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아사는 유다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아사의 이러한 고백은 그가 하나님을 역사의 주로 알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평안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아는 바른 신앙의 인물이었음을 시사하여 줍니다. 사실 유다에 평안의 때가 온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아사의 부친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싸워 북이스라엘 군대 50만을 도륙하는 성과를 얻은 결과, 북이스라엘의 공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주변 국가의 상황으로 그들에게 잠시 전쟁의 위협이 생기지 않은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사는 남유다의 평안을 그러한 외부적 요인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서 남유다의 평안의 근거를 찾았습니다. 이러한 아사의 태도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로 자신들이 평안을 누리게 된 근거를 철저히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들이 여호와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아사의 신앙은 우리 성도가 항상 고백해야 할 신앙의 고백이며, 가져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정직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축복과 형통함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믿음의 고백에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내 축복과 형통함이 나로부터 말미암았고, 주변의 상황과 정세, 혹은 운이 좋았다는 식의 고백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공의 공로를 내 자신과 다른 존재에 돌리는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성도들로 하여금 축복과 형통함으로 인해 교만하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합니다. 신앙을 잃게 만들고, 나태한 신앙으로 변질시키곤 합니다. 여러분, 욥은 당대 최고의 거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부의 근원을 자신이나 주변 상황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의 근원을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할 줄 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소와 가족, 건강까지도 다 빼앗아 가셨을 때조차도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라"(욥1:21)고 고백할 줄 알았습니다. 축복의 순간 뿐 아니라 고통과 고난의 순간조차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겸허히 받아들이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성도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그 통로를 보지 말고 그 속에 숨겨진 축복의 손, 축복의 원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축복으로 인한 교만으로 하나님을 잊거나 그를 떠나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속한 존재가 되어, 더 값진 축복을 얻게 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