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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앙불괴(俯仰不愧)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俯 : 구부릴 부(亻/8)
仰 : 우러를 앙(亻/4)
不 : 아닐 불(一/3)
愧 : 부끄러울 괴(心/10)
출전 : 맹자(孟子) 진심(盡心) 상편(上篇)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며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수치심(羞恥心)은 모든 도덕의 원천이라고 현인들은 말한다. 남보다 능력이 부족해 열등감을 느끼거나 양심에 어긋나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끄럽다.
항상 조심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인품이 높은 사람이 있는 반면,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도대체 남에게 피해가 가는 짓을 하고도 후안무치(厚顔無恥)인 철면피도 있다.
부끄러움을 말할 때 먼저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항상 생각한 민족시인 윤동주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여 잘 알려진 그의 '서시(序詩)'의 앞부분을 보고서 바로 연상되는 것이 구부려 보거나 우러러 보거나(俯仰) 부끄러움이 없다(不愧)는 이 성어다. 부앙무괴(俯仰無愧)라 해도 같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孟子)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한다. 그의 책 '맹자(孟子)'의 진심(盡心) 상편(上篇)에 설명한다.
사람의 본심인 (仁義禮智)가 외부에 대응하여 나타난 사단지심(四端之心)을 바르게 기르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뒷부분에 성어가 나오는 유명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君子三樂/ 군자삼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격과 덕망을 갖춘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을 먼저 제외한다. 부모가 살아계시며 형제들이 무탈한 것이 첫째이고, 천하의 우수한 인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로, 그 사이 문장을 보자.
'위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굽어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낙야)'이라 했다. 첫째와 셋째에 비해 부단히 수양해야 이뤄지는 두 번째 즐거움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옳은 사람에겐 부귀라는 것이 사실상 즐거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데 특색이 있다. 가정의 행복이 첫째, 마음의 편안함이 둘째, 후배의 양성이 셋째일 뿐, 그 밖의 것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자의 세 가지로 시작하는 말이 다수 있는데 무식하고, 모르면서 배우지 않고, 배우고 실천하지 않는 것을 군자삼우(君子三憂)라 하는 등이다.
보통 사람들은 양심에 조금 거리끼는 짓을 하면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사람은 내성적이라 자기 일만 하고 남의 앞에 잘 나서지 못한다. 앞장서서 일을 잘 처리하려면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 필요하다.
문제는 남을 위한다며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부끄러움을 잊는다는 점이다.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어제한 말과 오늘 말이 다르고, 큰소리치면 이긴다고 생각하고, 아랫사람은 괴롭혀도 괜찮다고 갑질을 일삼기 일쑤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고도 변명을 일삼고 남에게 덮어씌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사회가 건강하다.
양심에 부끄럼이 없어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도 없다. 과연 부끄럼이 없을까. 과연 부끄러움이란 기준을 어데 두고 하는 말일까. 생각해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고사성어 부앙불괴(俯仰不愧)는 하늘을 우러러 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럼이 없다는 말로 맹자 진심장구 상편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는 "마음가짐이나 행동에 있어서나 양심에 아무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 대장부의 삶이라 하며,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에 천하에 왕 노릇 하는 것은 없다 하고, 부모가 모두 생존에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라"고 하셨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람의 양심(羞惡之心)이다"고 하시고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 한다면 치욕스런 일이 없을 것이나 임기응변의 기교를 부리는 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니 그리하면 본래의 양심이 날마다 막히는데 도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이천선생에게 묻기를, "사람이 자신의 능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두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능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힘써서 하는 것은 좋으나 능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여 가리고 감추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공자는 "세 가지 즐거움과 세 가지 부끄러움에 대해 예악(禮樂)에 따라 절제하기를 즐거워하고 남의 착한 일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고 좋은 친구가 많은 것을 좋아하면 즐거운 것이나 교만하고 방자한 것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면 부끄러운 일이라" 하셨고, 또한 "정치가 깨끗해도 봉급을 받고 정치가 깨끗하지 않아도 봉급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셨다.
