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성도는 신앙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레위 사람들 곧 북이스라엘 지파에 속해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그 향리와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이처럼 그들의 향리와 산업을 떠나 예루살렘에 온 이유는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향리와 산업’ 이란 레위인들이 소유하였던 집이나 전답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옐 백성들은 타인에게 전답을 팔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이 향리와 산업을 떠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들이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였음을 시사하여 줍니다.
여러분, 레위인들의 이러한 포기가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소유에 집착하게 마련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소유를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중에 누가 그것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까? 특히 본문의 레위인들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믿음과 생명까지도 버릴 각오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을 위해서라면 이처럼 자기의 모든 소유, 심지어는 자기 생명까지라도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각오와 결단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합당한 신앙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자기 생명을 사랑하다 보면, 결국에는 하나님을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찾아왔던 유대 관원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 관원은 근심하며 돌아 습니다(눅18:18-23), 이처럼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바른 신앙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마 6:24) 고 말씀하셨고,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 (마 10:3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신앙이란 세상에 대한 포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형제와 야고보, 유한 형제가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들의 생업의 기반인 배와 그물, 심지어는 자신들의 부모마저 버려둔 채, 주님을 따른 것이 신앙입니다. 물론 신앙을 갖기 위하여 가족이나 사업, 직장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어디서도 그러한 가르침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둘 중의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닥친다면, 본문의 레위인들처럼 신앙을 위해서, 세상의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자 한다면 그는 결단코 하나님께 합당한 자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포기하는 신앙,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