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道有一人, 身長九尺許, 面白而目有光. 拜王曰: “臣是<北溟>人<怪由>. 竊聞大王北伐<扶餘>, 臣請從行, 取<扶餘>王頭.” 王悅許之.
길을 떠나려 할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키는 9척 가량이었으며, 얼굴이 희고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그는 왕에게 절을 하고 “저는 북명 사람 괴유입니다. 듣건대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친다하니 제가 따라 가서 부여왕의 머리를 베어 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왕이 기뻐하며 이를 허락하였다.
=== 얼굴이 희다는 것은 피부가 하얗다는 표현일 수 있을지 모르나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동양인들의 눈은 흰자와 검은자 뿐이나, 백인들은 흰자와 검은자 뿐이 아니죠. 표현에 따라 빛날수도 있다 하니 백인일 가능성이 있군요. 게다가 키가 9척. 크죠.
欲掩其不備, 策馬以前, 陷濘不能進退. 王於是揮<怪由>. <怪由>拔劍號吼擊之, 萬軍披靡, 不能支. 直進執<扶餘>王, 斬頭. <扶餘>人, 旣失其王, 氣力摧折, 而猶不自屈, 圍數重. 王以糧盡士饑, 憂懼不知所爲.
그는 고구려가 대비하지 않는 틈을 노려 기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말을 급히 몰아 진군하다가 진흙 수렁에 빠져서 앞으로 갈수도 뒤로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왕이 이 때 괴유를 출동시켰다. 괴유가 칼을 뽑아 들고 고함을 지르며 공격해가니, 부여의 1만여 군졸들이 넘어지고 쓰러져서 버틸 수 없었다. 이 때 괴유가 곧바로 전진하여 부여왕을 붙잡아 목을 베었다. 부여 사람들은 이미 왕을 잃고 기세가 꺾였으나, 그래도 굴복하지 않고 고구려 군사를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다.
<怪由>卒. 初疾革, 王親臨存問. <怪由>言: “臣<北溟>微賤之人, 屢蒙厚恩. 雖死猶生, 不敢忘報.” 王善其言, 又以有大功勞, 葬於<北溟山>陽, 命有司以時祀之.
괴유가 죽었다. 처음 그의 병이 위독했을 때 왕이 직접 가서 문병하였다. 그 때 괴유가 “저는 북명의 미천한 사람으로서, 왕의 두터운 은혜를 여러 번 입었습니다. 비록 죽더라도 살아서와 같이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왕이 그 말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그가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북명산 남쪽에 장사지내고, 관리를 시켜 철에 따라 제사지내게 하였다.
=== 북명의 미천한 사람이라는 뜻은 "북쪽의 바다" "북쪽의 어두운... 즉 어두운 북쪽이란건 북쪽 저 멀리란 뜻이기에 뭐라고 해석하든 결국에 북쪽의 먼 곳이라고 공통적인 설명이 됩니다. 그럼 괴유가 북쪽의 어느 먼 곳에서 왔다는 것은 하나 확실합니다.
재미난건 무엇이냐면...
1. 실제 백인이라고 한다면 대체 어떤 식으로 말이 통했을까요? 고구려 사람이 당시 백인의 말을 썼을까요? 아니면 당시 백인들이 고구려 말을 썼을까요? 그리고 대화가 통한다는건 이들 사이를 통역해 주는 통역사도 분명 있었을 것이고 통역사가 있다는 것은 백인의 어느 국가건 집단이건 뭐건 간에 고구려가 아니더라도 당시 북방의 여러 국가와 통교를 했었다는 뜻이 되겠군요. 그렇다면 대체 언제 부터 백인과 만주 인근의 국가가 서로 통했을까요?
괴유가 백인이라면 부여나 고조선에도 백인 관리가 있었을게 뻔합니다.
더 크고 , 더 강하고 , 영토도 훨씬 넓은 두 국가에 고구려 처럼 백인이 와서 벼슬을 달라고 하는게 충분히 가능했을 겁니다.
만약 실제 백인을 처음으로 기용했다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하멜표류기에 나오는 것 처럼 서로 말이 안통하고 뭐가 뭔질 몰라 하멜 일행처럼 감금당하기 일쑤였을 겁니다.
2. 괴유와 같이온 마로는 정체가 뭘까요?
赤谷에서 왔습니다. 적곡 사람입니다.
