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si d'arte, vissi d'amore 난 노래에 살며 사랑에 살며
non feci mai male ad anima viva 난 남에게 해로움 주지 않았네
Con man furtiva 불쌍한 사람
quante miserie conobbi, aiutai 남몰래 수없이 도와주었네
Sempre con fe sincera 항상 믿음 속에서 살며
la mia preghiera 성인들 앞에
ai santi tabernacoli sali 정성을 대해 기도 드리고
Sempre con fe sincera 언제나 제단앞에
diedi fiori agli altar 고운 꽃을 바쳤네.
Nell'ora del dolore 나 고통 당할때
perche, perche Signore 어찌해 이와같이
perche me ne rimuneri cosi 어찌해 날 내버려 둡니까?
Diedi gioielli della Madonna al manto 성모님 위해 보석도 다 바치고
e diedi il canto agli astri, al ciel 또 하늘 높이 거룩한 노래
che ne ridean piu belli 항상 바쳤건만.
Nell'ora del dolore 나 고통 당할때
perche, perche Signor 어찌하여 하나님은
perche me ne rimuneri cosi 나 홀로 이렇게 내버려 둔단 말입니까?
비제 / 카르멘 中 "Ou Me Conduirez-V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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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목소리와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오페라
최고의 여왕에 등극했던 세기의 디바 Maria Callas▒
그리스 이민자인 아버지가 운영하는 약국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던 뉴욕의
어린 시절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열세 살 때 성악 공부를 위해 다시 그리스로 보내진 그녀는 집요하게 성공
의지를 불태웠고, 그러한 노력은 유럽에서의 활동을 보장해주었다.
그녀가 한때 90kg에 달하는 거구였다가 30kg에 가까운 기적적인 감량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초부터 말까지 칼라스는
엄청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 때가 스칼라에서 잊지 못할 성공을
거두었던 시기이기도 하며, 루치노 비스콘티의 연출 작품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었던 때이기도 하다.
1959년 칼라스는 그녀의 후원자이자 남편이었던 메네기니와 이혼하고 부유
한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의 연인으로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호화로운
생활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오나시스가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하고 얼마 후 사망하자 그녀도 생의
의지를 상실한 채 칩거하다가 1977년 세상을 떴다. (1923.12.2 ~ 1977.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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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
초록님. 넘 고마워요...........^^
태클 하나 ->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는 동감이 가지만, 타고난 목소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목소리나 발성은 그리 바람직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목소리를 거의 똑같이 내는 가수가 있으나 도무지 분위기가 다른 것은 마리아의 성공은 목소리가 아닌 열정때문이었다는 증거.
미안합니다 태클 들어와도 할 수 없어요 수정하기 싫으니까요~ 그냥 제료 수집 하면서 주어온건데 아마도 마우스님보다 더한 칼라스 매냐의 글인가봅니다.
소개해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수정하실 필요까지는 없고... 매니아의 필수조건은 뜨거운 사랑의 근거로 반드시 견고한 냉정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호한 찬사는 일종의 모독입니다.
수미교의 십계명 중 제일 계명이 ..무모한 찬사인데....ㅎㅎ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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