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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수왕(國運隨王)
나라의 운은 임금을 따른다는 뜻으로, 나라의 흥성은 통치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國 : 나라 국(囗/8)
運 : 운전할 운(辶/10)
隨 : 따를 수(阝/12)
王 : 임금 왕(王/0)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흰쥐의 해다. 쥐는 물과 불을 아는 영물로 사고를 미리 알고 배에서 뛰어내린다. 쥐는 12지지(地支) 중 가장 앞에 있는, 으뜸 동물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과 번식을 이어나간다. 세종실록을 보면 흰 쥐가 길한 동물이라는 내용이 있다.
10천간(天干) 중 경(庚)은 오행으로 금(金)이며 흰색으로 흰쥐의 해에는 예로부터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새로운 인재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복잡하게 꼬인 세계문제와 남북 관계의 실마리가 어떻게 풀릴지 관심이 높다.
'국운은 왕을 따른다'는 국운수왕(國運隨王)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에서 유래한 말로 나라의 흥성은 통치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광개토왕은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아들로 태어나 드넓은 중원천지에 나라를 세워 동북지역에서는 가장 큰 국가를 만들었다. 그 영토는 중국의 북쪽 송화강에서 동쪽의 요하에 이르렀다.
왕이 되기 전 광개토왕의 이름은 담덕(談德)이었는데, 어렸을 적부터 호랑이를 활로 쏘아 잡을 만큼 용맹스러웠다. 12세 때 이미 태자로 책봉됐고, 18세(391년)에 왕위에 올랐다.
담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故國原王) 때에는 중국 전연(前燕)의 침략을 받곤 했다. 한번은 연나라의 왕 모용성이 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국내성에 쳐들어와 궁궐을 불태우고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꺼내갔다. 또 왕의 어머니와 함께 고구려 백성 5만여 명을 붙잡아갔다.
그러자 고국원왕은 343년에 동생을 연나라에 보내 조공을 바치고, 미천왕의 시신을 찾아왔으며 355년에 다시 조공하고 어머니도 모셔왔다. 뼈에 사무치는 회한이었지만 힘이 부족한 고구려로선 어쩔 수 없었다.
이에 아버지 고국양왕이 담덕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담덕아, 너는 반드시 아버지가 당한 이 수치를 씻어야 한다." "예, 아버님 말씀대로 고구려인의 용맹스러움을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담덕은 광개토왕으로 왕위에 오르자마자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고구려의 위상을 만방에 선포했다. 그리고 평양에 아홉 개의 절을 지어 불교를 널리 전파했으며, 나라의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의 문을 넓혀 교육에도 힘썼다.
이처럼 국운도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국운수왕은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지도자들이 새겨야 할 고사성어다. 광개토왕 같은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이 국민의 바람 아닐까.
◼ 통치자의 덕목
율곡 이이(李珥)의 천도책(天道策)에서 통치자의 덕목을 배운다
구석기나 신석기 시대의 인간에게는 법이 필요 없었다. 가족끼리 떠 돌아 다니며 배 고프면 날짐승 잡아 먹고 풀 뜯어 먹으면 되었다. 타인과 부딪힐 일이 없었기 때문에 법이란 게 필요없고 도덕이란게 필요 없었다.
그러든 것이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통치를 위한 규율이 필요했다. 법을 만들어 놓고 그 법을 어기면 사람이 사람을 처벌 하는 것이다. 모든 법의 기본은 도덕이다. 모든 사람이 도덕만 지키면 이 세상에 무슨 분란이 있겠는가.
사람은 과거를 통하여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도 시험을 치른다. 시험은 과거에 얼마만한 지식과 품성(도덕성)을 습득 했는가를 평가 하는 것이다. 어디 대학을 나왔느냐고 묻는 것도 그 대학을 들어 갈 때 과거의 평가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알 수 있는 지나온 과거를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는 어땠어도 개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개심 가능성도 과거를 평가해봐야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일국을 다스릴 통치자가 될 대통령이라면 더욱 더 과거가 깨끗하지 못하다면 비록 앞으로 잘 하겠다고 천 번, 만 번 다짐한다고 한들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은 그런 모험을 감행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일정 기간 훈련 시켜서 유사시 사용할 군인이 아니다. 과거를 철저하게 평가하여 대통령으로 자질이 준비 되어 있는 사람으로 뽑아야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십년에서 학습을 해왔다. 그들은 과거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앞으로 잘 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정신 없는 사람들이 뽑아 주었겠지만 재임 기간은 정확히 과거의 연장선이었다. 이들에게서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머리와 가슴만을 가졌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상무정신이 없었다.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12세에 즉위하여 을사사화, 정미사화, 을유사화,
을묘왜변을 겪었다. 그렇기에 이이(李珥)는 이 지뢰밭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
최인호의 장편 소설 유림 6권 중 5권의 율곡 이이 편을 참고하면 1558년 명종13년 겨울 별시의 시험문제는 策이었다. 문제의 요지는 이랬다.
하늘의 도는 알기 어렵고 또 말하기도 어렵다.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서 한 번 낮이 되었다가 한 번 밤이 되었다가 하는데, 더디기도 하고 빠르기도 한 것은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것인가.
간혹 해와 달이 한꺼번에 나와서 때로는 겹쳐 일식과 월식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오성(五星)이 씨줄(緯, 가로)이 되고, 뭇별(衆星)이 날줄(經, 세로)이 되는 것을 또한 자세히 말 할 수 있겠는가.
경성(景星)은 어떤 때에 나타나며 혜성(彗星)은 또한 어떤 시대에
보이는가.
혹은 말하기를 '만물의 정기가 하늘에 올라가면 별이 된다' 하였으니, 이 말은 또한 무엇에 근거하는 것인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곳에서 시작하며, 어디로 돌아가는가,
어떤 때는 나뭇가지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불기도 하여 잔잔한 바람(小女風)이 되기도 하고, 구모풍(颱風)이 되기도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이(李珥)가 쓴 답인 천도책(天道策)의 주요 부분을 옮겨 보면, "가만히 말하건대 만화(萬化)의 근본은 한 음양(陰陽)일 따름입니다. 이 기가 음직이면 양이 되고, 고요하면 음이 됩니다. 한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한 것은 기(氣)요, 움직이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이(理)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곧 천지의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이 또한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또한 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임금이 마음을 바로 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함으로써 사방을 바르게 하고, 이렇게 하여 사방이 바로 잡히면 천지의 기운도 바르게 된다."
명나라의 조정 사이에서도 널리 회자되어 많은 중국의 선비들이 '해동의 공자'라고 불리든 이이의 천도책은
'사람의 마음이 천지의 마음(人之天地之心也)'이라 했다.
유가에 있어서 율곡 이이의 천도책은 최고의 군주론(君主論)이었다.
도둑에게 우리 대신 도둑놈을 잡아 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 천도책(天道策)
천도책(天道策)이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치(理致)'라는 뜻의 글이다. 1558년(명종 13) 이이(李珥)가 별시해(別試解)에 장원하였을 때의 답안(答案)이다. 이때 과거의 시제(試題)가 '천도책(天道策)'이었다. '율곡전서' 권14의 잡저에 수록되어 있다.
율곡 이이 선생의 천도책(天道策)
명종 13년 1558년에 율곡 이이 선생이 23세때 문과 별시를 보러 갔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런 저런 방황을 했던 이이는 요즘으로 치면 명문가도 아니고 주목 받던 신진도 아니었습니다.
