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더니, 남도의 따스한 공기를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대설특보 이야기를 들었던 게 엊그제인데, 눈은 다 녹아버린 모양이었다. 되려 푸른 새싹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봄이 오고 있었고, 진도아리랑길은 따스했다. 진도가 송가인의 고장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어른들의 '핫플레이스'라고 하니 기꺼이 그 흥겹고도 애잔한 트로트 리듬에 호응해보기로 했다. 요즘 어딜 가나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고 있던 참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송가인의 노래를 틀었다.
진도향토문화회관
자, 이제 걸어볼까. 진도 아리랑 길은 진도향토문화회관 앞에서 출발한다. 진도향토문화회관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진도 토요민속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열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게 꽤 인기가 높다. 진도 북춤과 진도아리랑 등 진도를 대표하는 민속 공연을 진행한단다. 미리 알았다면 토요일에 오는 건데. 그래도 귓가에서는 여전히 그루브 넘치는 음악이 흐르고 있으니까. 그걸 위안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왼) 진도향토문화회관 앞 횡단보도 / (오) 진도아리랑길 안내 표지 (진도향토문화회관 앞)
(왼)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이어지는 길 / (가운데),(오) 동외저수지 옆에 조성된 산책로
진도향토문화회관 앞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넜다. 안내 표지를 따라 동외저수지를 지나 진도군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첫 번째 등산 코스를 앞두고 있었다. 동외저수지 한쪽에 작은 산책로와 쉬어갈 만한 의자를 비치해 둔 것이 눈에 띄었는데, 그냥 지나치자니 아쉬웠다.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나 걸었다고. 그래도 곧 산을 넘어야 하니까 핑계 삼아 조금 쉬어갈 요량이었다.
언덕길의 시작
첫 번째 오르막이다. 진도아리랑길이라는 이름다웠다. 체육관 뒤로 임도가 나 있었다. 차량도 종종 오가는지, 길이 꽤 넓었다. 포장된 도로와 흙길이 번갈아 나타났다. 경사가 심한 편은 아니라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을 듯했다. 걱정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발걸음이 가볍다고 느꼈다. 날이 좋아서.
진도아리랑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노래비
(왼) 갈림길에서는 안내 표지를 잘 따르자 / (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진도 읍내
길은 경쾌했다. 여전히 귓속을 파고드는, 트로트 특유의 멜로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좋아하는 이 트로트는 왜 이리도 흥겨운 가락에 구슬픈 이야기를 하는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노래를 흥얼거리며(놀랍게도 트로트는 처음 듣는 것인데도 흥얼거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뒤늦게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동백도, 탁 트인 풍경도, 파란 하늘도 만날 수 있었다. 긴 오르막이었지만, 완만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등산'보다는 '걷기'에 더 어울리는 오르막이었다.
동백 군락지에서 새빨간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는 시기도 이때뿐이다.
한쪽에 동백을 심어두었다. 작고 귀엽기만 한 걸로 봐서는 최근에 식재한 듯했다. 그 사이로는 키가 꽤 큰 동백들도 듬성듬성 자리했다. 사람들이 심은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만 같은 동백들도 있었다. 조금씩 보인다 싶더니 어느새 숲을 이루는 모습이었다. 진도가 숨겨둔 동백 군락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새빨간 꽃, 반짝이는 초록빛 숲, 짙푸른 하늘이 가득한 이 길 위에서 트로트는 묘하게 잘 어우러졌다. 흥이 나지 않을 수가 있나.
운림삼별초공원 편백숲
잘 다듬어진 숲길, 목조데크가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솟은 편백숲 사이를 따라 구석구석 뻗어 나가고 있었다. 아직 완성 전인지 한쪽에서는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편백숲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맑은 공기가 가득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왔으며, 무엇보다도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나는 소리가 좋았다. 자박자박, 또각또각.
삼별초홍보관
삼별초홍보관에서는 삼별초의 항쟁에 관한 설명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은 태안 앞바다에서 발굴했다는 삼별초의 흔적을 재현한 전시
운림삼별초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은 고려 시대, 원나라에 끝까지 항전하던 삼별초가 강화도에 이어 이곳에 터를 잡았던 것을 주제로 하는 공간이다. 이들이 어떻게 항전했는지를 소개하는 전시가 있었다. 곳곳에 삼별초의 항쟁을 상징하는 여러 조형물이 공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기도 했다. 삼별초가 근거지로 활용하기 위해 쌓았던 남도진성(남도석성)의 미니어처가 대표적이었다. 그 안에는 삼별초의 항쟁 과정과 연관이 있는 세 개 지역(인천 강화, 전남 진도, 제주)의 기념 조형물이 놓여 있는 걸 볼 수 있기도 했다.
운림삼별초공원에서 운림예술촌을 지나 운림산방으로 이어지는 길
(왼) 개울은 이미 녹아서 졸졸 흐르고 있었다. / (오) 운림예술촌의 매화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렸다.
