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화는 투박하고 둔탁하며 수채화는 가벼워서 싫다. 수묵화의 검은 색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장점, 유화의 디테일과 수채화의 물흐름, 수묵의 여백을 적용하니 내가 원하는 소나무가 나왔다." 10년간 줄곧 소나무를 그려온 류명렬 작가다. /그는 소나무를 사진보다 정밀한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한다. 시간과 공간을 옮겨 놓은 듯 솔바람 속에 소나무 향내가 날 것 같은 그의 작품은, 실은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다시점(多視點)의 소나무다.
소나무 줄기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것이 웅장한 맛을 더해주고, 솔잎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듯 뾰족뾰족한 잎의 모양새를 재구성했다. 500호 대작의 소나무 작품은 마치 소나무 숲에 들어온 듯 은은한 솔향이 몸을 감싼다. 작업에 의미를 잃고 붓을 꺾으려던 순간 척박한 바위 틈에서 솟아오르는 소나무를 보며 다시 희망을 가졌다는 작가는 "소나무 작업에는 희열이 있다. 작업 중에 느끼는 새로움과 완숙함이 연작을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30일까지 부산 부산진구 롯데갤러리 부산본점 '오래된 정원'전. (051)810-2328
▷ *… 부산에 사는 작가들 중 바다를 한 번이라도 표현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바다의 매력에 빠진 이 작가는 30여 년간 오로지 한길,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그것도 염색공예라는 드문 장르로, 바다의 소용돌이 및 거친 파도의 느낌을 잡아내고 있다.
천경자 작가는 천에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힌다. 바다의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서 파라핀(양초)을 녹여 붓으로 단숨에 그어내리고, 풀을 칠한 자리에 밀가루를 묻혀 균열이 가게 한 다음(크랙염), 그 사이로 흰색과 검정색을 스며들게 한다. 이렇게 탄생한 바다는 견 위에서 살아 펄떡인다.
작가는 "거대한 해면을 해체한 후 바다라는 이미지를 그 내면세계의 특성에 따라 단위로 분할하고 재구성하는 일에 심취해 왔다. 아름다운 바다의 화면과 공예적 기법의 아름다움이 회화적 표현방식 속에 녹아들어가 우리의 전통적 조형의식들을 읽고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는 22일까지 천경자 갤러리 이전 기념 제7회 천경자 염색전.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천경자갤러리. (051)504-7610
▷ *… 다섯 개의 화분 중 유독 하나만 머리를 곧추세웠다. 다른 화분보다 더 높이 뻗어나가고 싶고, 눈에 띄고 싶고, 자태를 뽐내고 싶은 그 마음은 과연 욕심일까, 아니면 더 잘하고 싶은 '애살'일까.
'눈으로만 보세요. 다육식물의 잎은 손으로 만지면 손의 기름기 때문에 표면의 보호막이 닦여나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어떤 꽃집 앞에 적혀 있는 글에서 작가는 모티브를 얻었다. 의도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 그래서 때론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타인의 삶을 관조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말이다.
김정은 작가는 다육식물(多肉植物)과 공기청정식물을 옥양목에 한국화로 풀어냈다. 전자는 사막이나 높은 산 등 수분이 적고 건조한 지역에서 살며,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들로 대표적인 다육식물이 선인장이다. '천년란'이라고도 불리는 산세베리아는 가장 잘 알려진 공기청정식물로, 공기정화와 오염물질 분해작용에 탁월한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오는 11일까지 부산 부산진구 동의대 내 효민갤러리. 010-4580-2213
▷ *… "나의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숨결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바람이나 풀잎, 나뭇잎, 하늘, 별자리 등의 매개로 대신 나타난다.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바느질을 하면서 시간의 교차를 경험하고 이러한 반복적 행위를 통해 내가 느끼는 자연의 순리와 에너지를 표현하고자 한다."(작가노트 중)
조재임 작가가 모티브로 삼고 있는 소재는 자연이다. 전시장은 20여 개의 평면작업들이 벽면에 부착돼 시원한 바람과 울창한 숲을 연상시킨다. 물리적 공간에서 시간의 지속을 표현하기 위해 작품들은 서로 분절, 반복되며 병렬식 배치를 사용했다. 시간의 흐름이 공간적으로 펼쳐져 보인다. 종이 작업을 해 온 작가는, 장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나뭇잎을 바느질해 붙이고 색감을 덧입혀 새로운 기법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기쁨이 되고 때론 슬픔이 된다. 바람은 현실의 고난일 수도 있고, 머리를 풀어헤친 나뭇가지들은 힘든 현실에 당면한 자화상이자 애환 어린 현대인일 수도 있다." 구수한 낙엽 냄새가 가득 풍긴다. 오는 6일까지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갤러리 부산본점. (051)810-2328
▷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 코스모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노란 국화나 들판을 하얗게 수놓은 들국화도 빼놓을 수 없다.