이해 별시의 제책 문제를 낸 출제자들은 성격이 좀 특이해서 상당히 어려운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출제하고 문제속에 함정도 넣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율곡 이이라는 한 고시생의 답안을 받고 이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답안은 조정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고, 당시 우수답안이 다 그랬듯이 이리 저리 필사되어 돌았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답안은 세로 약 30cm에 가로 약 10m의 크기로 약 2,500자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시간 정도에 걸쳐 완성하였으며, 그 내용을 보면 조선 중기시절 당시 성리학(性理學)적 입장에서 바라본 우주관(宇宙觀)에 대한 생각을 살필수 있고, 이때 벌써 이율곡선생은 퇴계 이황선생의 우주만물에 대해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는 다른 명리(明理)에 대한 다른 이론인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완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읽어보아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과연 해동주자(海東朱子)라 칭할만한 대문장입니다.
참고로 전시(殿試)인 대과시험에서는 임금이 문제를 출제하였고, 임금이 배석하지 않는 별시(別試) 등의 시험에서는 주로 3정승이 함께 의논하여 문제를 정하는데 질문하는 문제를 책문(策問)이라 하고 그에 대한 답안지를 대책(對策)이라 합니다.
○ 책문(策問)
천도(天道)는 알기도 어렵고 또 말하기도 어렵다.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서 한 번은 낮이 되고 한 번은 밤이 되는데, 더디고 빠른 것은 누가 그렇게 한 것인가?
간혹 해와 달이 함께 나와서 서로는 겹쳐서 일식과 월식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오성(五星)은 씨[緯]가 되고 여러 별은 날[經]이 되는 것을 또한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경성(景星, 상서로운 별)은 어느 때에 나타나며 혜발(彗孛, 상서롭지 못한 별 이름)이 나오는 것은 역시 어느 때 있는 것인가?
혹자가 말하기를, "만물의 정기(精氣)가 올라가서 여러 별이 된다" 하는데, 이 말은 또한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바람은 어느 곳에서 일어나 어디로 들어가는가?
어떤 때에는 불어도 나무가 울리지 아니하는데, 어떤 때에는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 뜨리며, 순풍도 되고 폭풍도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구름은 어디로부터 일어나며, 흩어져서 오색(五)이 되는 것은 무엇에 감응한 것이며, 간혹 연기 같고 연기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욱욱(郁郁)하고 분분(紛紛)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안개는 무슨 기운이 발한 것이며, 그것이 붉고 푸르게 되는 것은 무슨 징조인가?
누런 안개가 사방을 막기도 하고, 낮에 많은 안개가 끼어 어둡기도 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우레와 벼락은 누가 이를 주재하여 그 빛이 번쩍번쩍하고 그 소리가 두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간혹 사람이나 물건이 벼락을 맞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인가?
서리는 풀을 죽이고 이슬은 만물을 적시는데, 서리가 되고 이슬이 되는 이유를 들어 볼 수 있는가?
남월(南越)은 따뜻한 지방으로 6월에 서리가 내리는 것은 혹독한 괴변(怪變)인데, 당시의 일을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비는 구름을 따라 내리는 것인데, 간혹 구름만 자욱하고 비가 오지 아니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농씨(神農氏) 때에는 비가 오기를 원하면 비가 오는 태평한 세상이라 36번의 비가 있었으니 천도(天道)도 사사롭게 후(厚)한 것이 있는가?
혹은 군사를 일으킬 적에 비가 오고, 혹은 옥사(獄事)를 판결할 적에 비가 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초목의 꽃술은 다섯 잎으로 된 것이 많은데, 눈꽃[雪花]은 유독 여섯 잎으로 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눈 위에 눕고 눈 속에 서는 것과, 손님을 영접하고 벗을 방문하는 일들도 다 말할 수 있는가?
우박[雹]은 서리도 아니고 눈(雪)도 아닌데, 무슨 기운이 모인 것인가?
어떤 것은 말의 머리만큼 크고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커서 사람과 새와 짐승들을 죽인 것은 어느 때에 있었는가?
천지가 만상(萬象)에게 각각 그 기운을 두어서 이루었는가 아니면 한 기운이 유행(流行)하다가 흩어져서 만상이 되었는가?
간혹 보통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하늘의 기운이 일그러진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의 일이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어떻게 하면 일식과 월식이 없을 것이며 별이 제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며, 우레와 벼락이 치지 않을 것이며, 서리가 여름에 내리지 않을 것이며, 눈이 너무 많이 내리지 아니하며, 우박이 재앙이 되지 아니하며, 풍해와 수해가 없이 각각 그 질서에 순응하여 마침내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육성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그 도는 어떤 것에서 말미암는가?
여러 선비들은 널리 경사(經史)에 통하여 능히 이런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니 각각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 대책(對策)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그 이(理)는 지극히 미묘하고, 그 상(象)은 지극히 드러났으니 이 말을 아는 이라야 더불어 함께 천도(天道)를 논(論)할 것입니다.
이제 집사(執事) 선생께서 지극히 미묘하고 지극히 현저한 도(道)로써 문목(問目)을 내어 궁구하고 연구한[窮格] 논설을 듣고자 하니, 진실로 학문이 천(天)과 인(人)을 다한 이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이것을 논하겠습니까?
청컨대, 어리석은 저는 평상시에 선각자에게 들은 바로써 밝은 물음에 만(萬)의 한 가지라도 답하고자 합니다.
그윽이 이르건대, 만화(萬化)의 근본(根本)은 오직 음양(陰陽)뿐입니다. 이 기(氣)가 동(動)하면 양(陽)이 되고 정(精)하면 음(陰)이 됩니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한 것은 기(氣)요, 동하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이(理)입니다. 대개 형상이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때론 오행의 바른 기가 모인 것도 있고, 혹은 천지의 괴이한 기를 받은 것도 있습니다.
또한 음양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나기도 하고 혹은 두 기[二氣]의 발산하는 데서 나기도 하기 때문에 해와 달과 별은 하늘에 걸렸고, 비와 눈과 서리와 이슬은 땅으로 내립니다.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고 우레와 번개가 일어나는 것은 이 기(氣)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하늘에 걸리게 하고 땅에 내리게 하며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게 하고 우레와 번개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이 이(理)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음과 양이 진실로 조화하면 저 하늘에 걸린 것은 그 절도를 잃지 아니하고, 땅에 내리는 것은 다 때에 순응하여 바람과 구름과 우레와 번개가 다 화(化)한 기운 속에 있을 것이니, 이는 이(理)의 떳떳한 것입니다.
음과 양이 조화하지 않으면 그 행하는 것이 절도를 잃고 그 발산하는 것이 때를 잃을때 바람과 구름과 우레와 번개는 다 괴이한 기(氣)에서 나옵니다. 이는 이(理)가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天과 地의 마음이라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天地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氣)가 순하면 天과 地의 氣도 순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理)가 떳떳하거나 변하는 것을 일체 천도(天道)에만 맡겨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홍몽(鴻濛; 어둡고 아득한 모양)이 처음으로 갈라져서 해와 달이 교대로 밝으니 해는 태양의 정(精)이 되고 달은 태음의 정이 됩니다.
양정(陽精)은 빠르게 운행하기 때문에 하루에 하늘을 한 바퀴 돌고, 음정(陰精)은 더디게 운행하기 때문에 하루에 다 돌지 못합니다.
양(陽)이 속하고 음(陰)이 더딘 것은 기요, 음이 더디게 되는 것과 양이 빠르게 되는 것은 이(理)입니다.
저는 누가 그렇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겠으나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해는 임금의 상징이요. 달은 신하의 상징입니다.
그 운행하는 궤도를 같이 하고, 그 모이는 데 절도를 같이 하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日蝕)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月蝕)이 되는 것입니다.
저 달이 희미한 것은 오히려 변괴(變怪)가 되지 아니하나 이 해가 희미한 것은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미약한 까닭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깔보고 신하가 임금을 거역하는 형상입니다.
