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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문예지의 역할과 시인의 사명을 중심으로
김관식(시인, 문학평론가)
1.프롤로그
한국시단은 양적 팽창에 따른 질적 격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문학의 본질 추구라는 시인들의 사명의식 부재와 시인정신 실종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시인의 존재가치에 대한 정당성과 윤리의식의 상실은 가치전도의 창작행위와 활동으로 이어져 문학의 본질과 거리가 먼 세속적 풍토가 고착화된 실정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제기된 여러 사회문제와 맞물려 있다. 한국시단의 고착화된 병리적인 현상은 가치관 붕괴와 무차별화, 물질로 대체된 인정 욕구의 실현 등 명리적 가치 추구의 심화 현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패권 경쟁의 희생이 된 우리나라는 해방과 더불어 좌우 이념 대립과 6.25전쟁, 그리고 남북분단 상황이 지속, 그리고 근대화와 산업화 등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경재 발전과 물질적인 풍요는 이루었지만, 전통의 단절, 공동체의 해체, 물신주의 팽배, 생태환경의 파괴, 가치관의 혼란 등의 역기능을 낳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관의 세속화, 자기 결정적 인생관 진보주의적 사회관을 갖게 하고, 민주주의 수용은 한국사회의 주요한 구조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산업화와 도시화는 물질만능주의적 가치관과 배금주의 생활태도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한국시는 한국사회의 변화 양상을 그대로 반영하기 마련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질은 공리주의적 공동체의식을 분산시켜 개인주의적인 재테크, 성공 신화를 부추겨 성취하지 못한 정신적인 가치조차 교환가치로 환산됨으로써 예술 활동조차도 명리적 가치 실현의 교환가치로 대체하는 문화적인 풍토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무분별한 문예지의 출현과 시인들의 자격 남발과 세속적인 시작 활동으로 시단의 양적 풍요를 낳고 세속적이고 소비적인 시작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무차별적인 가치관의 혼란상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한국사회의 현실과 더불어 한국 시단의 현황을 냉철히 분석하고 당면한 과제를 도출하여 다같이 자성해 보고, 그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2.한국시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한국시단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특징의 축소판이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사실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모던한 현상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근대 이전에 특권층인 양반들에 의해 시창작 활동이 이루어졌지만, 근대화와 산업화되면서 사회 구조가 분화되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물질적인 풍요가 이루어지고, 과학문명의 발달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공간의 활동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풍요 속에 정신적인 소외감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누구나 자유롭게 시창작의 자유가 보장ㄷ된 오늘날, 시창작의 특권층 문화적 향수와 명리적 효용가치의 확산을 가져왔다.
따라서 시를 쓰기보다는 시인이 되어서 시인처럼 활동하면서 스스로 정신적 가치 지향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빈곤감을 느끼는 이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전후 어린 시절을 보낸 장노년층이다. 이들은 가난의 경험을 뼈저리게 체험했던 사람들이 많고, 오늘날의 급격한 사회 변화에 의해 물질적인 풍요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글쓰기에 나선 경우라 할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어린 시절의 농촌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적인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계층의 분화에 따른 소외감에서 주체적인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써 여가를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쓰기를 선택했고, 문예지의 신인 공모에 응모하여 시인이 되기를 희망한 결과이다. 이들은 가까운 지역이나 취미 모임을 통해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동호인 모임을 만들고, 각 모임의 발표 지면으로 동인지를 발간하고 시낭송회 모임을 갖는 등 사교 활동과 취미 활동으로 시창작 활동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각 집단을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하면서 각 집단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남보다 상대적 우월감을 갖기 위한 방편으로 문예지를 창간하여 이들의 작품을 게재하고 단체를 만들어 소속감을 형성해오고 있다. 