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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감응(生命感應)
생명을 살렸으니 하늘도 감동하여 화답한다는 뜻으로, 남을 살리는 선(善)한 일을 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복을 내린다는 말이다.
生 : 날 생(生/0)
命 : 목숨 명(口/5)
感 : 느낄 감(/9)
應 : 응할 응(/13)
출전 : 한국해학대전집(韓國諧謔大全集) 이인기인편(異人奇人篇)
우리 선조들은 전설적인 기인(奇人)들이 많다. 정감록예언서를 지은 분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 임지왜란 당시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사명당(四溟堂), 조선 중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函)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인들이 정사(正史)나 야사(野史) 혹은 전설(傳說)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토정(土亭)이 언젠가 천안 삼거리에 위치한 한 주막집에 머무르게 된 적이 있었다. 마침 그 주막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한양에서 곧 있을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지방의 선비들이었다.
과거에 급제(及第)하기 위하여 공부해온 그들이라, 당대(當代)에 큰 학자이며 기인으로 명성(名聲)이 높은 토정선생의 방을 찾아가 한 말씀을 듣고자 모이게 되었다.
토정이 여러 젊은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젊은 선비를 향해 이르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운이 없으니, 서운하겠지만 그냥 고향에 돌아가시게나" 라고 하였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민망해진 그 젊은이는 말없이 일어나 인사조차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는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 나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청천벽력의 말에 깜짝 놀란 그 선비는 멍한 느낌에 주막을 나와 대문 옆 담벼락에 등을 대고 쪼그리고 앉아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동안 과거에 급제를 목표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해 왔는데, 시험을 보기도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고향에선 나를 못난이라고 놀려댈 테고, 한편으론, 대학자이신 토정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과거를 보러 가서 정말 낙방이라도 하면 평소에 흠모해 온 토정 선생의 말씀을 우습게 아는 놈이 되는 꼴이 아닌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멀거니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마침 수많은 개미 떼들이 줄을 지어 자신이 앉아있는 자리 바로 앞을 좌에서 우측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좌측으로 눈길을 돌려 바라보니 그 뒤로도 끝없는 개미들이 줄지어 앞의 개미들을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이 개미들은 어디를 향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에 몸을 일으켜, 그 선두에 선 개미를 보기 위해 걸어가 보기로 하였다.
가다 보니 선두개미가 있는 곳으로부터 불과 몇 발자국 앞에 큰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고, 그 독 안에는 물이 가득 차 금시라도 넘칠 듯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부엌에서 쓰고 버린 허드렛물이 배수 하수관을 통해 항아리에 떨어지게끔 되어 있었고, 물이 가득 차게 되면 자체의 무게로 인해 독이 기울어져 도랑 쪽으로 물이 쏟아지도록 만든 도구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누군가가 부엌에서 물을 버리면 그 독이 기울어져 이동하고 있는 개미들에게 쏟아져 많은 개미들이 때아닌 물벼락을 만나 다 죽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뛰어가 구정물이 가득한 독을 힘들게 옮겨 도랑에다 대고 얌전히 부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빈 독을 옮겨 제 자리에 갖다 두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개미의 긴 행렬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고 있었다.
개미의 이동을 넋 놓고 바라보던 이 젊은 선비는 한참 후 토정선생이 하신 말씀이 다시 생각나, 조금 전에 앉았던 자리로 되돌아가 쪼그려 앉아 다시금 우울한 생각에 잠겼다.
그 때 문득 "자네,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 나오셨는지 토정(土亭) 선생이 대문 앞에 서서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벌떡 일어나 머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니 선생께서 선비를 향하여 다가오다가 가까이 와서 젊은이를 보더니, 이번에는 토정(土亭) 선생이 흠칫 놀라며 이렇게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까 방에서 내가 낙방(落榜)을 할 운(運)이니 고향으로 내려가라 한 바로 그 젊은이가 아닌가?"
그리고는 토정 선생이 머리를 갸웃거리시며 하시는 말씀이, "내가 조금 전에 자네에게 얘기할 때 본 자네의 상(相)과 지금 보는 자네의 상(相)이 완전히 다르니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얼굴에 광채가 나고 서기(瑞氣) 가 충천(衝天)하니 과거에 급제를 하고도 남을 상(相)인데,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相)이 바뀌었단 말인가?" 하고 물으셨다.
젊은 선비는 너무나 황당하여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선생께서 재차 물으시기를, "잠깐 사이에 자네의 상이 아주 귀(貴)한 상(相)으로 바뀌었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테니 내게 숨김없이 말씀을 해 보시게"라고 한다.
젊은이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고 말씀을 드리다가 문득, 항아리를 옮긴 일이 생각이 나서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선생께서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시고는 혼잣말로 말씀하시길, '수백, 수천의 죽을 생명(生命)을 살리었으니, 어찌 하늘인들 감응(感應)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시더니,
다시 젊은 선비에게 이르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꼭 급제를 할 것이니 아까 내가 한 말은 마음에 두지 말고 한양에 올라가 시험을 치르시게" 하고는, 젊은 선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 주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과연 이 젊은 선비는 토정(土亭) 선생의 말씀대로 과거에 응시하였고, 장원(壯元)으로 급제(及第)를 하였다 한다.