하물며 두 해가 한꺼번에 나오거나 두 달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은 비상한 괴변(怪變)이니 다 괴이(怪異)한 기(氣)로 인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찍이 옛일을 탐구해 보니, 재앙과 변괴는 덕을 닦는 치세(治世)에는 나타나지 아니하고, 박식(薄蝕)의 변(變)은 다 말세의 쇠한 정치에서 나왔으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합하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늘이 푸른 것은 기가 쌓여 있는 것이요, 바른 색(色)은 아닙니다.
만약 별이 찬란하게 기강(紀綱)이 되지 않는다면 천기(天機)의 운행은 아마도 구명(究明)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별이 반짝반짝하고 가물가물하는 것은 각각 제자리와 차례가 있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모두 원기(元氣)의 운행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뭇별들은 하늘을 따라 운행하고 스스로 운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날[經]이라 하고, 오성(五星)은 때를 따라 각각 나타나고, 하늘을 따라 행하지 않기 때문에 씨[緯]라고 합니다.
하나는 정한 차례가 있고 하나는 일정한 절도(節度)가 없습니다. 그 대개(大槪)를 말하자면 하늘은 날[經]이 되고 오성은 씨[緯]가 됩니다. 그 상세(詳細)한 것을 말하자면 한 장의 종이에다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상서로운 별도 상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변괴로운 별도 상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성(景星)은 반드시 밝은 세상에 나타나고 혜발(彗孛)은 반드시 쇠한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 우순(虞舜)의 학문이 밝은 세상에는 경성이 나타났고 춘추전국 시대에는 혜발이 나타났습니다.
우순같이 다스린 시대가 한 번 뿐이 아니며 춘추와 같이 어지러운 시대도 한 번만이 아닌데 어찌 일일이 들어 진술하겠습니까.
만물의 정기(精氣)가 위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하는 따위는 저는 삼가 의혹(疑惑)을 가집니다. 별이 하늘에 있는 것은 오행의 정(精)이요, 자연의 기(氣)입니다. 저는 '어떤 물(物)의 정기가 어떤 별이 되었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팔준(八駿)이 방성(房星)의 정기가 되었고, 부열(傅說)이 죽어서 별이 된 것과 같은 따위는 산과 물이 있는 큰 땅이 그림자를 푸른 하늘에 보낸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는 선비가 믿을 바가 아닙니다.
별의 기운이 다된 것은 기가 허(虛)하여 엉긴 것입니다. 그것이 혹시 음기(陰氣)가 맺히지 못하여 간혹 떨어져서 돌이 되기도 하고 언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제가 소자(邵子)에게 들었으나, 물의 정기가 별이 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대개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다 기(氣)입니다. 음기가 엉기고 모여서 밖에 있는 양기가 들어가지 못하면 돌고 돌아서 바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물의 기운은 비록 말하기를, '간방(艮方)에서 나와서 곤방(坤方)으로 들어간다'고 하나, 그 음의 모이는 것이 정(定)한 곳이 없으므로 양의 흩어지는 것도 방향(方向)이 없는 것입니다.
큰 땅덩이가 기(氣)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어찌 한 방위(方位)에서만 얽매일 것이겠습니까.
동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만물을 기르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동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숙살(肅殺)하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서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가시나무에 새 집을 짓고 빈 구멍에 바람이 불지만 그렇다고 빈 구멍에서 처음 시작된다고 할 것입니까?
정자(程子)의 말에, '올해의 우레는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난다' 하였으니, 저로서는 바람이 흔들흔들하고 살랑살랑하는 것은 기(氣)가 부딪치면 일어나고 기가 쉬면 그치는 것으로 당초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치세(治世)는 음과 양의 기가 펴져서 맺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흩어지더라도 반드시 화(化)하여 불어도 나뭇가지가 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도(世道)가 이미 쇠하면 음과 양의 기운이 서리어 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흩어질 적에 반드시 격동(激動)하여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 뜨리는 것입니다.
순풍[少女]은 화(化)하게 흩어지는 것이요, 폭풍[颶母]은 격동해서 흩어지는 것입니다.
성왕(成王)이 한 번 생각을 잘못하자 큰 바람이 벼를 쓰러뜨렸고, 주공이 수년(數年) 동안 덕화(德化)를 펴자 바다에는 풍파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운이 그렇게 된 것은 역시 인간의 일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만약 산천의 기운이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 것이라면 좋고 나쁜 징조를 그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왕(先王)은 영대(靈臺)를 설치하고 기상을 살펴서 길흉의 징조를 고찰하였습니다.
대개 좋고 나쁜 징조는 일어나는 그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전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희면 반드시 흩어지는 백성이 있고 구름이 푸르면 반드시 곡식을 해하는 벌레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은 구름이 어찌 수재(水災)의 징조가 되지 않으며 붉은 구름이 어찌 전쟁의 징조가 되지 않겠습니까.
누런 구름만이 풍년이 들 상서로운 징조이니 이는 곧 기운이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것이 분분하게 빛나고, 맑게 흩어져 유독 지극히 화한 기운을 얻어서 성왕(聖王)의 상서로운 것이 되는 것은 오직 경사로운 구름[慶雲]입니다.
진실로 백성의 재물을 살지게 하고 노여움을 풀어 주는 덕이 없으면 이것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어찌 수(水)와 토(土)의 맑고 가벼운 기운이 한갓 백의 청구(白衣靑狗)가 되는 데 비할 것이겠습니까.
안개는 음기(陰氣)가 새지 못하여 김[蒸]이 막혀서[鬱] 된 것입니다.
물체의 음기가 모인 것도 능히 안개를 낼 수 있으니, 대개 산천의 나쁜 기운입니다. 그 붉은 것은 병상(兵象)이 되고, 푸른 것은 재얼(災孽)이 되는 것은 다 음이 성한 징조입니다.
역적 왕망(王莽)이 한(漢)나라를 참위(僭位)했을 때에는 누런 안개가 사방에 쌓였고, 천보(天寶)의 난 때에는 큰 안개가 낮에 끼어 어두웠으며, 한고조(漢高祖)가 백등(白登)에서 포위되었을 때나, 문산(文山; 문천상文天祥)이 시시(柴市)에서 죽을 때에는 다 흙먼지가 일어났습니다.
혹시 신하가 임금을 반역한다거나 혹시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한다거나 하면 이런 것은 다 가히 그 비유로써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기가 발산한 뒤에 음기가 양기를 싸서 양기가 나오지 못하면, 떨치고 쳐서 우레와 번개가 됩니다. 우레는 반드시 봄과 여름에 일어나니 이는 천지의 노한 기운입니다.
빛이 번쩍이는 것은 양기가 발하여 번개가 된 것이요, 소리가 두려운 것은 두 기[二氣]가 부닥쳐서 우레가 된 것입니다.
예전 선비들이 말하기를, '우레와 번개는 음양의 정기(正氣)라, 벌레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간사한 사람을 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도 진실로 사기(邪氣)가 모인 것이 있고 물(物)도 역시 사기가 붙어 있으니, 정기가 사기를 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이치입니다.
공자께서 심한 천둥이 칠 때면 반드시 얼굴빛이 변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물며 마땅히 벼락이 쳐야 할 곳에 친 경우이겠습니까?
상(商)의 무을(武乙)과 노(魯)의 이백(夷伯)의 사당에 벼락이 친 것은, 이런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반드시 어떤 주체가 그 벼락 치는 권한[柄]을 잡고 주관하는 것이다'고 한다면, 이는 천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또 양기가 펴질 때에 이슬로써 만물을 적시는 것은 구름의 젖은 기운이요, 음기가 혹독할 때에 서리로써 풀을 죽이는 것은 이슬이 맺힌 것입니다. 시경에, '갈대는 푸르고 푸르른데, 흰 이슬은 서리가 된다'고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혹시 음기가 지극히 성하면 서리가 제 시기에 내리지 아니합니다. 위주(僞周)가 조정에 임하자, 음양의 위치가 바뀌어 남월(南越)은 지극히 따뜻한 지방인데도 6월에 서리가 내렸으니, 생각건대 이는 필시 온 세상이 온통 몹쓸 음기(陰氣) 속에 갇혀 있어서인 듯합니다. 무씨(武氏)의 일은 말할 수 있지만 말하려면 길어집니다.
