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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원명신 (92기 / 기자단장)
2016년 10월 1일 토요일 오전,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음력 구월 초하루 법회.
회주 큰스님의 증도가법문입니다.
옥불보전과 대웅전 대법당을 가득 메운 신도님들께
큰스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신 유인물을 나눠 주시고
증도가, 무일 선관쌍수, 무일 수행오계, 6도 6바라밀에 대한
감로의 법문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감포 무문관과 시설유지를 위한
천수천안단 후원회 결성과 역할,
필요성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습니다.
♣ 회주큰스님 9월 초하루법문 ♣
벌써 또 초하루입니다.
참으로 세월은 무상하고 신속합니다.
우리는 하시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두 합장하십시오.
돈각료 여래선 하니 육도만행 체중원이로다
나무아미타불 ~~~
여래선을 몰록 깨달으니 육도만행이 본체가운데 원만함이로다
유인물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여래선을 몰록 깨달으니 육도만행이 본체가운데 원만함이로다.
여래선을 몰록 깨달으니 여기서 여래선은 부처님 마음 부처님 선이다.
여래선이다 라고 했기 때문에 부처님 마음을 말합니다.
또 참마음, 또는 참행복의 자리, 완전한 세상, 이러한 말을 여기서는
여래선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몰록 깨달으니 라고 했습니다.
몰록 깨닫는다. 갑자기 깨닫는다.
갑자기 어느날 깨달으니~ 어느날 갑자기 느낌이 크게 와 닿으니~ 이런
말 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갑자기 알았다! 이 말입니다.
갑자기 알고 보니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원만함이로다 .이렇게 문장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몰록 깨달으니 이 말을 다시 연결해서 살펴보면 부처님 마음을
어느날 알고 보니 또는 참 행복의 자리에 갑자기 후딱 들고 보니 또는 내
자신 참 자아를 느끼고 보니 이 말입니다.
여래선을 몰록 깨달으니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원만함이로다.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육도만행이라 육도는 우리가 말하는 육바라밀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육도만행은 육바라밀의 온갖 행을 육도만행이라 해요.
육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 여섯 가지 바라밀을
말하지요.
다음에 본체라 했는데 본체가운데 원만함이로다.
본체는 우주적으로는 법성불 법계불 그런 것을 말하고 낱낱이 개별로
말하면 참 자아 자성불 이런 것을 본체라 말해요.
그래서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즉 법계불 자성불 가운데 원만하더라
그랬습니다.
여기서 원만하더라는 말은 가득 찼다. 원래 그러하다. 원래 구족하다 이런
뜻이 있어요.
그래서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원만함이로다. 이것을 연결해서 보면 육바라
밀의 수행 공덕이 법계불 자성불 가운데 저절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겠더라 이
말입니다.
또는 육도만행의 공덕이 이 세상에 본래로 갖추어져 있더라. 그런 말을 나타
내고 있어요.
그래서 이 세상은 본래로 서로서로 보시행을 하고 있고,
이 세상은 본래로 서로서로 지계를 하고 있고,
이 세상은 본래로 서로서로 인욕하고 있고,
이 세상은 본래로 서로서로 정진하고 있고,
이 세상은 본래로 서로서로 선정하고 반야지혜를 즐기고 있더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여래선을 몰록 개달으니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원만함이로다
이 전체 글을 다시 묶어서 설명을 드리면 즉 부처님 마음을 알고 보니 육바라
밀이 저절로 행해지더라. 육바라밀이 저절로 행해지더라.
우리가 부처님 마음을 알면 육바라밀을 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행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알면 철저히 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말을 나타냅니다.
두 번째 의미로는 여래선을 몰로 깨달았다 이 말은 먼저 깨달아라.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원만함이로다 하는 말은 그대로 실천수행해라
우리가 늘 말하는 상구보리 하와중생 해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의미로는 여래선을 몰록 깨달으니 육도만행이 본체가운데
원만함이로다.
참 자아. 참 행복의 자리는 본체 가운데 원만함이라.
즉 이미 다 갖추어져 있더라 이 말입니다.
참 자아 참 행복은 이미 다 갖추어져있더라.
아무튼 여기서 수행이 덜 된 사람 입장에서는 여래선을 몰록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먼저 느끼고 깨달아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느끼고 깨닫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 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그 두 가지 방법, 또는 두 가지 계기가 뭐냐?
유인물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성문 연각입니다.
즉 성문의 수행자와 연각의 수행자는 이러한 계기로 해서 깨달음을 이룬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계기라 하는 것은 교리 교리를 통해서 깨댤아 가는 것이고 또는
불교 강의를 통해서 깨달아 가는 것이고 또는 불교 책을 읽음으로써 깨달아
가는 그런 수행자를 성문 수행자라 이렇게 말 합니다.
또 연각의 수행자들은 참선하거나 기도하거나 독송하거나 사경하거나 닦음,
이 닦음을 통해서 개달음을 이루어가는 수행자를 연각 수행자라 이렇게 말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문의 수행자는 한국불교대학에 다니는 모든
공부인들은 다 성문의 수행자다 이렇게 보면 돼요. 성문의 수행자다.
왜냐?
늘 부처님 말씀을 듣고 법문을 듣고 강의를 듣는, 들음.
소리 성자 들을 문이라 했어요.
소리를 듣고 늘 깨어있는 삶을 추구하고 늘 깨달음을 향해서가기 때문에 그렇
습니다.
사실 이 성문 제자는 부처님 당시에는 수승한 제자들이 깨닫는 방법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장 초기 법문에서 근본교설 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성제 팔정도법문.
이 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최초로 사성제 팔정도 법문을 하실 때에 꼰단야,
마하나마 등 최초로 오비구가 이 법문을 듣고 깨달았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쓴 아! 부처님 책에도 보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가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무튼 사성제 팔정도를 요즘도 스님들이 많이 설합니다.
그렇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후딱 깨달았어요.
지금은 사성제 팔정도 법문 듣고도 깨닿는 이가 많지는 않습니다.
왜 그런가? 듣는 사람의 근기가 하열해서 그렇고, 두 번째는 법문을 하는
사람이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흡수력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아무튼 성문, 소리를 듣고 즉 말씀을 듣고 깨우쳐 가는 수행자.
불교대학 강의나 법문이나 불교책을 통해서 깨쳐간다면 그 사람들은 훌륭한 성문
수행자가 되어가는 겁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 세계명상센터 내에 만들어지고 있는 문수전
이라는 법당이 있는데 그 문수전이라는 법당 이름이 왜 생겼는가?
그 기둥, 안쪽 기둥이 네 개. 바깥쪽 팔각기둥이 여덟 개 이렇게 있습니다.
그래서 안쪽 기둥 네 개는 사성제를 의미하고 바깥기둥 여덟 개는 팔정도를
말해요.
그래서 사성제 팔정도가 모든 법문의 요지이자 지혜의 요체이기 때문에 문수
전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이 문수전 위에 종각만한 약의왕 여래불이 모셔집니다.
약의왕. 약사와 의사를 총칭하는 그런 여래불이 모셔진다 이 말입니다.
