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시인)
45. 상상 테마44 - 새 이미지를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새 이미지를 상상에 적용할 때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 중 하나가 새다. 새가 사람 곁에 가까이 날아온 날엔 상징을 알처럼 품는 ‘관계성’이나 ‘암시성’이 탄생한다. 까치가 그저 아침에 울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고, 까마귀가 저녁에 울었을 뿐인데 마음이 불편하다. 도시 가까운 곳에서 소쩍새가 울면 향수에 젖고, 서로 부딪치지도 않고 군무를 추는 새 떼들을 만나면 삶의 ‘질서’에 대해 생각한다.
가장 많이 인식되는 새의 상징은 자유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나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은 죽어서 새가 되고 싶어 한다. 이렇게 새들은 사람들에 의해 의미 지어지고 상황에 따라 재탄생된다.
그런 상징이나 의미는 익숙한 느낌을 주는 일반적인 것들이다. 이제 개별자적인 시선으로 상상을 펼쳐보자. 닭과 오리를 보면서 뱃속에 새의 계절이 쌓인다고 느끼고, 솟대를 보면서 새가 밤만 되면 살아서 어디론가 갔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잠을 잔다고 여기자.
새라는 대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존재를 꺼내거나 번식시키는 상상도 추가하자.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새나 ‘나’만 모르는 새가 밤마다 ‘나’를 찾아와 말을 건다고 상상해 보자.
‘A에겐 날개가 있지만 B에겐 날개가 없다’란 문장 형태로도 다양한 상상을 펼칠 수 있다. A 자리와 B 자리에 다양한 대상을 넣어보자. 아버지, 어머니, 형, 나, 언니, 누나, 당신, 섬, 육지, 접속사 등을 넣어보면 재미있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그러나에겐 날개가 있지만 그리고에겐 날개가 없다’와 같은 문장을 형성할 수 있다.
날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새를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책 속을 나는 새’ ‘시간을 나는 새’ ‘고독을 나는 새’ ‘불 속을 나는 새’ ‘잠 속을 나는 새’ 등과 같이 상상을 펼쳐도 재미있다.
필자의 시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솟대를 위한 상상 / 하린
벼락이 다녀갔다
긴 다리만 남긴 채 새는 날아가고 없다
새의 산책을 수습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
어떤 사람이 떠나고 싶을 때
발목만이라도 남기겠다고 한다면 내버려 둘 일이다
새에게 했던 질문과 대답을 멈출 일이다
접힌 날개로 날 수 있다는 착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새도 가끔 가능성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겠지만
새를 타고 바닥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건 사람이 저지른 발목에 대한 오해일 뿐이겠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에 언제 날아왔는지 모를 새가 되돌아와 있으니
발목을 감출 때 비로소 속도가 빨라진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잠 속을, 노래 속을, 고독 속을 가볍게 횡단하고 있으니
새에게 무언가를 건넸다면 끝까지 믿어야 한다
새를 잘못 복습하면서
꿈이 갖는 깊이와 넓이가 사라질 거라고 염려하지 마라
새를 품은 심장엔 활공 능력이 좋은 상상이 살고 있으니
발목의 처음과 끝에 비행(非行)이 발병하더라도
바락 앞에서 날개를 숨기지 마라 ― 『서민생존헌장』, 천년의 시작, 2015.(개작)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원래 솟대는 액(厄)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거나 풍년·풍어를 기원(冀願)하거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세우던 신앙물이다. 그런 솟대가 어느 날 개별화되어서 필자에게 날아왔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지나간 다음날 그 자리에 가보니 솟대 위 새가 벼락을 맞아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나무를 깎아 만든 가짜 새가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살아있는 새의 죽음, 그 이미지가 너무 선명해서 메모를 해 놨다가 나중에 「솟대를 위한 상상」을 쓰게 되었다.
솟대 위의 새는 죽어있는 새가 아니었다. 살아서 ‘나’의 상상을 증명하는 새였다. “잠 속을, 노래 속을, 고독 속을 가볍게 횡단”하면서 ‘가능성’을 실천하는 ‘나’만의 새. 그런 특별한 새의 파괴(죽음)를 화자가 경험한 후 애도하도록 상상을 펼쳤다.
2단계 -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의 객관적 상관물은 솟대 위의 새다. 사물인 새가 시의 주제가 되어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를 부각하고 있는데, 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새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솟대 위의 새는 고정 불변의 자세로 허공을 견딘다. 오직 날아갈 방향만 생각하면서 긴 발목을 땅에 박고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자신 안에 가능성을 꺼내 줄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 상상을 펴고 날아가려 한다. 그러나 현실의 논리를 벗어나는 일은 두려운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새에게 상상의 옷을 입힌다. 밤새도록 어디든 떠돌아다니게 만든다. 화자 자신의 마음속 갈망을 새에게 전이시켜 실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새는 화자가 갖는 상상력과 가능성, 마음을 대변하는 상관물이다.