상(相)도 마음에 의해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다만 그 마음 선(善)을 향해 써야 될 것이다.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한다면 이로 인한 자신의 상이나 운명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작은 일이 이처럼 사람의 운명까지도 바꾸는 일은 많다. 특히 생명을 살리는 선(善)한 마음과 행동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선조들은 늘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착한 일(생명을 살리는 일)을 주창하고 솔선해왔다. 후손 된 자들은 마땅히 받들고 지켜야 할 의무감이 있는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삼불후(三不朽; 인간이 살아가는데 썩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최상은 그 사람의 덕행이고, 그 다음은 그 사람이 일을 하여 공을 세우는 일이며, 그 다음은 그 사람이 남긴 학문과 저술이다. 비록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이것을 썩지 않는 것이라 한다."
上有立德, 其次有立功, 其次有立言.
雖久不廢, 此之謂不朽.
◼ 명심보감(明心寶監)
1. 계선편(繼善篇)
계선편에는 선악(善惡)에 관한 글귀들이 수록되어 있다.
子曰: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
공자가 말씀하였다. "선행(善行)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복(福)으로서 보답하고, 불선(不善)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화(禍)로서 갚느니라."
漢昭烈이 將終에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한(漢)나라 소열황제가 장차 임종(臨終)하려 할 즈음에, 후주(後主) 유선(劉禪)에게 조칙(詔勅)을 내려 이르기를, "비록 선(善)이 작다고 하여 안 해서는 안 되며, 작은 악(惡)이라고 해서 행하면 안 되느니라"고 하였다.
莊子曰:
一日不念善이면 諸惡이 皆自起니라.
장자가 말하였다.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저절로 다 일어나느니라."
太公曰:
見善如渴하고 聞惡如聾하라 又曰 善事는 須貪하고 惡事는 莫樂하라
태공이 말하였다. "착한 일 보기를 목마를 때 목이 말라 물을 구하듯이 하고, 악한 것을 들었거든 귀 먹은 것 같이 하라." 또 말하기를, "착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어 하고, 악한 일은 즐겨하지 말라"고 하였다.
馬援曰:
終身行善이라도 善猶不足이요 一日行惡이라도 惡自有餘니라.
마원이 말하였다. "평생토록 선한 일을 행해도 선은 오히려 부족하고, 하루만이라도 악을 행하면 악은 저절로 남음이 있느니라."
司馬溫公曰:
積金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이 能盡守요 積書以遺子孫이라도 未必子孫이 能盡讀이니 不如積陰德於冥冥之中하여 以爲子孫之計也이니라.
사마온공이 말하였다. "돈을 모아서 자손에게 물려준다 하여도 자손들이 반드시 그 돈을 능히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요, 책을 모아서 자손에게 물려주더라도 반드시 자손이 능히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남이 모르는 가운데에 음덕을 쌓아서 자손의 계책으로 삼는 것만 못하느니라."
景行錄曰:
恩義를廣施하라 人生何處不相逢이랴 讐怨을 莫結하라 路逢狹處면 難回避니라
경행록에 말하였다.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디에 산들 서로 만나지 않겠는가.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莊子曰:
於我善者도 我亦善之하고 於我惡者도 我亦善之니라 我旣於人에 無惡이면 人能於我에 無惡哉인저
장자가 말하였다. "나에게 선하게 하는 사람에게 나도 또한 선하게 하고, 나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에게도 나 또한 선하게 대할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하지 않았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東岳聖帝垂訓曰:
一日行善이면 福雖未至나 禍自遠矣요 一日行惡이면 禍雖未至나 福自遠矣니 行善之人은 如春園之草하여 不見其長이라도 日有所增하고 行惡之人은 如磨刀之石하여 不見其損이라도 日有所虧니라.
동악성제가 훈계를 내려 말하였다. "하루라도 선한 일을 행하면 복은 비록 아직 당장 이르지는 아니하나 화는 저절로 멀어지고, 하루라도 악을 행하면 화는 비록 아직 당장 이르지는 아니하나 복은 저절로 멀어지느니라.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풀이 자라는 것을 보지는 못해도 날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바가 있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것이 닳아 없어짐을 보지는 못해도 날마다 조금씩 이지러지는 바가 있느니라."
子曰:
見善如不及하고 見不善如探湯하라.
공자가 말씀하였다. "선한 일을 보거든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이 하고, 선하지 않은 일을 보거든 끓는 물에 손을 더듬는 것 같이 하라."
2. 천명편(天命篇)
선을 지키고 악을 버리는 하늘의 진리, 하늘의 명에 관한 글귀들이 있다.
孟子曰: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이니라.
맹자가 말씀하였다. "하늘에 순응하는 사람은 살아남고, 하늘을 거역하는 사람은 망하느니라."
康節邵先生曰:
天聽이 寂無音하니 蒼蒼何處尋고 非高亦非遠이라 都只在人心이니라.
강절 소 선생이 말하였다. "하늘의 들으심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으니 창창한 하늘 어느 곳 에서 찾을 것인가. 높지도 아니하고 또한 멀지도 않으니 모두가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라."
玄帝垂訓曰:
人間私語라도 天聽은 若雷하고 暗室 欺心이라도 神目은 如電이니라.
현제가 훈계를 내려 말하였다. "사람간의 사사로운 말이라도 하늘이 듣는 것은 우레와 같고,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이더라도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느니라."
益智書云:
惡鑵이 若滿이면 天必誅之니라.
익지서에 이르기를, "악한 마음이(그릇에) 가득차면, 하늘이 반드시 그를 죽이느니라."
莊子曰:
若人作不善하여 得顯名者는 人雖不害나 天必戮之이니라.
장자가 말하였다. "만일 사람이 선하지 않은 일을 하고도 훌륭한 이름을 드러낸 자는 사람이 비록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은 반드시 그를 죽이느니라."