종각만한 부처님이 모셔진다 하니 최근에 가보지 않은 분은 스님이 무슨 얘기를
하나 궁금할텐데 감포도량을 꼭 한 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감포도량은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모든 도량의 공통도량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사성제 팔정도가 불교교리의 기본인데 부처님께서는 뭇 짐승의 발자국이 코끼리
발자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없다.
그와 같이 내 모든 이야기도 사성제 팔정도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없다 라고
할 정도로 아주 기본적이면서 아주 초보적인 교리가 사성제 팔정도 법문입니다.
저 또한 사성제 팔정도 이것을 기본적으로 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할 때가 많은데
특히 제가 무문관 완전한 폐문 천일 정진기간에 제가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
듯이 위암을 만나고 수행 자연요법으로 이 위암을 고치기까지 사성제 팔정도로
설명을 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성제 팔정도는 아주 기본이다 이런 생각을 하시고 제가 사성제
팔정도라 하니 스님 무슨 얘기를 그리 하십니까?
사성제 팔정도가 무엇입니까? 또 이렇게 얘기 하신다면 대책이 사실 없고
대화가 안 돼요.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고 제 기본으로 말씀을 드린 건데 만약에 잘 모르시면
일 학년에 들어 가셔야 되요.
일 학년에 지금 들어가면 이미 사성제 팔정도 법문은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내년 신입생ㅇ에 다시 재 입학하셔야 돼요.
사성제가 무엇입니까?
고. 집, 멸, 도라 그러잖아요?
고. 고통이 현실,
집. 고통이 원인,
멸. 고통이 사라진 완전한 열반의 세계. 행복의 자리.
도, 멸 의 세계에 이르는 길. 멸에 이르는 길 중에 길이 여덟 가지가 있다.
그래서 팔정도라. 그랬잖아요.
고 집 멸 도. 도성제 안에 팔정도가 있다 그랬잖아요.
그 팔정도는 뭡니까?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혹시 기억은 되십니까?
제가 얘기 하니까 아 어디서 들어보기는 했다 그런 생각은 듭니까?
아 그 정도만 되도 양호 합니다.
제가 위암을 극복하고 완전히 치유하기 까지 과정을 그린 책. 도고마성 책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읽어보셔야 돼요.
제가 책을 이 백 여권 썼는데 아직도 재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배짱이 아 대단해요.
쓰는 사람도 쓰는데 왜 한 권을 못 읽어보느냐 이거지요.
도고마성 책을 곡 한 번 읽어보시기를 재차 권해 드립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다 자랑스런 성문의 제자입니다ㅣ.
무조건 불교대학 공부를 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문의 제자이지요.
그러면 이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이 경전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죽을 때까지 다음 생까지 해야
돼요.
2년 전법사. 4년 교법사, 10년 삼장법사. 이십년 대삼장법사. 30년 마하
대삼장법사.
그 다음에 40년 50년은 아직 그 세월이 안 됐기 때문에 그 증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누가 말하기를 4년에서 10년까지 과정이 너무 기니까 7년짜리를 만들자
그러는데 우리가 다음 생까지 공부하는 입장에 4년 10년 사이에 7년을
만들 이유가 없어요.
그렇게 알고 4년 10년 중간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10년 다녀서 삼장법사
증을 받으셔야 돼요.
그동안 많은 분들이 여기를 그쳐 가고 또 연세가 많아서 자연현상으로 어떻
게 할 수 없이 돌아가시는 분들도 제가 많이 봤는데 그 분들이 말년에 또는
임종하기 얼마 전에 저랑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저랑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들이 하나 같이 다 하는 말이 나는 이 생에 와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 다니는 만큼 보람된 그런 인생의 시간이 없었다 그랬어요.
병상에 누워 있다 보면 과거 생활이 과거 지난 세월이 하루에 열 두 번,
백 번도 넘게 필름처럼 왔다 갔다 할 거 아닙니까?
또 돌려서 보고, 또 돌려서 보고, 또 돌려서 보고.
병상에 누워서 그 생각이 안 일어나면 비정상이겠지요?
그런데 그 필름을 수 백 번 수 천 번 돌려서 봐도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
다니면서 정법공부를 할 때가 가장 행복했더라는 이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지가 멀쩡하고 참 육근이 또렷할 때는 그냥 못 느낄 뿐이요.
이것이 다 마비가 돼 봐야지 아!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노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쨌든지 공부를 해야 돼요. 공부.
이 생에서 공부하면 다음 생에서도 머리가 좋게 태어나요.
그러니까 모두 따라하십시오.
공부하자! (공부하자!)
정말 공부하자! (정말 공부하자!)
머리 안 돌아가도 공부하자! (머리 안 돌아가도 공부하자!)
나이가 많아지면 머리도 안 돌아가요.
그래도 공부해야 된다.
머리 안돌아 가도 공부하자! (머리 안 돌아 가도 공부하자!)
나이 탓 하지 말고 공부하자! (나이 탓 하지 말고 공부하자!)
그런데 옛날 부처님 당시에는 이 말씀만 듣고도 다 깨우쳤어요.
말씀만 듣고도 성문의 제자는 다 깨우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갈수록 오탁악세라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부처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러니까 중생들의 근기가 하열해진 거지요.
그래서 현재 이 시대 현재의 말법시대에는 반드시 수행을 겸해야 합니다.
공부만 해서는 안 돼요.
수행을 반드시 겸해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 세계에 들 수가 있다.
기도의 입장에서는 부처님 가피를 입을 수가 있다 이 말입니다.
즉 꼭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 수행하는 무리를 연각성이라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인물에도 보면 참선, 기도, 독송, 사경 등 닦음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 또는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수행자를 연각성이라고 한다 이 말입니다.
닦음을 겸해야 참 바른 정신세계가 열리더라 그랬어요.
보조국사 지눌스님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이렇게 알려져 있어요.
한국불교의 중흥조다!
고려시대분인데 1158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냤다 했어요.
아주 유명한 사상이 정혜겸수.
정혜결사를 통한 수행이었습니다.
이미 배운 바도 있는 계초심학인문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공부를 좀 한 사람들은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 분은 역사에 스님의 전기를 보면 태어나자마자 약골이었어요.
아주 몸이 허약했습니다.
저희들이 어릴 때에도 애들이 보면 경기가 있어서 죽는 애도 있고 어릴
때부터 병약한 애들이 있잖아요.
지눌스님은 그렇게 태어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부친이 부처님전에 가서 기도하기를 부처님 이 애가 지금 앓고
있는 병마만 이기기만 하면 제 자식을 부처님 전에 공양 올리겠습니다. 그랬어요.
부처님전에 공양 올린다는 말은 내가 안 데리고 키우고 있고 부처님 전에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부처님 전에 상좌로 보내겠습니다.’ 이 말입니다. 무슨 소신공양 시키겠다는
이 말이 아니고.
그 발원을 간절히 했겠지요. 그렇게 한 덕분인지 정말 일곱 살 되고 여덟살
되니까 정상아이로 완전히 회복이 되었어요.
