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자기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것은 용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래참음과 용서가 있는 곳에
구원이 있다.
열심으로 안된다.
아이디어로 안된다.
성령이 주시는 "오래참음과 용서"가
사람을 건져낼 수 있다.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용서하라.
"오래참음과 용서"로 살라
그때 죽은 자도 살아나는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것이다.
그게 사람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우리는 탕자처럼, 하나님 앞에서 보상을 요구할 자격도, 공로도 없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의 조건이나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값없이, 은혜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로 우리를 다시 자녀로 받아 주셨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다. 회개가 완벽해서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은혜는 일하지 않은 자에게 상을 주시고, 자격 없는 자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이 불공평함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아직도 공로와 권리의식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인과응보의 법칙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공짜는 없다,”는 세상의 논리를 뒤엎는다. 우리는 뿌리지 않았는데도 거두었고, 일하지 않았는데도 품삯을 받았다. 이것이 복음이다. 값없이 주어진 구원,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진 사랑. 은혜는 죄인의 유일한 소망이며, 십자가와 함께, 성령의 역사와 성화의 삶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샬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