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동안 ‘공부와는 담 쌓고 지낸’ 운동선수들이 뒤늦게 밤새워 책을 뒤적인 끝에 두 번째 인생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례가 적지 않다. 스포츠 스타 출신 직장인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극한의 한계를 넘나든 선수시절의 경험이 그들의 가장 큰 자산이었고 자연스레 몸에 붙은 목표의식과 책임감은 ‘성장 엔진’이었다. 직장에서도 ‘1등’ ‘최고’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은 “살아남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고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람쥐처럼 내달리다 - 정재섭 기업은행 풍납동 지점장
1986년 ‘고려대 트리오’ 정재섭 이민현 최철권이 뛰던 실업농구 기업은행은 ‘도깨비팀’이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주전을 꿰찬 대기업 농구팀 대신 은행팀을 선택한 젊은 선수들이 잘 짜여진 조직력을 밑거름으로 최강을 다투던 삼성 현대를 심심찮게 침몰시킨 것. 당시 기업은행의 야전사령관은 173cm의 단신 가드 정재섭(41). 다른 선수들보다 눈에 띄게 키가 작았던 그의 송곳 같은 패스와 얄미운 가로채기는 기업은행 농구의 백미였다.
그는 ‘날쌘 다람쥐‘ ‘밤송이’라는 옛 별명 그대로였다. 무대가 코트에서 은행 객장으로 바뀌었을 뿐. 기업은행 풍납동 지점장으로 일하는 그는 89년 은행원으로 변신해 다람쥐처럼 달려왔다. 2002년엔 기업은행 최초의 30대 지점장이라는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 돼 동료 은행원들을 놀라게 했다. 이는 서열과 기수를 엄격히 따지는 금융계에선 이례적인 일로 선수시절 별칭 ‘다람쥐’처럼 고객의 가려운 곳을 찾아 발빠르게 내달린 결과다.
그가 코트를 떠나 첫 출근한 곳은 기업은행 종로6가 지점. “농구만 하던 놈이 좋은 학교 나와서 신입사원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들을 따라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종로에 발령받았는데 처음 2년은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공부에 목숨을 걸었어요. 선·후배 안 가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책을 읽고 또 읽고….”
그러나 고민과 좌절은 잠시였다. 혼나고 깨지고 욕먹으면서 배운 은행 일은 그의 천직이었다. 선수 시절 몸에 밴 성실성과 운동선수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은행이 안성맞춤이었던 것. 그는 가는 곳마다 눈부신 영업력을 발휘해 “과연 운동선수 출신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찬사를 들었다.
지난해 실적평가에서 풍납동 지점은 최우수 지점으로 뽑혔다. 만년 ‘꼴찌 지점’의 여·수신을 각각 50% 이상 끌어올리며 ‘1위 지점’으로 바꿔놓은 것. 덕분에 모교 교우회보에 그의 동정이 스포츠계 동문이 아닌 금융계 동문 자격으로 실리기도 했다.
과거 ‘칼퇴근’으로 유명했던 풍납동 지점은 요사이 밤 9시가 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공부에 매달렸다”는 정지점장을 본받고 싶어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절망이 오히려 희망이 됐다. 회사 일로 고민하는 직장인들이나 후배들에게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당차게 맞서 싸우라고 말해주고 싶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격투기처럼 공격적으로 - 전배제 삼성생명 신평촌영업소장
84년 LA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 48kg급에 출전한 선수들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한 선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학생 대회에나 어울릴 법한 어린 선수가 몸을 풀고 있었기 때문. LA올림픽에서 4위로 아깝게 메달 획득에 실패한 삼성생명 신평촌영업소 전배제 소장(40)은 당시까지 올림픽에 출전한 레슬링 선수 중 가장 나이(20살)가 어렸다.