보통 범부중생들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부처님 이 일만 이루지게 해 주신다면 제가 받은 공덕의 복덕의 반은 부처님
전에 회향하겠습니다.
말은 잘해요.
약속은 잘 해요.
그런데 대부분이 다 부처님전에 와서 기도하고 기도가피를 입습니다.
입으면 제가 보답을 하겠습니다 라고 스스로 다짐을 해 놓고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거요.
약속을 안 지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보조 지눌스님의 아버지는 이 약속을 지켰어요.
여덟 살 때에 당시 종희라는 스님에게, 종희선사에게 출가를 시켜가지고
공부를 많이 한 그런 스님이 되었습니다.
25세에 당시 승과에 합격을 하고 그 뒤로 공부를 계속 해 나가는데 이 스님의
공부방법은 부처님 경전 말씀을 배우면서 닦고 부처님 경전 말씀을 배우면서 참선
수행하고 하는 이 과정을 반복해왔습니다.
그래서 정혜쌍수라!
정혜라 ~ 닦음과 부처님 말씀 익히는 것을 동시에 해갔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육조단경을 읽으시다가 크게 한 번 깨우치시고 또 이 후 서른 살 다
되어갔을 때에는 삼 년 동안에 대장경을 늘 열람을 했어요.
현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는 표현은 다르지만 여기서 대장경을 열람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배우지 않는 과목이 뭐가 있습니까?
새로운 불교공부부터 시작해서 천수경, 화엄경, 법화경 이것이 다 대장경이거든요.
스님께서는 이 대장경 가운데서도 화엄경, 이 화엄경을 공부하시다가 눈물을 펑펑
쏟을 만큼 법의 환희로움을 얻었다 그랬어요.
두 번째 큰 정신적 열림이 있게 된 거지요.
나중에는 이통현 장자의 화엄론이라는 것이 있어요.
화엄론을 보다가 확철대오 했다! 확연히 깨달았다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경만 보시는 게 아니라 그 경을 어느 정도 보다가 그 사이사이에
늘 닦음 , 닦음을 실천하셨다는 겁니다.
닦음이라는 것이 참선하거나 기도하거나 다라니를 외우거나 독송을 하거나 사경
하거나 이것이 다 닦음입니다.
아무튼 스님은, 아주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알려진 분의 대표적인 수행 이력을
보면 연각성 수행을 등한시 하지 않으셨다.
이 말법 시대에는 성문, 부처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가능 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부처님 말씀을 듣는 것과 아울러서 반드시 닦음을 같이 병행을
해야 된다.
성문성과 연각성을 동시에 수행해야 된다. 연각성을 동시에 자기 내면에 수용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늘 가르치는 입장에 있더라도 경전 교리와 수행 닦음을
같이 늘 제자들에게 공부를 시켰더라는 이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여래선을 몰로 깨달았다. 이 개달음의
체험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불교대학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도 이런 세상이 있구나~!
아! 나는 부처님법 만나기를 잘했어. 그런 환희하는 마음 환희스러움이 일어날
때가 왜 없겠습니까?
있어야 정상이요. 그게.
그런데 참선이나 기도를 하다보면 또 경전공부를 통해서 느끼는 기쁨하고
조금 다른 느낌의 또 다른 기쁨과 환희 법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이 말입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그걸 경험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 아래의 내용입니다. 적멸
송이라 그랬습니다. 적멸송.
그 옆에 한글을 보시겠습니다.
산위의 눈 뜬 물고기 그 하나를 쫓고 쫓아서 마침내 다다른 곳이 원적산이라.
공덕탑은 하늘 가운데 우뚝하고 눈뜬 물고기는 산위에서 자유로이 노니네.
하나마저 더 이상 하나 아니니 온 우주 이대로가 부처님 광명.
1991년 연화도 토굴에서.
그 다음 두 번째는 철우무 라 했어요.
그 옆에 한문을 토를 달지 않은 것은 여기 와서 직접 듣고 집중력 있게
공부해라 이 말입니다.
철우무.
산그늘 울리는 짙은 바람소리에 온 몸으로 눈을 뜨니 동서남북 흔적 없고
과거현재 미래 또한 없어졌네.
초저녁 두어 평 무문관 닫힌 방에 홀연히 광명 가득하니
백담못 가운데 철로 된 소는 덩실덩실 한바탕 춤사위로다.
2004년 백담사 무문관.
그 아래 자증게라~
자증게라는 말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노래라는 말입니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노래다.
연대산 외로운 사자 무문관 벽 뚫고 내달리니
태풍만난 조각배 큰 바다 기울여 물 비우도다
사자와 배 둘 아니니 안팎으로 좋은 시절이로다.
2014년 5월 30일. 음력 5월 2일.
이 세상의 연기의 위치는 빈틈이 없어서 음력 5월 2일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일날입니다.
아버지 생일날인데 이 날이 또한 우리 어머니의 기제사날입니다.
참 희한한 일이지요?
그 옆에 괄호 속에 넣으십시오.
내외 호시절이로다.
안 바깥으로 좋은 시절이로다.
우리는 반드시 경전 공부는 수행을 꼭 곁들여야 합니다.
여기가 한국불교대학이니까 공부는 기본으로 합니다.
억지로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오게 되어 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나오게
되면 귀가 열려 있는 이상 다 듣게 되어 있어요.
이근이 발달한다 자꾸 듣다 보면 그것도 큰 공부가 되요.
결석하지 않고 꾸준히 나오는 자체가 중요한데 즉 다니다 보면 공부는 경전
공부는 저절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수행은 자기가 알아서 해 봐야 돼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행을 잘 할 것인가.
◆ 無一 수행 오계에 대하여
그것이 바로 뒤에 나오는 라 번의 무일 수행오계입니다.
제가 내세우는 수행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이다 이 말입니다.
1번 不意圖攀緣.(불의도반연) 반연 짓기를 의도하지 말라!
억지로 반연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2번 不待機悟道.(불대기오도)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 또는 부처님 세상을
기다리지 말라.
3번 不鬪爭煩惱.(불투쟁번뇌) 번뇌와 싸우지 말라.
4번 不念慮無進.(불염려무진) 진전하지 않음을 염려하지 말라.
5번 不忘却濟度.(불망각제도) 중생제도를 잊지 말라.
오늘 초하루 법문 나오시지 않는 분들은 월요일날 가면 남는 것 있더라.
그것 주워오면 되지. 그리 생각하고 날씨 핑계대고 안 나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생각해서 여기괄호를 비워놨어요.
제가 참 자상하기도 하지요.
그런 분 들까지 다 챙기니까 얼마나 자상해요.
결석한 사람까지 제가 챙기고 있습니다.
불망각제도라~ 중생제도를 잊지말라.
하나하나 더 살펴보면 불의도 반연이라!
이 반연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더러더러 씁니다.
얽히고 설킨 쓸데없는 인연을 반연이라 이렇게 말 합니다.
수행을 잘 하려면 반연을 짓기를 의도하면 안 됩니다.
