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간 담벽에 핀 꽃.
틈바구니에서 너를 따내어
여기 뿌리째 손에 들고 선다.
작은 꽃이여, 그러나
뿌리째 전부 네가 무엇인지
알 수만 있다면
신과 사람도 무엇인지 알 수 있으리.
-『한라일보/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2024.10.08. -
200여 년 전에 출생한 시인의 시를 읽는다. 200년 전 어느 담벼락에 핀 꽃을 이야기하는데, 그 꽃이 지금도 어느 담벼락에 피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작은 꽃이여. 담벽 틈에서 이름도 없이 피다 누군가의 손에 뿌리째 뽑히는 그대는 여실히 우리의 모습이지만, 화자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생각에 빠지고, 삶의 의미와 역할을 묻는 살아 있는 자의 꿈은 어지럽다. 그렇지만 일종의 '방법적 의심'이라고 볼 수 있는, 신이 무엇이며 사람이 무엇인가를 고뇌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슬기라 할 수 있다.
꽃이 뽑히지 않으면 꽃은 언제까지나 피어 있는 것일까. 거기에 꽃 꺾어 우리가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뿌리째 뽑힌 꽃이 우리를 본다는 시인의 심적인 은폐와 누설이 가동된 거라면 나름대로 인생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을 담뿍 담고 있는 이 시는 흔히 이야기되는 '서정시의 독특한 예리함'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