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경계 고개로
팔월이 하순으로 접어든 월요일이다. 아직 한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아 더위가 가시질 않아도 내일로 처서가 다가왔다. 어제도 노약자나 농촌에는 야외 활동을 자제하십사는 재난 문자가 계속 날아들고 있었다. 늦더위 노염(老炎)을 잔서(殘暑)라고도 하는데 늦여름의 한 풀 꺾인 더위를 이른 말이다. 아마 처서가 지나면 더위는 하루가 다르게 기세가 누그러져 가지 않을까 싶다.
날이 밝아오는 아침에 나설 산책 행선지를 달천계곡으로 정했다. 그곳으로 들어가 이맘때 피는 물봉선꽃을 완상하고 함안 경계 고개를 넘어 칠원 산정마을로 나갈 생각이었다. 현관을 나서 이웃 동 아파트단지 뜰에서 꽃을 가꾸는 꽃대감을 만나 안부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 취미활동이 달라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다. 꽃밭에는 맨드라미가 제철을 맞아 붉은 꽃송이를 밀어 올렸다.
친구는 공직에서 은퇴 후 실내 빙상장에서 스케이트로 건강을 다져가고 있다. 중년에 롤러스케이트를 타본 경력이 있어 얼음판을 질주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아침저녁 틈을 내 아파트단지 뜰에 꽃을 가꾸어 입주민들로부터 치사를 받는다. 이웃 동 뜰에는 친구 말고도 꽃을 가꾸면서 소일하는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있어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꽃 대궐이다.
친구와 헤어진 나는 반송시장으로 나가 김밥을 마련해 동정동으로 가서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굴현고개를 넘어간 외감마을 입구에 내러 동구 밖을 지나니 안개가 짙게 끼어 사위가 분간되지 않을 정도였다. 교외로 나간 동읍이나 북면 일대는 주남저수지와 낙동강이 가까워 일교차가 큰 아침이면 안개가 종종 끼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계절이 바뀌는 때임을 실감했다.
몇몇 식당이 들어선 동구에서 달천계곡으로 드니 산행이나 산책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오토캠핑장에서 미수 허목 유허지 빗돌을 지난 계곡에는 맑은 물이 시원스레 흘러갔다. 달천계곡은 강수량이 어느 정도 되는 여름이면 물이 넉넉하게 흘러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 나는 이즈음 임도 길섶에 피는 물봉선이 궁금해 찾아갔는데 예상대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올해는 비가 한꺼번에 많이 내렸던 적도 있어 개울 가장자리 자라던 물봉선은 넘쳐흐른 물살에 휩쓸려 갔다. 산책로를 겸하는 임도 갓길 자라는 물봉선은 잎줄기를 한창 불려 앞으로 선홍색 꽃송이를 가득 달지 싶었다. 그런데 당국에서는 가을이 오기 전 길섶의 풀을 자르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면 잘 자란 물봉선의 멱도 예초기 칼날에 잘려 나가기 일쑤라 먼저 와 꽃을 감상했다.
임도를 따라 울라 천주암을 거쳐 만남의 광장 고개에서 오는 길과 합류해 함안 경계 고개로 나아갔다. 거기 응달에도 물봉선꽃이 피어나고 바위틈에 흐르는 석간수를 받아 마시고 손을 씻었더니 더위를 잊을 만했다. 길섶에는 벌개미취가 연보라 꽃을 피워 있었다. 국화과 야생화로는 벌개미취가 가장 이르게 피고 연이어 쑥부쟁이나 구절초나 산국이 꽃을 피우면 가을이 깊어질 테다.
함안 경계 고개 쉼터에서 준비해간 김밥을 먹었다. 앞으로 진행 방향에는 쉴만한 자리가 없어 점심때가 일러도 끼니를 해결했다. 쉼터에 한동안 머물다가 산정마을로 가니 임도 길섶에 핀 노란 꽃이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흔한 달맞이꽃이고 다른 하나는 마타리가 피운 꽃이었다. 황순원 ‘소나기’ 소설에 나왔던 마타리꽃이다. 길바닥에 짚신나물도 꽃을 피웠는데 역시 노란색이었다.
수종 갱신 지구는 더위에도 예초 작업을 하고 일손을 거두는 일행을 만났다. 그들은 이른 아침 승합차를 타고 산으로 올라와 칡넝쿨과 무성한 풀을 자르던 일을 끝내고 하산하는 즈음이었다. 인부들이 차를 타고 떠난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 산정마을에 닿았다. 먼저 내려간 예초 인부들은 마을 정자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는 합성동 터미널에서 들어온 농어촌버스를 타고 왔다. 2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