赤 - 붉다
谷 - 골짜기...... 그러나 벌거숭이란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백인 중에선 털이 흰 경우도 있고, 노란 경우도 있고, 갈색인 경우가 있는데 정말 진한 갈색의 경우도 있고 조금 붉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마로도 다시 생각해 보면 몸의 털이 붉은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적곡을 흔히들 붉은 골짜기라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붉은 벌거숭이... 지명이란게 삼국 초기는 적어도 무작정 지명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는게 사실입니다.
그럼 붉은 벌거숭이들이 사는 곳에서 마로가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적곡사람 마로입니다. 긴 창을 들고 길을 인도하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적곡 사람들은 긴 창을 잘 사용한다.
2. 적곡 사람들은 부여에 대해 잘 안다.
마로는 적곡 사람이기에 긴 창을 사용하고 적곡 사람이라 부여에 대해 잘 알아 부여로 쳐들어가는 공격로를 안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괴유가 백인이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더 생각해 괴유와 마로 모두 백인이라는 생각을 하는건 무리일까요?
그럼 궁금한게 생깁니다. 북명이란 지명은 뭔가?
十六年, 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 獻之.
남해왕 16년 봄 2월, 북명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을 주워서 이를 왕에게 바쳤다.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는 삼국시대의 지명
""북명향"" ""북명산""
북명이란 지명은 사실 신라 본기에 딱 한번, 고구려 본기에도 괴유와 관련되어 한 번나온거 빼곤 나오질 않습니다.
사실 북명이란 단어 자체가 무언가를 특별히 지칭하는게 아니라 추상적인 형태의 단어이기 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게 정상일지로 모르겠죠.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고구려인 관점에서의 북명과 신라인 관점에서의 북명은 분명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일단 북명이란 단어가 어느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는 점, 신라와 고구려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부식이 말한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이름만 남아 있는 삼국시대 지명인 북명향과 북명산은 삼국 당시에 주목 받지 못한 외딴 지명인게 확실합니다.
결국 북명에서 왔다는 괴유는 그저 북쪽 어딘가에서 왔다는 뜻이 되겠고, 마로는 골짜기에서 왔다고도 볼 수 있을지 모르나 몸에 털이 붉은 백인 이었다는 점으로도 추론이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마로가 사용했다는 긴 창은 동이전을 참고해 보면 왜에서 부터 북방 민족까지 모두 사용하는 것인지라 어느 지역의 특징이라고 말하긴 힘듭니다. 다만 동이전엔 긴창을 주로 사용한다 안한다라는 차이와 긴창이 많다와 적다의 차이가 있기에 이런 것들을 걸러내어 추론한다면 괴유의 조상이 어느 지역에 정착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또 저는 괴유와 마로가 부여에서 새롭게 투항해온 사람으로 보입니다.
새롭게 투항해 왔기에 공을 세우기 위해 앞장섰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4년 겨울 12월, 왕이 군사를 동원하여 부여를 공격하러 가는 도중에 비류수 옆에 머무르며 물가를 바라보니, 마치 어떤 여인이 솥을 들고 유희를 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여인은 없고 솥만 있었다. 왕이 그 솥에 밥을 짓게 하니, 불을 때기도 전에 솥이 저절로 뜨거워졌고, 이에 따라 밥을 짓게 되어 모든 군사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 이 때 갑자기 건장한 한 사나이가 나타나 말하기를 “이 솥은 우리 집 물건이었는데, 제 누이가 잃었다가 이제 왕께서 얻었으니, 제가 이 솥을 지고 왕을 따라가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은 곧 그에게 부정(負鼎)씨라는 성을 주었다. 왕이 이물림에 도착하여 묵게 되었는데 밤에 쇳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밝을 무렵에 사람을 시켜 그곳을 찾는 중에 금으로 만든 옥새와 병기 등을 얻었다. 왕이 “이는 하늘이 주시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절을 하고 받았다. 길을 떠나려 할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키는 9척 가량이었으며, 얼굴이 희고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그는 왕에게 절을 하고 “저는 북명 사람 괴유입니다. 듣건대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친다하니 제가 따라 가서 부여왕의 머리를 베어 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왕이 기뻐하며 이를 허락하였다. 또한 어떤 사람이 “저는 적곡사람 마로입니다. 긴 창을 들고 길을 인도하게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왕이 이를 또한 허락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부여 공격에 나선 대무신왕에게 부여의 세력들이 속속 투항합니다.
1. 비류수 근처의 세력(負鼎 - 부정을 저는 싸움졌다는 뜻이죠.)
2. 이물림 근처의 세력(이물림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날카로운 물건들의 숲" 즉, 매복한 병사들이라는 뜻으로 대무신왕이 이 매복병들을 제압하고 합류시켰다는 뜻이죠.)
