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개인적으로 저는 가수 고(故) 김광석씨의 팬입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인민군 송강호의 말을 빌 것도 없이,“김광석은 왜 죽었지?”하며
아쉬움의 한숨을 내쉴 때가 많지요. 헌데 그의 보석같은 노래 가운데 특이한 기억으로
장식된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재연 촬영을 할 일이 생겼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PD의 호기로운 큐 사인과 배우들의 호들갑이 어우러진 야단법석이
시작되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 근처의 병실 문이 왈칵 열리더니 노인 한 분이 호랑이처럼 포효하며
우리 쪽으로 돌진해 왔습니다. 급한 대로 제가 몸으로 막아섰습니다만 노인은 다짜고짜 제 관자놀이에
강력한 라이트 훅을 꽂아 버렸지요. “우리 마누라가 죽어가는데 이런 개판이 뭐야?”
이 분의 아내 되시는 분이 근처 병실에서 임종을 맞고 있었던 겁니다.
수차 고개를 조아리고 사과를 하여 노인을 진정시킨 뒤에야 저희는 겨우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나절 병원 매점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저는 또 그 노인과 마주쳤습니다.
“미안하우, 젊은이. 아까 내가 너무 흥분했었네.”
“네…. 괜찮습니다.”
짤막하게 말을 받는 제 옆에 얌전히 자리한 노인은 내리깔듯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우리 마누라… 죽었어.” 그리고 노인은 회초리 맞은 어린 아이처럼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지간히 금슬 좋은 부부였구나 했는데, 노인의 중얼거림은 천만 뜻밖이었습니다.
그는 결혼 뒤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것만 두 번이었던 화려한 난봉꾼이었답니다.
오늘 세상을 떠난 고인은 버림받은 여인이 되어 아이 셋을 혼자 힘으로 길러 내야 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이런 저런 사연을 거친 뒤 오갈데 없는 병든 늙은이로 세상에 내팽개쳐졌을 때
노인이 기댈 수 있었던 언덕은 뜻밖에도 옛 아내였습니다.
“애들이 그랬대. ‘그 사람’을 용서하느니 엄마를 안 보고 말겠다고…
” 법적으로는 이미 남남이 된 지 오래였건만 아내는 꾸준히 남편에게 생활비를 건넸고
자식들의 결사 반대를 무릅쓰고 집안 행사에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양심상’ 그 앞에 나타나지 못했다지요.
그러던 어느 날 철이 든 이래 한 번도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던 아들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위독합니다.”
아내는 숨이 턱에 닿게 달려온 옛 남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 옆에 있네요. 평생 없었는데….”
그러고 보면 그 자리는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되맞이한 온전한 남편과 아내의 자리였습니다.
늙은 탕부(蕩夫)에게는 더없이 낯선, 그러나 소중한 자리였겠지요.
그때 밖에서 ‘개판’이 벌어졌고 노인은 임종이나마 지켜주고 싶은 애틋한,
그러나 너무 늦어버린 지아비의 마음으로 제게 주먹을 날렸던 겁니다.
꺽꺽 소리내어 울면서 노인은 빌곳 없는 용서를 빌었습니다.
큰딸이 엇나가서 속 썩힐 때도, 아들이 군대갈 때도, 셋째가 사경을 헤맬 때도, 난 미쳤었다고…
당신 옆에 없었다고….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착잡한 심정으로 좌석에 몸을 기대는데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노래 ‘60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흘러 나왔었습니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큰딸 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다시 못 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일생을 함께 한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평생을 거의 함께 하지 못했던 부부 같지 않은 부부의
이별에 왜 그리 슬프게 겹쳐졌는지 모를 일입니다마는, 이후로 저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땅히 함께 해야 했던 삶의 절반을 한 여인에게서 빼앗아 갔던,
그리고 그를 몸서리치게 후회하며 꺽꺽거리던 노인의 모습을 제 뺨에 작렬했던 매서운 주먹처럼
뻐근한 잔상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SBS프로덕션 PD
https://youtu.be/2dr-PZccuOU (터치하세요)
(아주오래전에 받은글 다시 올려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