種瓜得瓜요 種豆得豆니 天網이 恢恢하여 疎而不漏이니라.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 것이니,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글되 새지 않느니라.
子曰:
獲罪於天이면 無所禱也이니라.
공자가 말씀하였다. "(악한 일을 하여)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느니라."
3. 순명편(順命篇)
하늘의 이치, 자연의 이치를 거스리지 않고 자신의 본분과 분수에 맞는 생활에 관한 글귀들이 쓰여 있다.
子曰:
死生이 有命이요 富貴在天이니라.
공자가 말씀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天命)에 있고, 부귀(富貴)는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니라.
萬事分已定이어늘 浮生空自忙이니라.
모든 일은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세상 사람들은 부질없이 스스로 바쁘다 하느니라."
景行錄云:
禍不可倖免이요 福不可再求이니라.
경행록에 이르기를, "화는 요행히 면할 수 없는 것이요, 복은 두 번 얻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時來風送滕王閣이요 運退雷轟天福碑이니라.
때가 오면 바람이 일어나 등왕각으로 보내주는 것이요, 운수가 물러나면 벼락이 천복비에 떨어 지기도 하는 것이니라.
列子曰:
痴聾痼啞도 家豪富요 知慧聰明도 却受貧이라 年月日時 該載定하니 算來由命不由人이니라.
열자가 말하였다. "어리석고 귀먹고 고질에 벙어리라도 집은 호화롭고 부유할 수 있는 것이요, 지혜롭고 총명하지만 오히려 가난할 수 있느니라. 해와 달과 날과 시가 모두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니, 따지고 보면 천명에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서 말미암음이 아닌 것이니라."
4. 효행편(孝行篇)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하는 효(孝)에 관한 글귀들이 쓰여 있다.
詩曰:
父兮生我하시고 母兮鞠我하시니 哀哀父母여 生我劬勞삿다 欲報深恩인댄 昊天罔極이로다.
시경(詩經)에 말하였다. "아버지여! 날 낳으시고 어머니여! 날 기르시니, 아! 슬프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시고 고생하셨도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면, 은혜가 넓은 하늘과 같아 다함이 없도다."
子曰:
孝子之事親也에 居則致其敬하고 養則致其樂하고 病則致其憂하고 喪則致其哀하고 祭則致其嚴이니라
공자가 말씀하였다. "효자가 어버이를 섬길 때에는 기거하심에는 그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즐거움을 다하며, 병드신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슬픔을 다하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엄숙함을 다해야 하는 것이니라."
子曰:
父母在어시든 不遠遊하며 遊必有方이니라
공자가 말씀하였다. "부모가 살아 계실 적에는 멀리 떨어져 놀지 말며, 놀 때에는 반드시 일정한 방향이 있어야 할 것이니라."
子曰:
父命召어시든 唯而不諾하고 食在口則吐之이니라.
공자가 말씀하였다. "부모께서 명하여 부르시거든 속히 예하고 대답하여 응하고 머뭇거리지 말 것이며, 음식이 입에 들었다면 곧 뱉고 달려갈 것이니라."
太公曰:
孝於親이면 子亦孝之하나니 身旣不孝면 子何孝焉이리오.
태공이 말하였다.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이 또한 나에게 효도 하나니, 내가 이미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지 않았다면 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겠는가?
孝順은 還生孝順子요 五逆은 還生五逆兒하나니 不信커든 但看簷頭水하라 點點滴滴不差異이니라.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다시 효순한 자식을 낳는 것이요, 부모에게 거역한 사람은 다시 거역하는 자식를 낳는 것이다. 믿지 못하겠거든 다만 저 처마끝의 떨어지는 물을 보라. 방울 방울 떨어짐이 어긋남이 없느니라."
(下略)
◼ 행복(行福)은 행선(行善)입니다.
행복은 행복(幸福)이 아니라 행복(行福)이어야 합니다. 행복(幸福)은 잠시 잠깐의 복이지만, 행복(行福)은 무량대복(無量大福) 입니다.
행복(幸福)은 어쩌다 생기는 복이지만, 행복(行福)은 인과(因果)의 도리를 믿고 사는 도심(道心)에서 오는 복입니다.
행복(行福)은 한 없이 큰마음으로 사는 복이요,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비심에서 오는 복이요,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의 삶을 사는 걸리없는 마음에서 오는 복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꽃을 자리가 없으나, 마음을 넓히면 온 우주가 다 들어가도 남을 만큼 큽니다. 옹졸한 마음에는 복이 깃들지 않고, 온 우주를 다 품는 너그러운 마음에는 복이 넘칩니다.
그 누구든지 맑고 높은 가을 하늘처럼 가슴도, 마음도 확 열고 살 때,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화통하게 살아갈 때, 복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우주법계(宇宙法界)는 진리(眞理)요, 선(善)입니다. 내가 큰 사람이 되어 진리를 따를 때, 내가 불이(不二)의 마음으로 자비심(慈悲心)을 행할 때, 내 삶은 풍족해 지고 건강해 지고 행복(行福)해 집니다.
행복(行福)은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복이 아니고, 내가 순간순간 선업(善業)을 짓고 참된 삶을 살 때 찾아옵니다. 행복(行福)은 행선(行善)을 행(行)하는 업(業)입니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16세 때 중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나 그는 원래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55세에 불치병이 걸려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으로 들어갈 때 병원로비에 걸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도 복이 있다(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그는 이 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한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답니다.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에서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어 소녀의 입원이 안 된다 하고 환자 어머니는 제발 입원을 시켜달라고 울부짖으면서 애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병고에서 회복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그의 자서전에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그때부터 그는 베푸는 나눔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는 1년의 시한부 삶에서 빠른 속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40여년이 지난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이렇게 장수하면서 그는 시카고대학을 설립하고 록펠러재단을 만들어 교육과 의학연구 부분을 중심으로 기부 후원 사업을 펼쳤습니다.
