 화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생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싸움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서로 화평하지 못한 시기에 있다 하더라도, 화해할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때를 잘 식별하고 준비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이 대답은, 어제 복음에서 헤로데가 들었던 말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베드로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고 답합니다.
어제 복음과 오늘 복음 사이에는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요, 베드로는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그러고 보면 최후의 만찬 때에,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빵을 나누실 때,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라는 것이 드러나는데요,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까지 합하면, 빵을 나누실 때 그분께서 누구이신지가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사를 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참모습을 보여주시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후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 베드로 사도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는 이 말씀을 참으로 이해하게 되는데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설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사도 3,18; 2,23 참조) 베드로 사도에게도 알아 듣지 못할 때가 있었고, 알아 듣고 선포할 때가 있었습니다.
코헬렛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닛사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주님을 찾는 일에는 매 순간이 올바른 때”라고 말합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 몸인 빵을 나누어 주실 때 주님께서는 당신 모습을 드러내 주십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특별히 가난한 이들 안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성체성사와 말씀과 가난한 이웃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이 안에서 주님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은, 언제나 그때가 올바른 때입니다.
시몽 프랑수아 드 투르(Simon François de Tours, 1606-1671), 성 빈첸시오 드 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