20년의 세월은 약관의 레슬링 선수를 불혹의 보험영업 관리자로 바꿔놓았다. 전소장은 영업관리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올 3월 회사에서 삼성생명 영업관리자상을 수상했다. 그가 맡은 지점은 늘 최고였다. 특히 영업 실적은 단 한 차례도 전체 지점 중 상위 10%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는 “격투기 종목 특유의 공격적인 리더십 때문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그가 삼성맨이 된 것은 올해로 20년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도대학에 진학하면서 레슬링팀이 있는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학업과 선수생활을 병행한 것. 은퇴 후 처음으로 영업소에 출근했을 때는 그 또한 고민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보험상품의 특·장점을 가르쳐야 할 영업과장이 거꾸로 설계사들에게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명문대 졸업하고 입사한 친구들과 똑같이 승진시험 보고 경쟁하면서 받은 상이라 더 값지게 느껴집니다. 운동을 오래한 사람들은 대개 목표를 꼭 달성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합니다. 스케줄을 짜고 훈련을 하는 버릇이 들어서 시간관리도 잘 하고요. 금융계나 영업 쪽에서 운동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아마도 몸으로 익힌 책임감과 시간관리 능력 때문일 거예요.”
#야생마를 그리며 - 마낙길 현대자동차 혜화동 지점장
역대 최고의 배구 공격수로 꼽히는 ‘야생마 마낙길’(37)은 현대자동차 ‘1등 지점’의 ‘총감독’으로 인생의 2막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혜화동 지점은 영업실적에서 2003년 상반기 최우수상, 하반기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달 발가락 봉합수술을 받아 걷기가 불편하다. 폭설 피해 현장에 자원봉사하러 갔다 발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자원봉사도 사실 영업이거든요. 제 차를 사주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차 다니는 친구가 시골까지 내려와서 열심히 일하고 갔다는 소문이 퍼지면 우리 회사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연·고대 출신들도 들어오기 힘든 회사에 쉽게 들어왔으니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지요.”
배구인들은 그를 강만수 전 현대캐피탈 감독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야생마를 그리며’라는 그의 팬클럽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회사원으로 변신한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왕년엔 내가…’라는 선수시절의 추억이었다고 한다.
“대변이 뭔지, 차변이 뭔지도 몰랐지만 일은 비교적 빨리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만 화려했던 선수시절의 추억을 떨쳐버리기가 마음처럼 쉽지는 않더군요.”
혜화동 지점이 1등을 하게 된 것은 팀워크 덕. 16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그가 가장 중점을 두는 게 바로 팀워크다.
“팀워크를 높이기 위해 술자리를 자주 갖습니다. 그래서 몸도 많이 불었고요.(웃음) 팀워크가 갖춰지면 무서울 게 없습니다. 조직력이 절로 나오고 의리, 승부욕도 길러집니다. 팀워크에서 나오는 조직력, 의리, 승부욕은 마케팅의 기본이에요. 감독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현대 배구팀이 요새 부쩍 실력이 늘었다고 합니다. 새 감독님 덕에 팀워크가 다시 살아난 거죠.”
‘직장인 마낙길’의 꿈은 현대차의 임원이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입사 동기보다 승진이 빠른 편이라고 한다. 그는 “조금 뒤떨어져 있더라도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다는 믿음, 결승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범근의 센터링, 김재한의 헤딩슛 - 김재한 KB신용정보 부사장
스포츠 스타 출신 직장인 중 현직 ‘최고위 임원’은 KB신용정보 김재한 부사장(56)이다. 그는 ‘차범근 센터링-김재한 헤딩슛’이면 반드시 이긴다는 말이 회자됐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던 ‘축구 스타’ 출신. 이회택 감독, 김진국 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등과 함께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김부사장은 옛 주택은행(국민은행과 합병)에 입사해 축구선수 및 감독으로 활약하다 축구 대신 금융을 선택했다. 본격적으로 금융계에 뛰어든 지 14년째. 차장으로 은행 일을 시작해 주택은행 계산동 지점장, 본점 영업부장, 국민은행 강동영업본부장 등을 거쳐 국민은행 자회사인 KB신용정보에 둥지를 틀었다.
은행이나 보험 등 치밀함과 섬세함을 중요시하는 전문직종에서 스포츠 스타가 임원에까지 오르기는 사실 쉽지 않다. 김부사장 역시 금융 일을 뒤늦게 배우느라 남들보다 더 노력한 것은 불문가지.
그는 “후배들이 금융계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운동선수 출신들은 기획 쪽에선 치밀함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으나 사람 관계, 즉 영업이나 마케팅 분야에선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