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은영당 명칭변경 건
○ 영당현황: 자은영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 17번지 일원에 위치한 만퇴당 홍만조의 영정을 봉안한 조선 후기 사당이다.홍만조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종지(宗之), 호는 만퇴(晩退)이다. 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 홍탁(洪𩆸)이고, 아버지는 현감 홍주천(洪柱天)이며, 어머니는 증 영의정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홍만조는 1669년(현종 10)에 생원시를 거쳐 성균관 유생이 되고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예문관검열부터 형조판서, 좌참찬 등 여러 중앙 관직과 조선 8도 중 황해도를 제외한 7개 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1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었고 1722년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자은영당의 최초 건립 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자은영당지』의 기록에 의하면 200여 년 전이라고 한다. 1차 중수 시기를 보면 더 늦은 시기에 건립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935년에 1차 중수가 있었고, 1968년과 1981년에 정비 보수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자은영당 본 건물만 있었으나 1968년 2차 중수 때 옆에 부속 건물인 추원각을 시멘트 벽돌로 지었다. 1981년에는 단청 작업이 이루어졌고 그때 ‘자은영당(自隱影堂)’이라는 이름을 짓고 편액을 만들어 걸었다. 이듬해인 1982년에 외삼문 격인 삼문을 세우고 ‘경모문(景慕門)’이라 하였으며 경역 둘레에 담을 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자은영당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도리식 건물로 홑처마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전툇간을 두고 있어서 정면의 전툇간은 툇마루를 만들었다. 양옆에 풍판을 달았고, 정면 정칸 위에 ‘자은영당’ 현판이 걸려 있다.
○ 변경사유: 자은영당이라는 명칭은 『자은영당지』에 의하면 1981년부터 새롭게 작명하여 사용하였다. 같은 기록에 의하면 명칭의 유래는 영당이 위치한 자은교(自隱橋)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여 사용하였다고 적고 있다. 아마도 그전에는 영당의 명칭이 없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영당(影堂)이라는 용어는 당초 불교식 건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한 종파(宗派)의 조사(祖師)나 한 절의 개조(開祖) 또는 덕이 높은 스님의 화상을 모신 사당’으로 정의된다. 이렇게 불교에서 시작한 건물 명칭이 이후 유학자의 초상으로 확대되면서 유학자 등의 선현의 초상을 모시는 건물로 확대되어 사용되었다. 따라서 영당이라는 건물의 명칭은 초상을 봉안한 사당으로 폭넓게 사용될 수 있다.
이렇게 건립한 영당의 경우 작명의 원칙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기 지정된 대표적인 영당은 강릉 회암영당, 청주 묵정영당, 하동 운암영당, 화순 춘산영당, 제천 황강영당, 세종 봉산영당 등이다. 이러한 영당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크게 두가지 경향성으로 대별된다. 즉, 하나는 영당이 위치한 지역명을 차용하여 사용한 것이다. 또 하나는 영당에 모셔진 주인공의 명칭을 차용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향을 놓고 볼 때 자은교라는 지역명을 차용해서 사용한 자은영당이라는 명칭도 그러한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자은이라는 지역명이 올바른지이다. 현재 자은이라는 명칭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1980년대 당시 사용되었는지도 의문이든다. 자은교 즉, 자은다리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는 단순히 다리의 명칭에 불과하다. 더구나 자은교(自隱橋)라는 한자명은 실상 ‘잔다리’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즉, 잔다리는 지금의 행정구역명으로 표기되는 세교(細橋)가 더 적합하다. 자은(自隱)은 ‘잔’이라는 의미를 한자로 자은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뜻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음만을 훈차한 것이다. 그래서 자은이라는 명칭은 역사성도 갖고 있지 못하다. 즉, 만퇴당 홍만조의 묘는 조선시대에 발간된 『온양읍지』에도 세교(細橋)에 위치해 있다고 적고 있다. 결국 조선시대에도 잔다리를 세교(細橋)라는 한자명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자은(自隱)이라는 명칭은 영당이 위치한 세교리의 명칭을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지역명을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은영당이라 하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영당의 명칭을 지역명으로 사용하다보니 이 영당에 어떤 분의 초상이 모셔져 있는지도 명칭상으로 전달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종합적으로 자은영당이라는 명칭은 역사성은 차치하고 지역성, 인물성 어느 것 하나 충족하지 못하는 명칭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1981년 신설된 자은영당이라는 명칭을 좀 더 영당의 성격을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명칭으로 개칭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 지정된 문화재의 영당의 경우 지역명 혹은 배향된 인물의 명칭을 사용한다는 예를 적용하면 세교영당, 만퇴영당, 홍만조영당 등의 명칭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명칭 중 영당의 성격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영당에 배향된 인물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더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이중 이름을 직접 사용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장 적합한 명칭은 만퇴영당이라고 생각된다. 기존 자은영당을 만퇴영당이라고 명칭을 변경하여 그곳에 모셔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홍만조초상의 성격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전) 아산시문화유산과 지원구 팀장-
자은영당(自隱影堂)에 대하여 매우 궁금했다.
「기사계첩 및 함」을 국보 334호로 승격시키고, 평양생사당에 모셔졌던 만퇴당선조님의 초상화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승격,정익공묘역 및 신도비 등 양효공묘역을 아산시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적극적 도와주신 지원구 박사님의 글을 받았다.
선조님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영당 이름을 만퇴영당(晩退影堂)으로 정식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세상에 만퇴당을 알리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