비와 이슬은 다 구름에서 나오는 것인데 젖은 기운이 성한 것은 비가 되고, 젖은 기운이 적은 것은 이슬이 됩니다. 음양이 서로 합하면 이에 비가 내리는데 간혹 구름만이 자욱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아래위가 서로 합하지 못해서입니다.
홍범전(洪範傳)에 이르기를, '황제가 지극하지 못하면 그 벌(罰)은 항상 음(陰)하다'고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또 양이 지극히 성하면 가물고 음이 성하면 장마가 지는데, 반드시 음양이 조화하여야 비로소 비 오거나 맑은 날씨가 때를 맞춥니다.
대개 신농씨 같은 성인의 순박하고 밝은 시대에 있어서 맑은 날씨를 바라면 맑고 비를 바라면 비가 온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성왕(聖王)이 백성을 다스릴 때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5일에 한 번씩 바람이 불고 10일에 한 번씩 비가 내린 것도 역시 그 떳떳한 이치입니다.
이같은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 같은 보응이 있는 것이니, 어찌 천도(天道)가 사사로이 후(厚)하게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억울한 기운은 한재(旱災)를 부르기 때문에 한 여자가 억울함을 품어도 오히려 흉년(凶年)을 이룹니다.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긴 것이 족히 천하의 억울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고, 안진경(顔眞卿)이 옥사를 판결한 것이 한 지방의 억울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알맞게 비가 내린 것이 괴이(怪異)할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태평한 세상에는 본래 한 사내나 한 아녀자조차도 그 은택을 입지 않은 이가 없으니, 어찌 비와 바람이 순조롭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추울 때에는 하늘과 땅이 비록 닫히고 막혔으나 음양이 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비가 엉겨서 눈이 되는데, 이는 대개 음기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초목의 꽃은 양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꽃술이 다섯 잎이 난 것이 많은데, 5는 양의 수(數)입니다. 눈꽃[雪花]은 음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유독 여섯 잎이 되었으니, 6은 음의 수입니다. 이 역시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원안(袁安)이 문을 닫고 눈 위에 누운 것과 구산(龜山)이 뜰에 선 것과 왕원보(王元寶)의 난한회(暖寒會)와 왕자유(王子猷)의 산음(山陰)의 흥(興)과 같은 것은, 혹은 고요한 것을 지키는 낙이 있고 혹은 도(道) 있는 이를 찾는 정성이 있어서이며, 혹은 호사하던지, 혹은 방종한 데서 나온 것으로서 다 천도와 관계되지 않는 것이니 어찌 오늘 말할 거리가 되겠습니까.
또 우박은 어그러진 기운에서 나온 것입니다. 음기가 양기를 협박하기 때문에 그 발(發)할 때는 물을 해칩니다.
옛일을 상고하면 우박이 큰 것은 말 머리만 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 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짐승을 죽였던 일이 혹은 전란이 심한 세상에 일어나기도 하였고 혹은 화를 일으킨 임금을 경고하기 위하여 일어나기도 하였으니, 그것이 역대의 경계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반드시 여러 번 진술하지 않더라도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아, 한 기운이 운행하고 조화하여 흩어져서 만 가지 형상이 되는 것이니, 나누어 말하면 천지와 만 가지 형상이 각각 한 기운이나 합하여 말하면 천지와 만 가지 형상이 모두 같은 한 기[一氣]입니다.
오행의 바른 기운이 모인 것은 해와 달과 별이요, 천지의 어그러진 기운을 받는 것은 혼무와 흙비, 안개와 우박이 됩니다.
천둥과 번개는 두 기[二氣]가 서로 부닥치는 데서 생기고, 바람과 구름과 비와 이슬은 두 기가 서로 합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니, 그 구분은 비록 다르나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집사(執事)께서 편(篇)의 끝에서 또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육성되는 것은 그 도가 무엇에 말미암은 것인가?' 하였는데, 어리석은 저는 이 말에 깊은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듣건대, '임금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함으로써 사방을 바르게 하여야 하니, 사방이 바르면 천지의 기운도 바르다'고 하였고, 또 듣건대, '마음이 화하면 몸이 화하고, 몸이 화하면 기운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면 천지의 환한 기운이 응한다'고 하였으니, 천지의 기운이 이미 바르면 해와 달이 어찌 서로 침해하며 별이 어찌 그 자리를 잃는 일이 있겠습니까.
천지의 기운이 이미 화하면 천둥과 번개와 벼락이 어찌 그 위력을 내며, 바람과 구름과 서리와 눈이 어찌 그때를 잃으며, 흙비가 내리는 어그러진 기운이 어찌 그 재앙을 만들겠습니까.
하늘은 비와 볕과 더운 것과 추운 것과 바람으로써 만물을 생성하고, 임금은 엄숙함과 다스림과 슬기와 계획, 신성함[聖]으로써, 위로 천도에 응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제때에 비를 내리는 것은 엄숙함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볕이 나는 것은 다스림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더운 것은 슬기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추운 것은 계획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바람 부는 것은 신성함에 응한 것입니다.
이로써 본다면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육성하는 것은 어찌 임금 한 사람이 덕(德)을 닦는 데 달려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사(子思)가 이르기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라야 능히 화육(化育)할 수 있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양양(洋洋, 넓고 큰 모양)히 만물을 발육하여 높이 하늘에 닿았다'고 하였으며, 정자가 이르기를, '천덕(天德)과 왕도(王道)의 요령은 다만 홀로 삼가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 지금 우리 동방의 동물과 식물이 모두 자연의 화육(化育) 속에 고무(鼓舞)되는 것이 어찌 성상의 홀로 삼가는 데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집사께서 미천한 자의 어리석은 말을 임금께 상달하신다면, 가난한 선비는 움막 속에서도 유한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대답합니다.
○ 요지(要旨)
율곡선생의 천도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겉치레라도 살펴보면,이(理)라는 것이 만물의 본질(本質)을 말함이고, 기(氣)라는 것은 만물의 본질이 아닌 보여지는 현상(現象)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이는 현실에서의 개혁과 실천을 중시하는 인물로써 기를 다스림으로써 본질인 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파하였으며, 이 글로 유추해 보면 실천철학자가 아닌 수양철학자의 관점에서 지극히 형이상학적으로 논지를 시작하면서도 본인이 도달하고자 하는 주장, 즉 뜬구름만 잡을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당시 현 세태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상천(上天)의 일은 무성무취(無聲無臭)하여 그 이(理)는 지극히 은미하고 그 상(象)은 지극히 현저하니, 이 설(說)을 아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천도(天道)를 논할 수 있다. 이제 집사(執事) 선생께서 지극히 은미하고 현저한 도(道)로써 발책(發策)하여 격물(格物), 궁리(窮理)의 설을 듣고자 하니, 이는 진실로 천인(天人)의 도를 궁구한 자가 아니면, 어찌 이것을 같이 논할 수 있겠는가? 나는 평일에 선각자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밝은 물음에 만분의 일이나마 답하려고 한다"며 운을 띠고 있다.
이어서 "기(氣)가 동(動)하면 양(陽)이 되고, 정(靜)하면 음(陰)이 되나,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하는 것은 기요, 동하게 하고 정하게 하는 것은 이이다. 천지의 사이에 형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오행의 정기가 모여서 된 것도 있고, 천지의 괴기(乖氣)를 받은 것도 있고, 음양이 서로 격동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고, 음양 이기(二氣)가 발산하는 데에서 생긴 것도 있다. 그러므로 일월성신(日月星辰)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 비와 눈과 서리와 이슬이 땅에 내리는 것,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는 것, 우뢰와 번개가 일어나는 것은 기가 아님이 없으며, 하늘에 걸려 있는 까닭, 땅에 내리는 까닭, 풍운(風雲)이 일어나는 까닭, 우뢰와 번개가 일어나는 까닭은 모두 이가 아님이 없다"고 말하면서 천지우주의 원리를 이기에서 제시한다.