가끔 보면 여의도 사람들은 몇 달째 놀고 먹으면서도 봉급은 꼬박고박 챙기는 것을 보면 참 창피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자 들인 것 같다
중용에서도 시경에 이르기를, "물고기가 비록 물속에 잠겨 엎드려 있으나 심히 밝게 드러난다"고 했고, "네가 방안에 있는 것을 살펴보니 방구석에 있으면서도 부끄럽지 않다"고 했으니, 군자는 안으로 살펴 하자가 없으니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고,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하며 말하지 않아도 믿기 때문에 남이보든 안보든 어느 곳에서도 떳떳한 행동을 하니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장자는 공자의 도에 대해 늘 비하했지만 양왕편에서는 공자가 채나라에서 궁지에 빠져 7일간이나 불로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명아주국에 쌀을 섞어 넣지도 못하는 형편에서도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자, 자로와 자공이 이런 처지에 방안에서 거문고나 타고 노래하고 있으니 부끄러움을 모름이 이정도로 심할 수 있는냐 불만하는 말을 듣고, 공자는 "도가 막히는 것은 부끄러우나 재난을 만나 곤궁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공자는 "곤궁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부귀하게 살면서 도에 어긋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지만, 요즘 세상에서 오두막집에서 나물먹고 물마시면서 부끄럽지 않다하면 세상사람들의 웃음거리 밖에 안된다.
시대에 따라 보는 눈이 다르니 시대에 따라야 부끄러움이 덜 한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러울 것이 없으면 근심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했으니, 누군들 떳떳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나.
성현들은 도(道)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했지만 도에 어긋나지 않게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을 우러러 보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데 그 도라는 걸 지키려다 보면 하루도 부끄러워 살 수 없을 것이다.
도에 얽메이지 말고 그저 가족들과 화목하고 편안하게 일상적으로 보편적 삶만 살아가더라도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불괴옥루(不愧屋漏)
중국 고전 '시경(詩經)'에 "네 방에 있을 때 살피게나! 방의 서북쪽 모퉁이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하기를(相在爾室,不愧于屋漏)" 라는 구절이 있다. '중용(中庸)'에도 이 구절을 인용했다.
'옥루(屋漏)'란 방의 서북쪽 모퉁이로, 집의 방문이 보통 남쪽에 나 있기 때문에 방의 어두컴컴한 곳을 가리킨다. 아득한 옛날 사람들이 움막집을 짓고 살 적에 방안의 채광을 위해서 천장에 구멍을 뚫고 집을 지었는데, 비가 오면 그곳은 비가 새었기 때문에 '옥루'라고 했던 것이다.
'불괴옥루(不愧屋漏)'는 '방의 어두컴컴한 구석에 혼자 있을 때도 자기 마음에 부끄럽지 않게 지내라'는 뜻이다. 흔히 '혼자 있을 때를 삼가라'는 뜻인 '신독(愼獨)'이라는 말과 거의 같게 쓰인다. 누가 보건 안 보건 간에 항상 말과 행실을 광명정대(光明正大)하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역사의 자료 상당량이 비밀리에 단둘이 한 이야기로 돼 있다. 그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는 절대 비밀이 보장될 줄 알았는데, 그 뒤 상대방이나 측근에 의해 대부분이 공개가 된 것이다. 공개된 것을 역사가가 기록으로 남겨 영원히 남게 됐다.
송나라의 유명한 정승이자 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이 한 말 가운데 "평생 한 일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있은 적이 없다(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는 것이 있다. 평생 한 일이 마음에 부끄러워할 만한 바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한 말이나 행동을 모두 남에게 공개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할 적에 혼자나 단둘이 하는 말이나 일이라도 모든 사람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나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사적인 상황에서 친구들과 한 성(性)에 관한 농담이 다른 방송 진행자의 부착 마이크에 녹음이 돼 20여 년이 지난 세월 뒤 공개됐다. 이 말이 성희롱 발언, 여성비하 발언으로 확산돼 곤욕을 겪었다.
촬영, 녹음기술이 발달해 개인의 모든 말과 행동이 기록으로 남는 세상이 됐다. 다른 사람이 알거나 폭로되면, 망신을 당할 일 등은 애초에 안 하는 것이 좋다. 늘 자신을 수양하는 마음으로 언행을 항상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불의(不義)와 공적(功績)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기 욕망을 채운 사람은 후일 그 떳떳하지 못함을 메꾸기 위해 큰 공적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젊은 시절 한 때 방탕하고 탈선적인 삶을 살던 사람도 훗날 개과천선하여 모범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큰 업적을 남기는 사례도 많다.
정당한 절차로 어떤 자리에 오르고 오른 다음에도 훌륭한 치적을 남긴다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롭지 못한 동기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도 아무런 좋은 치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가 될 것이다.
동서양의 인류역사에 있어 부당하고도 포악한 방법으로 정권을 쟁취한 사람이 허다히 많았지만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하나로 조선조의 수양대군(首陽大君)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그는 조카인 단종(端宗)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으며, 사육신과 생육신을 위시한 수많은 충신들을 죽이거나 고통 받게 했었다.