3단계 -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필자는 상상적 체험을 하기 위해 화자를 먼저 설정했다. 솟대가 잘 보이는 곳에서 솟대를 관찰하고 있는 화자, 끊임없이 새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을 찾는 화자, 자꾸 새와 밀착하면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화자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평범한 솟대보다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인 솟대가 더 극적일 것 같아서 벼락을 맞은 솟대를 등장시켰다. 그래서 ‘발목만을 남기고 날아간 새’가 메시지를 품고 되돌아오도록 만들었다.
솟대 위의 새는 전부 상상력의 소산이다. “발목을 감출 때 비로소 속도가 빨라진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새는 “잠 속을, 노래 속을, 고독 속을 가볍게 횡단”한다. 그러나 이것은 화자와 새만 아는 영역이다. 현실에서는 “새를 타고 바닥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건 사람이 저지른 발목에 대한 오해일 뿐”이다.
필자는 그런 상황에서 화자의 심리 상태를 새에게 전이시켜 펼쳐 보이도록 했다. “발목의 처음과 끝에 비행(非行)이 발병하더라도” “새를 품은 심장엔 활공 능력이 좋은 상상”이 있으니, “벼락 앞에서 날개를 숨기지” 말고 끝 간 데 없이 상상의 영토를 넓히도록 만든 것이다.
※ 또 다른 예문
이 시는 세 개의 새 시입니다 / 정끝별 # 새들은 그림자가 없어요 땅에 붙어서 걷는 그림자는 크고 땅에서 가까이 나는 그림자는 작다 땅을 벗어난 것들의 그림자는? 없다! 꿈에서는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아요 그림자를 놓쳤기 때문이에요 어릴 적 길에도 집에도 잃어버린 신발에도 죽은 아버지에게도 없어요 꿈에는 그림자가 없어요 펼쳐야 날 수 있고 날아야 잊힐 수 있다는데 웅크린 기억들을 죽지에 묻고 또 묻는다 나는 내게도 보여줄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어깻죽지를 펴고 빠르게 달릴수록 튀어 올라요, 높이 날수록 허공에서 흩어져요, 그러니 그건 새였을까요? 공중부양하는 것들에겐 그림자가 없고 내 그림자엔 새가 없다 # 수평선처럼 흔들렸어요 자세가 바뀌면 지평이 바뀐다 지평 위 그림자의 농도나 온도나 각도나 차도도 어쨌든 새는 게 실패가 아니다 가장 뜨거운 눈물 아래로는 겹겹의 파도가 있고 파도와 파도 너머로 한 줄 실선이 있다 방파제에 이른 눈물의 실선이 지평이다 새의 시작이다 간절했던 꿈 밖으로 방금 넘쳤거나 곧 넘칠 파도가 벌벌 떨고 있어요, 벌이었어요, 풍(風)이었어요. 층층의 구름과 가장 먼 하늘이 엎질러졌어요, 그건 수평선이었을까요? 꿈에서 흘러나온 바다가 지문처럼 일렁이며 이랑을 새긴다 꿈도 아니었는데 바닥이 바다처럼 출렁인다 웅크리면 길은 홈이 되고 홀이 되어 나를 삼키고 지평을 바꾸다 보면 언젠가 탈출할 수 있으니 무엇이든 돼! 돼! 돼! 무엇이어도 괜찮아, 괜찮아, 엎질러진 그림자라면 더욱 # 그림자가 날 일으켜 세워요 하나의 빛을 향하면 그림자도 하나 세상에 나올 수 없는 그림자는 깊고 뜨겁고 깨면 잊히는 꿈처럼 그림자는 있고 없다 뒷배인 듯 제 그림자를 끌고 가는 날엔 태양에 이마가 타들어 가고, 앞 배인 듯 제 그림자를 안고 가는 날엔 태양에 뒤통수가 다 다 타들어 간다, 길에 새긴 문신처럼 실선을 넘어선 것들에겐 없다 옥 규 숙 영, 악보를 벗어난 음표처럼 휘리릭 어디로 갔을까 모으고 모았던 우표나 종이학처럼 소식조차 잊고 이름마저 그림자를 잃었지만 아직 내겐 두 발로 써야 할 길의 역사가 있고 타들어 가면서도 마주해야 할 빛의 역사가 있어요, 바닥이 없으면 직립도 없어서 그림자라는 희망의 자장이 없으면 하, 나도 없는 거예요 나와 하나인 것들과 내게 하나인 것들과 나를 하나이게 한 것들이 있어 그림자도 하나 저녁 무렵일 때 새는 가장 낮고 가장 향기롭다 밤이 오면 크나큰 그림자를 가진 날개가 날 덮어줄 것이다 - 《현대시》 2020년 5월호
당신의 당신 / 문해연
새들의 울음은 그들의 여름이 됩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될까요 원래 인간은 제 이름보다 남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종이잖아요 나는 당신의, 당신은 나의 이름을 새들에게 우리는 우리일까요
우리를 대신할 말을 찾아요 수많은 단어들이 사라져요 뻐끔거리던 입술들이 짝을 짓습니다 입술을 부딪치며, 서로에게 옳아가는 인간들 새들은 인간과 상관없이 날아다닙니다 새들은 새들이고, 우리는 우리입니다 부리를 부딪치는 새들은 정다운 만큼 가벼운가 봐요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가는데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곧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새들은 언제나 아득한 높이에서 웁니다 그림자도 생기지 않을 물에는 새의 밑면만 지나갑니다 깊이 가라앉은 바닥, 그곳에서 우리는 떠오를 수 없는 낮은 음, 낮은 울음
새들의 이름은 그들의 인사가 됩니다 우리의 울음도, 우리의 내일이 될까요 안녕, 당신, 안녕 유언 같은 안부를 주고받아요 우리는 새들의 세계에서도, 서로의 이름만 부르고 인간은 역시, 새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없나 봅니다 -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깔세 / 박용운
