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화(月季花)
只道花無十日紅(지도화무십일홍)-꽃은 열흘을 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此花無日不春風(차화무일부춘풍)-월계화는 봄바람이 필요 없다네!
一尖已剝胭脂筆(일첨이박연지필)-꽃의 윗쪽 뾰족한 껍질에선 연지 붓이 나오고,
四破猶包翡翠茸(사파유포비취용)-네 곳 비취의 사슴 뿔같은 데서 나온 것 같구나!
別來香氣桃李外(별래향기도리외)-월계꽃 향기는 복숭아 오얏의 향기와 또 다르고,
更同梅鬪雪覇中(경동매투설패중)-매화처럼 눈과 싸워 이겨 군림하는 구나!
折來喜作新年看(절래희작신년간)-새 봄이 온다는 기쁨도 저버리고
忘却今晨是季冬(망각금신시계동)-오늘 새벽이 섣달의 새벽인가도 모르고 있다네!
양만리(楊萬里)
5년을 오백년으로, 장미를 월계화라 착각했던가!
사람이 느끼는 취향에 다라 다르지만
벚꽃은 필 때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봄바람에 우수수 흩날려 흩어지는 꽃비(花雨),
한꺼번에 떨어지는 그 장관(壯觀)의 모습이 처연(悽然)하리 만큼
아름답다.
벚꽃은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열흘 붉게 피는 꽃은 없고
勢不十年長(세부십년장)-권세는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언젠가는 이렇게 한꺼번에 떨어진다는 의미를 가장 실감나게 몸으로 보여준 꽃이다.
꽃은 아무리 화려해도 긴긴날의 상징인 열흘을 넘겨 피지 못하는 법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어원은
중국 송나라 시인 양만리(楊萬里)의 “월계화(月季花)”라는 시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위에 있는 “월계화(月季花)” 시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BC140~BC87)는 궁정의 정원 안에 반드시 월계화를 재배하라고 정원사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월계화(月季花)는 계절 따라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월계화는 다른 이름으로
달마다 꽃이 핀다고 하여 월월홍(月月紅),
언제나 봄처럼 꽃이 핀다고 하여 장춘화(長春花)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꽃을 피우므로 “투설홍(鬪雪紅)‘이라고도 한다.
봄을 이기는 꽃이라 하여 “승춘(勝春)” 이라는 아호(雅號)도 갖고 있다.
월계화(月季花)를 장미(薔薇)로 착가하는 경우가 있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케이블 방송에서 재방송하고 있는 송(宋)나라 때의 청렴(淸廉)한 정치가 포청천(包靑天999~1062)을 볼 수 있다.
사심(私心) 없는 판결(判決)로 유명했고 당파에 구애됨이 없고 고관대작에게 아부와 타협이 없었으므로 청백리(淸白吏)의 대명사가 된 사람이다.
포청천(包靑天)은 월계화(月季花)를 광적으로 사랑했다고 전한다.
포청천은 월계화를 귀감(龜鑑)으로 삼아 청렴결백하였으며 공무(公務)를 중히 여기고 법을 지켰다고 한다.
포청천(包靑天)은 자신의 환갑이나 생일 기념 잔치에 하객들이 선물이나 금품을 가지고 오는 것을 절대 사절하였다.
그러나 선물로써 월계화(月季花) 화분만은 허용하였다.
포청천(包靑天)에게 월계화를 생일 선물로 가져온 사람들은 화분에
아래와 같은 시를 써서 축하 화분에 달고 들어 왔다고 한다.
花落花開無間斷(화락화개무간단)-월계화는 끊이지 않고 꽃을 피우고 지네!
春來春去不相關(춘래춘거부상관)-봄이 오고 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꽃을 피우네!
但愿相爺常健在(단원상야상건재)-어르신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勤爲百姓除贓官(근위백성제장관)-백성 위해 부정 관리와 탐관오리들을 색출하여 주세요.
그러면 포청천(包靑天)은 월계화 화분을 가져온 하객에게 아래와 같은 시로서 화답을 한다.
趙錢孫李張王陳(조전손이장왕진)-조씨 전씨 손씨 이씨 장씨 왕씨 진씨 제위들이여!
好似一盆黎民情(호사일분여민정)-여러분 서민 백성들의 열정적인 마음에 매우 흐뭇하네.