헌데 금으로 만든 옥새와 병기등을 얻었다는 부분에서 이물림 근처의 세력은 부여의 왕족이거나 다른 부여 동맹국의 정규병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금과 옥새 같은 귀한 물건이 나오겠습니까?"
3. 북명, 적곡 사람의 투항.
이게 모두 12월 한 달도 안되는 시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다음해엔....
부여와 전면전을 펼쳐 대소왕의 목을 베지만 부정씨와 신마 거루가 도망.. 즉 부여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세력이 다시금 배신하는 형태로 그려지고 이물림에 이르러선 병사들이 밥이 없어 굶주립니다. 대무신왕은 자기 잘못이라며 나랏 사람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즉, 대무신왕 4년에 투항한 세력인 비류수 근처의 부정씨와 이물림의 세력은 즉시 고구려를 재배반해 부여에 붙고 북명 적곡 사람은 이름이 남아 고구려를 따릅니다.
무슨 차이냐면 고구려를 끝까지 따르면 이름이 남고 끝까지 따르지 않으면 은유적 표현으로 남는 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고구려인 입장에선 당연한 조치입니다.
말도 안듣고 중간에 배반한 사람들을 지면 할애해 가며 잘 남길 필요는 없는 것이죠.
자 ... 이걸 말씀 드린 이유는 당연히 괴유와 마로 때문입니다.
괴유와 마로가 부여에서 새롭게 고구려에 합류된 세력의 대표주자들이라면 이미 백인 집단은 만주 일대에서 그 이전시기 부터 관직 생활을 해왔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장수왕에 대한 인물평은 "모습이 괴이하면서 걸출함. 지혜와 용기가 비범함"입니다. 모습이 왜 괴이할까요? 지나치게 너무 앞서나가는 것일지도 모르나 백인 집단이 이미 고구려 초기에 귀족화 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보여 주었습니다.
백인 괴유를 왕이 친히 살폈으니 당연히 귀족이었던건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괴유가 백인이던 아니던 그다지 상관은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한 내 조상님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을 단일민족이며 순수한 한개의 혈통으로 내려져 왔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사실아닌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기에 팍스 고구려를 만들기에도... 팍스 고조선을 만들기에도... 팍스 코리아를 만들기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괴유가 백인이라고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말해 보세요.
에이.... 말도 안돼~ 우린 단일민족이자나~~
라고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의식의 변화를 통해 우리 역사에 흑인, 심지어 애스키모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인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도 안되는 억측은 안되겠지만 "가능성"만큼은 다양하게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지금 생각해보니 괴유가 북명사람이고 부여왕을 치는데 단순 일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여왕의 목을 베는 것을 허락해달라는 말을 볼 때 부여에 대해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괴유를 대무신왕이 받아들인 것은 그가 9척 크기의 대 역사인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보는 사람을 선봉으로 삼는 건 군 전체의 사기를 생각해 봤을 때 인사문제에서 큰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때문에 개인자격으로 참전한게 아니라 부족 규모로 참전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북명인 괴유는 떠돌이 백인이 아니라 부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부족규모의 백인집단 수장이란 얘기가 됩니다.
예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동성 지역에서 백인 유골이 출토되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백인은 유전적으로 황인과 그다지 멀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그 교류의 역사도 상당히 거슬러 올라가고, 사례도 꽤 보이는 듯 하니 괴유가 백인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백인 유골 출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백인과의 연관성 문제는 자주 등장하고 있죠. 켈트인이 동방에서 왔다거나, 흉노가 백인이었다는 설 등등.. 또 실제로 투르크인들도 백인의 혈통이 혼혈된 경우이지요. 우리 역사에서 백인을 만난 것이 조선 후기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고구려와 교류했던 서역인들도 코 큰 사람들이라고 하죠.
