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탈로치 / 김용성

페스탈로치                                                                              芝江 김 용 성    페스탈로치는  스위스가 낳은 세계적 교육자다. 그는 당시 루소의 영향을 받아 자연 상태에서 아동을 교육하고자 했다. 그는 '부르기'에 농장을 설립하기도 하고 '부르기 빈민학교'를 설립해 아동의 자발적 활동과 전인적인 교육으로 참다운 인간을 길러냄을 목적으로, 헌신적인 노력을 한 고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의 교육방법과 어린이에 대한 애정이 그를 교육자적 위인이 되게 한 것이다.   그간 나는 43년간 어린이 교육을 맡아왔던 한 사람으로 반성해 볼 때, 과연 어떠했을까? 한 사람씩 개별지도도 하며, 자상하고 인내심 있는 지도를 했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고개가 가로 저어진다.  몇몇이 잘못하면 학급 전체 어린이들에게 단체기합을 주기도 했고, 학급성적을 올리려고 그들에게 무리한 수업을 하기도 했다. 합창과 같은 분위기가 예민한 예술 활동도, 예능발표대회에 일등을 하려고 싫증나게 연습시키지 않았던가?   이제 나는 손주들을 키우며 너무 달라져 있다. 두 아들들을 키울 때도 온 정성을 쏟지 못했다. 물론 맞벌이하느라 어떻게 지냈는지도 잘 생각이 안나고, 다만 그들의 잘못이 발견되면 가차 없이 꾸중을 했다. 물론 때로는 매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손주들에게는 영락없는 페스탈로치 선생이다. 그 당시 손녀들만 넷이데, 제일 큰 손녀가 유치원 졸업반이다. 한두 살 차이로 고만고만하니, 그들은 각자의 성격대로 떼를 쓰기도 하고 재롱을 떨기도 한다.   우선 나는 그들에게 결코 화를 낸 적이 없다. 그리고 자유로이 내 공부방도 들락거리고, 거실과 온 방을 어지럽히며 종이에 그림이나 낙서를 해도 가만히 지켜본다. 그러면서 조금씩 가르쳐준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가능한 한 모두 들어준다. 서로 놀다 싸우고 울면 조용히 타이르며 달래준다. 그들이 밖에 나가고 싶어 하면, 데리고 나가 넓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도 태워주고 시소나 미끄럼틀도 태워준다.   때로는 아파트 내에 있는 토끼장과 닭장에 가서 먹이를 주는 것도 동행하고, 내 방에서 오디오에 CD나 테이프를 넣어 틀어준다. 그들 중엔 내가 백일 때까지 같이 지냈거나, 아니면 약 일년반 정도 키워준 손녀도 있다.  그들이 오는 주말이면, 나는 내 할 일을 모두 접고 그들과 놀아준다. 그리고 내 방에 갖춰놓은 음악기구 즉 풍금, 리코더, 멜로디언 등을 가지고 불어보기도하고 건반을 눌러보게 한다.   그러다 보면 악기소리,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로 소란하지만,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집이 된다. 누가 무엇을 질문하면 차근차근 쉽게 대답해 주고, 책을 들고 오면 소리를 내어 읽어준다. 조금도 싫어하거나 귀찮아 하지 않으니 손녀들은 나를 무척 따른다.   이제 나는 우리 집의 페스탈로치이다. 교직에 있을 때 진작 손주들을 키워 봤으면, 훌륭한 선생님이 되지 않았을까? 요사이 손녀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할아버지~'하며 뛰어와 안긴다. 만일 나의 제자들이 그 정도로 나를 좋아 했다면 어떠했을까? 그야말로 이상적인 교육현장이 되었을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흘러 큰 아들의 외동딸 선빈이가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게 되었다. 그간 피아노대회에서도 작은 상이나마 받고, 가냘픈 몸매지만 검도대회에서 씩씩하게 겨루어 메달도 탔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뒤 늦게 8살 차이의 남동생 선범이를 봐서, 지금 막 두 돌이 지나 한창 재롱을 떤다.  몇 년 더 있으면 이 애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때를 씻겨 주는 게 나의 바람이다. 작은 아들은 딸만 셋인데, 큰딸 채영이는 2학년이지만  덩치가 그 학년에서는 제일 커서 합기도를 하고, 피아노도 친다. 그 밑으로 유치원생인 주영이, 선율이가 차례로 있다.  손자는 어려서 그렇고, 네 손녀들은 모여서 때때로 공연을 한다며, 프로그램도 짜서 컴퓨터로 인쇄하는 등 야단들이다. 내 방과 책상은 엉망이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던 내벼려둔다. 곧 그들의 창의성이 길러지는 현장이니, 나는 흐뭇하게 지켜볼 뿐이다.   이제 그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가고 기가 살아있다. 그들이 커가는 모습이 눈에 확연히 보여, 나는 내가 마치 페스탈로치인 양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또한 뒤늦게나마 대를 이을 손자가 태어나 재롱을 떠니, 이 아이에게도 더 훌륭한 페스탈로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