이들 주에는 문예지를 통해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출판관계 종사자들도 많으며, 순수한 문학인들도 있으나 대부분 출판업이나 문예지의 존속을 위한 생존전략을 은폐하고, 문예지마다 등단 제도를 만들어 고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늘어나 문학단체와 문예지 창간이 속출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창작 욕구가 지대한 문인들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문학 활동의 방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문예지를 통해 문학 활동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대부분 문학 장르 중 원고의 분량이 적고 시인이라는 좋은 이미지로 자신을 돋보이고 싶은 심리적 충동으로 대부분이 시를 선택하여 시인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충분한 습작기나 시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모하게 시쓰기에 뛰어들어 이들 문예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극함으로써 정신적인 빈곤감을 시인 칭호로 해소하려고 한다. 그래서 대체적 가치로 시인 등단 제도에 의해 등단하고, 이러한 일련 행위가 시인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고, 시인의 모방 활동을 하게 된다. 문예지의 등단은 이제부터 등단한 문예지에서 시를 게재해 주겠다는 약속에 불가하다. 등단자의 입장에서는 이제 당신의 잡지에 시를 정식으로 게재할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1930년대 유명 문인들이 신인들을 뽑는 문단 추천제와 동일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예지에 등단하면 시인이 다 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데 공신력 있는 잡지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을 써야만이 인정을 받는 것이지 수준에 이르지 못한 시를 발표하는 사람이 시인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등단하면 아무런 시를 발표해도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무턱대고 문예지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시인으로 인정받는 것일라는 기대 심리를 가지고 발표에 급급한다. 그러나 시인으로 인정받는 길은 등단이 아니라 작품을 창작하는 수준이다. 시의 수준은 냉철하다. 시를 보는 안목이 없으면 절대로 좋은 시를 쓸 수 없는 것이다. 안목을 기르기 위해 유명 시인들의 시를 많이 감상하고 그들의 표현법을 습득해서 습작 활동을 해야만이 시를 보는 안목이 길러지고 창작 기능이 신장되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날마다 운동하여 기초체력을 갖추고 있다가 경기를 앞두고 혹독한 훈련을 거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등단의 요식행위는 운동선수의 경기대회의 출전의 메달과 같은 것이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날마다 작품을 쓰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없고, 등단한 작품 수준을 능가한 작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아니다. 운전기능이 숙달되어야 사고 없이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등단했다고 여기저기 작품을 발표하는 행위는 바로 초보운전의 무모한 도전으로 교통사고의 위험한 상황이 속출할 것이다. 엉터리 작품을 써서 발표하게 되면 아무도 엉터리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 말없이 그 시인의 수준을 나름대로 평가하고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치레로 만나면 잘 썼다고 하는 것이 통상적인 사회생활 현장이다. 관념 세계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삼류 가수처럼 직접적으로 감정을 호소하는 유행가 가사 같은 엉터리 시 아닌 시를 발표해도 잘 썼다고 추켜세우고 게재해 주는 문예지는 진정으로 그 사람의 작품 수준과는 무관한 속물적 가치의 취득을 위한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들이 자기 자신의 작품 수준을 모르고 남들이 겉치레 칭찬에 만족하는 매너리즘에 길들어져 있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하는 문예지가 늘어남은 저질 작품을 수용하여 영업을 하려는 상업적 목적이나 이들을 이용하여 다른 문단정치의 도구화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21세기 우리는 활자의 시대에서 이미지와 같은 영상의 시대가 되었다. 모든 것이 미디어 영상이 보여 주는 것만을 보는 직접적인 체험이 없는 매개된 재현의 영상문화 속에서 길들여져 있다. 텔레비전이나 미디어 매체에 자신의 엉터리 시가 소개되고 오르내리면 자신이 유명해지는 환상에 빠져 버리는 시대이다. 치열한 시인정신에 의해 심혈을 기울이고 안목을 길러 고뇌하며 좋은 작품을 쓰려는 노력보다는 적당히 즉흥적인 감정을 시라고 발표한다 이들은 유명해지려는 환상으로 시의 본질적인 가치를 무차별화하고 세속적인 명리적 가치만을 추구하게 된다. 한 편의 시는 그 시인의 인생에 대한 고뇌와 혼신의 노력의 산물이 되어야 함에도 그저 적당한 글쓰기와 관념적인 미사여구로 장식된 혼자만의 넋두리에 불과한 지극히 졸속한 글을 시라고 발표하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무모한 만용은 하룻강아지가 호랑이 앞에서 재롱을 떠는 이치와 흡사하다.
이러한 세속적인 가치에 의해 명리적 가치와 허기진 문화적인 욕구를 채우려는 현상에 빠진 사람들이 쉽게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부상시키려는 허명의식에 의해 문학 활동을 취미 삼아 아마추어 시인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이들을 수용할 문예지들이 현재 오륙백 개나 발간하고 있다.