운림예술촌 풍경, 한옥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공원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는 길을 따라 걸었다. 운림예술촌이라 명명된 곳을 지날 땐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매화의 향이 코끝을 간질이기도 했다. 가다 멈추기를 여러 차례. 볕이 따스했다. 외투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개울은 언제 얼어붙은 적이 있었냐는 듯이, 언제 눈이 그렇게 많이 내렸냐는 듯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이 청량했고,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운림산방 풍경
운림산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은 개인적으로 진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지라, 이번에 진도아리랑길을 걷기로 했을 때도 꼭 들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새벽부터 길을 나섰는걸. 다 계획이 있었다. 운림산방을 충분히 즐기다 가기 위함이었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렸던 소치 허련 선생의 화실이다. 연못이 있는 정원, 둥글게 솟은 뒷산,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한옥의 풍경은 마치 소치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사계절 언제 찾아도 아름다운 풍경에 그만 넋을 잃고야 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이른 아침에 온다면 그 이름처럼 안개가 숲을 이루는 장관을 볼 수도 있을 텐데, 이번에는 아쉽게도 쾌청한 운림산방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소치기념관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5대 화가의 대표작을 전시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소치부터 임전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계승되는 한국 전통 남화의 그림을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소치기념관을 찾았다. 운림산방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거칠면서도 그만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붓놀림은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몽환적인 느낌까지 들게 한다. 대를 이어 내려오는 이 집안의 다른 화가들의 그림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선대의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필치를 발전시킨 모습이 꽤 볼 만하다.
(왼) 운림산방 - 소치기념관 / (오) 운림산방 - 진도역사관 내 박행보 미술관
운림산방 진도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디오라마와 유물
이전에 못 봤던 것 같은, 진도역사관이라는 건물도 눈에 띄었다. 선사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도의 주요 사건을 소개하고,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한쪽으로는(아마 이곳이 더 메인일 테지만) 동양화 대가 중 하나인 박행보 화백의 미술관이 있기도 했다. 운림산방 입구 바깥쪽에 있는 남도전통미술관까지 더하면, 운림산방은 어디 가도 뒤지지 않을 수준의 동양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인 셈이었다. 이토록 풍성한 전시들이라니.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시간이 훌쩍 흐른 뒤였다.
(왼) 진도 쌍계사로 들어서는 길목 / (오) 쌍계사 입구에 피어난 홍매화
쌍계사 전경
첨찰산 상록수림의 풍경
쌍계사 입구
쌍계사도 함께 들렀다. 경내가 아담해 보이기만 하는 이곳은 무려 857년, 통일신라 시대 때 창건한 사찰이란다. 불상과 석탑 등등 여러 점의 유물이 사찰에 전해지고 있다. 사찰 뒤쪽으로 나 있는 숲길 또한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곳이라, 운방산림을 찾을 때마다 들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여러 숲이 받았다는 그 상,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은 첨찰산 상록수림이다.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 보호받는 곳이다. 상록수와 덩굴이 복잡하게 얽히고 든 것이,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제주의 곶자왈과 비슷한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길가에 자리하고 있는 진도아리랑비, 진도아리랑 가사가 새겨져 있다.
다시 진도아리랑길 위에 올라 걷기 시작했다. 길가에 설치된 진도아리랑비가 구불거리는 언덕길을 예고하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런 길이 이어졌다. 만약 완주에 관심이 없다면 이곳에서 걷기를 마무리해도 괜찮다. 그러나 나는 탁 트이는 풍경을, 잔잔한 바다를 만나고 싶었다. 다시 힘을 내야 할 때.
(왼) 진도기상대 방향으로 오르는 임도 / (오) 임도 입구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길은 첨찰산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부에 진도기상대가 있어서인지 이곳으로 오르는 길 역시 잘 포장된 임도였다. 차량이 오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정상까지 연결된 등산로가 여럿 눈에 띄었으니, 임도가 재미없다고 여겨질 땐 산행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다시 등산을 고민했다가, 5월까지는 산불조심 기간으로 입산이 통제된다는 안내문을 발견, 곱게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왼) 첨찰산을 오르는 내내 만나게 되는 풍경 / (오) 첨찰산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은 순간
임도도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능선 너머로는 진도 동쪽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바다다. 진도에서 와서 처음으로 본 바다였다. 높이,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큼성큼 정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리랑 고갯길은 그리도 서글픈데, 첨찰산의 고갯길은 어찌나 흥겹던지.
첨찰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
첨찰산은 해발 485.2m의 산이다.
사방이 발아래에 있었다. 봉화대만 빼고. 제주와 육지를 연결했던 첫 번째 봉화대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상 표지석은 봉화대에 아래에 있었지만, 그 돌무더기 위에 올라야 진짜 정상에 도달하는 셈이었다. 누군가 돌을 가져다 계단을 만들어 두기까지 했으니, 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봉화대 위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제야 비로소 온 세상을 굽어보는 기분이었다.
또다시 굽이치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진도아리랑길을 벗어나 전답 사이로 난 농로를 걷는 것도 즐거웠다. 바다가 가까워져 온다는 사실도 내내 설레게 했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신비의 바닷길' 가계각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가계해변 풍경
모래사장에 앉았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가 곁에서 얼쩡대더니 옆에 자리를 잡고 벗을 자청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부서지는 윤슬이, 느릿하게 흔들리는 고깃배가, 등 뒤에서 포근하게 감싸고도는 바람이, 유난히 따스했던 공기가 차례로 마음에 닿았다.
송가인 생가
진도아리랑길을 걷는 내내 오르내렸던 감정선을 책임져 주었던 주인공, 송가인의 생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연예인의 집을 찾아가는 행동을 하진 않지만, 송가인의 부모님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꺼이 맞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진도 읍내에서 약 20여 분 떨어진 시골에 송가인의 고향집이 있었다. 동네 이정표에 방향을 적어둔 게 재미있었던 부분.
집 주변은 온통 송가인이었다. 이 시골에서 대스타가 탄생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송가인의 선간판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함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송가인이나 그의 부모님을 만나볼 수는 없었지만, 찾아오는 이들에게 건넨다는 인스턴트커피는 마루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도 될 것을, 충분히 그래도 괜찮을 텐데 커피 한 잔이라도 하고 가라는 부모님의 마음씨가 뭉클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여전히 흘러나오는 송가인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엄마를 따라 팬이 되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