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나들이
어제가 음력 칠월 칠석이었다. 칠석날에 비가 내리면 ‘칠석 비’라 부르는데 우리 지역을 제외한 수도권과 중부권은 비가 제법 내렸다고 한다. 일 년 중 한 차례 하늘나라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 날이었다. 둘이 얼싸안은 감격의 눈물이요, 짧은 상봉으로 끝난 이별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단다. 오작교에 다리를 놓아주러 떠난 까치와 까마귀는 종일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칠석 이튿날은 팔월 넷째 수요일로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였다. 처서를 계기로 더위 기세가 꺾이길 기대하며 월중 행사로 지기들과 떠나는 걷기가 예정된 날이다. 칠석 이후 보이는 까치나 까마귀는 대가리가 짓눌려 헝클어진 모습을 보인단다. 전날 오작교에 머리를 맞대 다리를 놓아주어 견우와 직녀가 발을 디뎌 건너감으로써 깔아뭉개져 그렇다는데 실제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다.
일행들과 출발하는 집결지였던 옛 도지사 관사 앞으로 나가니 잔디밭에 어제 볼 수 없던 까치 한 쌍이 나타나 외관을 자세히 살펴봤다. 앞서 언급한 칠석날 이후 까치는 오작교 다리를 놓아주느라 대가리가 짓뭉개진다고 들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요즘 견우와 직녀는 버선발에 흙이 묻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어제 보직이 사역병이 아닌 통신병처럼 다른 일을 했던 모양이었다.
일행들과 걷기 행선지를 위임받은 나는 목적지를 낙동강 하굿둑으로 정했다. 날씨가 아직 무덥긴 하겠지만 강둑으로 나가 벚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둑길을 걷고 명지시장 활어센터에서 전어회를 먹어보려는 생각이었다. 다섯 명 지기들은 비좁긴 했으나 같은 차에 타고 시내에서 창원터널을 벗어나 장유로 갔다. 율하에서 남해고속도로와 나란한 지방도를 따라 부산 녹산으로 향했다.
아파트단지가 숲을 이룬 장유 신도시에서 금병산을 비켜 수가리를 지나던 차창 밖 텃밭에는 부추가 하얀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잎채소로 즐겨 먹는 부추는 한여름이 지나면 나도사프란과 같은 하얀 꽃을 피우는데 개화가 되어 절정이었다. 귀뚜라미가 곤충으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청각으로 알려준다면 부추는 채소로써 가을이 도래함을 꽃을 피운 시각으로 알려주는 전령사였다.
조만강이 서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사구에서 녹산 수문을 건너 낙동강 하굿둑으로 갔다. 스포츠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북단의 을숙도 생태공원으로 나가니 늦여름 햇볕은 아직 따가웠다. 대규모 시설로 들어서는 국립 청소년생태센터는 완공을 앞둔 마무리 단계였다. 날씨가 무덥지 않으면 생태공원 습지 산책로를 걸어도 되겠으나 쉼터에서 간식을 들며 담소를 나누다가 일어났다.
하굿둑 서쪽 수문에서 낙동강 하류 맥도강 생태공원으로 옮겨가 차를 세우고 강둑으로 올라섰다. 봄날에 벚꽃이 피거나 새잎이 돋을 때면 걷기로나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많이 찾는 명소였다. 한여름 평일에도 산책을 나서거나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일행들은 쉼터에서 잠시 환담을 나누다 둑길을 따라 일부 구간을 걸어 되돌아 와 차를 타고 이동했다.
생태공원 습지에는 무성한 잎사귀를 펼친 연이 피운 꽃이 아직 남겨져 있었다. 그 가운데 가시연은 잎의 표면적을 더 넓게 번져 키워갔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가시연은 아직 꽃봉오리를 펼치지 않은 상태였다. 생태공원에서 둑길을 넘어가 다음 주 전어 축제를 앞둔 명지시장 활어센터로 갔다. 수족관에 전어들이 유영하고 있는 한 횟집을 찾아 들어 회로 썰어 나온 전어를 맛보았다.
전어회와 매운탕을 곁들인 점심 식후 명지시장 장터를 둘러보고 용원을 거쳐 진해로 왔다. 금방 소나기가 지났는지 시가지 아스팔트에는 빗물에 젖은 채였다. 주택지 골목 한 지인이 경영하는 북 카페에 들러 안부를 여쭈고 팥빙수를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지인으로부터 연례행사로 다녀오는 이디오피아 봉사활동 체험담을 들으면서 앞으로 일정과 여행 정보도 알게 된 기회였다. 2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