반연 짓는다는 것이 뭐냐 이하면 절에 다니면서 쓸데없는 인연 만드는 사람이
많아요.
쓸데없는 인연이 뭡니까?
제 형제나 잘 챙기지 형님 합시다.
언니 합시다.
누님 합시다.
절에 다니면 호칭이 딱 정해졌어요.
보살님. 아니면 기장이면 기장님. 거사 같으면 거사님. 처사님 다 명칭이
있거든요.
세속에 쓰는 복잡한 말을 끌고 오느냐 말입니다.
선배님까지는 괜찮아요, 선배는 선배니까.
한국불교대학 같으면 선 후배 체제로 되어있기 때문에 선배님 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뭐 형님, 누님, 쓸데없는걸 가져오느냐는 거지요.
혹시 언니 합시다. 누님 하십다. 형님 합시다. 그러는 사람 있으면 눈 똑바로
뜨고 네 정신이 있나 없나 그래야 돼요, 네 형제나 잘 지켜라 그래요.
스님들은 공부하려고 부모형제 심지어는 처자식도 다 버리고 공부하는데 왜
또 그런 반연을 억지로 지으려고 그래요.
우리 불자들은 스님들에 비해서는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 그렇게 좋지를 못해요.
그런데 뭐 하려고 절에까지 와서 친인척을 만드느냐 말이요.
우리는 쓸데 없는 그런 반연을 짓지 않아야 된다 그런 말씀입니다.
또 보면 우리가 공부하기 위해서 공부를 돕기 위해서 기도 있고 관음도 있고
기, 관음이 있어야지 모임이 있어가지고 억지로라도 공부하러 나오고 그래요.
기장 관음장이 계속 전화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안 나올 수가 없지요.
그게 공부에 큰 촉매가 되거든요.
1박 2일 명상 힐링캠프 감포에 오는 것을 보면 다 모임이 되기 때문에 오는거요.
그럴 때는 수행을 돕고 경전공부를 돕기 위한 그런 모임이기 때문에 그런 모임은
아주 건건한 모임입니다.
그런데 보면 절에 나와서 쓸데없는 모임을 만들어서 전국구 보살이 되어가지고
이 절 저 절 돌아다니면서 도깨비 보상이 되는 수가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 공부 안 요. 그런 사람을 아주 조심해야 되요.
만약에 기, 관음 이외에 신행 문화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뭘 하느라고 하는데
그것이 공부에 지장이 있다. 지장이 있다는 말은 뭡니까?
문화 봉사단체에 가서 활동을 하는데 가족들이 봤을 때는 완전히 절에 미친
것 같거든요.
그래서 ‘네 이제 절에 절대 나가지 마라.’ 이런 소리가나오기 직전에 그건 치우고
공부에라도 열심히 해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반연, 이 반연이 자기 근본 수행에 방해가 될 상 싶으면 그
반연을 절대 지으면 안 되고 지은 반연도 끊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불의도 반연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스님들도 보면 쓸데없는 모임을 만들어 가지고 작당을 하고 서로 패거리를 짓고
서로 싸우고 그러거든요,
이게 공부를 망치는 주범이 반연 짓는 것, 무리 짓는 것, 쓸데없는 모임
만드는 것 그겁니다.
물론 내 수행과 공부를 돕는 단체 정말 내 혼자는 못 하는 것이니까 여럿이
모이면 보살행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의 장치로는 모임이라면 좋지만 그 외
에는 다 쓸데없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부대기오도 (不待機悟道)라 .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홍시가 떨어지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요.
그건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요행수를 바라지 말라는 겁니다.
나는 언제 안 깨달아지나~
나는 부처님 가피를 언제 입나~ 하면서도 수행은 하지 않는거요.
그거는 안 된다는 이 말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성취를 하려면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데는데 요행수를 바라면서
사회적으로 뭘 바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뻔뻔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충분한 정신의 대가없이 개달을 성취하겠하면 그것은 독둑놈 심보
입니다. 충분한 대가를 투입해야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철야도 해 보고 때로는 가행정진도 해 보고 때로는 몇 날
며칠 용맹정진도 해 보고 그러한 사람이 공부의 맛을 조금 알아 갑니다.
몸 아플 것 생각하고 수행정진 못 합니다.
그러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구 내 이것 했다가 108배 하고 천배 하고
하다가 몸살 나면 어떡하 이러면서 안 하는 사람 많거든요.
그것이 저절로 되어야 되겠지만 억지로라도 그런 마음을 한 번 내 보라는
말이지요.
개달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는 겁니다. 저는 이십대 후반에 한 철 동안
어느 선방에서 공부를 하면서 잠을 안자고 애 써다가 눈에 핏발이 서는데
나중에는 이게 가시지를 않고 눈에 피눈물이 나온다고 할 정돌 고통이 있었
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수 십 년이 지난 이 세월에도 아직도 좀 피곤하면 눈이 아프고
눈이 핏발이 써고 그런 수가 있어요. 눈이 잘 충혈되고 하는.
그런데 이것은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수행의 표시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서 제가 그 때 당시를 후회 했다던가 그런 적은 없어요.
그리고 한국불교대학에 와서도 큰절 앞마당에 대원력 관세음보살님을
모실 때에 1997년도 98년도 이 때에 전 신도가 십만 배를 하면서도 저는
반야용선을 끌고 간 다면 반야용선의 선장 입장에서 점 아파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십 만 배를 백 일만에 하는데 무릎이 덜렁덜렁 거려요.
그래도 표시를 못 내고 그래도 그게 세월이 다 지나고 나니까 백일 만에
십만 배를 한 보람과 기쁜 마음이 오래 가더라고요.
그리고 도 삼십대 초반에 제가 어느 토굴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 해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도끼질만 하다가 나중에는 허리가 다 나갔어요.
그렇지만 그러한 공부는 후일에 봤을 때는 참으로 필요했던 공부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신도들도 관음정근을 한다 하면 앉아서 관음정근을 하는데 피로해서
잠이 온다하면 딱 서서라도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열 시간이라도 자기하고 딱
붙어가지고 이길 수가 있어야 합니다.
좀 피로하다고 포기하고 자버리고 그러면 안 돼요.
내가 진짜 중요한 기도를 좀 해야겠다 하면 발바닥 두 개 딱 붙이고 서서
염주하나 들고 적어도 서너 시간 이상은 관음정근을 할 수가 있는 그런 패기와
정신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에 대해서 너무 탐닉한 것도 문제지만 꾸준히 정진하는
이 마음, 이 마음은 절대 놓쳐서는 안 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不鬪爭煩惱(불투쟁번뇌)라.
번뇌와 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번뇌는 바람 같은 겁니다. 업풍이라! 업 바람이라!
바람이 불면 문을 닫으면 될 일이지 바람하고 싸울 필요가 없어요.
문이라는 것은 육근의 문을 말합니다.
육근의 문.
이 무문관이라 하면 육근의 문이 없는 집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할 때에 공부를 할 때에 번뇌라는 바람이 불면 자기 문만
닫으면 돼요.
‘이 번뇌를 물리쳐야 되겠다.’ 이렇게 애쓰는 게 번뇌입니다.
