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물 영지를 찾아서
팔월 셋째 일요일로 입추와 말복은 지났어도 아직 늦더위가 남았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간간이 소나기가 내려주어 더위를 식혀준다. 어제는 구름이 낀 날씨여도 한낮은 폭염에 대비하라는 재난 문자가 날아들었다. 며칠 전 당국에서는 아스팔트 거리에 열기를 식히는 살수차도 운행했다. 바람도 없는 푹푹 찌는 날씨에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니 대지의 복사열을 잠시 낮추었다.
날이 밝아온 무렵에 반나절 산행을 위한 길을 나섰다. 반송 소하천을 따라 외동반림로에서 원이대로로 나가 진해로 가는 151번 버스를 탔다. 아침 이른 시각이라 차내 승객은 나 혼자여서 곧장 남산터미널에서 성주사역으로 건너가 안민터널 입구에 이르렀다. 남천 상류 상수원수원지와 맞닿은 곳은 제2 안미터널 공사 현장으로 일요일은 작업을 멈추어 인력이나 장비가 보이질 않았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천선동에 살던 다수의 원주민은 마을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다. 그 당시 흔적은 당산제를 지냈던 고목 느티나무와 막돌탑이 유허비와 함께 남아 있었다. 올여름 불모산 기슭 영지버섯을 찾아내느라 몇 차례 드나드는 성주사로 드는 길목이다. 내가 차를 운전하지 않기에 그때마다 멀찌감치 떨어진 안민터널 입구서부터 걸어 성주사 산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성주사 들머리를 지나다가 영지버섯을 찾아내는 내가 폐지를 줍는 노인 같은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든 어른들이 주택지에서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수집상으로 보내곤 했다. 이분들이 고령에도 폐휴지를 모으기에 생활 쓰레기가 버려지기 전 자원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내가 숲속에서 찾아내는 영지버섯도 그냥 두면 가을 이후 벌레가 꾀거나 절로 삭아 사그라졌다.
내가 무더운 여름날 근교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아냄으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다. 첫째는 기온이 올라 무더워지기 전 등산로를 벗어난 활엽수 우거진 숲을 누벼 삼림욕을 하고 있다. 생각만큼 뱀이나 멧돼지의 출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바위 벼랑의 낭떠러지도 없어 안전했다. 단 나는 체질적으로 옻 알레르기가 심해 개옻나무에라도 살갗이 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여름 숲을 찾는 두 번째 성과는 영지버섯을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창원 근교 산의 지형과 식생을 꿰뚫고 있어 어느 산자락에 영지버섯이 자라는지도 훤히 알고 있다. 장마철 전후 고사목이 된 참나무 둥치에서 자라 나오는 영지버섯이다. 한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영지는 벌레가 파먹거나 절로 삭아 사그라지는데, 그 이전 채집해 말려 건재로 쓰는데 주변의 지기들에게 나누고 있다.
성주사 산문으로 들어 법당 뜰에서 손을 모으고 연지 화분에 핀 몇 송이 홍련을 완상했다. 절집의 일을 돕는 중년의 한 사내는 빗자루로 마당을 쓰느라 땀을 흘렸다. 지장전 앞뜰에서 바라보인 불모산 정상부 송신탑이 아스라했다. 관음전 뒤는 지난번 태풍으로 무너진 축대를 보수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비공식 등산로를 따라 불모산 숲으로 들어섰다.
성주사 수원지로 모여드는 개울물을 건너면서 너럭바위에 한동안 앉아 더위를 잊었다. 조금 전 산문으로 들어서면서 남긴 절집 풍경 사진을 몇몇 지기들에게 날려 보내면서 안부를 전했다. 늦더위를 잘 넘기십사고 하면서 나는 끝물 영지버섯을 찾으려 불모산 숲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쉼터에서 일어나 개척 산행을 감행해 가랑잎이 삭은 부엽토를 밟으며 숲을 누비기 시작했다.
숲으로 들어 금방 꽃송이처럼 예쁘게 자색 갓을 펼친 영지버섯 무더기를 발견했는데 작년에 핀 녀석은 삭아진 채 겹쳐 붙어 있었다. 해발고도를 높이지 않고 진양 강 씨 선산 주변에서도 영지버섯을 더 찾아내고 낸 뒤 구름버섯이 핀 고사목도 만났다. 두 시간 남짓 숲속에서 찾아낸 영지가 든 배낭이 제법 묵직해 왔다. 야트막한 산등선을 넘어간 계곡물 손을 담그고 더위를 잊었다. 2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