다음으로 "이기(二氣)가 진실로 조화되면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 그 도(度)를 잃지 않고, 땅에 내리는 것이 반드시 시(時)에 맞으며, 풍운뇌전(風雲雷電)이 모두 화기(和氣) 속에 있으니, 이는 이(理)의 상(常)이다. 이기(二氣)가 조화되지 않으면 운행이 도를 잃고, 그 발산함이 시(時)를 잃어 풍운뇌전이 모두 괴기에서 나오니, 이는 이(理)의 변(變)이다"고 말해 이기의 조화에 대해 설명한다.
끝으로 "그런데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順)하면 천지의 기도 순하다. 그렇다면 이의 상(常)과 이의 변(變)을 어찌 한결같이 천도에 맡길 수 있겠는가? (…) 성왕(成王)이 한번 잘못 생각하매 대풍(大風)이 벼를 쓰러뜨렸고, 주공(周公)이 수년을 교화하매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았으니, 그 기가 그렇도록 시킨 것도 또한 사람의 일(人事)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 아아, 일기(一氣)의 운행 변화가 흩어져 만수(萬殊)가 되나, 나누어서 이를 말하면 천지만상이 각각 일기(一氣)이지만, 합하여 이를 말하면 천지만상이 같은 일기(一氣)이다. (…) 이로써 본다면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육성되는 것이 어찌 임금 한 사람의 수덕(修德)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라 하여 통치자의 태도를 언급하고 있다.
언급된 내용은 이기론(理氣論)에 입각한 우주관이며 또 천인합일설이다. 물론 이이의 '천도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교와 노장철학을 위시한 제자학(諸子學) 등 여러 종파 및 학파의 사상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이는 유학의 본령(本領)을 들어 그 기본 정신에 투철했으며, 철학적으로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현실 문제에까지 연결시켰던 것이다.
당시 시험관이었던 정사룡(鄭士龍)과 양응정(梁應鼎) 등은 이이의 2,500여 자에 달하는 책문을 보고 "우리들은 여러 날 애써서 생각하던 끝에 비로소 이 '문제'를 구상해냈는데, 이모(李某)는 짧은 시간에 쓴 대책(對策)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천재이다"고 말하였다.
이이의 '천도책'은 당시의 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후일 명나라에까지 알려졌다. 1582년(선조 15) 겨울, 중국의 조사(詔使)로 온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 황홍헌(黃洪憲)이 원접사로 나온 이이를 보고 역관(譯官)에게 "저 사람이 '천도책'을 지은 분인가?"라고 물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이의 명성은 이미 그 당시 중국의 학계에까지 널리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
2015년 말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한 바 있다. '혼용무도'는 '혼용'과 '무도'가 합쳐진 합성어로 '혼용(昏庸)'은 말 그대로 '어리석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가 모자라고, 어떤 재능도 없는' 상태나 사람을 가리킨다.
'무도(無道)'는 글자대로라면 '도가 없다'는 뜻인데, 대개는 '대역무도(大逆無道)'나 '황음무도(荒淫無道)'라는 네 글자를 많이 쓴다. '무도'는 덕을 베풀지 않는 포악한 정치, 그로 인해 조성된 암울하고 혼란한 정치 상황, 그런 정치를 일삼는 통치자를 나타내는 단어로 수천 년 동안 수없이 사용되어 왔다.
지금의 나라 사정은 불행하게도 혼용무도라는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 돼 버렸다. 어리석은 지도자로 인해 나라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큰 위기에 빠져 버렸다. 국민들은 혼용무도를 겪으며 분노하고 아파하고 있다.
특히 국민들은 혼용한 지도자 못지않게 그 주변의 간신들에게 분노하고 있다. 어리석은 지도자에게 직언 한마디 하지 못하고, 면피성 발언으로 일관하는 정치인들과 권력 주변 사람들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혼용한 군주와 간신이 나라를 망친 사례는 역사에서 숱하게 등장한다. 중국의 경우 수천 년 왕조 체제를 거치면서 약 600명의 황제나 왕을 칭한 제왕을 배출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비정상적으로 삶을 마감한 제왕이 40%가 넘는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이 '혼용무도'한 군주로 나라를 망치거나 망하게 만들었다.
○ 혼용무도한 군주의 특징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좋은 말이나 충고에는 철저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바른 말을 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품고 박해한 반면, 자신의 말과 판단 등에 맞장구를 치거나 기분을 맞춰주는 아첨배와 간신들을 총애한다. 간신 정치와 환관 정치라는 왕조 체제의 부조리가 이렇게 해서 나타난다.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의 또 다른 특징이자 공통점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자리를 과신하는 과대망상과 이를 부추기는 간신들의 아부가 합쳐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하든 잘했다고 꼬리를 치는 자들을 곁에 두고 총애하니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능력과 자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결국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과 권력자는 결국 독재나 폭력으로 흐르고, 그 최후는 예외없이 비참했다. 자신을 망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백성과 나라를 해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는 잘난 인재 열로도 모자라지만, 나라를 망치는 데는 혼용무도한 통치자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통치자가 혼용무도하게 되는 원인을 파고들면 예외 없이 개인이나 패거리의 사사로운 욕심과 만나게 된다. 이러면 공사 구분을 못하게 되고, 결국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변질된다.
선현들은 이런 문제의 근원을 가정과 교육에서 찾고 있다. '성리대전'을 보면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敎人使人, 必先使有恥).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無恥則無所不爲)"고 했다.
자신의 언행이 남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그릇된 언행을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옳은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청나라 때의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청렴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없고(不廉則無所不取),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不恥則無所不爲)"고 했다.
'혼용무도'한 통치자들 대부분이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설사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게 할 마땅한 제도적 장치나 멘토도 없었다. 결국은 자기수양, 즉 후천적 노력에 의한 자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왕조 체제에서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나 하등 다를 바가 없고, 그 '무치(無恥)'의 결과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리석고 못난 혼군은 사사로운 욕심에만 급급한 간신들을 길러내는 토양이 된다. 이런 점에서 혼군과 간신은 이란성 쌍생아이며, 이 쌍둥이가 손을 잡으면 나라가 절단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 간신의 다섯 가지 유형
'순자(荀子)'에 보면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법 집행을 담당하는 사구(司寇)라는 관직에 취임한 지 7일 만에 조정을 어지럽히던 소정묘(少正卯)를 처형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권력을 믿고 설치던 소정묘이긴 했지만 노나라의 유력자이었던지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달려온 제자 자공(子貢)은 "소정묘는 노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선생님께서 정치를 맡으신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를 죽이시면 어쩌자는 겁니까?"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통치자로서 제거해야 할 인물에는 다섯 가지 유형이 있는데 도둑질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첫째가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이고, 둘째가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이고, 셋째가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이고, 넷째가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이고, 다섯째가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이다. 이 다섯 가지 유형의 자들을 보면 모두 말 잘하고, 지식 많고, 총명하고, 이것저것 통달하여 유명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진실이 없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런 자들의 행위는 속임수 투성이며, 그 지혜는 군중을 마음대로 몰고 다니기에 충분하고, 홀로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이런 자들은 간악한 무리의 우두머리라 죽이지 않으면 큰일을 저지른다. (…) 꼭 죽여야 할 자는 낮에는 강도짓을 하고 밤에는 담장을 뚫고 들어가는 그런 도둑이 아니다. 바로 나라를 뒤엎을 그런 자를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군자들로 하여금 의심을 품게 하며, 어리석은 자들을 잘못된 길로 빠뜨린다."