그냥 곧바로 돌아오면 돼요,
본분사로 바로 돌아오면 된다는 이 말입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이면 화두잡는 게 본분사라 화두를 잡으면 되고 관세음
보살 기도하는 사람 같으면 관세음보살로 돌아오면 거기서 끝이지 달리 바람을
막을 필요는 없어요.
번뇌를 막을 이유가 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전뇌와 싸우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번뇌라는 것은 유혹성이 있어가지고 제2 제3 번뇌를 계속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포기가 되요.
아이구 번뇌 좀 해 보자. 해서 계속 잡생각을 일부러 방치하는 수가 있어요.
그러면 대놓고 자기 자신에게 망상 좀 피워보자 이말 이거든요.
그러면 망상이 끝이 있느냐 망상이 끝이 없는거요. 이게.
해 보면 망상은 망상의 꼬리를 물고 계속 들고 일어나요. 들불 번지듯이 계속
번져가는거요.
그래서 망상은 방치해서는 절대 될 일이 아니다.
나중에는 자기 온 몸을 다 태울 정도의망상이 일어나요, 감당이 안 됩니다.
그래서 공부 수행자는 망상을 절대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번뇌와 싸울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본분사로 돌아오면 된다.
화두를 잡는 사람이면 화두를 잡으면 될 일이고 기도하는 사람을 관세음보살로
돌아오면 될 일이지 이 번뇌를 잡아야지. 이 망상을 피우면 안 되지. 이런
잡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천수경에도 보면 자성번뇌 서원단이라 했잖아요.
자성번뇌!
자기 마음 가운데 스스로 일으키는 제일 무섭습니다.
번뇌라는 것은 마장이거든요.
외부적으로 들어오는 마장은 아주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쉽습니다.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는 자성번뇌 이 번뇌야 말로 참으로 끈질기고 끈질깁니다.
그럴 때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바로 본분사로 돌아오라 이 말입니다.
아예 상대하지 말고 화두로 돌아오고 관세음보살 기도로 돌아오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불투쟁번뇌라 번뇌와 싸우지 않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뭐지요?
不念慮無進(불염려무진) 이라.
진전하지 않음을 염려하지 말라.
이 말은 뭐냐 하면 꾸준히 계속해가 가면 될 일이지 너무 조겁한 마음을
일으키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제가 전번 달 초하루 법문 때도 말씀을 드렸듯이 마음공부, 경전공부의
두 가지 요체는 뭐냐?
하나는 집중력이요 하나는 지구력입니다.
이 집중력과 지구력이 잘 살아 있으면 그 사람은 공부의 끝을 보게 됩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집중력은 있으되 지구력은 없으면 공부가 안 돼요,
지구력은 있으되 집중력은 없다면 그 사람 또한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
입니다.
우리들이 보면 공부는 쥐꼬리만큼 해 놓고 결과는 태산처럼 자라는 수행자가
많습니다.
한만큼 얻는 것이 진리의 현상이요 진리의 흐름입니다.
인과응보라는 것이 꼭 그 때에 주어지게 되어 있다는 그 말이잖아요,
그래서 꾸준히 해가면 해 간만큼 결과가 주어지게 되어있습니다.
불염려 무진이라~
진전하지 않음을 염려하지 말라했어요.
무유정법이 명아뇩다라 삼막삼보리라 그랬잖아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 할 만한 일정한 것이 없다.
이 말은 자기가 수행한 만큼 부처님세계가 열려져 가더라 이 말입니다.
갑자기 확철대오 이런 게 잘 없습니다.
갑자기 큰 가피가 내한테 막 솓아지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생각조차 하면 안돼요.
그냥 열심히 꾸준하게 가다보면 갈 대마다 소청봉을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또 대청봉을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늘 한답시고 하지만 은산철벽을 만나듯이 은으로 된 산과 철로 된
벽을 만나듯 앞길이 깜깜한 그런 곳도 만날 수가 있어요.
수행을 하다보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할 수가 없겠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
하는 그런 경지도나타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기본 수행량, 자기 스스로 정한 수행량이
있어요. 그 수행량은 꼭 해야 돼요.
공부가 안 된다, 안 된다. 요즘말로 하면 애들이 공부 하다가 안 되는 것을
뭐라 하지요?
공부가 마냥 잘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학생들도 공부가 마냔 잘 되면 공부 잘 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게 공부 잘 하는 아이들도 마냥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멀쩡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 잘 다니다가도 무슨 바람이 들어가지고
나 이젠 거기 안 갈란다 이러거든요. 물어보면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라 할지라도 기본은 해야 돼요. 기본.
나는33년 수행정진 하는 대가람의 반야용선을 타고 있는 사람 아니냐?
33년 대수행정진이 언제 끝난다 했지요?
2041년.
그러니까 2041년 까지는 절대로 죽으면 안 되는 겁니다.
죽고 싶어도 그 때 까지는 죽으면 안 돼요.
왜냐 약속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41년 33년 대수행정진.
오늘 제가 축원장을 보니까 29차 기도가 곧 끝나고 10월 6일 날 제 30차
백일기도에 들어 가더라구요. 제 30차.
10월 6일이 33년 대수행정진 제 30차 백일기도 들어갑니다.
기도가 잘 안 되는 사람은ㄴ 기도라도 많이 붙여요. 그러면 아! 내가
기도 붙였지 이런 마음으로 공부가 되는거요.
지금 수능시험 때문에 기도하는 있지요?
백이기도 올려놓은 사람하고 백일기도 올려놓지 않은 사람하고는 마음
자세가 달라요.
33년 대수행정진 반야용선을 타고 있는 대관음사의 엘리트 불자하고
저 바깥에 있는 사람하고는 마음 자세가 달라요.
그래서 이러한 정법도량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우리는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33년 대 수행정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루에 적어도 금강경 한 번은 읽어라. 어렵지 않아요. 기본입니다.
자기 전에 관음정근 한 시간쯤 들어요.
백팔 배는 매일 백팔 배 해라 이겁니다.
사경하는 것.
금강경 등 대승경전 사경은 일 년에 한 세 번 정도는 써라 이겁니다.
그게 기본이라 제가 제시하는 기본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요것조차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요.
어떤 날은 아이구 까짓거 요거 안 하면 못 먹고 사나 그런 마음이 일어날
정도로 하기 싫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거기서 포기한다면 거기서 공부가 끝입니다.
크게 내가 얻은 것은 없는 것 같다! 크게 획들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진전하지 않음을 염려하지 말라 했는데 이 것은 진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 생각에 진전하지 않은 것이지 진전하고 있는 거요. 나아가고 있다
이 말입니다.
나아가고 있는데 본인이 스트레스나 메늘리즘에 빠져 가지고 진전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 될 뿐입니다.
우리는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불교대학에 꾸준히 다니게 되면 별로 얻을 것은 없고 시간만 다 뺏기는
것 같다 이렇게 판단을 잘못하는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후일에 돌아보면 그
때가 공부를 잘 했던 시절이라다 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꾸준히 한다는데 수행의 매력이 있습니다.