그러나 그가 왕위에 오른 기간 동안에는 문치(文治)에 힘을 써서 국조보감(國朝寶鑑)과 경국대전(經國大典) 등을 편찬하고 훈민정음으로 법전의 역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회개하여 불교의 중흥에 힘쓰기도 하였다.
형제의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李芳遠)과 형으로부터 왕위를 양보 받아 평생 마음의 부담을 느낀 세종대왕(世宗大王)도 무리하게 왕위에 오른데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훌륭한 많은 업적을 남겼던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대에 있어 기업체의 가족 간 상속문제나 국가의 군사쿠데타 발발 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장자가 아닌 아들로의 상속이 이루어진 기업체나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넘어간 국가에 있어 혁혁한 경제발전과 국민생활의 향상으로 인해 상속과 쿠데타의 정당성과 합리성이 크게 인정되기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시키게 되는 사례들이다.
떳떳한 수단이나 정당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불의의 수단이나 부당한 방법에 의해 추진된 일이라도 모두 나쁜 결과만 가져온다고는 할 수 없다.
선한 수단에 의해 선한 결과가 나오고 악한 수단에 의해 악한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정의라고 할 수 있으며, 일컬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한편 정당한 수단이지만 그 결과가 바람직하지 못할 때에는 매우 실망스럽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로 표현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정의롭지 못한 동기나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추진하였지만 그 결과는 칭송받을만한 것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매우 놀라게 되고 이를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할 수 있다.
사필귀정의 길이 가장 바람직하여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인간사회는 반드시 그렇게만 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용두사미나 전화위복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나는 생애 전체로 보면 선한 수단에 선한 결과로 이어진 삶을 살아왔다고 자평할 수 있다. 학문연구와 사회활동 및 가계운용에 있어 남에게 지탄을 받을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도 비교적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극히 부분적이거나 짧은 기간이나마 양심에 어긋나는 부끄러운 방법이나 수단을 동원한 경우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말 그대로 부앙불괴(俯仰不愧), 즉 하늘과 땅에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말은 감히 어렵지 않나 한다. 아무리 선한 결과를 가져온 일이라도 그 방법과 과정에서 남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하늘과 땅에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기를...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불자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사를 주제로 시를 썼던 시인이라면, 윤동주(尹東柱) 시인은 윤하현 장로의 손자로 기독교적 사상을 보고 배우고 자란 시인이라 할수 있다.
그가 이세상을 떠난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건만 그의 시에 담긴 양심의 고함소리는 지금도 이 세상의 모든 이를 향해 울려퍼져 메아리 치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다짐하면서 그는 스치는 바람에 웃어주는 별이 된 것이다.
이 시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비수같이 예리한 창상을 가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들은 너무나 뻔뻔스럽고 염치없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정당화 하려고 변호해 주는 통념이 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만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적 달성을 위해 비상이라도 꽁자면 삼키고 "나중에 산수갑산을 갈망정 우선 먹기는 꽃감이 달다"는 말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게 비리요 게이트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몇년전 사회의 이슈화 되었던사행성 도박게임이 얼마나 많은 서민과 가정을 파괴 하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이러한 문제를 야기시킨 정부나 관계 관련자들이 서로의 책임을 회피하고 국정 최고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서 "대학까지 배우는데 25년이 걸리는데 비싼 수업료 낸 것이라 생각해 달라"는 너무도 무책임하고 형편없는 논리로 국민을 설득 시키려 했었다.
분명 불의, 부정, 불법인 사실을 잘 알면서 또한 이 자리가 영원한 것이 못될진대 무엇을 망설이고 주저할게 무엔가? 왕창해 먹고 그때 가서 무슨 불행을 만난다면 그때 대처해 나가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속에서 불의를 결행하는 군상들이 매스컴을 통하여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맹자(孟子)는 "부끄러하는마음이 없음을 부끄러워 한다면 부끄러운 일을 아니한다. 수치심이 없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의 시인 마크 드레인은 "인간은 부끄러워 하는, 혹은 부끄러움이 필요한 동물이다"고 했다. 짐승 따위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이세상 사는 사람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자기 분수에 맞지않는 감투를 쓰려고 막대하고 무모하게 고위층에 앉게 되면 자연히 교만해지고 목에다 힘을 주고 거들먹거린다. 그것은 누가보아도 부자연스럽다. 안정성이 없다.
불가불 조만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며 그때는 높이 올라갈수록 권세와 영광을 많이 누렷기에 누린것만큼 비례하여 부끄러움과 충격을 받게 된다. 세기의 영웅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52세에 부끄러운 맺음을 한 것도 대표적 사례이다.
