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표적(表迹),
단지 눈에 보이는 표적이 아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12:39)
요나의 표적,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임을 뜻한다.
곧 ‘죽는 것’을 표적이라 하는 거다.
짐승같이 살던 옛사람의 속성이 죽어야 한다.
육신의 속성이 죽어야 새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하는 것보다 더한 표적이 있을런가?
히브리어 23글자 중에 마지막이 ‘타브’인데 ‘표적’이란 뜻을 지닌다.
이 글자는 장대에 달린 놋 뱀을 형상화한 거다.
곧 십자가 표적인 거다.
참으로 놀랍다.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짐승들의 먹거리로 오신 예수이시다.
곧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순전한 양식인 ‘진리(眞理)’로 오신 거다.
더럽고 악한 육신의 속성을 찔려대는 ‘십자가의 도(로고스)’이다.
진리에 의해 찔림을 당하는 여정이 십자가의 길이다.
좁은 길인 이유이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예수가 가신 십자가의 길에 비할 것인가?
크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다.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전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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