제 도반스님들도 수행에 진전이 없어가지고 자기 생각에 진전이 없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속퇴를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냥 거의 노숙자 수준이라
그런 처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건 수행자들의 극단적인 경우지만은 우리 신도들도 보면 꾸준히 다니면
될 일인지 그걸 진전하지 않은 게 아니냐? 나아가지 못함이 아니냐? 스스로의
염려 대문에 안하더라 이거지요.
그건 안 된다는 겁니다.
아무튼 꾸준히 하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날 좋을 날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뭐지요?
다섯 번째
不望却濟度(불망각제도)라 ~ 중생제도를 잊지 말라 했어요.
중생제도를 잊지말라.
무문관에 들어가는 문.
감포도량 무일선원 무문관 들어가는 문 그게 금강문인데 금강문 그 위쪽에
현판으로 무문관이라 해서 제자 초서로 써 놓은 게 있고 그 아래쪽으로 글
반흐림체로 써 놓은게 뭐냐하면 한 쪽은 견성성불이요 한 쪽은 제도중생이라
이렇게 씌어져 있습니다.
견성성불.
우리가 수행의 가장 최종 목적지를 견성성불로 보고 있는데 바로 이 견성
성불과 아울러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제도중생입니다.
그래서 견성성불의 수행과 제도중생의 포교 이 두 개는 똑 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수행과 포교는 다 중요하다 이겁니다.
자기 수행의 몰두 하는 것은 기본이요. 당연한 겁니다. 자기 인생이니까.
그렇지만 이웃 중생제도 또한 절데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나 이외는 다 중생이요.
나 이외는 다 이웃이라.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 제도해야 됩니다.
그 사람 포교해야 되고 그 사람 불자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쩜 수행이라 하는 것은 중생제도를 포함하고 있어요.
이 수행과 포교는 새의 양 날개이고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그래서 수행과
포교는 내 불교적 인격이다 이렇게 봐야 돼요.
내 불교의 인겪을 갖추는데 있어서는 수행과 포교가 필수적이다 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감포도량 산길 명상을 하다보면 이런 명구가 나타나요.
부처님법을 혼자 알고 혼자 듣기만 하면 도둑이다 .그 사람은 법도둑이다.
그렇게 써 놨어요.
그걸 제가 써놓았는데 제가 보고도 정말 참 잘 해놨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도 법도둑이되지 않기 위해서 무문관에 있으면서도 제 생활을 글로
써서 드리기도 하고 오늘간은 날에도 이렇게 날씨도 안 좋은데 법문 하러
여기까지 왔잖아요.
법도둑 안 되려고.
제가 혼자 법락을 누리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거지요.
우리 모든 불자들은 중생제도, 포교, 전법. 이런 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돼요.
올 봄에 전국적으로 인구 표본조사를 통해서 전국인구조사를 했는데 아직
발표는 안 되었답니다.
그런데 불교인구가 오백만 명이 안 돼요.
우리가 스님들이 말을 할 때는 입만 뻥긋 하면 이천만 불자여러분 이러거든요.
그게 다 허수입니다.
오백만이라.
다른 종교 인구는 제가 여기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불교는 지금 너무 부끄러워요.
천육백년 천 칠백년 된 불교가 이 꼴이 뭐냐? 지금 이 땅에서 3위의 종교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불교는 아직도 포교하자! 이러면 스님요~ 스님혼자. 스님
네 나 해라 이러거든요.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지요.
우리는 불망각제도라 ~ 중생제도를 망각하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가 지금 이십오 년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도량을 통해서 행복을 얻고 안심입명을 얻고 깨달음을
얻었느냐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시작은 우리의 현재 포교시점은 지금 바로 이 자리라.
그래서 이 시점. 바로 이 시점. 바로 현재 바로 오늘 언제나 오늘 이 날을
출발점이다, 시작점이라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되요.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이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를 다니는
신도입장에서도 오늘이 한국불교대학의 시작점이다. 오늘이 우리 불교 포교의
시작점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을 때에 포교가 되고 우리가 전법이 되는 것이지
아 우리 이제 다 했어 이제 포교 할 데도 없어.
포교 서너 명 해 놓고 포교 다 했다는 거요.
그래서는 될 일이 아니다 는 말입니다.
자기의 수행은 충분히 하면서 아울러서 절대 불망각제도 해야 됩니다.
중생제도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무일수행오계는 천일수행정진 일곱권의 일기 속에서 한 백가지가 나와요.
우리 수행이 너무나 어지럽고 질서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정을 하고
끝에 석 달 동안 앉아서 정리를 했는데 그 속에 이게 나오는데 책 내용이 좀
어렵습니다.
그러데 칠권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면 무일의 수행 오계를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불의도반연. 반연짓기를 의도하지 말라.
부대기오도.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
불투쟁번뇌 번뇌와 싸우지 말라.
불염려무진. 진전하지 않음을 염려하지 말라.
불망각제도. 중생제도를 잊지 말라.
◆ 무일 선관쌍수에 대하여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어떻게 참선하는 것이 제일 좋은가?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내용이 다번에 무일 선관쌍수입니다.
거기보면
先觀審自性觀音 (선관심자성관음) 먼저 자성관음을 면밀히 관하라.
次甚麽觀重窮究 (차심마관중궁구) 다음은 무엇이‘무엇이 무엇이 관하는고’ 하고
거듭 궁구 하라.
同時雙修禪與觀 (동시쌍수선여관) 한꺼번에 선과 관을 쌍으로 닦으라.
此者最上乘參禪 (차자최상승참선) 이것이야말로 최상승의 참선이니라.
제가 이것을 찾아내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참선을 해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참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참선은 기도하고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것은 아닙니다,
이 선관쌍수는 기도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킨 그런 수행법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버리지 않고 참선하는 방법이 이 선관쌍수 방법입니다.
우기가 기도할 때는 언제나 부처님을 잘 관해야 돼요. 부처님을 관해야
됩니다.
부처님을 똑바로 관하지 않으면 기도가 잘 안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부처님 관하는 그 힘을 자기 얼굴에서 관해야 되요.
자기얼굴에서 부처님 모습을 또렷하게 찾아야 되요.
그러면서 나중에는 부처님을 관하고 있는 주인공.
내 얼굴에서 부처님을 보는 그 당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부처님 상호를 관하고 있는가? 까지 생각해야 되요.
바로 선과 관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이라는 것은 간화선의 선을 빌렸어요.
그래서 간화선의 선은 이 무엇이가? 시심마.
이 무엇인고! 가 가장 중요한 화두입니다.
그래서 관음보살님을 똑바로 관하면서 이 관한 것이 도대체 무언가 여기가지
들어가야지 완전히 마음공부가 됩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을 관하는 것과 관하는 것이 무엇인가? 관하는 주인공
까지 동시에 챙기는 그런 수행. 동시에 닦아가는 수행이 바로 선관쌍수라
이 말입니다.
선과 관을 동시에 닦아가는 이 선관쌍수가 최고의 참선방법이다 이 말입니다.
