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생각으로 육신을 지배하는 게 참된 우주정복.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된 신분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 가장 무서운 적이 마귀가 아니라 흙으로 조성된 자기 육신의 생각이었습니다. 마귀는 단순히 잔머리로 유혹하기 때문에 지각에 뛰어난 예수님이 속지 않지만, 육신의 생각은 영의 생각과 짝꿍이 되어 일심동체의 정으로 애절하게 호소하기 때문에 그의 청을 거부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저미는 일입니다. 이 육신의 생각이 예수님의 영과 하나 되어 살면서 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막강한 영적 권세와 지위를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제대로 한번 사용해 보지 않느냐고 무수히 애걸합니다. 그리고 자기 영의 최측근이자 짝꿍인 육신 하나 제대로 돌볼 줄 모르면서 어찌 천하만민을 구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뜻, 정신)과 흙으로 조성된 육신의 합성체입니다. 영은 주로 하나님과 교통하여 그의 뜻을 받드는데 주력하지만, 육신은 오직 영과 일심동체가 되어 자기 안밀만 도모하려 합니다. 남편과 같은 영은 자기의 상전되시는 하나님과 이웃들과의 유대관계를 중요시 하나, 아내와 같은 육신은 오직 남편이 갖고 있는 직위와 권세로 호의호식하는 것들만 주로 추구합니다. 제대로 된 왕은 위로 하나님의 뜻을 공경해 받들고 아래로 만백성들의 안위에 주력하나, 왕을 모시는 아내 같은 시위들은 오직 왕의 목숨을 자기의 목숨 같이 지키려고 할 뿐, 왕 이외의 하나님의 뜻이나 백성들의 처지는 별무관심입니다.
어질고 지혜로운 왕은 항상 자기를 지키는 시위들의 경거망동과 지나친 경호를 자제시키나, 김일성 일가들 같은 망나니는 시위들의 철통 같은 경호만 독촉할 뿐, 하나님의 뜻이나 인민들의 처지는 별무관심입니다. 이처럼 정상적인 사람은 자기 몸을 하나님의 뜻과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희생하려고 하나, 김일성 일가들 같은 독재자들은 오직 자기 한몸을 위해 천하만민을 희생시키려 합니다. 이 같이 육신 위주의 삶을 사는 영은 하나님의 뜻으로 자기 육신의 생각을 정복해 다스리지 못하고, 도리어 육신의 생각에 정복당하여 노예처럼 삽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시점의 인류는 오직 육신에 의한, 육신을 위한, 육신의 삶을 사는 육신의 노예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시킨 불신자들이나, 또 그를 섬긴다는 간판만 내걸고 그의 원대로 뜻대로 살지 않는 거짓된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기 영의 생각보다 육신의 생각을 더욱 존중해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땅에 내려보내실 때의 영적 신분은 분명 하나님 다음의 아들된 권세와 지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과 함께 살게 된 육신의 생각은 예수님의 영의 신분에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된 지위와 권세로 육신의 안일을 살도록 강요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일체 허용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만 좇았습니다.