남을 행복하게 하면 나는 더욱 더 행복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거나 지니고 있는 물건 중에서 내가 직접 만든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1차적으로 돈을 위해 일을 하지만 결국 남을 위해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정성을 다하여 즐겁게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 피해가 가면 그것은 바로 죄업(罪業)이 됩니다.
이 세상은 순간순간 인연의 연속입니다. 아름다운 인연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행선으로 옵니다. 행복(行福)은 행선(行善)입니다.
◼ 奇人 李土亭 先生
조선 중종 때, 주역팔괘(周易八卦)에 능통한 형중(馨仲) 이지함(李之函)이 있었다.
이지함은 그 유명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학문을 했고, 한때는 아산(牙山) 현감의 벼슬에도 있었으나 적성이 맞지 않는다 하여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총명하고 남 돕기를 좋아했던 그는 성장하여 결혼을 해서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데 더욱 힘을 썼다. 부인과 자녀들은 남다른 고생을 함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토하거나 그것으로 인해서 싸움하는 법은 절대 없었다.
나이가 더 할수록 학문과 인격이 높아감에 따라 비록 없이 살긴 해도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 그들은 그들대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지함의 조언대로만 실행했다.
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몸이 아파도, 장사가 잘 안되어도 이지함 말대로만 하면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문전에 사람들이 줄을 이어갔다.
이지함은 주역팔괘에 능통하였던 터라 그 괘를 응용해서 닥쳐올 액을 미리 내다보고 피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소문에 소문을 듣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작은 골목길에 위치한 집을 놓아둔 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마포 나루터에 기둥과 상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흙으로만 쌓아올린 정자, 즉 일종의 토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기거했다.
그런 연유로 세상 사람들은 이지함을 토정(土亭) 선생이라 부르게 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봐 달라고 하는 통에 순서를 기다리려면 며칠씩 걸리곤 했다.
토정선생은 그런 폐단을 줄이고자, 주역 팔괘를 응용하여 미래를 알아볼 수 있는 예언서로 소위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만들어 그 내용에 기준하여 예언을 해 주게 되었다.
그런데, 그 '토정비결'이란 책이 너무도 신기하게 미래를 잘 맞추자 우매한 백성들 중에는 근면성과 성실성을 무시한 채 약은 꾀로 악용하는 폐단이 일기 시작하여 할 수 없이 절반 정도만 맞고 절반 정도는 맞지 않도록 '토정비결'을 고쳐버렸다.
토정선생은 몹시 가난해 밥솥이나 갓(冠), 신발 등을 제대로 구할 수가 없어 쇠붙이(鐵)로 두들겨 만든 쇠 갓(鐵冠)을 쓰고 다녔고, 솥에 구멍이 났을 때는 쇠 갓을 뒤집어 놓고 솥으로 대용했고, 신발은 나무를 파서 만든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특히 토정선생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항해 기술로 제주도를 왕래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광풍(狂風)이 몰아치는 악천후에 닻을 단 큰 배 들도 항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토정선생은 유유하게 조각배를 이용하여 제주도를 자주 왕래하였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랬는지는 아직도 신비 속에 쌓여있으나, 일엽편주로 항해를 할 때면 꼭 닭 네 마리를 배의 귀퉁이에 매달아 균형을 유지하여 침몰의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길을 가다가도 지팡이에 턱을 괸 채 서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개인의 운명을 매년마다 볼 수 있는 '토정비결'과 주로 국가의 운을 비록(秘錄) 예언한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이 있는데, 그 학술적 근거는 주역팔괘에 두었던 것으로 '토정가장결'에는 우리나라 국운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다.
원숭이` 쥐` 용(申子辰)해는 병란이 있고, 범` 뱀` 돼지(寅巳亥)해는 혼란과 옥사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대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을사사화` 을사오적신(乙士五賊臣)들의 매국노(賣國奴) 사건과 1926년 항일학생 시위운동사건 등은 그가 예언한 일면을 그대로 실증해 주었다.
토정선생은 호걸(豪傑) 기인(奇人)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기문기답(奇問奇答)으로도 유명했다.
어느 사람이 선생에게,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요?" 하고 질문하자, "부막부어불탐(富莫富於不貪)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를 욕심내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인(貴人)은 누구요?"라고 질문하자 선생은, "귀막귀어부작(貴莫貴於不爵) 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귀인은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요?"고 질문하자, "강막강어부쟁(强幕强於不爭)이라 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다투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토정선생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몇날 며칠을 두고도 생각지 못할 명답을 즉석에서 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달인(達人)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한번은 조상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데, 제수 살 돈이 없어 쩔쩔매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를 머슴에게 주면서 어느 곳, 어느 시각에 그곳을 가면 얼마에 산다는 사람이 있을 테니 팔아 오라고 했다. 하인은 시키는 대로 가르쳐 준 장소에 가 보았더니 토정선생이 예언한 대로 그 장소에 아니나 다를까 인상착의 하나 틀리지 않은 한 노파가 그 가보를 보더니 두말하지 않고 사갔다. 하도 신기하여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인을 본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년 이맘때면 반드시 오늘의 그 시간에 그 가보를 다시 팔려고 그 장소에 나올 테니 그때 다시 사 오라"고 했다. 하인은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정말입니까? 아니, 정말로 그 사람이 다시 팔러 나온다고요. 그런 경우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선생은 웃음을 띄우며,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일년이 지나고 다시 작년처럼 제삿날이 다가왔다. 하인은 혹시나 하면서도 그 장소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선생이 예언한 그대로 그 노파가 그 가보를 다시 팔려고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토정선생의 많은 예언에 비하면 그러한 예언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토정선생은 이율곡(李栗谷) 선생과 친분이 있으면서도 서로의 이념이 달라 다툰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한때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시끄럽게 되자, 율곡선생이 귀향을 하기로 작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토정선생은 율곡선생을 만나, "율곡마저 귀향을 하게 되면 당파 싸움은 누가 막고 백성은 누가 다스리나"며 설득을 해서 율곡선생의 귀향을 포기하게 한 적도 있었다.
