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남은 칠석에
팔월 하순 넷째 화요일은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서 만난다는 음력 칠월 칠석이었다. 간밤은 여전히 열대야로 새벽녘 워드로 글을 쓰면서 에어컨을 켜야 할 정도로 무더위를 느꼈다. 날이 밝아온 아침에 자연학교 행선지는 용추계곡으로 들어 우곡사로 가려고 마음을 정했다. 생활 속 글은 어제 다녀온 동선의 사진과 함께 지기들에게 넘기고 카톡 아침 시조는 ‘불모산 설화’를 보냈다.
“허황옥 뱃길 닿은 망산도 용원으로 / 마중 간 수로왕과 첫날밤 흥국사서 / 아득한 천년 설화가 지맥 따라 서렸다 // 오라비 장유화상 가부좌 수도 정진 / 당신이 출가시켜 불자 된 일곱 아들 / 칠불암 아자방에서 염주알을 구른다” 가락국기 첫 장에 수록된 설화였기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군데 주석을 달아 창원 시내에서도 바라보이는 불모산의 원경 사진과 같이 보냈다.
아침 식후 산책과 겸한 산행의 길을 나섰다. 집에서부터 걸어 퇴촌교삼거리를 지나 창원천 상류로 나갔더니 근접거리였는데도 덩치가 큰 왜가리 세 마리가 먹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천변 가장자리는 이맘때 이삭을 내밀 듯 피는 수크령이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수크령은 그령보다 더 억세다. 창원대학 앞에서 도청 뒷길을 따라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가 철길 굴다리를 지났다.
용추계곡으로 드니 평일이라 사람이 줄어든 편이었다. 광복절 이전까지만 해도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계곡을 찾아 줄을 이었더랬다. 용추계곡은 도심에서 접근성이 좋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기 알맞은 데였다. 나는 늦더위를 식히려는 뜻도 있지만 용추계곡에 피는 야생화 탐방에도 마음이 있었다. 일주일 전에도 계곡으로 들어 포곡정 인근 핀 상사화와 물봉선꽃을 보고 나왔다.
계곡 들머리 등산 안내소 앞둔 곳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나 길바닥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아직 도토리는 떨어질 때가 아닌지라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는 듯했다. 다람쥐는 채식으로 열매나 견과류를 좋아 하나 일부 종은 곤충으로 동물성 단백질을 곁들이기도 한다고 했다. 녀석은 내가 상위 포식자가 아닌 줄은 먼저 눈치챘는지 가까이 다가가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용추정을 지나자 계곡에는 맑은 물이 일정 수량을 유지하며 흘러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졌다. 등산로 바닥에 한약 조제 환과 같이 동글동글한 짐승 분변이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피사체로 삼았다. 뒤따라오던 두 아낙이 무슨 똥인가 물어와 토끼 똥인가 싶다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지나갔다. 그들을 앞세우고 가만 생각해 보니 토끼 똥이 아니고 염소 똥인 것 같기도 했다.
용추1교에서 출렁다리를 지난 용추5교에 이르기까지 세 종의 여름 야생화들을 만났다. 어쩌면 난초 같기도 하고 잘 자란 부추 같기도 한 사계절 푸른 잎맥의 맥문동은 이맘때 보라색 꽃이 한창이었다. 야윈 잎줄기에서 연보라 꽃을 피운 꿩의다리도 더러 보였다. 철이 지나고 있기는 해도 이삭여뀌꽃도 봤다. 이삭여뀌는 잎줄기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점점이 빨간 꽃잎을 달고 있었다.
우곡사 갈림길을 앞두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쉬었다. 계곡으로 들면서 남겨둔 사진을 몇몇 지기들에 카톡으로 보내면서 안부를 전했다. 계곡물에 한동안 발을 담갔다가 우곡사로 가는 길을 따라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고개에서 북향 비탈을 따라 내려가 우곡사에 이르러 법당 뜰에 섰다. 두 손을 모으고 넉넉하게 쏟아지는 약수터 샘물을 받아 마셨더니 시원했다.
법당 뜰에서 노티재 능선을 바라봤다. 작년까지 한여름에 노티재 능선 따라 진영 서촌으로도 빠져나갔는데 이제 산행을 무리하게 해서는 안 될 체력이었다. 우곡사 곁을 지나다 길섶에 분홍색 꽃잎을 달고 나온 이질풀꽃을 봤다. 울타리가 쳐진 국방과학연구소 창원 분원은 적막이 쌓여 있었다. 아까 산기슭을 내려설 때 전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점심시간이라 멈춘 듯했다. 23.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