이게 바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4)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삶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로마서 8:5~8) 하심 같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육신도 늘 예수의 영에게 자신의 처지와 행복도 생각해 달라고 독촉할 뿐,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를 기쁘시게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 있는 육신의 생각이 늘 예수님의 영에게 이런 독촉을 할 때마다 예수의 영은 늘 자기 육신의 생각을 다독거렸습니다. "하나님이 비록 나와 너를 일심동체가 되어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살게 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너의 무지한 뜻대로 원대로 살아가도록 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나의 원대로 뜻대로 살아가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한 것은 너의 육신 생각은 흙으로 돌아가려는 죽음의 생각이기 때문에 생명이신 하나님도 나도 따라갈 수 없다. 우주만물과 삼라만상과 또 그것들로 말미암아 육체가 조성된 모든 생물들도 너처럼 나와 하나 되어 하나님께 순종하여야만 영생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여야만 흙에 속한 우주만물도 모두 우리와 함께 하나님과 하나 되어 영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득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체나 사람들의 육체나 모두 동일하여 영의 생각에 설득당하여 자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들이 못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체의 소욕에 영이 굴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버리지만, 예수의 영은 육신의 이 같은 소욕을 정복해 다시리고 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는 일에 동참시킵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목숨까지 버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폭적으로 순종하게 되자 비로소 인간 생명 최초로 영의 생각이 육신의 생각을 정복한 승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영으로 자기 육신의 생각에게 정복당하여 죽은 영이 되었지만, 예수님은 자기 영의 생각으로 육신의 생각을 지배장악하였기 때문에 산 영이 되어 죽음의 고통을 치른 육신마저 부활시켰습니다. 이 후부터 사람들도 육신의 생각을 정복해 이긴 예수의 영(성령)을 따라 그의 원대로 뜻대로 살게 되면, 그들도 육신의 생각을 지배장악한 우주의 정복자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영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영의 생각으로 육신의 생각을 정복하는 것은 곧바로 육신의 근본인 흙, 곧 땅을 정복하는 일이며 또 땅을 정복한 승자에게는 다시는 땅에게 굽실거리거나 애걸하거나 이마에 땀방울을 흘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저들 땅이 스스로 인간 육신에게 먹고 마시고 입고 쓸 것을 공궤(供饋)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주만물들이 다시는 자기들에게 있는 나름대로의 권세, 곧 인력(引力)이나 뜨겁고 차가운 기운 같은 것으로 인간 육신에게 군림할 수 없게 됨을 예수님이 친히 몸으로 실증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으신 것이나 또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 것은 단순히 자신의 위대한 능력을 인간에게 자랑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 영의 생각으로 육신의 생각을 정복하게 되면 그들도 자신과 같은 자유자가 될 수 있음을 만천하에 설교해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영으로 하여금 자기가 가르쳐 준 말씀으로 그들 육신의 뜻과 생각을 정복해 다스리게 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들도 하나님처럼 흙에 속한 우주만물의 모든 것들을 지배장악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흙으로 하여금 축소판 우주와 같은 사람의 육신을 만들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을 주시어 육체(흙)와 함께 하나 되어 영생하도록 하였으나, 사람들의 영이 반역자 사단에게 속아 철부지 육신(흙)의 생각에 지배(교육)받게 되자 그것이 바로 죽음이 되었고, 그렇게 죽게 된 영혼을 살려내기 위해 예수님이 땅에 오셔서 자기 육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켜 죽기까지 순종한 것으로 마침내 땅(육신)을 정복한 인류 최초의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이 후부터 육신의 생각에 정복당하여 죄악의 노예로 살아가는 희망 없는 뭇 사람들에게 육신을 정복할 수 있는 새 영으로 거듭 태어나 하나님이 태초부터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물과 인간들을 지으신 본래의 목적으로써 모든 피조물과 하나 되어 즐기려 하였습니다. 전에는 인간의 영이 육신의 생각에 지배당해 종노릇하였기 때문에 죽음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이제는 육신의 생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자기 육신의 생각을 지배장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성령의 지도를 받아 자기 육신의 생각을 정복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고, 아직도 육신의 생각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과 그로부터 오는 모든 지혜와 은사와 능력들을 갖고 그것으로 뭇 사람들 위에 군림해 행세하고 대접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로부터 상받을 수 있는 자격, 곧 예수의 거룩한 발자취는 따라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성령이 오며, 성령이 오면 육신의 생각도 반드시 고개를 쳐들고 성령을 주관하려 합니다. 즉 사람들이 처음 예수를 믿어 성령의 지도를 받아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반드시 강하고 담대한 영력이 발생되어 천하에 두려워할 것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고 담대하게 전합니다. 이럴 때에 여러 방면으로 환란과 핍박과 모욕과 천대를 받게 되는데, 이 때에 자기 육신의 생각이 머리를 치켜 들고 일어나 나름대로의 정의를 펼치며 성령을 대적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처음 예수를 믿을 때부터 영의 생각을 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로 자기 영이 강권적으로 예수를 믿게 되자 육신도 어쩔 수 없이 영에 이끌려 예수님의 언행에 길들어집니다. 그런 상태로 자기 주인된 영의 선하고 의로운 신앙생활에 동참하지만, 사악한 죄인들로부터 무시와 멸시와 천대와 박해를 받게 되면 그 즉시 격분해 육의 혈기를 내뿜고 대적합니다.