선생이 일생을 마치자, 나라에서는 이조판서의 벼슬을 제수하고 강문공(康文公)이란 시호를 내렸다.
◼ 토정 이지함의 삶과 정신
이지함의 호는 토정이다. 그의 호를 토정이라 함은 그의 정자가 흙으로 다져진 축대위에 자리잡은 까닭이었다.
그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나이가 들어서야 형 지번(之蕃)에게 글을 배웠다. 대신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글 공부에 대한 분발심이 대단해 책을 손에 잡으면 침식마저 잊기가 예사였다.
한번은 광릉의 별장으로 나가서 등잔에 쓸 기름을 구하고자 처가에 사람을 보냈다. 그의 장인 되는 모산은 그의 지나친 학구열에 몸이 상할까 염려하여 기름을 보내지 않았다.
그는 이에 도끼를 허리에 차고 산으로 들어가 관솔을 따다가 방안에 켜고 일년 남짓 공부에 매달렸다. 그로부터 그는 경전과 자집(子集)에 완전 통달하여 문장이 마치 물 솟듯 하였다.
그의 학문은 경(敬)을 주로 하고 리(理) 중심이었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성인을 배워서 능히 할 수 있으나 오직 자포자기 하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공부를 하면서도 선조 계유년에 탁행의 추천으로 6품관에 임명된 것 이외에는 과거를 염두에 두지 않았고 스스로 떠돌면서 매인데 없이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인 재능은 율곡이 이미 알아보고 성리학에 종사할 것을 권했는 바 그의 대답은 자기에게는 욕심이 많아서 어렵다는 것이었다.
율곡은 그 대답에 수긍하기 어려워 다시 물었다. "부귀 영화 성색(聲色)과 재물에 대한 탐심은 모두 존장이 즐기는 바가 아닌데 무슨 다른 욕심이 있어서 학문을 방해하겠습니까?"
그가 다시 대답했다. "어찌 반드시 명리 성색만을 욕심이라고 하겠는가. 마음의 향하는 바가 천리(天理)가 아니면 모두가 인욕인 것이다. 내가 스스로 방종함을 좋아하고 능히 예법으로서 몸을 단속하지 못하니 어찌 물욕이 아니겠는가."
율곡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화도 있었다. 마침 율곡은 대간의 자리에 있다가 병을 핑계로 사직을 한 터였다. 율곡의 처서로 많은 명사가 모여들었다. 그 자리에서 지함은 "성현들의 하는 바가 뒷날 폐단을 많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율곡이 그 말을 듣고 물었다. "무슨 기담이십니까? 나는 존장께서 책을 하나 지어 장자와 같아지기를 원합니다."
지함은 웃으며 대답했다. "공자께서 병이 없으면서 병이라 칭탁하고 유비(孺悲)를 보지 않는 것과 맹자가 병이 없으면서 병이라 칭탁하고 제선왕의 부름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의 선비들이 흔히 이를 본받으니 대저 병을 핑계하여 사람을 속이는 것은 사람의 집에 게으른 종이나 말 안듣는 머슴의 행위와 같은데 선비된 자가 차마 이런 짓을 하면서 이것을 공자와 맹자에 칭탁하니 성현의 소위가 뒷사람의 폐단을 지은 게 아니냐."
그러자 좌중의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또 지함은 이런 말도 했다. "지난 해의 요성(妖星)을 나는 서성(瑞星)으로 본다."
율곡이 대꾸했다. "무엇을 이르는 말입니까?"
공이 대답했다. "인심과 세상 풍습이 극도로 퇴폐해져 장차 큰변이 생길 것 같더니 그 별이 나타난 뒤로부터 상하가 모두 두려워하여 인심이 차차 변화해 가니 어찌 서성이 아니겠느냐."
율곡과 관련된 지함의 많은 일화에서 처럼 지함도 율곡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있다. 지함이 여러 명사들과 어울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자리에서였다.
그가 좌중의 사람들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의 국사가 기운이 다하여 손을 대어 약을 쓸 길이 없어진 사람과 같이 되었는데 다만 한가지 기묘한 계책만이 위급한 증세를 구할 수가 있다."
앉은 자리의 사람들이 그 계책을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이 세상에서 반드시 이 계책을 쓰지 않을 것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오늘날 숙헌이(율곡의 자)조정에 머무른다면 비록 크게 하는 일이 있지는 않더라도 나라가 이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하였다.