一日三餐撫心問(일일삼찬무심문)-하루 세끼를 걱정 않게 돌보겠다는 나의 마음의 선물을
丹心要學月月紅(단심요학월월홍)-월계화의 숨은 뜻을 열심히 배워 일편단심 노력 하겠네
지금 까지도 월계화(月季花)와 포청천에 대한 고사(故事)는 중국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열흘 붉게 피는 꽃은 없고
勢不十年長(세부십년장)-권세는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의 이 시구(詩句)는 소위 실세(實勢)라는 끗빨좋고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역사 속에서는 한명회(韓明澮1415~1487)가 세조, 예종, 성종의 세 왕을 거치면서 권세와 부귀를 누렸다.
한명회에게는 딸이 넷 있었는데 셋째 딸과 넷째 딸이 왕비(王妃)가 되었다.
맏딸은 세종의 부마(駙馬)인 윤사로의 며느리, 둘째 딸은 영의정 신숙주의 며느리였다.
이렇게 평생 권세를 누린 것 같아도 기간이 16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 5년정권이 들어서면 “실세(實勢)”라는 특별 이름이 붙어 다닌다.
무엇 때문에 “실세(實勢)”라는 이름이 붙는지 모르겠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잘한 사람을 “실세(實勢)”라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실세(實勢)라는 말을 들을 때 그 힘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치를 하면 정말 실세(實勢) 다울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온 학력(學力)은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는가.
대학까지 공부를 했으면 키케로의 “의무론(─義務論)”인 지혜,
정의, 용기, 인내 정도는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실세(實勢)들이 키케로의 “의무론(─義務論)”은 어디에 팽개쳤는가.
신문을 보니까 전(前)정권 핵심 실세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나온 기사를 보고 한마디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는 “참 불쌍하게” 보인다.
혹시 본인들은 속으로 “그래도 한탕 챙겼으니 본전은 뽑았다”고 생각할까
권력 !
평생 있는 것 아니다.
☺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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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정권 핵심 실세들,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이상득 前의원, 마스크 쓰고 입장… 손엔 파스
김은정 기자
입력 : 2013.07.02 03:00
[어제 항소심 결심공판]
정두언, 흰머리 늘고 얼굴 푸석
검찰, 1심 때와 마찬가지로 각각 징역 3년·1년 6개월 구형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된 이상득(78) 전 의원과 새누리당 정두언(56) 의원의 항소심 결심공판이 1일 오후 서울고법 403호 중법정에서 열렸다. 36석 규모의 법정은 지지자와 저축은행 피해자 등 70여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법정은 금방 찜통이 됐다.
두 사람은 하늘색 수의를 입고 나란히 법정에 들어섰다. 지난주 공판 때와 같이 마스크를 쓰고 나온 이 전 의원은 느린 걸음으로 책상을 짚으며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기를 반복했고 파스를 붙인 손으로 무언가 적기도 했다.
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03호 법정으로 하늘색 수의를 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마스크를 벗으며 들어서고 있다.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잠시 후 재판장의 신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두 사람은 지난 4월 각각 병보석을 신청했다가 기각됐다. 당시 녹내장과 급성폐렴을 앓고 있다고 주장한 이 전 의원은 그 후로 안경을 쓰고 있다. 정 의원 역시 흰머리가 늘었고 얼굴도 창백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2인자 또는 3인자로 통하던 두 권력자였던가 싶을 정도로 초췌해 보였다.
서울고법 형사4부 문용선 재판장은 마지막 신문에서 금품을 받은 장소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앞서 이 전 의원은 2007년 저축은행과 기업에서 정치자금 7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김덕룡(71) 전 새누리당 의원이 "이 전 의원으로부터 허위진술을 강요받았다"고 증언하며 궁지에 몰렸었지만, 이달 초 이재오(68)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이 돈을 받았다고 하는 날 이 전 의원은 온종일 국회에서 BBK특검법을 처리했다"며 유리한 증언을 했다.
정 의원은 저축은행에서 4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현역 의원으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4개월간 불구속 수사를 받다가 재판 도중 법정 구속됐다.
정 의원은 이날 최후 변론에서 "재판부가 억울함을 밝혀주면 용기 있고 소신 있는 정치인이 돼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1심과 마찬가지로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추징금 7억5000만원, 징역 1년 6개월에 추징금 1억4000만원을 구형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19일 오후 2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