이 때부터 신앙인들의 육신은 육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 영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해 더욱 분노를 느낍니다. 즉 자기 주인된 영이 모든 육적인 이해득실을 초월해 상대방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간과 정열을 다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데, 상대방은 그 일을 곡해해 도리어 자기 주인된 영을 무시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핍박하고 악플을 달아 말도 되지도 않는 말로 헐뜯으니 당장 자기 주인된 영의 신분, 곧 믿는 자에게 따르는 하나님의 막강한 권세와 능력으로 그들에게 날벼락 때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는 무리들에 대해 심히 분노하여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누가복음 9:54)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런 분노를 예수님의 제자들도 발하였지만, 오늘날 믿음 좋은 자들의 마음 속에서도 이런 육신의 생각이 분노를 일으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날벼락 때리기를 강권합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 복음의 일에 동참하여 행하는 짓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몰라서 육신이 자신의 원대로 심판하려 하지만, 그래도 신앙인들은 이런 육적 분노를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일을 금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육신의 분노를 예수의 영으로 강하게 제압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상받을 일들은 크고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앙인들은 이런 육신의 분노를 두려워 하여 아예 분노할 일들, 곧 예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 버리고 평범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육신 건강에도 좋고 이웃과의 관계도 좋은 일로 취급해 자제합니다. 시쳇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게 바로 육신 위주의 인본주의 신학(신앙)입니다.
아무튼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의 마음 속은 어쩌면 분노를 삭히느라 새까맣게 탓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당하고 유익된 말씀을 전해 주고도 받는 것이 멸시와 천대 뿐이니 그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직하고 진실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로 인해 받는 모욕과 천대 때문에 발생되는 모든 분노는 땅에서만 보류당한 것일 뿐, 결코 그 분노 자체가 나빠서 하나님이 삭히도록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천하만민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노는 모두다 하나님께 쌓이고 쌓여 최후의 날에 그들에게 쏟아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선하고 의롭고 위대한 일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증거하는 일보다 선하고 의롭고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죄악된 사람들의 마음이 의롭고 선한 마음으로 변화되는 이적기사가 일어납니다. 김정은 같은 모든 악인과 죄인들은 천하보다 귀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악에서 선으로, 또는 죄에서 의로 변화시키는 이적기사는 패망의 일로 취급하고, 다만 사단의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부터 시작해 온 우주만물과 인간들을 자기 말 잘 듣는 노예로 변화시키려는 허황된 이적기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 우주만물을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기 육신의 생각을 굴종시키는 일입니다.
오늘날 선진 강대국들이 앞 다투어 우주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복을 입고 우주를 유영하여 달과 별에 손발이 닿는 것은 우주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그 실은 아직도 사람이 우주만물의 힘과 권세에 정복당하여 그것들의 영향력(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우주를 출입하는 우주 노예들입니다. 우주를 제대로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을 예수님이 이미 2천여 년 전에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 일을 신화로 취급하고 여전히 지렁이 같은 흙의 지식과 지혜로 우주를 출입하려 합니다. 참된 우주 정복은 오직 예수님처럼 영의 생각으로 자기 육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지렁이 몸부림식 방법으로 우주를 더듬고 다니면서 감히 우주를 정복하였다고 하니 이게 바로 하나님께로 태어난 사람과 사단에게로 태어난 지렁이들의 가치관에서 나온 능력의 격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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