그는 모산수(毛山守) 성랑(星浪)의 집으로 장가갔다. 일찍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도포가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집안 사람이 당연히 그 까닭을 물었다. 그의 대답으로는 "거지 아이가 추위에 얼어 병든 것을 보고 뜯어서 세 아이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는 맨손으로 생업을 경영하여 살림살이에 뜻을 둔지 수년이 못되어 수만의 양곡을 축적하였다. 또 해도(섬)로 들어가 박을 심어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어 수천 석의 양곡을 사서 모두 빈민에게 흩어주었는데 처자는 항상 주린 빛이 있었다.
국내 산천에 가지 않은 데가 없었으며 어떤 때는 한 더위에도 물을 마시지 않아 왕왕 사람들이 의아해 했으며 어떤 때는 열흘 동안을 화식하지 않아 그 행동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많았다. 베옷에 짚신으로 봇짐을 지고 다니며 혹 사대부들과 놀면서 옆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행동하기도 하였다.
제가의 잡술에 널리 통했으며 조그만 배의 네 귀에 큰 바가지를 달고서 세 번이나 제주에 들어갔으나 풍랑의 위험을 겪지 않았다.
제주의 관원이 그의 이름을 듣고 객관에 맞아들이고 기생을 택하여 잠자리에 모시도록 하고 창고를 가리키며 기생에게 말하기를 "네가 만약 이공의 사랑을 얻는다면 마땅히 한 창고를 상으로 주겠다" 하니 기생이 그 사람 됨을 이상히 여겨 밤에 쫓아 들어가 아양을 떨면서 기어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혀 보려고 애썼으나 끝내 그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므로 고을 관원이 더욱 그를 공경히 대했다.
일찍이 자질들에게 훈계하기를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다름아닌 여색이라고 일렀으니 "여기에 엄하지 못하면 그 나머지는 족히 볼 것이 없다"고 했다.
외출할 때는 늘 철로 된 관을 쓰고 다녔는데 다니다가 그것을 벗어 밥을 지어 먹고 씻어서 다시 관으로 썼다.
능히 한서와 기한을 참아서 혹 겨울날에 알몸으로 매운 바람 속에 앉아 있기고 하고 혹은 10일 간이나 음식을 끊어도 병이 나지 않았다.
형제간에도 있고 없는 것을 서로 같이 하며 그 가진 것을 혼자만의 것으로 하지 않았으며 남에게 주는 것을 좋아하여 항상 남의 급한 것을 구제하였다.
어려서 글을 배우지 않았고 이미 장성한 뒤에 그 형 지번의 권고에 따라 비로소 발분하여 부지런히 공부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침식을 잊기에 이르렀다. 단 과거를 일삼지 않고 매이는데 없이 스스로 방랑하였다.
이이가 한번은 성리학에 종사할 것을 권고하니 지함이 말하기를 "나는 욕심이 많아서 능히 하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이이가 부귀 영화 성색과 재리는 무두 존장의 즐기는 바가 아닌데 무슨 욕심이 있다고 하느냐고 의아해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生(날 생)은 ❶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의 뜻으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生자는 '나다'나 '낳다', '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生자의 갑골문을 보면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生자는 본래 '나서 자라다'나 '돋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生자는 후에 '태어나다'나 '살다', '나다'와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 生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본래의 의미인 '나다'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姓(성 성)자는 태어남은(生)은 여자(女)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生(생)은 (1)생명(生命) (2)삶 (3)어른에게 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말. 흔히 편지에 씀 등의 뜻으로 ①나다 ②낳다 ③살다 ④기르다 ⑤서투르다 ⑥싱싱하다 ⑦만들다 ⑧백성(百姓) ⑨선비(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⑩자기의 겸칭 ⑪사람 ⑫날(익지 않음) ⑬삶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살아 움직임을 생동(生動), 목숨을 생명(生命), 살아 있는 동안을 생전(生前), 생명을 유지하고 있음을 생존(生存),말리거나 얼리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명태를 생태(生太), 자기가 난 집을 생가(生家),생물의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생활 상태를 생태(生態), 세상에 태어난 날을 생일(生日), 사로 잡음을 생포(生捕), 태어남과 죽음을 생사(生死), 먹고 살아가기 위한 직업을 생업(生業),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을 생기(生氣),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생모(生母), 끓이거나 소독하지 않은 맑은 물을 생수(生水),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 어느 곳 또는 세상에 생겨나거나 나타나는 것을 발생(發生), 배우는 사람으로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사람을 학생(學生),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先生), 사람이 태어남을 탄생(誕生),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일단 못 쓰게 된 것을 손질하여 다시 쓰게 됨 또는 죄를 뉘우치고 마음이 새로워짐을 갱생(更生), 다시 살아나는 것을 회생(回生), 아우나 손아래 누이를 동생(同生), 사람이 삶을 사는 내내의 동안을 평생(平生), 어렵고 괴로운 가난한 생활을 고생(苦生),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사람을 산채로 땅에 묻음을 생매장(生埋葬), 생명이 있는 물체를 생명체(生命體), 이유도 없이 공연히 부리는 고집을 생고집(生固執),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세상만사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생자필멸(生者必滅), 불교에서 인간이 반드시 겪어야만 한다는 네 가지 고통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의 고통을 이르는 말을 생로병사(生老病死),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곤궁하여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구불망(生口不網),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안다는 뜻으로 생지生知하는 성인을 이르는 말을 생이지지(生而知之), 죽은 자를 살려 백골에 살을 붙인다는 뜻으로 큰 은혜를 베풂을 이르는 말을 생사골육(生死骨肉), 사람이 태어난 뒤 사흘 동안과 죽은 뒤 이레 동안을 부정하다고 꺼리는 기간을 이르는 말을 생삼사칠(生三死七), 몹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삶이 차라리 죽음만 같지 못하다는 말을 생불여사(生不如死), 기운이 꺾이지 않고 본디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생생한 모양을 일컫는 말을 생동생동(生動生動),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동안 머물러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생기사귀(生寄死歸), 산 채로 삼키고 산 채로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남의 시문을 송두리째 인용함을 이르는 말을 생탄활박(生呑活剝), 나면서부터 알아 쉽게 행한다는 뜻으로 배우지 않아도 사물의 도리를 알아 쉽게 그것을 실행한다는 말을 생지안행(生知安行), 일속을 잘 알지 못하고 관계가 없는 사람을 그릇 책망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생면대책(生面大責), 태어나서 만나 본 적이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생면부지(生面不知),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뜻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생살여탈(生殺與奪), 거듭나서 유전한다는 뜻으로 만물이 끊이지 않고 변해 감을 이르는 말을 생생유전(生生流轉) 등에 쓰인다.
