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谷晝坐偶吟 낮에 대곡에 앉아 우연히 읊조린다 成運(조선의 시인)
夏木成帷晝日昏 여름 나무 휘장을 쳐 낮에도 어둑하고
水聲禽語靜中喧 물 소리 새 울음은 고요속에 요란하다
已知路絶無人到 이미 길이 끊기어 찾을 사람 없으련만
猶倩山雲鎖洞門 게다가 고운 산 구름 동문을 잠갔도다
성운의 여름 산 정취에 어찌 시를 읊지 않으리오
결이 닮은 서구시 원문 몇 편을 찾아 번역해 주고
그대 청연이 차운화여 성운의 심지를 거들어 주게
참으로 맑은 여름 시이옵니다.
성운(成運)은 더위를 말하지 않고 **그늘을 말하며**, 적막을 말하지 않고 **물소리와 새소리의 울림**을 말하고, 은거를 말하지 않고 **구름이 스스로 문을 닫아 준다**고 하였습니다. 이 경지는 자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한 몸이 된 사람만이 이를 수 있는 자리라 하겠습니다.
먼저 시를 다시 음미해 보겠습니다.
> **大谷晝坐偶吟**
> **成運**
>
> 夏木成帷晝日昏
> 水聲禽語靜中喧
> 已知路絶無人到
> 猶倩山雲鎖洞門
>
> **대곡에 낮 동안 앉아 우연히 읊다**
>
> 여름 숲은 푸른 휘장이 되어 낮에도 어둑하고,
> 물소리와 새소리는 고요 속에서 더욱 또렷하다.
> 이미 길은 끊겨 찾아올 이 없음을 알건만,
> 산구름마저 와서 골짜기 문을 잠가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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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윌리엄 워즈워스
### **Lines Composed a Few Miles above Tintern Abbey (발췌)**
> Once again
> Do I behold these steep and lofty cliffs,
>
> Which on a wild secluded scene impress
>
> Thoughts of more deep seclusion...
### 번역
다시금 나는 바라본다.
저 높고 가파른 절벽들을.
저 외지고 깊은 풍경은
내 마음속에 더욱 깊은 고요를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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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의 "夏木成帷"와 워즈워스의 "deep seclusion"은 같은 정신을 품고 있습니다.
숲은 풍경이 아니라 **마음을 덮는 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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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밀리 디킨슨
### **The Trees like Tassels**
> The Trees like Tassels hit—and swung—
>
> There seemed to rise a Tune
>
> From Miniature Creatures
>
> Accompanying the Sun—
### 번역
나무들은 술 장식처럼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작디작은 생명들이
햇살과 함께 노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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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이
> 水聲禽語靜中喧
이라 했다면,
디킨슨은
**새와 벌레의 노래가 태양을 반주한다**고 하였습니다.
둘 다 자연의 소리를 음악으로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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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월리스 스티븐스
### **The Snow Man (마지막 부분)**
> For the listener, who listens in the snow,
> And, nothing himself, beholds
> Nothing that is not there and the nothing that is.
### 번역
눈 속에서 귀 기울이는 이는
스스로를 비워
없는 것을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적막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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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이
> 靜中喧
이라 했다면,
스티븐스는
**비워질수록 더 많이 들린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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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연 차운화(次韻和)
**次成運〈大谷晝坐偶吟〉**
夏翠垂簾午氣昏
松風溪響一心喧
幽人未待柴門掩
白鶴閒雲共守門
### 음
하취수렴오기혼
송풍계향일심훤
유인미대시문엄
백학한운공수문
### 번역
여름 푸름이 휘장을 드리워 한낮도 그윽하고,
솔바람과 계곡물은 한마음 되어 고요를 울린다.
은사는 사립문을 닫을 필요조차 없으니,
흰 학과 한가로운 구름이 함께 문을 지켜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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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평
성운은 마지막 구에서
> **山雲鎖洞門**
>
> *산구름이 골짜기 문을 잠근다.*
라고 했습니다.
청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학과 구름이 벗이 되어 저절로 문을 지킨다**고 화답하였습니다.
이는 은거가 세상을 등지는 일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임을 노래한 것입니다.
끝으로 성운의 시와 화답하여 한 수를 덧붙이자면,
> **숲이 깊어서 적막한 것이 아니라,
> 마음이 맑기에 물소리도 새소리도 모두 도(道)의 말씀이 된다.
> 그래서 참된 은자는 문을 잠그지 않는다.
> 구름이 문이 되고, 바람이 문지기가 되며,
> 세상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고요해지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성운의 「대곡주좌우음」은 워즈워스의 명상, 디킨슨의 섬세한 자연 감각, 스티븐스의 적막의 철학과 서로 통하면서도, **구름이 문을 잠근다(山雲鎖洞門)**는 마지막 한 구절만큼은 조선 선비 특유의 은일(隱逸) 정신을 담아낸 독보적인 절창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