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시인)
41. 상상 테마40 - 바다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 바다 이미지를 상상에 적용할 때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섬들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바다 이미지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모티브 중의 하나다. 마트나 시장에 가도 꼭 수산 코너가 있고 수많은 바다 영상에 TV나 유튜브 체널에 넘쳐난다. 그만큼 바다 이미지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하다.
바다 근처에 살지 않더라도 우리의 뇌 속엔 언제나 바다가 헤엄쳐 다닌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와 관련된 작품을 시인들은 많이 창작한다.(바다 소재 문학상이 많은 것도 일부 기여함) 많이 창작되고 있지만 감수성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좋은 작품을 만나기는 힘들다. 그러니 바다 이미지가 들어간 작품을 감상할 때도 신선한 상상력을 꼭 발휘해야 한다.
우선 본인이 형상화하고 싶은 간절한 심리 상태나 나만의 존재론적 의미를 머릿속에 상정하자. 상정했더라도 곧바로 쓰면 안 된다. 간절함만 담는다고 해서 신선한 시, 감동적인 시가 되지 않는다. 진정성만 느껴질 뿐 ‘새로운 시’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쓰고자 하는 메시지와 화자를 개별화시키는 작업을 해서 현장성과 생생함을 갖추어야 한다. 많이 접근하는 소재 중에 하나가 갯벌에서 일하는 어머니다. 뜨거운 태양과 맞서며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어머니가 눈앞에 선하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짠해진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 이미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어머니이고 이미 많이 창작된 어머니다. 그러니 쓰고자 하는 것을 정할 때도 ‘나만의 작품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한 번 더 해야 한다. 최소한 비유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상황 비유를 통해 어머니를 검은 무대에서 1인극을 하는 배우로 설정하면 어떨까. 물때 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깔리고 소품처럼 갈매기가 날아다닐 것이다. 흥얼거리는 대사는 독백이 아니라 방백이 될 거다. 어머니의 방백을 몰래 듣는 것은 낙지 바지락 게 갯지렁이고, 파도는 물거품으로 극의 클라이막스를 더할 것이다.
상상을 적용할 때 또 하나의 방법은 바다와 상관없는 존재와 바다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저하게 변방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형상화시킬 때 ‘난파’의 상황을 섞어서 그려낼 수 있다. 그 사람과 난파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처지가 비유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충분히 나만의 시를 창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다 관련된 소재로 시를 쓸 때 제일 많이 실수하는 것은 바다를 아는 체하는 것이다. 적당한 관찰, 적당한 사유, 적당한 체험으로 바다를 더 안다는 듯이 언술을 하며 그럴듯한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 필자가 권하는 것은 바다를 배경으로 나오는 ‘극한 작업’, ‘한국 기행’ 영상을 수십 번 보라는 것이다. 생생한 삶의 현장을 먼저 극적으로 섬세하게 인식한 후 그것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연습을 우선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신선한 메시지와 새로운 발상(상상)이 동원되어야 한다.
필자의 시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목소리 / 하린
추워추워, 태양이 떠올라 남쪽을 부추기는 데도 정말 추워, 샤워기 온수를 잔뜩 틀어도 추워추워, 식탁에 막 지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을 올려놓아도 무작정 추워, 내복 위에 스웨터를 껴입었는데도 추워추워, 털장갑 끼고 부츠를 신었는데도 막무가내로 추워추워, 잘 다녀와 길조심 하고 다정다감해도 추워추워, 버스가 정류장에 제시간에 와주는 데도 미친 듯이 추워추워, 운 좋게 빈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음미하는 데도 추워추워, 건물 안쪽에 들어서면 인기척이 넘쳐나는 데도 끝없이 추워, 스팀을 켜놓고 난로를 피워놓았는데도 추워추워, 잔소리도 핀잔도 편견도 없는데도 추워추워, 넌 누구니? 어디가 춥니? 얼마만큼 춥니? 물어도 물어도 추워추워, 점점 더 추워추워, 아직도 추워추워, 달아난 내 살이 추워추워, 앙상한 내 배가 추워추워, 4월이 한참 지났는데도 추워추워, 물속이― 꿈속이― 아주 아주 추워추워 ― 제20회 한국해양문학상(2016년) 대상 작품들 중의 한 편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목소리」는 제20회 한국해양문학상(2016년) 대상 작품들 중 하나다. 바다와 관련된 40편 이상의 시를 투고해서(2021년 현재는 50편 이상 투고) 그에 따른 작품성을 인정받아 그 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 시는 세월호 사태를 생각하면서 쓴 시다.(세월호가 인양되지 않고 행불자가 많을 때)
우리는 타자의 상처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세월호 사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안타까운 마음에 모든 이들이 슬퍼하고 그런 상황을 방치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처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서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를 하냐”며 비판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 시를 쓸 때가 2016년이니 겨우 2년 만에 타자의 고통을 잊어버리거나 왜곡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정부와 관련된 기관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빨리 취했다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내 손자, 애 아들, 내 딸, 내 엄마, 내 아빠, 내 누나, 내 동생, 내 언니, 내 형이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죽어갔다면 상처가 쉽게 잊히겠는가? 나의 경우라고 생각하면서 피해자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정의가 바로 서고 역사가 바로 서고, 재발 방지 대책이 바로 서는 것이다.