▶️ 命(목숨 명)은 ❶회의문자로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令(령)의 합자(合字)이다. 입(口)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命(명)은 (1)목숨 (2)운명(運命) 등의 뜻으로 ①목숨, 생명(生命), 수명(壽命) ②운수(運數), 운(運) ③표적(標的), 목표물(目標物) ④명령(命令), 분부(分付)⑤성질(性質), 천성(天性) ⑥말, 언약(言約) ⑦규정(規定), 규칙(規則) ⑧가르침 ⑨작위(爵位), 작위의 사령서나 그 신표(信標: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⑩하늘의 뜻, 천명(天命) ⑪도(道), 자연의 이법(理法) ⑫호적(戶籍) ⑬명령하다 ⑭가르치다, 알리다 ⑮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무엇을 하도록 시킴을 명령(命令), 시문의 제목을 정하여 주는 것을 명제(命題),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붙임을 명명(命名), 살아 있는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을 명백(命脈), 겨냥한 곳에 바로 맞음을 명중(命中), 생명의 근본을 명근(命根), 목숨의 한도를 명한(命限),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운명(運命),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타고난 수명이나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을 숙명(宿命),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맡겨진 임무나 맡은 일을 사명(使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을 수명(壽命), 사람의 목숨을 인명(人命),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뜻으로 숨이 곧 끊어질 지경에 이름이나 거의 죽게 됨을 이르는 말을 명재경각(命在頃刻), 한 시대를 바로잡아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를 일컫는 말을 명세지웅(命世之雄), 연거푸 생기는 행복을 일컫는 말을 명야복야(命也福也),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일컫는 말을 명맥소관(命脈所關), 팔자가 사나움을 일컫는 말을 명도기박(命途奇薄), 목숨을 의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뜻으로 의로움을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
▶️ 感(느낄 감/한할 감)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咸(함, 감)이 합(合)하여 이루어, 느끼는 마음이나 느낌의 뜻을 나타낸다. 戌(술; 무기, 통틀어 모두)과 口(구; 소리)로 이루어진 咸(함)은 많은 사람이 소리를 질러 적을 치다라는 뜻으로 전(轉)하여 '모두', '남김없이'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感자는 '느끼다'나 '감동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感자는 咸(다 함)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咸자는 '모두'나 '남김없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남김없이'라는 뜻을 가진 咸자에 心자를 결합한 感자는 '모조리 느끼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모조리 느끼다'라는 것은 오감(五感)을 통해 느낀다는 뜻이다. 그래서 感(감)은 (1)느끼는 마음, 느낌의 뜻을 나타냄 (2)감도(感度) 등의 뜻으로 ①느끼다 ②감응(感應)하다, 느낌이 통하다 ③감동(感動)하다, 마음이 움직이다 ④고맙게 여기다, 은혜(恩惠)를 새겨 두다 ⑤깨닫다 ⑥생각하다 ⑦한(恨)하다(몹시 억울하거나 원통하여 원망스럽게 생각하다), 원한(怨恨)을 품다(=憾) ⑧움직이다 ⑨흔들다 ⑩닿다, 부딪치다 ⑪감동(感動) ⑫감응(感應) ⑬느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잠깰 오(寤), 깨달을 오(悟), 깨달을 각(覺), 깨우칠 경(警)이다. 용례로는 깊이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을 감동(感動), 다른 사물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변함을 감화(感化), 사물에 느끼어 일어나는 심정을 감정(感情), 한탄하고 뉘우침을 감회(感悔), 고맙게 여기고 사례함을 감사(感謝), 다른 풍습이 옮아서 물이 듦 또는 병원체가 몸 안에 들어오는 일을 감염(感染), 추위에 상하여 일어나는 호흡기 계통의 염증성 질환을 감기(感氣), 감촉되어 깨달음으로 외부 또는 내부의 자극에 의하여 일어나는 느낌을 감각(感覺), 어떤 일을 느끼어 아는 것을 감지(感知), 예민한 감각을 민감(敏感), 남의 의견이나 논설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똑같이 느낌을 공감(共感), 몸에 느끼는 감각을 체감(體感), 의견이나 견해에 있어 같이 생각함을 동감(同感), 절실하게 느낌을 절감(切感), 지나치게 고마움을 과감(過感), 느끼는 바가 있음을 유감(有感), 심령의 미묘한 작용에 의한 느낌을 영감(靈感), 반대하거나 반항하여 품는 나쁜 감정을 반감(反感), 외부의 자극을 잘 받아들이는 성질을 일컫는 말을 감수성(感受性), 감정에 관하거나 바탕을 둔 것을 이르는 말을 감정적(感情的), 어떤 대상을 선선히 받아 들이거나 긍정하지 못하고 좋지 않게 여기는 감정을 일컫는 말을 거부감(拒否感), 마음이 조마조마한 느낌을 이르는 말을 불안감(不安感), 어떤 일에 대하여 뜻한 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굳센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신감(自信感),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는 또는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불안한 느낌을 일컫는 말을 위기감(危機感), 서로 공감하는 부분을 일컫는 말을 공감대(共感帶),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일컫는 말을 혐오감(嫌惡感), 자기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하게 낮추어 평가하는 생각을 일컫는 말을 열등감(劣等感), 맡은 임무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책임감(責任感), 그지없도록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느낌을 일컫는 말을 감개무량(感慨無量),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감격무지(感激無地), 지난 일을 생각하는 회포를 이르는 말을 감구지회(感舊之懷), 대단히 감사합니다를 일컫는 말을 감사만만(感謝萬萬), 무한히 감사함을 일컫는 말을 감사무지(感謝無地), 부처와 중생이 긴밀히 맺어지는 일을 이르는 말을 감응납수(感應納受), 점괘에 신이 감응되어 모든 일이 통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감이수통(感而遂通),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를 덕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감지덕지(感之德之) 등에 쓰인다.