이들 문예지의 등단 제도에 의해 문인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대부분 소설이나 산문 장르는 원고 분량이 많아서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되는 시와 아동문학, 수필 부문에 편증되어 있는 것은 출발부터 안일한 자세에서 출발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습작하려는 문학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여 자아실현하려는 창조적인 가치 실현보다는 그저 적당히 시를 쓰고 시인 행세를 하기 위해 지역 문인 단체에 가입하여 임원으로 활동함으로써 스스로 격상된 신분을 과시하고 명리적 가치 실현ㅇ을 하려는 속물적인 시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이들은 시인이나 작가의 존재 가치는 좋은 작품을 창작하여 문예지나 기타 출판 매체를 통해 발표하고, 공감을 얻었을 때 인정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작품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보다는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적당한 작품을 발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시낭송, 시화전 등 쉽게 대중들의 시선을 모으려는 활동에 매진한다. 문학을 모르는 대중에게 시인, 작가임을 내보이는 행사 위주에 매달리는 것은 시낭송이 청각에 호소하기 때문에 시가 아닌 감정 토로의 저급한 시도 순간적인 감동을 일으켜 시인으로서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시화전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은 관심을 두지 않고 읽더라도 건성으로 읽고 지나치게 된다. 그들은 시보다는 시화를 꾸며놓은 그림에 눈길을 주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자기 시보다는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이라는 자기만족으로 경제적인 출혈을 하게 된다.
이러한 행가를 통해 문예지나 문학단체 임원들은 회원들의 결속을 다지고 문학 활동을 열심히 하는 시인으로 자족하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일회성 행사에 매달려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다. 이러한 행사는 시에서 멀어져 간 독자들에게 시를 억지로 권유하는 자비출판하여 나누어 주는 행위와 유사하다. 시에서 멀어진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고육지책에 해당한 일로 시인이 할 일과는 무관하다.
시인은 좋은 시를 창작하는데 전념하는 것이 시인이 자아를 실현하고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문예지나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좋은 시를 발표하는 권위 있는 문예지를 만들어 여느 시인이나 그 문예지에 발표하기를 원하고 독자들이 사보기를 기다리는 좋은 문예지를 발간하는 일이다. 각자가 하는 일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문예지나 출판사가 하는 일을 시인들에게 떠맡기고, 시인들이 할 일을 하지 않고 문예지 발행인이 할 일을 대행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정상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일 것이다.
시인들이 시를 쓰는 본질적인 일을 망각하고 출판매체의 하는 일을 대행하는 일은 엉뚱한 일에 끼어드는 일이다. 또한 정상적으로 출판매체와 독자와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길거리 대중들에게 시를 읽어 달라고 구걸하는 행위를 하기 이전에 좋은 시를 창작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예지가 독자 유치를 위해 할 일을 마치 시인들이 공동으로 해야 할 일로 문예지나 출판업자들이 시인들에게 떠맡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는 현상은 문예지 운영에 시를 쓰는 사람들의 공동 투자나 공동 회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 문예지 운영 겸 시를 쓰는 일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출판 구조에서 좋은 시가 창작될 수도 없을뿐더러 외면하는 독자가 다시 들어올 리 만무하다. 이러한 구걸행위와 비슷한 문학 활동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게 되고, 시인이나 작가를 비하하게 된다.
현대사회는 물질의 시대다. 결국 이러한 행사 위주의 경비는 참여한 시인이 부담하게 된다. 시인은 시를 쓰면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시인이라면 경제적인 손실을 이중삼중으로 낭비하며 길거리로 나와 행사하는 일보다는 그 아까운 시간을 활용하여 좋은 작품 창작을 위한 독서와 사객, 작품 구상, 집필 등 연수 활동에 주력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자질 부족으로 시인의 자세나 문학정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연히 길거리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시인들의 활동인 것으로 오인하게 된다. 이러한 행사를 추진하는 자신의 명리적 가치나 경제적 도움을 받으려는 상업적인 속셈을 지닌 소수의 단체 운영자나 문예지의 운영자의 집단 심리를 부추겨 시인 생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이비 싱인들도 문제이다. 이들은 투철한 시인정신이 없이 적당하게 시인 행세를 하며 뽐내려는 문학 활동과 행사 만능의 시인 풍토를 조성하고 재생산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러한 문예지나 소규모 단체들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문단 파벌 세력 과시는 문예지마다 각 지방별로 지부를 두고 세를 과시하는 조직 구성에서부터 이들이 순수한 시인들의 모임을 선도하는 문예지라고 할 수 없는 잡지 운영 조직체제를 구축하려는 황당한 속셈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시인들의 문화로 자리 잡아서는 안 되며 더구나 재생산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중아의 시인이나 문인단체가 대중들을 모아놓고 대규모 시인대회 행사를 진행하여 유명한 시를 낭송하는 시낭송문화는 시적인 분위가 조성과 문화 향유층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저급한 소규모 문인단체나 문예지에 모인 시인들의 검증받지 못한 시낭송대회는 오히려 독자들과 담을 쌓고 시인의 권위를 추락하는 행사가 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 규범이 무너진 시인들의 행동은 시의 가치를 퇴색하게 만들게 된다. 