◆ 6도(六度) 6바라밀에 대하여
다시 원점으로 가 보겠습니다.
앞 면에
頓覺了如來禪 (돈각료여래선) 여래선을 몰록 깨달으니
六度萬行體中圓 (육도만행체중원) 육도만행이 본체 가운데 원만함이로다.
대승보살의 여섯 가지 실천덕목을 우리는 육바라밀이라고 말 하는데 이 육바라
밀의 실천이 바로 아까 말했던 무일의 수행오계 다섯 번째 중생제도를 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바라밀을 잘 실천하는 것이 바로 불망각제도가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도표로 아주 정리를 체계적으로 해 놓았습니다.
대승보살의 여섯가지 실천덕목.
기본 개념에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그런데 그 뜻이 뭐냐?
보시는 배풂입니다.
보시는 법보시, 재보시, 무외보시 이런 말을 쓰지요?
법보시, 재보시, 무외보시라.
법보시는 부처님 법을 베푸는 것이고
재보시는 재물을 베푸는 것이고
무외보시는 친절함 등 자기 마음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까?
아무튼 우리가 세 개의 보시가 다 중요한데 베푸는 것을 어려운 말로 그냥
보시라 그렇게 말을 해요.
그 다음에 베풂의 반댓말은 간탐입니다.
탐내는 것. 아끼고 탐내는 것. 베푸는 것의 반대개념이지요.
그런데 간탐이 왜 이렇게 일어나느냐?
무일의 육몰에 보면 몰인정이라는 것이 있어요.
냉정하고 인색하고 매정한 것이 몰인정한 것이거든요.
그런 사람은 보시가 잘 안 돼요.
그것을 순 우리말로 무일의 큰스람으로 가는 여섯가지라 해서 단 한 마디로
무어라 해야 하는냐 하면 요즘말로 하면 나눔이라 나눔, 보시는 곧 나눔이라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지계는 계를 받고 행위를 바르게 함. 이게 지계입니다.
다른 말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 계를 받아야 됩니다.
10월 22일 날 수계 살림이 있잖아요.
아직도 법명이 없고 계를 안 받은 사람이나 계를 받아도 다시 받고 싶은
사람은 10월 22일 날 동참하면 됩니다.
일단 계를 지니고 지키려고 애를 쓰는 것 그게 지계입니다.
그리고 반댓말은 방탕입니다. 방탕.
그리고 6몰에 보면 몰상식이라고 되어있는데 그게 왜 이 말을 쓰느냐 하면
자기 자신을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을 규칙을 안 지켜요. 그리고 무례해.
몰상식한 짓을 많이 한다 해서 몰상식이라는 말을 갖다 붙여 놓았어요.
그래서 그걸 순 우리말로 하면 지킴이에요. 지킴.
자기자신을 지킴. 우리 불교를 지킴. 나라를 지킴.
이게 다 지계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인욕이지요?
욕됨을 참고 견딤이라.
욕됨을 참고 견딤. 인욕바라밀 이라고 하면 참는다는 마음 없이 참아야 되요.
그만큼 참아야 되요.
아무튼 인욕이 중요합니다.
인욕이 잘 안되면 제가 말을 찾다 찾다 찾은 게 폭발이라 폭발.
요즘은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이 되다고 합니다.
아무 때나 막 폭발해 버리는 겁니다.
그냥 부모도 찌르고 지식도 찌르고 친구도 찌르고 그냥 폭발하는 겁니다.
그냥 막 폭발하는 겁니다. 이게 큰 문제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 하면 이해심이 업어서 그래요.
이해심이 없고 참지 못함 몰이해잖아요.
그런데 순우리 말로는 인욕은 참음이라 참음.
대충 이렇게 써 놓은 것 같지만 저는 많은 생각을 해서 써놓은 겁니다.
폭발을 어떤 데는 진애라고 하는데 진애는 화나는 것이라 했는데 화내는 것하고
인욕하고는 좀 달라요,
반대 개념이 아닙니다.
인욕은 참는 것인데 참는 게 꼭 화내는 것만 참는 게 인욕인가요. 그렇지 않거
든요.
화내는 것 말고도 참을게 얼마나 많아요.
반대개념은 폭발이라.
그 다음에 정진.
쉼 없이 노력함.
쉼 없이 노력한다는 말의 반대말은 해태라. 게으름입니다.
거기 몰염치라고 써 놓았는데 뜻이 좀 안 맞는 것 같아도 노력 없이
요구하고 뻔뻔스럽고 그런 사람 있지요? 그건 몰염치 한 거지요.
그래서 정진의 반대말이 몰염치가 되는 겁니다.
정진을 순 우리말로 하면 애씀이라 애씀. 이해가 됩니까?
애를 써야 됩니다.
공부할 때도 애를 써야 되고 일을 할 때도 애를 써야 지요?
그 다음에 선정.
선정은 뭐지요? 집중하여 수행함.
이건 몰입이라고 해도 될 일인데 집중하여 수행하는 것을 선정이라고 보면 돼요.
그 반대개념은 산만입니다.
거기 수행이라는 말은 지워야 되겠네요. 산만
그리고 6몰에는 보면 무성의라. 무성의 무 자와 몰 자는 뜻이 같습니다.
몰성의 무성의를 몰 맞추기 위해서 무성의라 해 놓은 겁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대는 다부지게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건성건성 해요.
공부를 할 때도 건성건성 하고 밥을 먹을 때도 건성건성 하고 벌초 할 때도
건성건성 해요.
처삼촌 벌초하듯이 해요.
그러면 안 됩니다.
뭐든 하면 딱 깨어 있어가지고 다부지게 해야 할 일이지.
하면 하고 말면 말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어디 처삼촌 벌초하듯이 하느냐 이거지요.
이 선정이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순 우리말로 하면 닦음이라고 보면 되요. 닦음.
육바라밀을 실천 수행하는 대승보살은 반드시 닦음이 필요하다는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는 반야입니다.
반야.
불교공부하며 지혜롭기 살아가는 것을 반야라 하는데 발이 좀 어렵지요?
이 반대 개념은 우치입니다. 어리석음 우치.
우치는 몰지각이라 몰지각.
무분별하고 무의식하고, 천방지축 하는 것 그게 우치요. 어리석음입니다.
반야는 반야지혜 반야광명 그렇게 말을 해요.
그리고 잘 봄이라 했습니다. 잘 봄. 정확하게 통찰하는 것.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안목 그게 굉장히 필요해요.
반야지혜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일 그래서 제가 잘 봄이라는 말을
찾아내는데 한 일주일 걸렸어요.
위의 다섯 가지를 찾아놓고 이 반야를 순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
어느 날 잘 봄. 잘 보는 것이 그게 바로 반야다 라고 판단을 하게 되었습
니다. 잘 봄.
그래서 이 도표를 예사롭게 보지 마시고 깊이 한 번 사색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보시 - 나눔.
지계 – 지킴,
인욕 - 참음
정진 – 애씀.
선정 – 닦음
반야 - 잘 봄
반대 개념도 보면서 쭈욱 읽어보겠습니다.
