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이나 2월에 읽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올해는 5월에야 읽었다. 그만큼 게을러진 탓이리라. 삶이란 게 예측할 수 없다. 스스로 가는 길이지만 타인의 영향도 받을 수 있고, 주변 환경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요즘의 삶이 더욱 그렇다.
2024 이상문학상 최종 심사평을 보면 전반적으로 작가층이 젊어졌다는 것과 함께 이야기의 방식이 훨씬 치열하고 다양해졌다고 한다. 대상을 받은 조경란 작가의 "일러두기"에 대해서는 자기 주제의 소설적 해석이 주는 설득력을 많이 언급했고, 특히 치밀한 구성과 간결한 문장의 호흡이 이 작품의 소설적 성취를 더욱 높여줬다는 평가를 내린다.
1996년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으로 등단한 조 작가는 문학동네작가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작가인데 수상 소감에서 “준비가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을 움츠리고 산 아이, 남의 눈에 멸시의 대상이기만 했던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하는 질문이 이 단편의 시작”이었다면서 “너무나 평범해서 눈에 띄지도 않는 인물이 만들어내고 행동하는 일상의 경이로운 이야기에 대해 더 쓰겠다”고 밝혔다.
제4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 "일러두기"와 조경란의 자선 대표작 "검은 개 흰 말" 외에 5편의 우수작이 수록되었다.
김기태, "팍스 아토미카"
박민정, "전교생의 사랑"
박솔뫼, "투 오브 어스"
성혜령, "간병인"
최미래,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성혜령(간병인)과 최미래(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는 돌봄 문제를 다룬다. 성혜령의 간병인은 기구한 운명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논리로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래서 뭐?’의 논리로 이겨낸다. 간병인이 자신의 속옷을 주인공(환자)에게 입혀주는 장면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최미래의 주인공은 젊은 베이비시터다. 돌봄과 육아, 가사 노동의 사이에서 어렵게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인물이다. 마지막에 한 입 떠넣은 밥은 생계를 넘는 생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기태(팍스 아토미카)는 불확실한 미래에 관해 묻는다. 이 소설은 핵전쟁, 정상 사고, 위험의 폭력이 이 세계를 폐허로 만들었다는 진단에서 출발하는데, 사회학적 상상력이 불안과 강박이라는 심리적 상태와 결합해 있다. 박민정(전교생의 사랑)과 박솔뫼(투 오브 어스)는 예술의 거처를 묻는다. 박민정은 예술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관해 묻고 있으며, 박솔뫼는 통상적인 시간과 공간을 비틀어 문학의 시공간을 창출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