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쉼표
세상을 안겨준 엄마가 없는 자리를
혼자 메꾸면서,
불행도 때론 행복을 위해 때론
필요할 때도 있다며,
해를 꺾어 든 저 달과 눈먼 바람을
사이에 두고 슬퍼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세상을 아픔으로만 보던 그녀에게
처음 시작한 서툰 직장 생활은
또 다른 아픔의 시작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그녀에게,
"김수미 씨...
똑바로 좀 해요."
"김수미 씨, 이것 좀 해줘요."
"수미 씨...밤을 새워서라도
내일 아침까지 보고서 마무리하세요."
타인들이
만들어 준 감정들을 지울 수 없냐며
빌딩 창문 사이로 쉬어가는 저 바람에게 물어봐도, 감춰 둘 곳 없었던 여자는
빈 허공에 못질하듯 날숨 한 번 뱉어 놓고는
앙상한 광대뼈에 숨겨진 그늘진 모습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서랍 깊은 곳에 넣어 둔
사직서를 내려다보며 하루하루를 버텨 가던
어느 날.
"아, 벌써 10시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 앞엔
길을 잃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어쩌지...
우산도 안 가지고 왔는데..."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갈 엄두를 못 내고 있던 그녀에게
백발의 경비원이 다가오더니,
"자...
이걸 쓰고 가세요."
"아니, 괜찮아요."
"저 비 다 맞고 갈 거예요?"
"그럼 쓰고 갔다가 내일 아침 출근할 때 돌려드릴게요."
보약 같은 온기가 묻어 있는 말투에
그날 하루 분의 피로를 다 지워 버린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비가 내리는 거리로
작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움켜쥔 행복은 씨앗으로 남지만,
나누는 행복은 꽃이 된다며
건네받은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온 여자는
작은 행동 하나에 커다란 마음을 안고,
담백한 인생의 맛을 알아가며
쉬어 가는 저 바람에게 마음을 건네고
맞이한 다음 날 아침,
지하철 안에는
하루 분의 행복을 줍기 위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했고,
작은 커피점에 일부러 들른 그녀는
우산을 만지작거리며 경비 할아버지께
드릴 커피 한 잔을 주문해
텅 빈 경비실 탁자 위에 우산과 함께
올려놓고는 15층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pm 9:00-
늦은 저녁 퇴근을 위해
다시 내려와 바라본 경비실에는
출근 시간에 놓아둔 우산과
식어 버린 커피 한 잔이
그대로 놓여 있는 걸 보고는
"혹시 여기 경비 보시던 나이 드신 ...?"
"아...
그분은 어제가 마지막 근무셨습니다."
(그럼...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빌딩 창가 앞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한참을 머물던 여자는 자신에게 우산 하나로
하루의 쉼표를 만들어 준 노인을
내리는 빗속에 그려 보며,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준
노인을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
살핌과 나눔으로,
나에게는 작지만
필요한 사람에게는 전부가 되어 준...
펴냄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