'가깝다', '멀다' 라는 개념은 상대적입니다. 즉, 비교상대가 있을 때에 써먹을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죠. 황인종과 백인종이 유전적으로 가깝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이 될 제 3의 인종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것이 흑인종이라면, '황인종은 흑인종보다는 백인종에 가깝다' 라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런데 '유전적으로 백인은 황인과 가깝다' 라는 말의 의미가 단지 그것 뿐이라면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왜 큰 의미가 없냐고 했느냐면, 유전적으로 백인이 황인과 가깝다는 이야기는, 최초의 이브로부터 시작된 인류가 처음에 흑인종에서 시작했다가 백인종과 황인종이 가장 나중에 분화되었다는 의미 이상으로 다른 정보를 주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백인종과 황인종이 흑인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이야기가 한국사에 뭔가 의미있는 정보를 줄까요? 참고로 백인과 황인의 유전적 거리가 가깝다는 이야기와 백인이 동북아시아에 거주했다는 이야기는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담인데 -_- 저런 특징을 가지고 삼국지에 나오는 손권이 사실 오부인이랑 어떤 표류중인 외국인이랑 바람나서 낳은 자식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죠; 입이 크고 눈동자가 번쩍이는 빛을 내고(강표전) 자주빛 수염을 가지고 있다(배주) 그러고 보면 손권도 좀... 수상하네 -_-
첫댓글 지금 생각해보니 괴유가 북명사람이고 부여왕을 치는데 단순 일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부여왕의 목을 베는 것을 허락해달라는 말을 볼 때 부여에 대해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괴유를 대무신왕이 받아들인 것은 그가 9척 크기의 대 역사인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보는 사람을 선봉으로 삼는 건 군 전체의 사기를 생각해 봤을 때 인사문제에서 큰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때문에 개인자격으로 참전한게 아니라 부족 규모로 참전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북명인 괴유는 떠돌이 백인이 아니라 부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부족규모의 백인집단 수장이란 얘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대소왕의 부여는 이 당시 북명 부근(바이칼?)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거나 혹은 북명인 세력이 타격받을 만한 어떤 교역루트 독점,,?? 같은 위협이 가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군요.
예전에 어떤 분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산동성 지역에서 백인 유골이 출토되었다는 것인데, 실제로 백인은 유전적으로 황인과 그다지 멀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그 교류의 역사도 상당히 거슬러 올라가고, 사례도 꽤 보이는 듯 하니 괴유가 백인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 들을 수 있을까요? 먼 고대의 백인과의 교류 이야기는 치우천왕기에서 밖에 들어보지 못해서...^^;;
저도 백인 유골 출토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백인과의 연관성 문제는 자주 등장하고 있죠. 켈트인이 동방에서 왔다거나, 흉노가 백인이었다는 설 등등.. 또 실제로 투르크인들도 백인의 혈통이 혼혈된 경우이지요. 우리 역사에서 백인을 만난 것이 조선 후기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고구려와 교류했던 서역인들도 코 큰 사람들이라고 하죠.
'가깝다', '멀다' 라는 개념은 상대적입니다. 즉, 비교상대가 있을 때에 써먹을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이죠. 황인종과 백인종이 유전적으로 가깝다...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이 될 제 3의 인종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것이 흑인종이라면, '황인종은 흑인종보다는 백인종에 가깝다' 라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런데 '유전적으로 백인은 황인과 가깝다' 라는 말의 의미가 단지 그것 뿐이라면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요?
왜 큰 의미가 없냐고 했느냐면, 유전적으로 백인이 황인과 가깝다는 이야기는, 최초의 이브로부터 시작된 인류가 처음에 흑인종에서 시작했다가 백인종과 황인종이 가장 나중에 분화되었다는 의미 이상으로 다른 정보를 주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백인종과 황인종이 흑인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이야기가 한국사에 뭔가 의미있는 정보를 줄까요? 참고로 백인과 황인의 유전적 거리가 가깝다는 이야기와 백인이 동북아시아에 거주했다는 이야기는 상관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입니다. 3인종 가운데서 그렇다는 것이지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 말의 의미가 곧 "흑인종은 같은 인류여도 좀 다르다"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dna는 모두 동일하니까요.
여담인데 -_- 저런 특징을 가지고 삼국지에 나오는 손권이 사실 오부인이랑 어떤 표류중인 외국인이랑 바람나서 낳은 자식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죠; 입이 크고 눈동자가 번쩍이는 빛을 내고(강표전) 자주빛 수염을 가지고 있다(배주) 그러고 보면 손권도 좀... 수상하네 -_-
저. 괴유도 하멜처럼 부여에 잡혀서 고생하다가 고구려로 도망친게 아닐까요? 왜, 하멜 일행이 중간에 청나라 사신과 접촉한적이 있었잖아요. 조선 조정은 하멜 일행을 숨겼지만 말입니다. 부여에서 잘 대해주지 않으니까 고구려로 투항했을 가능성은 있을까요?
저는 투항했다고 봅니다. 윗 글에도 적었지만 투항한 사람일 것 같습니다. 투항의 이유는.... 뭐.... 뭔질 모르겠네요. 기록이 없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