공자는 나라와 백성을 해치는 간신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다. 공자의 이 논리를 지금 우리 상황에 대입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역사의 비명'이자, 우리 시대의 불행이라면 불행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간신들의 망령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정말이지 역사의 무기력을 절감한다.
아첨으로 권력자의 뜻을 떠받들다
당나라 현종(玄宗)은 집권 초반 '개원(開元)의 치(治)'라는 사상 유례가 없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후반기로 가면서 소인배와 간신들을 기용하고 사치 방탕한 생활에 젖어 결국은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초래함으로써 대당 제국은 거의 멸망 직전까지 갔다.
현종이 중용했던 간신 안록산은 뚱뚱하고 배가 불룩 나왔는데, 한번은 현종이 농담으로 "대체 그 뱃속에는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불룩 나왔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안록산은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가득 차 있을 따름입니다"고 둘러댔다.
현종은 이 아부의 말에 기분이 들떠 안록산을 나라를 지킬 대들보라 칭찬하면서 양귀비로 하여금 그를 양아들로 삼도록 권유했다.
불룩 나온 뱃속에 오로지 현종에 대한 일편단심만 가득 차 있다던 바로 그 안록산이 755년 15만 대군을 이끌고 범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현종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도망길에 올랐다. 세계를 호령하던 대당 제국은 이를 기점으로 쇠락을 향해 추락했다.
그런데 집권 초기 현종의 의식은 어떠했던가? 어쩌다 사냥이나 놀이를 나갔다가 조금이라도 시간이 지날라치면 깜짝 놀라며 "한휴(韓休)가 알면 어쩌지?"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측근 하나가 "한휴가 조정에 들어온 이래 폐하께서는 단 하루도 즐겁게 지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째서 한휴를 내치지 않습니까?"고 물었다.
이에 대한 현종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는가? 이전에 내숭은 모든 일을 내 뜻대로 따랐지만, 일을 끝내고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한휴는 내 앞에서 끝없이 바른 소리를 하지만,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히 잠을 이룰 수 있다."
간신은 언제나 인성이 가장 취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특히 누구에게나 듣기 좋고 편한 아부는 역대 간신들 모두가 능수능란하게 써먹은 수법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부나 아첨 따위로 알랑거린다'는 뜻의 '아유봉승(阿諛奉承)'이다.
최고 통치자 역시 많은 약점을 가진 인간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인성의 약점'이다. '인성의 약점'은 간신이 기생하는 숙주와도 같아 냉철한 판단력과 굳건한 의지로 지탱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 간신 위충현의 공포정치
명 왕조 후반기는 환관들의 발호로 나라가 완전히 망가졌다. 입국한 지 100여년이 지나면서 대(大) 간신 왕진(王振)이 환관 간신의 시대를 활짝 열더니, 위충현(魏忠賢)에 오면 초절정기를 맞이한다.
특히 위충현은 비밀 경찰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금의위'나 '동창' 같은 특무 기구를 동원하여 공포스러운 공안 정국을 조성하면서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제거했다.
위충현이 조성한 공안 통치 가운데 정말 기가 막힌 것은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로 위충현의 성씨인 '위' 자를 거론하는 자가 있으면 누가 되었건 잡아들여 '한 자씩 줄인다'는 엄포를 놓은 일이다.
이 해괴망측한 명령은 대체 무슨 말인가? '한 자씩 줄인다'는 말은 신체의 일부 중 한 자를 없앤다는 뜻으로, 요컨대 목을 자른다는 의미였다. 태산과도 같은 위 태감의 이런 살벌한 위세에 눌려 사람들은 감히 '위' 자를 입에 올리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었다. 관부에서 올리는 문서는 위충현의 손을 거쳐야만 했는데 여기에 '위' 자가 하나라도 들어가 있으면 황제의 성지를 빙자하여 즉시 잡아들여 죽였다.
이러니 문무 대신들 누가 감히 나서 위충현에게 맞서겠는가? 모두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 손자를 자처하며 몸보신에 급급했는데, 불과 1~2년 사이에 위충현을 아버지로 모시겠다는 자가 백수십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최정수(崔呈秀)라는 자가 가장 충실한 주구였는데, 하루는 글줄깨나 읽을 줄 아는 태감(환관)들을 좀 모으라는 위충현의 명령을 받고는 엉뚱하게 국자감으로 달려가 생원들을 잡아 불알을 까게 하는 소동을 벌였다. 혼비백산한 생원들 절반은 그날 밤으로 도망쳤고, 재수 없이 잡힌 20명은 실제로 불알을 까였다.
그 과정에서 12명은 죽고 나머지만 살아 위충현에게 보내졌다. 글줄깨나 하는 태감들 좀 모으랬더니 멀쩡하게 공부 잘 하고 있는 예비 학자들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고자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뭐라 말이 안 나온다. 과잉충성, 이것도 간신의 특징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 '복렵시랑'의 간신 이임보
당나라 현종 때의 재상이었던 이임보(李林甫)는 역대 간신들 중 학문이 형편없고 경박하기로 이름났다. 게다가 과거시험을 통해서가 아닌 종친의 신분으로 조정에 들어왔기 때문에 일쑤 무시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 때문에 이임보는 자기보다 학문이 깊거나 식견이 높은 인재들을 몹시 미워하고 질투했다. 관리를 추천할 때도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추천했고, 자신의 주위로는 늘 변변치 못한 자들을 끌어들였다.
한번은 이임보가 과거시험을 감독하게 되었는데, 수험생 하나가 답안에 '고독한 팥배나무'란 구절을 적어 넣은 것을 보고는 옆에 있던 수하에게 그 뜻을 물었다.
이 구절은 원래 '시경'에 나오는 시의 제목이었는데, 이임보는 당시 지식인의 기본 도서인 '시경' 조차 읽지 않았던 모양이다. 수하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납작 엎드렸다. 자칫 아는 척했다가 눈밖에 나면 보복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이임보가 공석이 된 호부시랑 자리에 소경이란 자를 추천했는데, 이 자도 이임보와 비슷해서 공부를 싫어했다. 그래서 중서시랑 앞에서 '복랍(伏臘)'을 '복렵'으로 읽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당시 중서시랑이었던 엄정지(嚴挺之)는 이 일을 재상 장구령(張九齡)에게 보고하며 "조정의 장관으로 어찌 '복렵시랑'을 앉힌단 말입니까? 장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게 생겼습니다, 그려!"라며 혀를 찼다.
장구령은 이 일을 현종에게 보고했고, 결국 소경은 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이 일로 이임보는 엄정지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 뒤 장구령이 엄정지를 재상으로 추천할 요량으로 당시 현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던 실세 이임보와의 관계를 개선해 보라고 엄정지에게 권했다. 그러나 꼬장꼬장한 엄정지는 재상을 포기할지언정 이임보에게 굽신거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 일로 이임보는 엄정지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나라 일을 하는데 학식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기본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외국과의 협상에서 국제 공통 언어도 제대로 말하고 번역하지 못해 국제적 망신살이 뻗친 일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 걸 보면 우리에게도 '복렵시랑'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 매관매직의 대명사 엄숭 부자
중국의 대표적 간신인 명나라 재상 엄숭. '부자 간신'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명나라 때 엄숭(嚴嵩)은 '역대 3대 간상 중 가장 많이 배웠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아들 엄세번(嚴世蕃)과 함께 숱한 악행을 저질러 이른바 '부자 간신'이란 오명을 남겼다.
아들 엄세번은 아비와는 달리 매사에 언행을 조심하지 않아 엄숭을 늘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입만 열었다 하면 황제와 자신을 견주는 오만방자함은 언젠가 큰 화를 부를 위험천만한 시한폭탄과 같았다.
