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집회 ]
1960년 2월 28일 낮 1시 대구 경북 고교생 8백여명은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집회, 뒤이어 대구고 8백여명, 경북여고 1백여명 참가
- 3월 5일
오후 5시 30분, 민주당 유세 직후 학생 등 1천여명 집회
- 3월 11일
치안국장 이강학 "학생데모에 개전의점이 없으면 선거후에 입건"경고
- 3월 12일
<워싱턴 포스트>지에 "너무도 광범위한 억압"이라고 한국 政情보도
- 3월 14일
오후 6시 부산 동래고, 항도고, 부산상고, 북부상고, 테레사여고 등 1천여명 집회
밤 9시 서울 고교생 1천여명 산발적 집회
- 3월 15일 제 4대 정·부통령 선거
오전 10시 마산시장 선거 무효 선언
오후 1시 30분 민주당 경남도당 선거 무효 선언
오후 4시 30분 민주당 중앙당 선거 무효 선언
- 3월 16일
중앙 선관위 투표율 97%발표
- 3월 18일
대통령에 이승만(9백 63만여표), 부통령에 이기붕(8백 33만여표)공고
[ 3.15 마산의거 ]
민주당 마산시장은 4할 사전투표를 확인하고 <선거부인공고>를 내건 후 집회 준비, 오후 3시 30분 집회 시작, 밤 11시 30분경 해산
경찰은 이날의 항거를 좌익분자의 사주를 받은 폭동으로 규정하려 했으 나 내외 여론과 진실에 의해 좌익의 누명만은 벋겨짐
- 3월 16일
국무회의, 마산 데모에 형법, 국가보안법 적용키로 결정
오전 11시 30분, 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고교생등 5백여명 집회
마산시는 17일부터 22일까지 중고교생 등교 중지 조치
- 3월 17일
아이젠 하워 미대통령, 한국 선거의 폭력을 개탄
- 3월 17일∼30일 : 전국 곳곳에서 고교생 등 산발적으로 집회 감행
- 4월 6일
오전 10시 민주당, 인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 단체 주체로 집회
낮 12시 해산 후 학생 2천여명 집회
[ 마산 2차 의거 ]
4월 11일 오전 11시 20분,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김주열군 시체 발견
오후 6시 30분경 3만여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자유당과 관계있는 곳을 부수며 시가지 누빔
12일 새벽 1시 50분경 해산
12일 아침부터 다시 시위에 나서 김주열군의 시신앞에서 해산
13일 오후에 잠잠해짐.
개각 등으로 시국 수습을 꾀하던 집권층에 2차 의거는 결정적인 타격.
- 4월 12일
아이젠 하워 미대통령, 6월 22일에 공식 방한한다고 발표
AP통신, 한국의 데모는 민주주의 향상을 염원하는 증좌라고 보도
국회 본회의, 마산에 2차 조사단 보내기로 결의
정부는 마산의거를 공산당 수법과 비슷하다는 등으로 검거 계속. 따라서 부산, 서울, 인천 등지에서 대학생, 고교생 집회 계속
[ 4.18고려대 집회 등 대학가의 항거 ]
18일 아침 학교에 몰래 숨어들어간 간부들은 준비 된 선전물 등을 운반
12시 50분 점심시간, 약 3천여명의 학생들을 집회준비시키고
낮1시 20분 교문을 나서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한 이들은 「대통령이나 내무장관 이 직접 나와 부정 선거를 해명하라」고 요구.
오후 6시 40 분 자진해서 연좌 데모 피습 사건은 4.19를 폭발시킨 마지막 내관
- 4월 18일
오전 9시 부산, 동래고 1천 3백여명 집회
오전 11시 청주고, 청주상고, 청주공 고, 청주여고 2천여명 집회
야간 국무회의, 데모진압에 강경책을 쓰기로 합의
밤 12시 치안국장실에서 경찰 간부회의
19일에 대규모 시위 예견하고 발포. 한계 등을 논의
[ 피의 화요일 ]
오후 1시경 학생, 시민 10만여명은 경무대 앞에서 시위
경찰은 무차별적 실탄 사격 감행
오후 5시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 비상계엄 선포
4월 19일의 시위는 거의 전국적인 규모, 부산, 광주, 대구, 전주, 청주, 인천에서 도 데모
- 4월 20일
대구, 인천, 광주, 수원, 이리 등으로 시위 확산
미 국무부 한국 민주화 촉구 성명 발표.
자유당, 경찰 발포 합리화하는 성명 발표
- 4월 20일 ∼ 24일 :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 집회 계속
- 4월 24일
이 대통령 자유당 총재직 사퇴. 이기붕 일체의 공식 사퇴 선언
계엄사 검열 폐지와 통금 원상 회복 발표
- 4월 25일 : 오전 국회 본회의, 비상 계엄 해제 결의
[ 교수단 시위 ]
서울 소재 대학 교수 258명 이 대통령 사퇴 요구
시국 선언 발표 후 가 두 시위. 서울 시민 1만여명 철야 시위
- 4월 25일
아이젠 하워, 미대통령 한국 방문 취소. 서울지역에 다시 비상계엄 선포
- 4월 26일
새벽 1시 송요찬 계엄사령관, 데모 군중에 발포하지 말라고 계엄군에 지시
[ 민권 승리의 날 ]
서울 시민 3만여명 이 대통령 하야 요구 시위
오전 10시 20분 이 대통령 하야 소식 발표
오후 3시 17분 국회본회의는 이승만의 즉시하야를 만장 일치로 결정
- 4월 27일
오전, 이승만 대통령 사임서 국회 제출
허정 대통령권한 대행
자유당 의원 총회, 개헌 후 총사퇴를 결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