▶️ 應(응할 응)은 ❶형성문자로 应(응)의 본자(本字). 뜻을 나타내는 마음 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응)과 應(응)은 같아 사냥에 쓰기 위하여 길들인 매로, 사람인(人=亻; 사람)部이 매를 꼭 잡고 있는 모양이다. 마음속에 확실히 무엇인가 느끼다, 상대편 소리에 맞추다, 받아서 멈추게 하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應자는 '응하다'나 '승낙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應자는 䧹(매 응)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䧹자는 매를 그린 것이다. '매사냥'이라는 것이 있다. 잘 훈련된 매를 날려 꿩이나 토끼 따위의 짐승을 잡는 사냥법을 말한다. 짐승을 잡으러 쫓아다니는 것보다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 가장 오래된 사냥법으로 알려져 있다. 매는 사냥을 끝내면 잡은 짐승을 가지고 주인에게 되돌아온다. 應자는 그것을 응용한 글자로 매가 내 요구에 응답하듯이 상대방이 나의 요구에 응해 준다는 뜻이다. 사실 이전에는 䧹자가 '매'와 '응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후에 心자가 더해진 應자가 '응하다'라는 뜻으로 분리되었다. 그래서 應(응)은 두 사람 이상이 교송(交誦) 또는 교창(交唱)하여 기도문(祈禱文)을 읽거나 창(唱)할 때 계(啓)에 대답으로 받는 일, 또는 그 부분으로 ①응(應)하다 ②대답하다 ③맞장구치다 ④승낙(承諾)하다 ⑤화답(和答)하다 ⑥당하다 ⑦응당 ~하여야 한다 ⑧받다 ⑨아마도 ⑩조짐(兆朕)이나 대답(對答) ⑪성(姓)의 하나 ⑫나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응할 응(譍),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를 호(呼)이다. 용례로는 물음이나 부름에 응하여 대답함을 응답(應答), 운동 경기 따위를 곁에서 성원함을 응원(應援), 원리나 지식을 실제적인 사물에 적용하여 이용함을 응용(應用), 시험에 응함을 응시(應試), 급한 대로 우선 처리함을 응급(應急), 제 신분이나 능력에 맞음을 응분(應分), 선악의 인연에 응하여 화복의 갚음을 받음을 응보(應報), 모집에 응함을 응모(應募), 찾아온 이를 만나 봄을 응접(應接), 소집에 응함을 응소(應召), 대립되는 의견 따위로 맞서서 주고 받음을 응수(應酬), 마땅히나 당연히를 응당(應當), 상대하여 응답함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함을 응대(應對), 마주 대함이나 상대함을 대응(對應), 자극이나 작용에 대응하여 일어남 또는 그 일어나는 현상을 반응(反應), 걸맞아서 서로 어울림으로 개인이 어떠한 경우에 순응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적응(適應), 부름에 따라 대답함을 호응(呼應), 무엇에 쫓아서 응함을 부응(副應), 서로 응함이나 서로 맞아 어울림을 상응(相應), 둘레의 자극에 적응하여 그것에 점점 익어짐 또는 그러한 현상을 순응(順應), 응하지 아니함이나 듣지 않음을 불응(不應), 무엇에 감촉되어서 그에 따르는 어떤 반응이 생김을 감응(感應), 착한 일은 착한 대로 악한 일은 악한 대로 선악이 되갚음 됨을 보응(報應), 하나하나 인사할 틈이 없이 매우 바쁨을 이르는 말을 응접무가(應接無暇), 응대하는 말이 매우 유창하거나 사물의 처리가 매우 신속함을 이르는 말을 응대여류(應對如流), 묻는 대로 지체 없이 대답함을 이르는 말을 응구첩대(應口輒對),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으로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서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과응보(因果應報), 그때그때 처한 뜻밖의 일을 재빨리 그 자리에서 알맞게 대처하는 일을 임기응변(臨機應變), 같은 소리는 서로 응대한다는 뜻으로 의견을 같이하면 자연히 서로 통하여 친해진다는 말을 동성상응(同聲相應), 상자와 그 뚜껑이 잘 맞는다는 뜻으로 양자가 잘 맞아서 동일체가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함개상응(函蓋相應), 산이 울면 골이 응한다는 뜻으로 메아리가 산에서 골짜기까지 진동한다는 말을 산명곡응(山鳴谷應)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