엄세번은 또 문란한 사생활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는데, 첩실만 27명을 두었다. 첩실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진한 화장에 온갖 패물로 장식하는 등 그 사치가 도를 넘었다. 뿐만 아니라 코끼리 침대에 금으로 치장한 커튼 사이로 밤낮 없이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등 황음무도 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면서 엄세번은 "황제도 나만큼 즐겁지 못할 것이야!"라며 허풍을 떨었다.
엄숭은 진사에 급제한 지식인이자 뛰어난 문장, 특히 '청사(請詞)'를 잘 써서 가정제(嘉靖帝)의 마음을 사로잡아 엄청난 권력을 누렸다. 하지만 이런 그도 '10년 은둔에 10년 소외'라는 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냈다.
세월을 견디며 기회를 엿본 인내심 하나는 알아주는 간신이었다. 이렇게 해서 권력을 잡은 엄숭의 간행은 정말이지 눈이 돌아갈 정도로 현란했는데, 부정 축재는 기본이고 아들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어 자행한 매관매직은 특히 볼 만했다.
먼저 엄숭이 황제로부터 관직 임명권을 얻어오면 아들 엄세번이 이를 팔았다. 관직의 값은 그때마다 달랐는데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첫째는 직급의 높낮이, 둘째는 직급에 따른 이권의 많고 적음, 셋째는 부임지의 멀고 가까움, 넷째는 임기의 길고 짧음이었다.
이렇게 관직을 사간 관리는 승진을 위해 또 엄숭 부자에게 뇌물을 갖다 바쳐야만 했다. 뇌물은 비리로 옥에 갇힌 죄인마저 풀어주고 나아가서는 승진까지 시킬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으니 엄숭이 재물을 얼마나 밝혔는지 알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과 나라에 넘어온다. 역대 간신들치고 부정과 비리에 광분하지 않았던 경우는 없었다.
아비와 자식이 함께 설치며 백성의 피와 땀을 빨고 나라를 거덜냈던 엄숭 부자를 비롯한 간신들의 간행을 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혼군과 간신 합작의 나라 거덜 내기가 겹쳐지지 않을 수 없다.
강태공의 한마디를 전하며 맺는다. "천하는 천하 사람의 천하이지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다!"
▶️ 國(나라 국)은 ❶회의문자로 国(국)은 간자(簡字), 囗(국), 囶(국), 圀(국)은 고자(古字), 囲(국), 围(국)은 동자(同字)이다. 國(국)은 백성들(口)과 땅(一)을 지키기 위해 국경(口)을 에워싸고 적이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는 데서 나라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國자는 '나라'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國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或(혹 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벽을 경비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或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누가 쳐들어올까 걱정한다는 의미가 확대되면서 후에 '혹시'나 '만일'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囗자를 더한 國자가 '나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國자는 성벽이 두 개나 그려진 형태가 되었다. 참고로 國자는 약자로는 国(나라 국)자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國(국)은 (1)어떤 명사(名詞) 다음에 쓰이어 국가(國家), 나라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나라, 국가(國家) ②서울, 도읍(都邑) ③고향(故鄕) ④고장, 지방(地方) ⑤세상(世上), 세계(世界) ⑥나라를 세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라 백성을 국민(國民), 나라의 법적인 호칭을 국가(國家), 나라의 정사를 국정(國政), 나라의 안을 국내(國內), 나라의 군대를 국군(國軍), 나라의 이익을 국익(國益),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국민 전체가 쓰는 그 나라의 고유한 말을 국어(國語), 한 나라의 전체를 전국(全國), 자기 나라 밖의 딴 나라를 외국(外國), 양쪽의 두 나라를 양국(兩國),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국가의 수를 세는 단위를 개국(個國), 조상 적부터 살던 나라를 조국(祖國), 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을 순국(殉國),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애국(愛國),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는 뜻으로 매우 뛰어난 인재를 이르는 말을 국사무쌍(國士無雙),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나라의 급료를 받는 신하를 국록지신(國祿之臣), 나라의 풍속을 순수하고 온화하게 힘을 이르는 말을 국풍순화(國風醇化),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흩어졌으나 오직 산과 강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을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구하는 방패와 성이란 뜻으로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을 이르는 말을 구국간성(救國干城),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으로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을 망국지음(亡國之音), 국권피탈을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수치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을 경술국치(庚戌國恥),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이해 관계가 밀접한 나라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순치지국(脣齒之國),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이라는 뜻으로 노자가 그린 이상 사회, 이상 국가를 이르는 말을 소국과민(小國寡民), 한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는 뜻으로 뛰어난 미인을 이르는 말을 일고경국(一顧傾國), 사이가 썩 친밀하여 가깝게 지내는 나라 또는 서로 혼인 관계를 맺은 나라를 이르는 말을 형제지국(兄弟之國) 등에 쓰인다.
▶️ 運(옮길 운)은 ❶형성문자로 运(운)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軍(군, 운; 전차를 병사가 둘러싼 모양, 둘러싸는 일)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運자는 '움직이다'나 '옮기다', '운용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運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軍(군사 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軍자는 진을 치고 있는 군대를 그린 것으로 '군사'나 '진치다'는 뜻이 있다. 군대는 상황에 따라 대규모 이동을 해야 한다. 이때 전쟁에 필요한 각종 장비도 옮기게 되는데, 運자는 군대가 짐을 꾸려 이동한다는 뜻이다. 運자는 '움직이다'나 '옮기다'와 같은 뜻 외에도 '운용하다'나 '쓰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運(운)은 운수(運數), 오행(五行)의 유전(流轉), 운명(運命), 운반(運搬), 운송(運送), 운하(運河), 천체(天體)의 궤도(軌道), 햇무리(해의 둘레에 둥글게 나타나는 빛깔이 있는 테두리), 일훈(日暈) 빙빙돌다, 움직이게 하다, 운반하는 일, 등의 뜻으로 ①옮기다 ②움직이다, 돌다 ③나르다, 운반하다 ④궁리하다 ⑤쓰다, 운용하다 ⑥휘두르다, 가지고 놀다 ⑦배를 젖다 ⑧어지럽다 ⑨(멀리까지)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⑩돌리다, 회전하다 ⑪가다, 보내다 ⑫운전하다 ⑬운(運), 운수(運數) ⑭세로, 남북(南北)의 거리(距離)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흔들 요(搖), 옮길 반(搬), 들 거(擧), 할 위(爲), 할 위(爲), 옮길 이(移), 다닐 행(行), 갈 행(行)이다. 용례로는 조직이나 기구 따위를 운용하여 경영함을 운영(運營), 물체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위치를 바꾸는 일 또는 몸을 단련하거나 건강을 보존하기 위하여 몸을 움직이는 일을 운동(運動),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운명(運命), 돈이나 물건이나 제도 따위의 기능을 부리어 씀을 운용(運用), 차량 등이 정해진 노선에 따라 운전하여 나감을 운행(運行), 물건을 운반하여 보냄을 운송(運送), 물건을 탈것 따위에 실어서 옮겨 나르는 것을 운반(運搬), 몸을 움직임을 운신(運身), 배 또는 항공기에 화물이나 여객 등을 싣고 항행함을 운항(運航), 사람이 타고난 운명이나 운수를 운세(運勢), 행복한 운수를 행운(幸運), 좋지 않은 운수를 불운(不運), 액을 당할 운수를 액운(厄運), 바다를 통하여 물건 또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해운(海運), 바야흐로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분위기를 기운(氣運), 글씨본을 보지 않고 쓰는 사람의 마음대로 붓을 옮기는 일 또는 그렇게 쓴 글씨를 자운(自運), 운이 좋고 나쁨은 모두가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로 운을 하늘에 맡김을 이르는 말을 운부천부(運否天賦), 운수가 좋지 아니하다는 말을 운수불길(運輸不吉), 장막 안에서 산가지를 놀린다는 뜻으로 가만히 들어앉아 계책을 꾸민다는 말을 운주유악(運籌帷幄), 무슨 일을 이룰 운수와 시기가 한때에 온다는 말을 운도시래(運到時來), 모든 일이 운수의 탓이라 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을 운수소관(運數所關), 손바닥 위에서 움직인다는 뜻으로 아주 쉬움을 이르는 말을 운지장상(運之掌上) 등에 쓰인다.
