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는 슬픔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의 파괴에 대한 슬픔의 노래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난공불락의 성이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정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다윗의 후손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더욱 더 그들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이 삶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을 때 언약은 파기될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신앙으로 결국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셨고, 이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많았던 예루살렘은 이제 적막하게 되었으며 예전의 영광을 모두 잃었습니다. 거주민들은 밤마다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전의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습니다. 또 환란과 많은 고난 가운데 사로잡혀갔습니다. 때문에 더이상 절기를 지키러 먼 곳에서 오는 자들이 있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성이 이제 완전히 황폐해졌습니다(1-4). 뿐만 아니라 이전에 강력했던 성읍이 망하자 주변 사람들은 조롱하기도 합니다. 이전에 예루살렘의 왕에게 조공을 바치던 자들이 이제 왕의 벌거벗음을 보고 업신여깁니다. 그럼에도 왕을 도울 사람이 없습니다(5-7). 이에 이 시의 화자이면서 예루살렘 성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합니다. 이전에 의지하고 도와주던 자들은 더이상 자기 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탄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수들이 스스로 높은 척하고 성전을 함부로 대한 것에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시기를 탄원합니다. 성에 남은 자들이 양식으로 인해 고통 당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호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인화된 예루살렘)’의 비천함을 돌아봐 주시도록 호소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다른 사랑하던 사람들(우상들과 의존하던 다른 나라들)은 이제 자기를 속였고 버렸습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목숨을 회복시킬 양식만 구하기 바빴지만 결국 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 원수들은 그렇게 고난을 당하는 예루살렘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이에 예루살렘은 자신에게 행한 것 같이 다른 원수들에게도 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8-22).
심판으로 인해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 다시 눈을 돌립니다. 그동안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결국은 자신을 배신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철저히 외롭게 됩니다. 이웃들과 친구들은 성이 굳건하게 있었을 때에는 친절하게 대하고 사랑하는 척했으나 위기의 때에는 그 성을 가장 먼저 조롱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고 의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온갖 것들도 우리를 유혹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도록 만들고 때로 그것은 효과가 있고 달콤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심판의 때가 되면 그것이 도리어 우리를 배신할 것입니다. 그것이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우리를 그렇게 조소하고 비웃습니다. 다른 것(물질, 인간관계, 능력 등)을 의지하도록 유혹하고 나중에는 그것을 의지한 우리를 비웃고, 조롱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조롱은 원수 마귀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를 향한 조롱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와 비참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됩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심판 후에 드리는 슬픈 노래로 바로 우리의 슬픈 노래입니다. 죄로 인해 망한 우리의 삶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옛 성을 무너뜨리고 새 예루살렘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전의 삶을 보며 애통해 하며 돌이켜 새 예루살렘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언젠가 배신할 그 무엇이 아니라 심판 후에도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지난 죄를 후회하고 뉘우치며 하나님께 돌이키며 매일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