화폭 가득 꽃 향기가 빼곡하다. 색색의 장미와 모란, (들)국화 등이 흐드러지게 담겨 있다. 때론 레이스가 아름다운 식탁보를 배경으로 놓여 있어 우아함을 더했다. 그 어느해보다 힘겹게 제자리를 찾은 가을이기에, 가을꽃이 무척 반갑게 다가온다. 이미영 작가는 꽃을 즐겨 그린다. 꽃이 너무 좋아 언제나 작가 주변에는 꽃이 넘쳐난다. 싱싱한 생화는 화병에 꽂히고, 말린 꽃은 집안 곳곳에서 향기를 뿜는다. 작가는 "꽃은 언제나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꽃들의 표정, 꽃들의 향기가 제 그림 하나하나에 모두 스며들어 있습니다. 화폭에 담긴 꽃 향기로 가을을 만끽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오는 23일까지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갤러리 부산본점. (051)810-2328
▷ *… "내 작품의 주제는 현대사회의 기계화이다. 사회라는 틀 속에서 개인의 가치는 단체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자본주의를 작동하는 단체인 '공장'에 속한 개인인 '근로자'는 기계와 같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거대한 기계처럼 움직인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진풍경이다."
현대사회 속 인간군상을 냉철하면서도 시니컬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정지현 작가의 말이다. 하얀 색의 거대한 공간이 층층으로 나뉘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거나 삿대질을 하며 싸우고, 또는 무리에서 떠밀려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 사이에서 버티지 못하고 문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경쟁, 비리, 권력다툼 등으로 아등바등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작가는 2009년 맥화랑 미술상 수상자로 뽑힌 데 이어 한 미술잡지가 전국의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한 '동방의 요괴들 Best 21'에 선정, 파이넨셜뉴스미술공모전 서울시립미술관장상 수상 등으로 활발한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 오는 15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 맥화랑. (051)722-2201
▷ *… "성현들의 말씀을 배우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시 한 번 되새기자는 뜻의 벽사진경(僻邪進慶), 즉 나쁜 것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한다는 길상의 염원을 담아 작품전을 마련했습니다. 14년 동안 한 자 한 자 붓글씨로 쓴 책이 24권이며, 전시작품 글자를 합하면 수십만 자(字)가 됩니다."
지당 김윤임의 서예 길상전이 열리고 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전시에 소개된 십장생에서는 일월성신(해, 달, 별의 총칭), 산고수장(산은 높고 강물은 영원하다), 수륙초목(물이나 육지에 사는 초목) 등의 글씨를 정성스레 쓴 뒤, 광목천에 염료를 발라 만들어낸 글씨체 그림을 선보였다. 이외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명문과 세계 공동 불교상징물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해설을 붙인 작품 등도 눈에 띈다. 오는 9일까지 부산 연제구 거제동 국제신문 4층 갤러리. (051)500-5017
▷ *… "눈부신 화사한 봄산도 , 절정의 단풍 가을산도, 위엄의 설산도 아닌 여름의 산. 온통 푸르러서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여름산을 서른도 맞지 않은 이가 그리고 싶다 했다. 시든 것 없이 모두 푸르러서 좋다는 여름산, 산의 생명이 가장 잘 자라고 풍성한 성장이 있는 산이다. 그 산이 젊은이에게 보인다."
바나나롱갤러리에서 동아대를 졸업한 이소을 작가의 첫 개인전을 주최한 이유이다. 수묵담채로 표현한 작가의 산은 온통 푸른빛으로 눈이 시리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너무 푸르러 심심하다 싶던 여름산 저만치에 골짜기가 있다. 푸르디푸른 청춘에게도 골짜기가 나타나듯이. 작가에게 산이란 어릴 적부터 자주 오르며 친숙해진 공간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짙은 흙내음과 무수한 생명들, 눈부신 하늘 속에서 그는 꿈을 키워나갔다. 완만한 곡선이 아닌 거칠고 웅장한 바위산에서 현재의 삶을 반추하기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고행의 마음으로 오른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언제 봐도 시원하다. 다음 달 4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 바나나롱갤러리. (051)741-5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