이제 우리들의 나이도 언덕을 넘어 빠른 탄력으로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세상은 잠깐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영원한 것이다. 영원토록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길,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 俯(구부릴 부)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付(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俯(부)는 ①구부리다 ②(고개를)숙이다 ③눕다, 드러눕다 ④숨다, 잠복하다 ⑤가지런하지 아니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우러를 앙(仰)이다. 용례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있는 지점을 내려다볼 때 그 시선과 수평면이 이루는 각을 부각(俯角), 아래를 굽어봄과 위를 쳐다봄을 부앙(俯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봄을 부감(俯瞰), 고개를 숙임을 부항(俯項), 머리를 숙여 물었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물음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부순(俯詢), 머리를 숙여 주었다는 뜻으로 상대방이 주는 것을 높이어 이르는 말을 부사(俯賜), 머리를 숙여 보낸 편지라는 뜻으로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높이어 이르는 말을 부찰(俯札), 고개를 숙이고 엎드림을 부복(俯伏), 아랫사람의 형편을 두루 굽어 살핌을 부찰(俯察), 주의 깊게 공손한 태도로 들음을 부청(俯聽), 하늘을 우러러보나 땅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부앙무괴(俯仰無愧), 아랫사람을 두루 굽어 살피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봄을 이르는 말을 부찰앙관(俯察仰觀),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봄을 이르는 말을 앙천부지(仰天俯地), 윗 사람의 위엄에 눌려 고개를 다소곳하게 숙이고 명령대로 좇아 함을 이르는 말을 부수청령(俯首廳令), 항상 낭묘廊廟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머리를 숙여 예의를 지켜야 함을 이르는 말을 부앙낭묘(俯仰廊廟), 감개무량해서 울려다 보았다 내려다 보았다 하면서 어정거림을 이르는 말을 부앙저회(俯仰低徊),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나 세상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부앙불괴(俯仰不愧), 고개를 수그렸다 들었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부일앙(一俯一仰),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를 보살핌을 이르는 말을 앙사부육(仰事俯育),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일컫는 말을 앙괴부작(仰愧俯怍), 은혜에 깊이 감복하여 머리를 숙여 엎드림을 일컫는 말을 감은부복(感恩俯伏) 등에 쓰인다.
▶️ 仰(우러를 앙)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러러보다의 뜻을 가진 글자 卬(앙)으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仰자는 '우러러보다'나 '경모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仰자는 人(사람 인)자와 卬(나 앙)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卬자는 서 있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함께 그린 것으로 누군가를 경배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본래 '우러러보다'는 뜻은 卬(나 앙)자가 먼저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卬자가 '나 자신'이나 '위풍당당한 모습'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여기에 人자를 더한 仰자가 '우러러보다'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仰(앙)은 성(姓)의 하나로 ①우러러보다, 경모(景慕)하다, 앙모(仰慕)하다 ②의지하다, 의뢰하다 ③머리를 쳐들다 ④높다 ⑤마시다 ⑥명령(命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숙일 부(俛), 구부릴 부(俯)이다. 