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렇다면 대장장이는 당시 지배계층이었을까?
가야가 제철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알수는 없다.
우리 역사에 대장장이와 관련된 인물로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의 학자 강수를 들수 있다. 설총과 김생과 더불어 신라의 3대 학자라고 하는데 강수는 가야계의 6두품 출신이다.
강수가 20살경 대장장이 딸과 야합했는데 주위에서 천한 대장장이 가문과 결혼하느냐고 만류했으나 조강지처라며 결혼을 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었다. 7세기경의 일이다
석탈해때는 지배계층이었을지 몰라도 후대에 가면서 권력자들의 휘하에서 부림을 받았던듯 하다.
이에 대해 용인대 이건무교수는 "고대에 대장장이가 상류층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장장이를 부리는 사람이 최상위층을 이루었을 것이고 막상 철을 다루는 사람은 최상위층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 했다. "2000년 전 경남 창원 다호리 고분을 보더라도 망치나 철광석이 나온 실제 철기 제작자의 무덤은 최고위급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드라마 주몽의 모팔모 정도의 신분이었을듯 하다
유학의 창시자인 공자는 대장장이를 아주 좋게 본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중기까지만 해도 대장장이 신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듯 하다.
퇴계 이황의 제자중 배순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배순은 대장장이였다. 많은 글에 배순이 천한 대장장이였으나 이황이 개의치 않고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쳤다고 나오는데 이황이 죽고난 뒤 배순이 이황의 몸크기의 철상을 만들어 제사지냈다는 이야기와
현재 남아 있는 배순의 정려비를 보아 배순은 대장간을 경영한 경영자였지 천한 신분은 아니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된다. 본시 천민에게는 정려비를 내리는 법이 없다.
이항복의 [백사집]에 율곡 이이가 처가인 해주에서 은퇴하여 머물 때 대장간을 차리고 호미를 만들어 팔아서 생활했다고 하였다. 집안의 가족,친족 100여명을 율곡이 돌보았다고 하니 대장간이라도 경영을 해야했을 것이다.
율곡의 예로 보아 정승벼슬을 한 사람도 대장간을 했으니 당시까지는 대장장이의 신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는듯 하다
돗가비라는 말이 있다. 어원은 돗과 아비가 합쳐진 말인데 돗은 불을 , 아비는 남자를 뜻한다. 돗아비는 불을 다루는 남자가 되는데 즉 대장장이가 된다. 돗아비가 돗가비로 변했다가 다시 도깨비로 변했다고 한다. 철기 문명을 가진 북방인들이 한반도 남쪽까지 이주하면서 키가 크고 험상궂고 털도 많은 북방계 철기 문화를 가진이들을 보고 돗아비라고 하다가 도깨비로 변했을 것으로 해석들을 하는듯 하다
冶家無食刀라는 말이 있다. 즉 대장장이 집에 부엌칼이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불과 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대장장이이지만 자기집에 부엌칼이 있는지는 생각 못한다는 뜻이다.
대장장이라도 칼로 싸우는 것은 잘못했을테고 당연히 점점 그 신분이 예속화되고 낮아졌을듯 하다.
고대의 대장장이는 요즘으로 말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인으로 볼수 있고 무속인은 정치가나 종교지도자, 학자정도로 생각해볼수 있지 않을까?(옮김)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