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5월은 남편의 생일이 들어있다. 그 때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달성공원 앞에 돼지껍데기 사먹으러 한 번 가야하는데...." 남편은 생일이면 돌아가신 어머님과 달성공원 앞에서 돼지껍데기와 막걸리 사먹던 날들의 이야기를 해마다 재방송을 한다.
어머님 나이 마흔에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남편은 어머님 앞에서 곧잘 재롱도 부렸고, 대학생 되어선 같이 맞담배도 피우고 막걸리도 같이 마시러 다녔다. 늙으막에 친구같은 막둥이였고, 한글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기도 했고, 당뇨병을 앓고 계시는 어머님의 '동이(애칭)가 사이다를 먹고싶어 해서'로 사이다를 마실 수 있는 핑계거리도 되어주었다. 당뇨가 있으신 어머님께 막걸리와 돼지껍데기 볶음은 금지식품이다. 아들의 생일을 빙자(?)해서 눈치 보시지 않고 드실 수 있지 않았나 나는 추측을 한다.
남편이 늘 달성공원 앞에서 먹던 돼지껍데기 볶음을 얘기하며 입맛을 다셔도 한 번도 가보질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동물원 구경 때문에 달성공원엘 몇 번 갔지만 지금이야 일부러 거기 갈 일이 없다. 더군다나 나와 남편과 정말 맞지 않는 것이 식성이다. 남편은 걸쭉한 음식들을 좋아한다. 돼지국밥, 추어탕, 감자탕, 순대국, 개장국, 돼지껍데기 볶음...... 나는 전혀 입에도 안 대고 냄새 조차도 싫어하는 것 들이다. 그러니 남편의 추억 속의 '돼지껍데기 볶음'은 더 입맛을 다시게 하는 음식이 되어가기만 한다.
내가 기억하는 달성공원 가는 길은 '뱀골목'이다. 커다란 유리병에 온갖 색색의 뱀들이 진열되어 있고, 가게 앞엔 커다란 솥단지가 걸려 뭔가 심상찮은 냄새를 풍겨댔다. 그 앞을 지나칠 땐 호흡을 가다듬고 숨쉬지 않고 막 뛰어서 지나치는 길이었다. 남동생들은 이 뱀 저 뱀 신기하게 구경하면서 갔으니 어렸을 적 나와의 싸움 또한 얼마나 많았던지? 그리고 두꺼비 기름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그 주위엔 늘 거무칙칙한 옷을 입은 어른들이 빙 둘러 서있었고 야바위꾼들도 많았다. 구루마꾼들이 삶에 지친 얼굴로 헛탕 친 하루를 해바라기 하는 골목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 길도 정비가 되어 넓어졌지만 내 기억 속의 달성공원 가는 골목은 칙칙하기만 하다.
10여년 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달성공원을 한 번 가볼까 싶다가도 그 뱀들이 내 기억 속에서 마구 튀어나와 선뜻 말 끄내기가 무섭다. 요즘은 나에겐 포기했는지 아이들에게 할머니와 먹었던 돼지껍데기 볶음을 사먹으러 가자고 꼬드긴다. 이쯤에서 내가 백기를 들고 한 번 가봐야 할 터인데..... 내 년 음력 5월이면 남편에게 어머님과의 추억을 찾아 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막내는 불쌍하단 말을 늘 시댁에서 듣는다. 아마도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적기 때문이겠지. 늙고 병든 부모를 더 많이 봐야 하는 것이 막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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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풍경화처럼 원문보기 글쓴이: agenes
첫댓글 어이 아네스님 못이기는 척하고 한번 가주세요. 뭘 내년 음력 5월까지 기다리세요.
이번 주말에 갔다오세요.갑자기 돼지고기 껍데기가 먹고싶다고....



그러면 서방님이 "웬일이꼬
니 임신했나
" 할걸요



아니? 이런 강력한 후원군들이 복병으로 있을 줄이야? 이번 주말에요? 대구까지 가야하는데요?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제 남동생이 맛있다고 하여 한번 먹어볼까??? 했었는데 아직이네요. 다녀오세요. 내년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제 편은 하나도 없네요. ㅋㅋㅋ 갔다가 동물원 구경도 가고 서문시장(대구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구경도 하고 그럴까요? 그러면 우리남편 입이 찢어질 텐데요. 백화점은 질색인데 시장구경은 좋아해요.
하하하 세레나남 답글도 정말 재밌네요. ^^ 돼지껍데기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시던데.... 한 번 가보시죠. 한 번 드시고 혹 팬이 되실수도 있지않을까? ^^
먹기까지 하라고요? 그건 정말 어려운건데요....
근데 갑자기 코스모스님이 생각나는 것은 또 웬일일까요? 차순이님도 생각나고 ...다리 불편하신 것은 괜찮으시겠지요?코스모스님은 아드님이 돌아온 뒤로 바쁘신가??? 바이올렛님도 한마디 하실 것 같은데..블랙아트님! 돼지껍데기 하고 소주한 잔 ....크.~~ 죽인다..
저도 코스모스님 차순이님 몹시 궁금해요. 그 외 많은 분들도요. 모두 어디 가신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