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진솔하게 언어로 압축한 예술이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순수한 가치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속물화된 시인정신에 의해 현대사회의 정신을 지배하는 물질주의 가치관에 의해 효용가치와 교환가치로 환산도됨에 따라 속물주의적 가치관에 의해 정신적인 가치가 무차별화되고 물질로 정신적인 가치를 소유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시인의 칭호 취득과 거짓 시인 노릇을 하여 심리적인 만족감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들을 부추겨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문학은 활동과 행사로 가치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시를 잘 쓰는 시인은 극히 드물다. 김시습과 가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난 시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끈질긴 노력과 자기와의 싸움으로 얻은 문학적 향기가 그윽한 시는 만인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요한한 각종 시낭송, 시화전 등의 행사는 독자와 만남을 촉진하기 위한 독자 확보의 장을 마련하는 계기일 분이다. 좋은 작품을 알리는 기회로 이용된다면 그 얼마나 좋은 행사이겠는가? 본질을 떠나 자기를 남에게 과시하려는 부끄러운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옛날부터 가짜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요란한 행사로 감쪽같이 속이는 행사를 벌려야 위장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자 시인들의 형태가 문학 풍토로 자리 잡은 것은 중앙단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증명한다. 과거 독재정권 시 어용적인 산하 예술단체로 부속되어 정치화된 구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정치적인 논리를 반성 없이 답습하여 자신의 명리적 가치와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물지각한 인사들이 중앙단체를 이끌어 왔고, 그 문화의 재생산 구조 속에서 거듭나지 못하고 구습을 되풀이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문인단체의 위상이 추락한 결과일 것이다.
구습에 의한 문인단체 운영으로 정상적인 운영보다는 파벌 의식 지역패권주의, 문학 권력체제의 구축을 위한 아성을 쌓기 위해 패거리를 만들고 그 패거리를 비호하기 위해 운영하는 매체를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저급한 작품을 비호하게 되고 저급한 작품에 박수를 치라고 강요하는 부끄러운 짓을 서슴없이 감행하기 때문에 결국 문인들의 가치가 하락되고 신뢰가 무너져 이제는 땅바닥ㅇ에 내동댕이쳐지게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다같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각종 문예지들이 저자권법을 지키고 있는가? 문예지의 발행인들이 시인과 작가들을 존경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저자권법이 있으나 마나 저작권료를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오히려 게재를 받고 구독료 명목으로 묵인적 금품 가요 행위와 소속 단체를 만들어 감투를 배분하여 강요된 자발적 행사 찬조금을 강요하고, 시인과 작가 위에서 군림하여 암묵적 권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갑질을 자행하지 않았는지 반서에 보아야 할 것이다.
각종 문예지들의 등단 제도에 의해 등단한 시인이나 작가들은 열악한 문예지 운영의 희생이 되고 종속되어 그 고리를 끊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같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문예지나 문인단체 임원들이 하나같이 저자권법을 무력화시키고 작품을 게재하거나 문예지를 운영할 목적으로 회원들을 수단으로 이용하였는지도 냉철하게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문예지들이 5~600 개 이상 창간과 폐간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 문예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좋은 작품을 독자에게 배포하는 일을 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회원들끼리 발표 매체를 만들어 대표자를 내세워 창간한 문예지는 대표를 위시해서 회원들의 호주머니를 각출하여 운영되는 체계이기 때문에 항상 잡음이 많은 것이 예사이다. 이들 문예지들은 문예지를 존속 발간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들을 유인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어 작품 발표 기회 제공을 미끼로 문학상 제정, 문인 모임을 만들어 감투 유인 체계를 갖추어 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이들 잡지를 통해 시인이 된 사람들도 이들과 같은 문학 외적인 소모적인 활동이 문인들의 활동으로 착각하여 문화 재생산의 구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시화전 개최, 시인 축하 잔치 겸 문학상 축하 잔치, 시낭송대회 개최, 정기적인 회원들의 시낭송 모임, 문학기행 등 친교 모임을 갖고 활동함으로써 문학 본질적인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다.
문학작품의 창작행위라는 혼자만의 치열한 자아실현의 문학 본질적인 가치 실현은 도외시하고, 문학작품의 발표 활동에 치중하는 본질은 없고 껍데기 활동만을 일삼는 문학단체 활동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시간 풍속도이다.
산업사회로 인한 급속한 사회 변화 구조는 합리주의에 의한 구조적 분화를 가져왔으나 이러한 시스템 자체가 경제적 성과를 노린 구조 변화이다. 따라서 급속한 변화는 가치관의 혼란, 규범의 상실, 사회적 해체, 가족 기능의 약화, 사회의 긴장과 갈등, 체념의식의 확산, 소외화 현상 등 도덕적인 위기를 가져왔다.