「목소리」는 세월호 속에서 죽어간 화자가 나타나 유령처럼 자신의 상황을 반복적으로 발화하고 있는 시다. 상상에 의해 전적으로 쓰였지만 필자는 그 상황에 최대한 밀착하여(빙의 상태가 되어) 그 아픔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2단계 -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는 목소리 자체가 객관적 상관물이다. 목소리가 죽은 이의 상황과 심리상태를 전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이는 유령이 되어 세계를 떠돈다. 이 시에 나온 것처럼 지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따뜻한 이미지를 전부 맛보는 데도 춥게만 느껴진다.
화자가 ‘남쪽’ ‘온수’ ‘막 지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 ‘내복 위에 스웨터’ ‘털장갑’ ‘부츠’ ‘다정다감한 염려’ ‘정시에 오는 버스’ ‘빈자리’ ‘음미할 수 있는 풍경’ ‘넘쳐나는 인기척’ ‘스팀’ ‘난로’ ‘잔소리도 핀잔도 편견도 없는 시공간’ ‘따듯한 안부’를 전부 경험하는 데도 끝까지 ‘추워’만 반복한다.
반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주술적인 목소리를 통해 필자는 아직 지상으로 나오지 못한 시체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했던 것이다. 달리 보면 이것은 꼭 행불자의 상황만이 아니다. 시체로 발견된 후 지상으로 나와 장례식을 치렀어도 발견될 때까지 차가운 물속에서 보냈으니, 자신을 살릴 수 있는데도 살리지 못한 사람들이 부끄럼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죽은 영혼에겐 이 세계 전체가 추위로 가득 찬 것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3단계 -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에 적용된 상상적 체험은 죽은 이에 대한 체험이기에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죽은 이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화자를 죽은 이(나)로 할지 아니면 관찰 대상자(당신)로 할지 고민이 있었다. 시적 주체를 ‘당신’으로 바꿨다면 “당신은 오돌오돌 떨고 있다. 태양이 떠올라 남쪽을 부추기는 데도, 샤워가 온수를 잔뜩 틀어놓아도, 식탁에 막 지은 쌀밥과 시래기 된장국을 올려놓아도, 끊임없이 추워추워를 중얼거린다”로 시작하는 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썼을 경우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 밀착하지 않고 한 발 물러나 있는 것만 같아서 밀착성이 좋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택했다. 그래서 유령이 된 ‘나’의 상상적 체험이 펼쳐진 것이다.
* 또 다른 예문
킬러 / 박선우
조금이다 바다는 수척해지고 킬러는 휘휘 휘파람을 분다 똬리를 틀고 있던 고요가 스르륵 꼬리를 감춘다 킬러는 빠르게 목표물을 실사한다 경직된 구멍에선 예민한 숨소리 가파르다 타이밍을 조절한다 쫓기고 쫓는 숨 가쁜 액션은 10초면 끝이다 숨소리 다치지 않게 사뿐사뿐 깊숙이 부드럽게 흔적을 아는데 10년이 걸렸고 기척을 습득하는데 또 10년이 지났다 심장이 물때를 읽고 등허리는 태양의 기울기를 읽는다 나이는 얼굴과 함께 까맣게 그을렸고 손마디의 군살은 낙지를 잡을 때만 감각이 산다 눈을 감기 전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바다의 광맥을 유언처럼 가리켰다 낙지의 신이 된 킬러 말갈기를 휘날리며 휘파람을 부는 황야의 무법자가 되어 허리엔 고무다라이를 손에는 삽을 들고 바다를 사정권 밖까지 사수한다 탕. 탕. 탕 저격당한 노을이 피투성이다 ― 제9회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 수상작
채낚기 / 김온
