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고개를 넘어가서
처서를 나흘 앞둔 팔월 중순 셋째 토요일이다. 새벽녘 늦더위를 식혀줄 한줄기 소나기가 내리고 낮에도 때때로 비가 예보된 하루였다. 며칠 전 계획한 일정에 강수와 상관없이 주말 동선은 평소 안면을 트고 지내는 원로 문인 문병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문학적 성취나 작품성으로 차지하는 문단 위치보다 소탈하고 성실한 그분의 삶이 후배에 귀감이 되어 안부를 여쭙고 싶었다.
아침 식후 흐린 하늘에 성근 빗방울이 흩날렸다. 빈 배낭에는 올여름 숲으로 들어 찾아내 말리는 영지버섯을 몇 조각 봉지에 채워 넣었다. 내가 여름 산행에서 채집한 영지버섯은 말린 뒤 인연이 닿는 지기들에게 나뉘는 두 번째 사례다. 지난번 한림 강가로 나갈 적 거기 농막에서 생활하는 지기에게 조금 보냈다. 형제자매를 제외한 순서는 고령이나 지병이 있으신 분들이 먼저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반송공원 자투리 쉼터에서 퇴촌교를 지나 사림동으로 건너갔다. 사격장으로 올라가 녹색 잔디밭 바깥 트랙을 한 바퀴 걷고는 소목고개로 올라갔다. 날씨가 무더워서인지 주말인데도 산행객은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여름에 용추계곡으로는 물이 흘러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갔으나 정병산이 가파르게 버틴 소목고개로 오르는 이는 적었다.
쉬엄쉬엄 올라 고개 못 미친 약수터에서 샘물을 받아 마셨더니 청량감과 함께 갈증이 해소되었다. 집을 나서면서 얼음 생수를 챙기지 않음은 진행 방향에서 지나게 될 약수터를 감안해서였다. 운동기구가 설치된 쉼터는 평소 체력을 단련하는 이들이 보였으나 비가 오고 날씨가 무더워 아무도 없었다. 소목고개 고갯마루로 오르니 등나무 그늘에 유튜브를 시청하는 한 사내를 만났다.
소목고개 십자형 갈림길에서 소목마을로 향해 내려섰다. 아까 고개로 올라왔을 적보다 더 평탄한 길섶은 당국에서 일찍 예초를 마쳐 새로운 풀이 돋아나 자랐다. 파릇하게 새순처럼 자라는 풀잎에는 아침에 내린 빗방울이 투명한 이슬처럼 송알송알 맺혀 있었다. 거기서 꽃대가 쇠뜨기처럼 솟아오른 무룻이 피운 꽃을 여러 송이 봤다. 상사화나 꽃무릇과 마찬가지 화엽불상견이었다.
양봉업자가 둔 벌통을 지나 소목마을로 내려가는 길섶에는 무릇꽃 말고도 박주가리나 사위질빵과 계요등과 같은 덩굴 식물이 피운 여름 야생화를 더러 볼 수 있었다. 이맘때 산언덕 어디나 흔하게 보는 달맞이꽃도 빠지질 않았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근년 들어 산지를 개간해 밭으로 만든 구역에 나왔는데 본디 그곳 개울가는 물봉선이 군락으로 자랐는데 자생지가 사라져 아쉬웠다.
소목마을 곁을 지나니 텃밭에는 꽃대를 밀어 올린 부추가 하얀 꽃을 피웠다. 부추꽃은 가을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게 하는 표식이 되었다.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도 가을이 멀지 않음을 알아차리는 원리와 같다. 소목마을에서 25호 국도가 정병산터널을 빠져나온 높다란 교각이 남해고속도로 걸쳐진 곳에서 5호 국도와 겹쳤다. 횡단보도를 건너 구룡산 기슭 남산리로 갔다.
내가 속한 문학 동아리 공부방 관장이기도 한 지인은 육군 정비창과 인접한 너른 밭에 분재 묘목 농원을 경영했다. 내보다 20살이 더한 고령에도 흙과 더불어 살아 그간 건강을 잘 지켜왔는데 두어 달 전 지역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 병상 생활을 보내다 일전 퇴원해 자택에 머물렀다. 다행히 종양이 아니라 수술하지 않고도 안정되어 예후가 좋아 마음이 놓였다.
분재 농원에서 건강을 되찾은 지인 뵈어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 남산마을 앞에 블루베리를 키우는 또 다른 지인을 찾아갔다. 20여 년 전 내가 창원으로 전입한 첫 부임지서 뵙고 그 후 다시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분이다. 은퇴 후 부친이 물려준 단감과수원을 블루베리 농원으로 바꾸어 청년 농부처럼 정정하게 사는 분이었다. 더위도 잊은 채 배수로를 정비하는 지인을 만나고 왔다. 23.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