햇살도 비껴가는 골목 안, 쪽방 철새가 부리를 다듬고 있다 높이 날 수 없는 천성 매일 한 번씩 바라보는 새벽 별이 유일한 벗이다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납부할 청구서는 없고 계절을 품기엔 둥지가 허술하다 번식은 사치이고 미래는 무정란 같아 사랑 따윈 주고받지 않는다 높고 멀리 날아 용을 잡아먹는 가루다*가 되는 꿈을 매일 꾸는데 허약한 날개의 일상은 한 번도 끝에 다다라 본 적이 없어, 중천을 향한 힘겨운 날갯짓, 겨우 파닥임만 있을 뿐이다 매정하게 등짝을 할퀴는 그믐의 날카로운 손톱 깔세를 독촉하는 문자가 창문을 두드리는 시린 바람이 철새 이마에 음산하게 서린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예보도 흐려 있다 먼저 살다간 새들은 어느 전망 좋은 우듬지에 둥지를 틀었을까 얼어붙은 생각까지 녹일 아랫목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허약한 부리로 허공 속 질문만 매일 쪼아댄다 양지쪽 햇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물 한 컵만으로도 한 달 넘게 살아가는 창틀 위의 선인장 끝까지 버티면서 가시 사이로 꽃봉오리를 올리는 끈기 기어이 불꽃같이 붉은 꽃을 펼쳐낸다 입안이 헐도록 생을 오독하던 철새 눈 속의 가시, 울어야 뽑힌다는 것을 알았다 *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새. 비슈누의 화신인 나라야나를 태우고 용을 잡아먹으며 산다. - 2021년 〈한국NGO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 / 최명란
늦은 밤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가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꼭 솟대에 앉은 새 같다 날아가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대다가 휴대폰이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재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또 언제 날아와 앉았는지 솟대 위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그의 날개는 많이 꺾여 있다 솟대의 긴 장대를 꽉 움켜쥐고 있던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3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영동대교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참은 적도 있다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제는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정육점 앞을 지나다가 마치 자기가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이 드러난 고깃덩어리 같았다고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밤고양이 같았다고 남의 운전대를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같았다고 길게 연기를 내뿜는다 아니야, 넌 우리 마을에 있던 솟대의 새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솟대 끝에 앉은 우리 마을의 나무새는 언제나 노을이 지면 마을을 한 바퀴 휘돌고 장대 끝에 앉아 물소리를 내고 바람소리를 내었다 친구여, 이제는 한강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물오리의 길을 물과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물새의 길을 함께 가자 깊은 밤 대리운전을 부탁하는 휴대폰이 급하게 울리면 푸드덕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밤의 거리로 사라지는 야간 대리운전사 내 친구 오늘밤에도 서울의 솟대 끝에 앉아 붉은 달을 바라본다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빛은 반짝인다 -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 하린 시인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학위. 1998년 〈광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시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 청마문학상(2011), 송수권시문학상(2015), 한국해양문학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현재 중앙대 문화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시 창작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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