조류의 방향이 따라온 길 지금부터는 어둠의 슬하다 달빛 아래 야광 줄이 주저하지 않고 빛을 끌어모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물로 바쳐진 미끼들 오로지 입술만 공격해야 한다 갈고리의 신호음이 울음으로 번진다 아버지는 여러 날의 불황을 끝낼 거란 다짐을 밑밥으로 던진다 한 개의 낚싯대에 여러 개의 바늘을 걸어두었으니 기다림은 쓸모없다 바닥에 닿자마자 끌어올린다 장갑 속 지문이 다 닳은 손가락 운명선마저 지워져 버린 쩍쩍 갈라진 굳은살 감각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물고기가 잡히는 순간 경련이 인다 드디어 이빨이 드러난 갈치의 체표가 반짝인다 해저 밑에서 나풀거리듯 칼춤을 추며 올라온 실루엣 비린 향기를 품은 은백색 아버지가 오랜만에 웃는다 바다의 서사가 발단과 위기를 지나 절정을 향해 치닫는 순간이 다가온다 그러나 만선이 결론은 아니다 자식들 다 성장했으니 바다가 준 만큼만 거둔다 이 손가락이 다 잘려나갈 때까지 물고기를 낚을 것인 게 니들은 걱정 말고 공부만 혀라 그 목소리가 지금도 자식들 심장 속을 헤엄쳐 다닌다 아버지가 낚아 올린 것이 물고기만은 아니라는 듯 ― 제15회 바다문학상 대상 수상작
발포진 랩소디 * / 서동석
하늘에도 물길이 있어요 비와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이죠 낙엽도 허공에서 노를 저어요 겨울나무들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허공 깊이 닻을 내리는 법을 알죠 좌현 쪽으로 기울던 오동나무 잎이 다급히 우현으로 몸을 틀어요 놀라지 마요 이곳에선 파도치고 배가 드나들 듯 흔한 일이죠 운이 좋으면 좌초된 해초 한 줄기에 당신의 오후가 생포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를 알아볼 순간이 필요해요 어쩌면 어선 위에서 젊은 어부가 되어 양식한 물김을 뜯고 있거나 또 모르지요 누각에서 홀로 일기를 쓰고 있을지도 해풍이 부는 밤바다에서 어떤 그림자를 보거든 신호를 보내듯 말을 걸어야 해요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때요? 혹시 12라는 숫자를 좋아하세요? 아니면 푸른 버드나무 냄새가 훅, 스치거나 정강이 어디쯤을 조금씩 절고 있는지 재빨리 살펴요 그가 조금만 망설여도 당신은 바로 돌아서는 것을 잊지 말아요 고독한 수염 과묵한 입술과 눈빛 밤이라면 횃불 하나는 오른 손에 꼭 챙겨요 가끔은 내 안에서도 횃불이 번지긴 해요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몰라요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에 낯익은 사람들 물가에 가면 *두정갑옷을 입은 듯 몸이 무거워요 온 몸이 비늘이에요 두드러기처럼 매일 철갑이 돋아나요 *발포진에서는 환한 귀가 필요해요 깊은 밤 물가에 서서 눈 감고 하나, 둘, 셋, 세어 봐요 바람 속에서 갑옷의 기척이 먼저 말할 거예요 손 내밀 거예요 발포만호의 손에서 물비린내 날 거예요 손바닥에 짠 내 밴 굳은살이 쓸쓸할 거예요 밤이면, 그날의 수군(水軍)들이 지금도 송판으로 판옥선을 만들고 돛을 달아요 거북선 위에서 망치질 소리 들려와요 잠깐, 포구 저쪽이 술렁여요 순시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한쪽 손에 등채*를 들고 나를 향해 걸어와요 그의 한쪽 가슴에 활 맞은 자국이 보여요 설마 그의 눈에 내가 보이는 건 아니겠죠? 아직 나를 들켜선 안 돼요 붉은 *두정갑옷이 내 앞에 당도 했어요 해풍의 냄새를 맡은 장군 어깨의 견룡이 구름을 박차고 날아올라요 내 말을 아무도 믿지 않겠죠? 심장이 터질 듯한 밤이에요
*발포진 - 전남 고흥에 있는 바닷가 지명으로 이순신 장군이 수군으로 첫 부임했던 곳 *랩소디 - 즉흥성을 중시한 악곡의 한 형식으로, 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색채를 지니는 환상곡풍의 기악곡 *등채 - 조선시대의 무관이 구군복 차림 때 손에 든 지휘봉 *두정갑옷 - 이순신 장군님의 갑옷이름 ― 2021년 〈뉴스N 제주〉 신춘문예 당선작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 하린 시인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학위. 1998년 〈광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시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 청마문학상(2011), 송수권시문학상(2015), 한국해양문학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현재 중앙대 문화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시 창작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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