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뫼 강가로
올여름에 들어 강둑으로 나가본 지 시간이 제법 흐른 듯하다. 지난달 초순 장마가 채 끝나지 않았을 때 대산 들녘 연근 경작 구역에서 연꽃을 살펴본 바 있었다. 장맛비가 잠시 그친 틈새 우암 들녘을 지난 동부마을에서 연꽃만큼 화사한 달맞이꽃도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한낮 날씨가 한창 무더워지는 때라 강둑을 더 걸어보지 못하고 버스 종점 유등에서 시내로 곧장 돌아왔다.
팔월 셋째 목요일이다. 강변으로 산책을 나서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는데 종전과 달리 반바지 차림을 했다. 길고 긴 강둑을 따라 걸으면 풀이 무릎 아래 종아리를 스칠 일은 없지 싶었다. 아침 식후 이른 시간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에서 창원대학 앞으로 나가 도청 뒷길을 따라 걸어 창원중앙역으로 향했다. 마산역을 출발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 한림정까지 갈 셈이다.
경찰청 청사와 인접한 창원대학 동문 근처는 오랫동안 방치된 공한지가 있다. 창원천 상류 개울을 사이에 두고 창원대 캠퍼스와 떨어져 있어도 관리 주체는 대학이라 국유지였다. 잡초가 무성한 터에 인근 주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텃밭을 경작해 왔다. 근년 들어 대학에서는 무질서한 텃밭이 경관을 해쳐 경작을 금지 시키고 꽃밭으로 만들어 황화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역세권 개발 현장 오피스텔과 상가는 입주를 거의 마쳐 상권이 활기를 띠어가는 듯했다. 중심부에는 상남동에서 병상 규모가 꽤 되던 병원이 확장 이전해 왔다. 내가 교직 말년 거제 근무지로 주말 오갈 때 카풀로 함께 다녔던 이웃 학교 지기는 퇴직 후 그곳 병원 원무과 직원으로 재취업했다. 지기가 출근해서 하는 일은 수술실과 병실로 오가는 환자의 침대를 밀고 끌어준다고 했다.
창원중앙역 앞으로 가니 비좁던 역 광장에 한동안 시공 중이던 차량 주행선 개량 공사는 마쳐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버스가 와 멈추고 떠나는 차선과 일반 승용차와 하차 택시가 지날 차선을 구분해 주고, 대기 택시 차선까지 나누어지자 예전의 무질서했던 혼잡은 사라져 좋았다. 일일 이용 승객이 마산역과 창원역보다 훨씬 많은 창원중앙역의 위상에 맞게 정비를 잘해 놓았더랬다.
역무원에게 한림정까지 가는 승차권을 끊어 정한 시각에 도착한 무궁화호를 타고 비음산터널을 빠져나가니 진례 들판이 보였다. 진영역을 지나니 좌측은 봉하마을이고 우측은 화포천 습지였는데 연방 한림정역이었다. 역무원이 없는 썰렁한 역사를 빠져나가 한림배수장으로 향해 가다 시전마을에서 과육이 영그는 대추를 봤다. 잎은 늦게 돋아 추석 차례상에는 먼저 오른다는 대추다.
모정과 인접한 한림배수장에서 강둑을 따라 술뫼로 향했다. 둔치의 생태공원 바깥은 낙동강 본류가 뒷기미를 빠져나온 밀양강과 합류해 삼랑진으로 흘러갔다. 술뫼 강둑에 이르자 느티나무 아래에 몇 노인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술뫼 언덕 지인 농막을 찾아가니 주인장은 부산 자택에서 농장으로 오는 중이었다. 전화 통화에서 텃밭의 가지를 따서 유청 삼거리 식당에서 뵙자 했다.
지인 농장을 나와 파크골프가 잠시 휴장 상태인 잔디밭을 지나 가동마을에서 유등으로 올라갔다. 둔치엔 한 그루 포플러가 높이 자라 어린 시절 동구 밖 개울가 풍경을 보는 듯했다. 유등배수장 근처에서 차를 몰아 나타난 지인을 만나 유청삼거리 한식 뷔페로 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들녘 복판 식당에는 농사 일꾼은 없어도 신설 도로 공사 현장 인부들이 다수 자리를 차지했다.
식후 지인과 한림면 소재지 카페로 나가 찬 커피를 시켜 못다 나눈 안부와 근황으로 얘기를 나누었다. 농장으로 들어가면 가을 채소 심을 이랑을 준비할 거라 했다. 지인은 즐겁게 누리는 농막 생활을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로 올려 시청자를 늘려갔다. 내가 생활 속에 보잘것없이 남겨가는 글을 꾸준히 읽고 있는 독자이기도 했다. 나는 지인과 헤어져 열차를 타고 창원으로 왔다. 23.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