간탐. 몰인정. 방탕 몰상식. 폭발 몰이해. 해태 몰염치. 산만 몰성의. 우치 몰지각.
이 육바라밀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큰 불사를 이번에 다시 생각을 했는데
그 큰불사의 명칭 이름이 천수천안단 발족이라. 육바라밀 수행을 구체적으로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우리가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그러잖아요.
천의 손길과 천의눈길. 바로 천수천안단 이런 봉사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가졌는데 이번에 결행을 하게 된 것입니다.
◆ 천수천안단 결성에 대하여.
* 표어 : 불자로서 자긍심, 천의 손길과 천의 눈길로.
* 성격 : 천수천안단은 이 세상을 밝히는 월력 모임으로 참다운 방생운동이다.
방생은 생명을 놓아준다 했는데 이것은 해탈의 맛. 법열의 밧을 보여준다는
말입니다.
방생에는 미물방생. 인간방생. 불성방생이라 이렇게말을 해요.
미물방생은 미꾸라지나 고기를 놓아주는 것을 미물방생이라 하고 인간방생은
고통받고 있는 인간들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 인간방생이지요.
인간을 돕는 모든 것은 인간방생입니다.
그 다음에 불성방생은 참ㅂ자아 참 생명의 자리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어둠에 갖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밝게 살도록 방생하는 것.
바로 부처님의 법을 전한다거나 깨달음의 법을 전한다거나 이것이 다 불성
방생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감포 바닷가에서 해변 힐링마을을 조성할 생각인데 거기서
미물방생을 하면서 이런 법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는 일 : 무일선원 무문관 및 세계명상센터 후원.
현재 이 무문관에는 2차 천일정진 12명의 스님들이 정진을 하고 있고
세계명상센터는 다 우리 신도들이 가서 힐링을 하고 명상을 하는 그런
센타에 대한 후원입니다.
그래서 안 간 기수나 팀들은 꼭 날짜를 잡아서 여기 와서 힐링을 해
보시기를 권하고
불서보급. 법보시 공덕운동.
제가 많은 포교를 하면서 살펴보니 책을 통한 포교가 제일 빠르고 정확해요.
그래서 여유가 되면 책을 돈 안 받고 대구 시내든 서울 시내든 원하는 사람은
무작위로 막 가져 가도록 법공양 운동을 좀 했으면 싶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책들을 그냥 무보시로 다하는 그런 날이 왔을 때에
훨씬 불국토가 바라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중국을 가 보면 중국 절들은 법당에 두툼한 책을 쌓아 놓고 그냥 가져가라
그러거든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법보시 많이 들어오면 책을 한 만 권 정도 동성로나 이렇게 쌓아 놓고 불교
책인데 가져 갈 사람은 다 가져가라는 거요.
그러면 관심 있게 가져간 사람은 집에 가서 몇 줄이라도 읽어볼 것 아닙니까?
그러면 금방금방 불교를 접하게 되고 쉽게 불교를 접하게 되고 그 사람들이
또 수행을 하게 되고 그러면 불교인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말 할 것 도 없고
이 세상이 부처님 사상으로 가득차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
는데 이 운동을 하면서 이제재정적인 여유가 생기면 이걸 꼭 한 번 해 볼 생각
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3대 대승경전 1년에 3권이상 사경 명상.
네 번째는 기타 - 의미 있고 복 되는 일이라 했는데 그냥 많이 달아 놓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4번을 비워 놓았습니다.
* 가입방법: 1인 1구좌. 월 만원이라 1인 여러구좌 하셔도 좋습니다.
했는데 요즘은 하도 구좌운동 하는 데가 많아가지고 TV만 틀면 이만 원
내라 삼 만원 내라 그러잖아요. 이게 다 필요에 의해서 하는 보면 그만입니다.
가급적 자동이체, 자동이체가 어려운 분들은 종무소에 수납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천수천안단은 기존의 무일선원 무문관 선방 후원회도 되고 세계명상
센터 후원도 되는, 불서모집 후원도 되는 여러 가지목적을 한꺼번에 묶어서
천수천안단 후원회라 이름을 붙인 겁니다.
*회원혜택 : 가입하시면 보은전 주위 공덕탑등에 불을 밝혀 드립니다.
가입신청서 뒷면에 축원장 작성하시면 감포 큰법당에서 기도 축원해 드립니다.
무문관 및 명상센터 시설이용. 여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찜질방이 있고 도자기
체험, 죽염 만들기 체험, 천연염색 체험들 이런 시설들이 올 해 말 가지 완성
합니다.
그래서 12월 중순까지 이 모든 시석들이 다 완성 되면 이것을 유지하는데
많은 힘이 필요합니다.
그 유지비로 구좌운동이 있게 되고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전 세계에 불서를
보급하는 이런 운동으로써 불서공양 후원으로 1인 1구좌 운동을 한다는 말씀
을 드립니다.
그리고 혜택 네 번 째는 단주 선물이 있고 다섯 번째는 3개원에 한 번씩
제 책이 나옵니다.
제가 엣날부터 이 책을 만들려고 스무 종류 이상 되고 요즘도 계속 하루에
30분 이상은 글을 씁니다.
그것을 모아서 3개월에 한 번씩 책을 내고 있는데 그러니까 무문관 일기 8권
부터 3개월에 한 권씩 그냥 드릴 생각입니다.
불서공양 실천운동으로써 회원은 무조건 무문관 일기 8권부터 3개월에 한
권씩 시내 팔지 않는 책을 드릴 것입니다.
시내는 내지 않고 천수천안단 회원에게만 드리는 책이니까 그만한 희소성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문관일기 8권을 꼭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직접 드리겠습니다.
초하루나 각 도량은 각 도량대로 주지스님들이 단주선물 그리고 무문관
8권부터 이 책을 드릴 것이니까 8권 이름이 좋은 시절인가 책 이름이 그렇
습니다.
꼭 책을 받기를 바라고 이 책은 10월 8일 이후로 보급이 됩니다.
그 다음에 회원증이 나오고 감포도량에 세계명상센터에 11층 공덕 대탑이
이제 완성이 되었습니다. 11층 공덕대탑에 사경 한 것을 회원 우선으로 모셔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지 일이 되는 거지 혼자서는 이을 할 수가 없어요.
그다음에 월간 법보시르 잘 보시고요.
이번에 나온 법보시 전면에 나온 그림은 제가 그 안에 조그만 부처님을
많이 모셔놨는데 그 부처님을 배경으로 이 자체가 나팔꽃입니다.
처음에는 나팔꽃인줄 몰랐는데 씨가 어디서 왔는지 올 해 처음으로 꽃이
피어서 처음에는 우담바라처럼 아주 환희심이 났어요.
모두 합장하십시오.
모두 따라하십시오,
우리는 언제나 공부하고 수행하는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엘리트불자입니다.
불교상황이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는 절대 나약해지지 말고 우리는 더욱 힘을
내어 이 정법을 더욱 포교하고 지켜 나갈 것을 서원합니다.
부처님 가피가 분명히 있음을 확신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초하루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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