▶️ 隨(따를 수, 게으를 타)는 ❶형성문자로 随(수, 타)는 통자(通字), 随(수, 타)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따라간다는 뜻을 가진 隋(수)로 이루어지며 뒤에서 따라간다는 뜻이다. ❷형성문자로 隨자는 '따르다'나 '추종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隨자는 총 16획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글자이다. 隨자는 辶(辵:쉬엄쉬엄 갈 착)자자와 隋(수나라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隋자는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隨자에 쓰인 辶(辵)자는 길과 사람의 다리를 함께 그린 것으로 '길을 가다'는 뜻이 있다. 隨자는 이렇게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辶자를 응용해 누군가를 따르거나 추종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隨(수, 타)는 (1)수괘(隨卦)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따르다 ②추종하다 ③부화하다(附和; 주견이 없이 경솔하게 남의 의견에 따르다) ④좇다, 추구하다 ⑤발 ⑥발꿈치 ⑦괘(卦)의 이름 ⑧따라서 ⑨즉시, 곧 바로 그리고 ⓐ게으르다(타) ⓑ타원형(楕圓形)(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따를 호(扈)이다. 용례로는 때때로나 그때 그때를 수시(隨時), 때에 따라 곧을 수즉(隨卽), 따라서 함께 참여함을 수참(隨參), 붙좇아서 따르는 일을 수반(隨伴), 어떤 양식에도 해당되지 아니하는 산문 문학의 한 부문을 수필(隨筆), 일정한 임무를 띄고 따라서 감을 수행(隨行), 마음에 느껴진 그대로의 생각을 수감(隨感), 마음속으로 부터 고맙게 여기어 기뻐함을 수희(隨喜), 물결 치는 대로 따른다는 뜻으로 그때 그때의 형편이나 환경에 따름을 이르는 말을 수파(隨波), 벼슬아치의 승진이나 전보가 있을 때 품계의 차례를 따라 함을 수품(隨品), 타고 난 운명에 따름을 수명(隨命), 장사 지내는 데 따라 감을 수상(隨喪), 일정한 계통이 없이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수상(隨想), 그때 그때의 형편이나 시세를 따름을 수세(隨勢), 세상의 풍속을 따름을 수속(隨俗), 남의 뜻에 순종함을 수순(隨順), 붙어 따름이나 따라 감을 수신(隨身), 자기 마음대로 함을 수의(隨意), 여럿 중에 제일을 수일(隨一), 따라 좇음이나 따라 다니며 곁에서 심부름 등을 하는 사람을 수종(隨從), 남의 죄에 관계됨을 수좌(隨坐), 편한 것을 따름을 수편(隨便), 뒤를 따름을 수후(隨後), 수후의 구슬로 새를 잡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얻으려다 큰 것을 손해 보게 됨을 이르는 말을 수주탄작(隨珠彈雀), 자기의 뚜렷한 주견이 없이 여러 사람의 틈에 끼어 덩달아 행동을 함을 이르는 말을 수중축대(隨衆逐隊), 때에 따라 적절히 일을 처리함을 일컫는 말을 수기응변(隨機應變),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따름으로 가정에서의 부부 화합의 도리를 이르는 말을 부창부수(夫唱婦隨), 자기 주견이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을 일컫는 말을 부화수행(附和隨行),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뒤꿈치를 따른다는 뜻으로 차례로 이어져서 끊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비견수종(比肩隨踵), 그물을 들면 그물눈도 따라 올라간다는 뜻으로 주된 일이 되면 다른 일도 그에 따라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망거목수(網擧目隨) 등에 쓰인다.
▶️ 王(임금 왕, 옥 옥)은 ❶지사문자로 하늘(一)과 땅(一)과 사람(一)을 두루 꿰뚫어(뚫을 곤; 丨部) 다스리는 지배자를 일러 왕을 뜻한다. 王(왕)의 옛 음은 光(광), 廣(광)과 비슷하고 크게 퍼진다는 뜻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또 王(왕)과 皇(황)은 본디 같다. ❷상형문자로 갑골문에 나온 王자는 立(설 립)자와 비슷한 형태로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대에 권력을 상징하던 도끼의 일종을 그린 것으로 금문에서는 도끼가 좀 더 명확히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도 다시 바뀌면서 소전에서는 王자와 玉(구슬 옥)자가 혼동되어 해서에서는 王자에 점을 하나 더해 玉자 王자를 구별하게 되었다. 그래서 王(왕, 옥)은 (1)임금 (2)지난날 중국에서, 삼대(三代) 때에는 천하를 통일한 사람을 뜻하였으나 주말에는 제후(諸侯)를 이르는 말이었으며, 진시황(秦始皇) 때에 황제(黃帝)의 칭호가 생긴 후로는 황제가 황족(皇族), 공신(功臣) 중에서 봉하는 작위로 썼음. 곧 황제보다 한 등급 아래의 칭호임.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高句麗) 건국 초기부터 사용하였으며, 이어 백제(百濟), 신라(新羅)에서도 사용했음 (3)덕(德)으로서 천하를 다스린 사람 (4)일정한 분야에서나 동류(同類) 중에서 가장 뛰어나거나 세력을 잡고 있는 사람, 또는 그러한 것. 접미사적으로도 쓰임. 으뜸 (5)아주 큼을 나타내는 말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임금, 천자(天子) ②수령(首領) ③으뜸 ④할아버지, 할아비 ⑤왕 노릇하다, 통치하다 ⑥왕업(王業)을 이루다 ⑦왕으로 삼다 ⑧바로 고치다 ⑨왕성(旺盛)하다 ⑩크다 ⑪(보다)낫다 ⑫(향하여)가다, 그리고 ⓐ옥(玉)(옥)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주(主), 임금 후(后), 임금 군(君), 임금 제(帝), 임금 황(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좇을 종(從), 백성 민(民), 신하 신(臣), 종 복(僕), 손 객(客), 손 빈(賓)이다. 용례로는 같은 왕가에서 차례로 왕위에 오르는 왕들의 계열 또는 그 왕가가 다스리는 동안을 왕조(王朝), 임금이 마땅히 행해야 될 일 또는 임금이 어진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를 왕도(王道), 임금의 집안을 왕실(王室), 임금이 사는 궁전을 왕궁(王宮), 임금의 자리를 왕위(王位), 임금이 날 조짐 또는 임금이 될 조짐을 왕기(王氣), 임금의 아내를 왕비(王妃), 임금의 아내를 왕후(王后), 임금의 묘를 왕릉(王陵), 임금의 일가를 왕족(王族), 임금의 권리를 왕권(王權), 임금의 목숨 또는 임금의 명령을 왕명(王命), 임금을 도울 만한 재능을 왕재(王才), 나라의 임금 곧 왕국의 주권자를 국왕(國王), 황제나 국왕의 총칭을 제왕(帝王), 몸이 건강하고 기력이 왕성함을 강왕(康王), 임금을 도와서 나라의 큰일을 할 만한 인물을 이르는 말을 왕좌지재(王佐之材), 임금이라도 국법 앞에서는 사사로운 정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말을 왕자무친(王者無親), 왕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시세를 따라 진퇴함을 이르는 말을 왕자승세(王者乘勢), 안으로는 성인이고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 곧 학식과 덕행을 겸비함을 이르는 말을 내성외왕(內聖外王)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