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선생님,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너무나도 예민하기 때문에
애를 키운다는 게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지치고 힘든 일이라고 느껴져요.
B : 아무래도,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거에요.
HSP는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데, 육아만큼 힘들고 고된 일은 또 없으니까요.
A : 하루는,
아이가 찡찡대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애한테 이렇게 얘기했어요.
엄마 너무 힘들어, 얘야, 너도 한 번 생각해 봐.
네가 나중에 엄마가 됐는데 네 아이가 울고 짜증내고 찡찡대고 있으면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B : 아!! 공감을 바라고 말씀하신 거네요. 어떻던가요? 엄마의 기분에 대해 아이가 잘 공감해 주던가요?
A : 우리 애가 바닥을 쳐다보며 얘기하더라구요.
"어떡하긴.. 잘 달래줘야지.."
B : 아......
A : 그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바라는 건 그저 괜찮다고 달래주는 엄마의 다독임이었을텐데,
항상 같이 있으면서 힘들고 심란해 보이기만 하는 내가 오히려 아이의 불안감을 가중시켜 왔구나...
내가 좀 더 커야겠다. 강해져야겠다.
내가 성장해서 내 감정들에 좀처럼 휘둘리지 않게 되면,
늘 안정적이고 여유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되면, 그 땐 우리 아이도 지금보단 덜 찡찡대겠죠?
B : 그래요. 그럴 거에요.
아이들의 감정선은 그 무엇보다도 부모의 감정선과 가장 강하게 연결돼 있으니까요.
아이를 웃게 만드려면 그 집의 엄마아빠를 웃기면 된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오늘 이야기의 교훈이랄까?
결국, 최선의 양육이란, 부모들이 행하는 자기 수양의 연장선이다라는 명제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너는 지금 안전하단다.
불안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스트레스 중의 하나이고,
이러한 불안을 어떻게 잘 컨트롤하는지 여부가 우리가 느끼는 삶의 질을 좌우하게 됩니다.
불안에 대한 인지, 즉, 위협에 대한 반응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후천적으로 양육 등의 환경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아요.
가령,
하바드 대학의 유명한 발달심리학자 Jerome Kagan의 종적 연구에 따르면,
생후 4개월 아기들의 20% 정도가 불안에 대해 고반응성을 보였고, 40% 정도가 저반응성을 보였습니다.
(ex. 예기치 않은 사건, 낯선 경험들에 대해
20%의 아기들은 울거나 몸을 크게 뒤척이는 등의 반응을 보였고, 40%의 아이들은 가만히 있거나 옹알이를 하며 웃었다.)
즉, 인구통계학적으로 1/5 정도가 선천적으로 더 잘 불안을 느꼈다는 건데,
흥미로운 건,
이 아기들이 일곱살이 되었을 때 그들의 불안도를 다시 측정해 보았더니,
고반응성 아기들의 45%만이 그대로 고반응성 어린이로 성장했으며,
저반응성 아기들 중 15%가 반대로 고반응성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양육 환경에 따라서,
선천적으로 불안에 취약했던 아기들도 절반 이상이 평범한 성향으로 전환되었고,
선천적으로 둔감했던 아기들의 일정 부분은 오히려 불안에 취약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아무리 무던한 유전자를 타고난 아이일지라도, 좀비들이 들끓는 워킹데드 세계관에서 태어났다면,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인 위협 자극에 시달리면서 불안에 대한 반응성이 극단적으로 커질 수 있는 겁니다.
※ 어렸을 땐 예민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HSP인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후천적으로도 특정 위협 자극에 대한 지속적 노출 등으로 인해 신경회로가 바뀔 수 있다.
그러한 트라우마로는, 부모의 지속적 갈등, 부모의 가혹한 양육 태도, 또래 간 갈등이나 왕따 문제, 심각한 사고 경험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뇌 가소성"은 어릴수록 그 탄력성이 강하기 때문에 양육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지는데,
예를 들어, 발달심리학에서 "애착"이란 개념을 중요시여기는 이유 또한
부모의 태도 여하에 따라서 아이들의 세계를 인지하는 신경회로가 얼마든지 재조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세상은 안전한 곳이구나.
아, 세상은 위험한 곳이구나.
아,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구나.
(안정 애착)
아, 세상엔 믿을 사람 하나 없구나.
(불안정, 회피형 애착)
가족에게 물질적 풍요를 선사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그에 따라 온갖 짜증과 스트레스가 묻어난 채로 가정 생활에 임한다면,
이러한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플러스일까? 마이너스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부모와 자녀 간의 정서적 연결성은 상상 외로 강력하다는 것이고,
그 연결성을 활용하는 가장 최적의 방법은 연결의 시작점인 부모 자신의 웰빙부터 챙기는 것입니다.
아이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 부모인 내가 희생한다는 마인드는 심리학적으로 효용성이 떨어지는 방식입니다.
왜?
어차피 애들의 감정선은 부모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기분이 좋더라도
부모님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으면,
부모님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다면,
그 즉시 내 감정의 색이 부모의 것을 따라 변색되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정서적 연결성은 상대방에 대한 심리적 의존성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피양육자라는 특성 상,
결국, 자녀들의 정서적 웰빙 수준은 그 부모의 내적 상태에 따라서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양육이란,
나부터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늘 안정적이고 침착한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동적으로, 내가 속한 환경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일 것이라고 인식하게 되요.
그렇게 안정적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아이들의 신경회로 또한 안전한 세상을 살기 위한 "평화 모드"로 조형되는 것이죠.
이러한 평화 모드 아래서,
아이들은 외부 자극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휘둘리지 않게 될 것이고,
부정적인 사건사고들과 조우하게 될 때면 이 또한 극복 가능하고 곧 좋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되뇌이게 될 겁니다.
이러한 삶에 대한 태도는,
물론 부모로부터 직접적으로 배울 수도 있는 것이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님을 관찰하면서 간접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일종의 세계관인 것입니다.
인간은 모방의 동물이며,
살면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내 자녀들이 나를 보면서,
'아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두딸 아빠로써 반성하게되네요.
자기전 여러번 정독해야될 글인거 같습니다.
아- 제가 지금 일하다가 힘이 들어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요. 이거 정독하다가 마지막 메세지 보는데 눈물이 났어요.
너무 좋은 글입니다ㅜㅜ
어제 회초리를 들었는데… 마음은 너무 무겁고 참… 어떻게 해야할지 간혹 너무 힘드네요
저희 애가 예민하고 낯가리고 기본적으로 불안감이 높은 편인거 같은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생각이 드네요ㅜㅜ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 ^^
얼마 전 아이앞에서 크게 싸워 마음이 안좋은데 이 글을 보니 더 미안해지네요ㅜㅜ
좋은 글 고맙습니다
6살 딸아이를 혼자 키우게 됐는데, 지금 이순간 저에게 필요한 모든 내용이 담겨져있는 느낌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하시고 계시고 잘 하실껍니다. 화이팅!!
@둠키 감사합니다 둠키형님
이게 참 알면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면 또 쉽지는 않아요ㅠ 그래도 이런글을 보고 또 마음을 다잡습니다.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 당장 저부터 챙겨야겠네요. 얘들아 오늘은 9시에 좀 자주렴! 그래야 나를 좀 챙기지!
좋은글 감사합니다. 화를 잘 억눌러야 겠어요 ㅜㅜ 딸들아 미안하다.
저도 중딩딸 참고참다 어제 한바탕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