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와 지난 8일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6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축하 방문했다고 북한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최근 김정은이 우리를 ‘불변의 제1주적’으로 규정하면서 ‘유사시 영토 점령, 평정’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극초음속 미사일과 장거리 순항 미사일 등 신무기 시험발사 도발을 지속하면서 한반도 전쟁설(說)이 국내외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야당 이재명은 이번 설 인사 영상에서 “혹시 전쟁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는 말까지 했는데요, 오늘은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이 실제로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정은의 높아진 대남 위협 수위와 한반도 전쟁설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창건일인 지난 8일 건군절 오후에 국방성을 축하 방문한 자리에서도 올들어 계속해온 대남 위협적인 언사를 되풀이했다는데요, 한국이 제1적대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고 합니다.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국방성에서 연설하며 “얼마전 우리 당과 정부가 우리 민족의 분단사와 대결사를 총화짓고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앞서 김정은은 ‘선대의 유훈’인 조국통일 3대 헌장(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을 헌법에서 삭제했고, 한국을 ‘제1의 적대국’ ‘전쟁 중인 교전국’이라고 규정하면서 남북 민간 교류를 담당했던 조직과 단체들 정리에 나섰습니다.
김정은은 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종전과는 차원과 성격이 다른 언급이어서 주목을 받았지요.
◇ 미 대북 대화파 전문가들의 잇딴 북 전쟁 도발 가능성 경고
올들어 국내외에서 부각된 ‘한반도 전쟁설’은 지난달 11일 로버트 칼린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명예교수가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게재한 공동 기고문에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들은 “한반도 정세는 1950년 6월 초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김정은이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알 수 없지만 위험의 수위는 한미일의 일상적 경고를 넘어선 상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지나치게 극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김정은이 그의 할아버지(김일성)가 1950년에 그랬듯 전쟁을 하기로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본다”고도 했습니다.
이어 몇몇 전직 미 정부 고위관계자들도 북한의 물리적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데 이어 미 뉴욕타임스(NYT)도 지난달 25일 복수의 백악관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북한이 몇 달 안에 한국을 향한 모종의 치명적인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면서 한반도 전쟁설은 더욱 증폭됐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를 비롯, 북 전쟁 도발 가능성을 경고한 미 전문가 중에는 이른바 대북 대화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실제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우선 전면전과 국지도발을 나눠서 봐야 할 것입니다.
전면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침공 움직임이 사전에 탐지됐듯이 사전에 징후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병력과 장비의 이동이 불가피하고, 탄약·유류 등이 일정 수준 이상 비축돼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미 정보 당국이 파악한 바로는 이런 특이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러시아에 포탄 230만발 이상 제공한 북한이 전면전을?
더구나 우크라이나전에서 그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는 탄약의 경우 북한은 지금까지 컨테이너 5000개 이상, 152㎜포탄 기준 230만발 이상을 러시아에 수출했다고 합니다. KN-23 등 신형 미사일들도 러시아에 수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원식 국방장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비슷한 취지의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통치권자가 전면전을 도발하려 한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거지요.
특히 김정은이 김주애든 다른 누구든 4대 세습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요, 김정은이 자기 자식에게 북한을 온전하게 물려주려면 전면전을 도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전면전을 도발한다면 미 핵우산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한·미 양국군이 최소 1000발 이상의 미사일, 수천발 이상의 정밀유도폭탄 등으로 평양을 비롯, 주요 지역과 목표물을 초토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선박이 북한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운송하는 모습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을 2023년 10월 미국 백악관이 공개했다. 북한은 2024년2월초까지 포탄,미사일을 탑재한 컨테이너 5000개 이상을 러시아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상태에서 북한의 전면전 도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가능성이 매우매우 희박하다는 점은 상당수 국내외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듯한데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자문인 시드니 사일러 전 미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은 지난 2일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 “북한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는 지표는 전혀 관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북 국지도발, 전략도발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해야
지난 6일 동북아외교안보포럼과 자유총연맹,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모임인 양지회 공동주최로 열린 ‘2024 대한민국-남북관계 전망과 K-방산의 전략적 확충 방안’ 강연회에서 남주홍 자유총연맹 고문은 “현재 북한의 전면전 도발 문제는 ‘위험’이 아닌 ‘위협’ 수준”이라며 “우리의 자세와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천안함 폭침사건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같은 고강도 국지도발 가능성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시험발사와 7차 핵실험 등 이른바 ‘전략도발’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특히 천안함 폭침 사건 같은 초고강도 국지도발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사일 발사와 같은 전략도발보다 우리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의 강도가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만 초고강도 국지도발은 우리 군의 강력한 응징보복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높지 않고, NLL(북방한계선) 인근 포격, DMZ(비무장지대) 총격, 무인기 침투 등 중저강도 국지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7차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동북아외교안보포럼 강연회에서 최지영 동북아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은 “북한의 모든 대남 도발 행위는 우리 국민의 심리 조작을 통한 영향력 공작의 일환”이라며 “2024년은 슈퍼 선거의 해로 북한의 대남도발이 증가할 것에 대비해 국민 모두가 북한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인지하고 투철한 안보 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조용할 때가 오히려 더 위험?
저는 지난 30년간 국방부를 출입하며 북한의 6차례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은 물론, 제 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도발, 잠수함정 침투사건 등 수많은 도발을 가까이서 지켜봐왔습니다.
그동안의 도발 양상을 보면 대체로 북한이 금방 고강도 도발을 할듯이 협박을 했을 때보다 한동안 조용했을 때 고강도 국지도발이 이뤄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원식 장관이 방송에서 언급했듯이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담처럼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연초부터 북한 정권은 도발을 계속하고 있고 민족 개념을 부정한 채 대한민국을 교전 상대국이자 주적으로 못 박았다”며 “접경지 도발, 무인기 침투, 가짜뉴스, 사이버 공격, 후방 교란 등 우리 선거 개입을 위한 여러 도발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북한의 ‘말폭탄’보다는 실제 행동과 능력에 초점을 맞춰 냉철하게 분석하고, 윤 대통령도 언급한 다양한 예상 도발 양상에 대해선 의도하지 않은 확전 방지를 위해 ‘오버’하지 않으면서 냉정하되 단호한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어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유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