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어떤 도덕이 필요한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도덕道德이다. 도덕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바람직한 행동기준을 일컫는데, 동양에서 도덕이란 말은 유교적 이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흔히 윤리라는 용어로 쓰는 도덕이 그리스어로는 'ethos', 라틴어는 'mores', 독일어의 'Sitte' 등이 모두 '습속'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이 도덕이란 자연환경의 특성에 순응하고 각기 그 집단과 더불어 생활하여 온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간 방식과 습속에서 생긴 것이다. 즉 더불어 사는 세상(共存)을 위해 인간집단에서 질서나 규범을 정하고 그것을 엄격하게 지켜나간 데서 도덕이 생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과 법法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도덕을 지키며 사는 것도 어렵고, 도덕을 벗어나서 살기도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했던 소크라테스가 메논에게 물었다. “도덕은 무엇인가?”
그러자 메논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도덕에는 남자의 도덕, 여자의 도덕, 관리의 도덕, 어린아이의 도덕, 늙은이의 도덕이 있습니다.”
메논의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가 소리쳤다.
“이거 참 잘 됐군, 우리는 하나의 도덕을 찾았더니, 여기 도덕이 떼거리로 나오는군!”
어디 그뿐인가? 정치인의 도덕, 종교인의 도덕, 도둑들의 도덕도 있는데, 이처럼 수많은 도덕들을 지키고 사느라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깨끗한지 아닌지를 간파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도덕을 시금석으로 활용하고 살았던 철학자가 임마누엘 칸트였다.
“내 이마 위의 별이 총총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 법칙, 내 눈 앞에서 이것들을 보고 나는 내 존재의 의식과 직접 연결시킨다.”
그렇게 살아서 행복했는지, 아니면 불행했는지 그 내면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칸트는 그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하고서 그 규칙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오래 살았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어떤 도덕이 가장 좋을까?
“나는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도덕을 혐오한다. ‘이것은 하지 마라’! 단념해라!, 너 자신을 체념하라!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도덕은 그 반대로 어떤 일이든 하라고 촉진시키고, 반복해서 행하도록 자극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도록, 밤은 밤 대로 꿈꿀 수 있도록 재촉하며, 이것을 잘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에 실린 글이다.
니체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그 근엄한 도덕을 말한 바 있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도덕적 가르침에 대해서 나는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도덕적 가르침을 지니지 않은 자유로운 힘인 번개와, 폭풍과, 우박은 얼마나 다른가! 사고의 방해를 받지 않은 이 힘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힘찬가?”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 실린 글이다.
자기 소신껏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행하고 꿈꾸고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도덕이라는 말이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宇宙이듯이, 당신도 이 세상에서 하나의 광대무변한 우주이기 때문에 당신이 정한 그 도덕 그대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옳다,
“진정한 지식인은 근본적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자신이 도덕주의자도, 이상주의자도 아님을 안다.”
사르트르도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한 바가 있고, 조지 산타야나는<여행의 철학>에서 그것을 넘어선 넓은 의미에서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확 트인 고독한 세계, 아무런 목적도 없는 세계. 도덕의 굴레라곤 없이 순전한 모험만이 감도는 세계로 달아날 필요가 있다. 삶의 칼날을 더욱 바짝 세우고 역경이 무엇인지 맛보며, 한 순간이라도 필사적으로 아무것에라도 매몰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은 사람들이 정한 그 도덕을 옹호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혐오하지도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학교에서 미덕을 옹호하거나 악덕을 반대하는 작문을 짓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 그 덕분으로 우리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도덕관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 정신의 힘을 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석을 연구하면 될 것이다.“
영국의 작가 해즐리트의 <식자識者의 무식無識에 대하여>의 일부분이다. 우리 시대에도 끊임없이 요구되는 그 도덕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이 양식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가 설정한 도덕이 세상과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면서 잠을 설치고 있다.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당신은 어떤 도덕적 잣대로 이 세상을 재면서 살고 있는가?
2021년 12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