예술과 문학의 신성한 기능이 무너진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무한 복제가 가능해진 시대다. 예술품은 가짜와 진짜의 구별이 모호한 진품과 같은 제품을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해진 시대이다.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시대와 구별이 모호해진 시대이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까지도 교환가치로 환산하여 계량하려고 물질적 가치관이 재배하는 시대에 문학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사유 기능과 존재가치에 대한 담론을 제기한다 속물화되어 가는 시단은 이제 깨어나야 한다. 시인들이 자기 존재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문학의 본질을 추구하는 고도의 농축된 정신 가치를 집약화하는 시인으로의 정체성을 찾아나서야 할 때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이 있듯이 예술의 진정한 자치를 알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시대를 초월하여 만인에게 그 진가를 발휘하는 시를 남기려는 치열한 시인정신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저 속물화된 세상에서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여 시인 노릇이나 문인단체에서 위상을 높이려는 겉치레는 진정한 시인의 자세가 아니다.
시인은 진실을 말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억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민주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선봉자가 되어야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그저 자신의 명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감투 쓰기, 문학상 타기 등등 자신의 속물적인 만족감을 채우려는 시인은 거짓 시인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하고 사회적 공감의 정서를 재창조하는 문학 본질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 드보르는 그의 저서 『스펙타클 사회』에서 현대사회를 스펙타클사회로 규정하고 현존하는 생산양식의 결과로 빚어진 상호 소외에서 현존하는 사회로 발전만이 유일한 목표로 하고 사람들은 전문화된 매체에 의해 세계를 바라본다고 했다. 이러한 사회의 뿌리는 권력이고 지식의 확ㄷ대 속도와 인지 능력의 범위는 날이 갈수록 광범위해지는데 비해 인간의 지적 능력은 그대로 유지해 왔다. 그런 결과 인간은 단편적인 지식에 의존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대사회에 적용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기심의 사회는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듯이 우리 시인들도 극도의 자기만의 이기심으로 소멸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겠다.
공동체사회의 정신적인 촛불을 치켜든 시인이 스펙타클한 사회에 대해 바로 보고 이기심을 버리고 아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치는 선봉자가 되어야 할 텐데 자신만을 위한 속물적인 가치 추구는 시인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시를 속되게 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인간을 인간다운 향기로 살아가게 하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의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인은 서로 조화롭고 화해를 이루고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3.에필로그
시인이 본질적인 가치에 충실해야 이 사회는 인간성을 되찾을 수있다. 사람이 사랍답게 살아가려는 인간의 원형을 추구하려는 시인의 사명은 속물적인 교환가치로 모든 것을 환산하려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성을 되찾아가려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왜 사는가? 하는 문제의식과 자시느이 정체성을 찾고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가 심각하게 고뇌한 흔적을 압축하여 시로 형상화하여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뒤돌아보는 인간다움을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문예지의 사명은 문학 본질을 추구하는 시인드르이 농축된 정서가 만ㄴ나는 광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예지의 사명은 세속적인 가치로 오염된 시단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선도해갈 사명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인이 바로 설 수 있는 기회의 제공과 정보 제공, 본질을 추구하는 시 문화의 풍ㅌ토를 쇄신한는 데 앞장서는 문예지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각종 문예지는 이제 시인들이 인간의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하고 시의 가치를 드높이는 화해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 같이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인간이 인간다운 길을 걷기 위해 매체와 시인이 합심하여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를 창작하는 시인들은 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지향하는 참시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일부 이기심에 의해 속물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시인들이 냉철한 반성을 통해 좋은 시를 창작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
월간 문학공간 2019년 10월호 발표
김관식
《전남일보》(평론), 계간 《자유문학》(시), 《아동문예》(동시)로 등단, 노산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외 다수 수상, 시집으로 『가루의 힘』외 6권, 동시집으로 『 토끼 발자국』외 14권, 문학평론집으로 『한국현대시의 성찰과 전망 』외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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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부터 이 글을 읽고 많은 반성을 해 봅니다
글만 열심히 써왔지 서로 다가서지 못한 마음 반성합니다
서로 열심히 해 보자고 채찍질하는 마음을 왜곡게 바라본다고 다가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용기내겠습니다
문단이 더 바르게, 더 참되게 바로 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은 되돌리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서로 좋은 작품에 박수 보내고
질 낮은 작품에 격려하고 힘을 갖도록 해 주며
강원문학을 위해 다시 노력하도록 다짐해 봅니다
임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