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내향형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는 "리프레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리프레쉬?
집 밖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시끄럽고 번잡한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방전시키며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거죠.
'역시 내 집 방구석이 최고야, 이불 밖은 위험해...'
즉, 불편감에 대한 리프레쉬인 겁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 상,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지속된다면 곧 무덤덤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쾌락 적응 : hedonic treadmill)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불편감을 섞어 주면서, 주기적으로 만족감을 리셑시켜줘야만 합니다.
즐거움은 반드시 고통 뒤에 나타난다.
내향형들이 아무리 내 집, 내 방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쾌락 적응"이라는 기제가 있어서, 그 만족감이 영원히 우상향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경제학에서 설명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처럼,
내향형들에게 가장 중요한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필수재의 효용"도
일정 수준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 기울기가 확 꺾여버리는 시점이 찾아 오게 되기 때문이죠.
일례로,
어떤 돈 많은 사람이 365일 내내 맛있는 것만 먹다가,
다이어트를 이유로 일주일을 굶고 8일째 되는 날, 흰 죽과 동치미를 먹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맨날 먹던 호텔 뷔페 vs 금식 이후 첫 끼인 흰 죽과 동치미
어떤 음식의 "맛 효용"이 더 우월할 지 여부는 물어보나마나한 문제겠죠.
스탠퍼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이자 <도파미네이션>의 저자인 Anna Lembke가 말했듯이,
만족이란,
동일한 종류의 것을 연속적으로 추구할수록 더 쉽게 면역이 되기 때문에,
(ex. 호텔 뷔페를 매일 먹으니 딱히 맛있는지 모르겠음)
① 더 강력한 것으로 만족시키거나
(ex. 매 끼니를 매번 다른 최고급 오마카세로 먹음)
② 만족을 주는 대상을 아예 끊어버리는 식으로
(ex. 일주일동안 금식함)
시들해진 만족감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바로 이 지점에서 외향형과 내향형 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외향형은 성격 상,
① 더 강한 외적 자극을 추구함으로써 쾌락 적응 상태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반면,
내향형의 경우엔,
집 안에 나 혼자 있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내적 자극이랄 게 딱히 없으므로,
② 만족감을 끊어버리는 방식의 쾌락 적응 탈출 전략을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내향형들에게 그들만의 만족감을 중단시키는 일이란 무엇일까?
"집 밖으로" 나가는 겁니다.
그들의 안식처로부터 나와서,
바깥 세상의 풍파를 몸소 겪고 파김치가 된 채로 다시 컴백홈 하는 거죠.
'휴우우, 역시 내 집 방구석이 최고야, 이불 밖은 위험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내향형임을 가장 몸서리치도록 깨닫게 되는 순간은,
하루종일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다가 늦은 저녁 귀가해 내 방 불을 켜는 순간입니다.
그 때의 안도감과 충족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평범한 내향인들의 삶이 충분히 괜찮을 수 있는 이유는,
사회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나가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이 주는 만족감에 적응돼 버릴 일이 애당초 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알아서, 내향인들에게 "만족 금식"을 시켜준다랄까?
또, 내향인이 사회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게 되면,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수재를 넘어선 "사치품"이 됩니다.
내향인 엄마아빠들한테 혼자 있을 수 있는 기회란 정말이지 꿈같은 시간이죠.
여느 외향인들 못지않게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사는 내향인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얻게 되는 그 잠깐동안의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극상의 만족감을 주는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 겁니다.
비혼주의는 결혼으로 완성된다는 말처럼,
내향인으로서 극한의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오히려 외향인의 생활양식으로써 완성된다는 측면도
참 재미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늘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
대충 돈많다고 행복하지않다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와 같은거네요. 행복을 수치로 표현하면 90이 기본이다보니까 100, 200까지 뛰지않으면 행복을 못느끼는...
항상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사실 내향형이라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고 외향형이라고 항상 밖에만 있다고 생각하는것도 고정관념 같습니다.
추운 경계 근무 후 라면 같은 느낌일까요
군대에서 먹는 뽀글이 맛, 바로 그거죠!!!
infp 중에서도 극i라 자타공인받을 정도인데
공감이 가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리프레시 용도로 밖을 나갈
필요가 없는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나가자마자 바로 스트레스받거든요.
길빵하는 인간들 피하는 거부터가 딥스트레스입니다.
몇 달동안 안나간 적도 있는데 우상향의 만족은 아니지만 평행선은 달렸습니다
집에만 있는 것에 전혀 질리거나 답답해지지가 않던데요
제가 내향형인간인데....좋은글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내향형에 사람들 많이 만나고 감정적인 소모가 많은 영업직을 하는터라서 집에서 오면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게 필요함을 느낍니다.
특히나 주말에 아무런 약속없다면 집에서
뒹굴 모드로 지내는데, 편안함이라는 것이 참 좋지만, 지속하면 도리어 자극이 적거나 거의 없다보니 방전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 활동적인 일을 하면 충전도 되고 확실히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의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나다운 방식으로 외부활동을 병행하는데 내향형이자 INFP인 저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무명자님 글로 깨닫게 됩니다.
항상 양질의 심리학 컨텐츠로 지적 포만감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