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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 졸업식을 1주일 여 앞두고 ‘일본에 가면 언니 만나게 해 준다’고 해서 간 것이 평생의 굴레가 되었다. 내 죄란 일본에 간 것 밖에 없다” 김정주(1931년생. 1945년 2월 도야마 후지코시강재공업 동원. 서울고법 승소 원고)
“행여 일본에 다녀온 것을 누가 알까봐 쉬쉬했다. 꼭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것만 같아서 내 평생 큰 길 한번 다니지 못하고, 뒷골목으로 뒷골목으로만 다녔다” - 김성주(1929년생.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동원.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 원고)
“나랑 못 살겠다고 집 나가서 10년 만에 돌아온 남편이 ‘내가 바람 좀 핀 것이 뭔 죄냐?’고 그랬다. 그래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살아야했다” - 양금덕(1931년생.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동원.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 원고) |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 10대 어린 나이에 일본 군수공장 등에 동원돼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해야 했던 여자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핍박받고 가난하던 시절, 상급 학교 진학의 기회가 있다는 것은 어린 소녀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큰 유혹이었고, 황민화 교육으로 물든 학교는 이들을 동원하기 위한 유효한 매개체 역할을 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철부지 국민학교 6학년 재학 중에 일본에 가게 됐고, 김정주 할머니는 졸업장도 미처 손에 쥐어 보지 못한 채 이름도 낯선 곳까지 동원돼야 했다. 전쟁수행을 위한 도구로 10대 어린 소녀들에게 공부를 그 미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아동 인권유린 사건이자, 용서받지 못할 반인도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고통은 해방이 됐다고 해서 그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광복 74년이 되었지만,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아직도 일제가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일본정부에 있다. 일본정부는 해당 기업과 함께 전시 노동력 착취를 위해 미성년 소녀들까지 강제동원한 행위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끔찍한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피해실상에 대한 집단의 기억은 ‘정신대’라면 우선 기피하고 보는 하나의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탓에, 피해자들에게 ‘일본에 다녀 온’ 일은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 되었고, 평생의 족쇄와 굴레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행여,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 받게 된 것은 한국 내의 문제’라고 발뺌할지 모르지만, 해방 후에라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노력이 따랐다면,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가 평생 고통의 굴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는 지난해 한국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내린 배상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서고 있다. 참으로 있을 수 없는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의 잘못도 크다. 많은 국민들은 ‘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예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우리 정부에 있다. 정부부터 이 문제를 전시 중요한 여성인권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다 보니, 제대로 된 진상조사나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들이 ‘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스스로 구분해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100명 중 99명이 혼동해 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달리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해서는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제도가 거의 없다는 것 또한 되돌아봐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일찍이 1993년부터 정부차원의 인권보호 의지를 밝히고 필요한 지원을 실시하고 있는 반면,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의 경우 제도적 지원에서도 소외된 상태다. 사회로부터도 외면 받고, 국가적 지원으로부터도 외면 받는 ‘이중의 소외’가 계속돼 온 것이다.
문제는 그로인해 피해자들이 스스로 신분을 감추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자신이 근로정신대 피해자라고 고백하더라도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이나 위로도 받을 수 없었다. 피해자임을 드러내면 오히려 가정과 주변으로부터 공연한 오해를 사 냉대와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피해자들이 피해자임을 감추고 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가로부터 따뜻한 보호를 받아야 할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아직도 피해자라는 사실마저 감추는 이 비극적 현실 앞에, 한국정부라고 해서 과연 그 책임이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2012년 광주광역시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한 뒤, 현재 ▲광주광역시 ▲전람남도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전라북도 등 6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통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가가 할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떠안도록 마냥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한다.
이 법은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고, 명예회복 및 피해구제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을 꾀하고 국민의 올바른 역사관 정립과 인권 증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발의됐지만, 정치권의 관심 부족으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회의에 안건 상정조차 안 되고 있다.
나라가 힘이 없어 당한 아픔을 언제까지 피해자 개인의 일인 냥 두고만 볼 일인가. 우리부터 피해자를 나 몰라라 하면서, 어떻게 일본정부에 올바른 역사인식만을 요구할 것인가.
정부와 각 정치권은 광복된 땅에서도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광복 74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일제가 남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위해 지원법 제정에 조속히 임할 것을 촉구한다!
-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
- 13~15세 아동 강제노동 피해자, 여자근로정신대 지원법 제정하라!
- 전시 여성 인권 유린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 일제강점기 국외 강제동원 여성 생존 피해자 167명,
- 정부는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
- 광복 74년이다. 더 늦기 전에 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
2019년 8월 13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참고자료]
1. 2019 국외 강제동원 생존자 의료지원금 지급 현황(2019.2 기준)
2. 여자근로정신대(여성 강제노동) 피해자 지원 조례 현황
3.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ㆍ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자치단체 지원 조례 현황(2019.8 현재)
5.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김동철의원 대표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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