용례로는 물가 따위가 오르는 것을 앙등(仰騰), 우러러 바람이나 봄을 앙망(仰望), 우러러 쳐다봄을 앙면(仰眄), 우러러 그리워함을 앙모(仰慕), 우러러 기도함을 앙도(仰禱), 공경하여 우러러 사모함을 앙흠(仰欽), 웃어른에게 자신의 충정을 호소함을 앙공(仰控), 우러러 받듦을 앙대(仰戴), 윗어른에게 말씀 드리는 일을 죄송하게 여김을 앙독(仰瀆), 윗사람을 위하여 일함을 앙역(仰役), 볕을 가리거나 비를 막기 위하여 위에 덮어 치는 물건을 앙차(仰遮), 믿고 받드는 일을 신앙(信仰), 높이어 우러름을 숭앙(崇仰), 높이 받들어 우러름을 추앙(推仰), 목마르게 동경하거나 사모함을 갈앙(渴仰), 우러러 그리워함을 모앙(慕仰), 존경하여 우러러 봄을 경앙(敬仰), 아래를 굽어봄과 위를 쳐다봄을 부앙(俯仰), 칭송하면서 우러러 봄을 찬앙(鑽仰), 높이 우러러 봄을 고앙(高仰), 감탄하여 우러러 봄을 탄앙(歎仰), 공경하여 우러러보고 사모함을 흠앙(欽仰), 우러러 염려함을 여앙(慮仰), 간절히 바람을 간앙(懇仰), 하늘을 쳐다보고 크게 웃음을 일컫는 말을 앙천대소(仰天大笑), 일생을 존경하고 사모하여 내 몸을 의탁하는 일 곧 아내가 남편에 대하여 하는 말을 앙망종신(仰望終身), 위로는 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처자를 보살핌을 일컫는 말을 앙사부육(仰事俯育), 하늘을 바라보고 침을 뱉는다는 뜻으로 남을 해치려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앙천이타(仰天而唾),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봄을 일컫는 말을 앙천부지(仰天俯地), 우러러 바라보아도 미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앙망불급(仰望不及), 우러러 받들어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앙불하수(仰不下手), 머리를 들고 눈썹을 편다는 뜻으로 고고하여 굽히지 않는 태도를 나타내는 말을 앙수신미(仰首伸眉), 하늘을 우러러보나 땅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부앙무괴(俯仰無愧), 아랫사람을 두루 굽어 살피고 윗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러 본다는 말을 부찰앙관(俯察仰觀), 고개를 수그렸다 들었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부일앙(一俯一仰)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愧(부끄러워할 괴)는 ❶형성문자로 媿(괴), 聭(괴)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鬼(귀, 괴)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愧자는 '부끄러워하다'나 '수치를 느끼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愧자는 心(마음 심)자와 鬼(귀신 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鬼자는 얼굴에 탈을 쓴 사람을 그린 것으로 '귀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愧자는 본래 女(여자 여)자가 들어간 媿(부끄러울 괴)자가 먼저 쓰였었다. 媿자는 제사를 지낼 때 여자들이 탈을 쓰고 보조역할을 했던 것에서 유래한 글자로 가면을 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부끄러워하다'는 뜻이 있었다. 하지만 후에 女자를 心자로 바꾼 愧자가 만들어지면서 이것이 '감정'과 관련된 글자임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愧(괴)는 ①부끄럽다 ②부끄러워하다 ③수치(羞恥)를 느끼다 ④창피(猖披)를 주다, 모욕(侮辱)하다 ⑤탓하다, 책망(責望)하다 ⑥부끄러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부끄러울 치(恥), 부끄러울 참(慙), 부끄러울 수(羞)이다. 용례로는 매우 부끄러워함 또는 부끄러움을 이기다 못해 죽음을 괴사(愧死),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괴심(愧心), 부끄러워서 흘리는 땀을 괴한(愧汗), 얼굴이 붉어지도록 부끄러움을 괴난(愧赧), 부끄럽게 여기어 따름을 괴복(愧服), 무안당한 것을 원망함을 괴한(愧恨), 부끄러움과 욕됨을 괴욕(愧辱), 몹시 부끄러워 함을 괴참(愧慙), 부끄럽고 겸연쩍음을 괴겸(愧歉), 부끄러워하고 꺼림을 괴기(愧忌), 하던 일을 부끄럽게 여기어 그만둠을 괴즙(愧戢), 부끄럽고 두려움을 괴황(愧惶), 부끄러워 하는 얼굴빛을 괴색(愧色), 부끄러워 함을 괴치(愧恥), 의심스럽고 괴이하여 놀라 탄식함을 괴탄(愧歎), 부끄러워 원망하고 성냄을 괴분(愧忿), 부끄러워 두려워 함을 괴송(愧悚), 부끄러워 함이나 무안해 함을 괴수(愧羞), 부끄러워서 떨며 두려워 함을 괴율(愧慄), 수치스러워 기세가 꺾임을 괴저(愧沮), 죄송스럽고 부끄러움을 송괴(悚愧), 부끄럽고 창피스러워 볼 낯이 없음을 수괴(羞愧), 황송하고 부끄러움을 황괴(惶愧), 부끄러워하며 괴로워 함을 참괴(慙愧), 스스로 부끄러워 함을 자괴(自愧), 부끄러움을 느낌을 감괴(感愧), 남을 대면하기가 부끄러움을 면괴(面愧), 두려움 없이 행하는 악한 짓 또는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을 무괴(無愧), 분해 하며 부끄러워 함을 분괴(憤愧), 마음속으로 부끄러워 함을 내괴(內愧), 놀라고 부끄러워 함을 경괴(驚愧), 하늘을 우러러보나 땅을 굽어보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부앙무괴(俯仰無愧),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이르는 말을 앙괴부작(仰愧俯怍), 새와 물고기에 대하여도 부끄럽다는 말을 참조괴어(慙鳥愧魚),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자괴지심(自愧之心),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고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염불위괴(恬不爲愧),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한다는 말을 무괴아심(無愧我心)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