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 불, 미에 비하여 소련의 역사와 문화는 너무 모른다.
문학에서 체흡을 위시하여, 푸쉬킨, 도스트엡스키 . 톨스토이 등등 작가들이 기라성처럼 존재한다.
예술작품도 그 지역의 토양에서 자란다. 그런데도 우리는 러시아의 사회적 배경, 문화적 배경을 너무 모른다,
이번 기회에 간략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막심 고르키의 작품 '어머니'를 줄거리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작가 ; 막심 고르키(1868-1936)
초판 발행 ; 1907
(줄거리)
이 작품은 처음 공장촌의 비위생적이고 무의미한 희망이 없는 삶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부터 주인공 빠벨은 술을 마시지 않고 죽은 아버지를 원망도 하지 않으며 성실하게 공장에 출퇴근 한다. 그리고는 독서에 몰두한다. 남편이 죽은 후, 아들의 이상해 진 행동에 걱정하던 닐로브나는 아들이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공장일이 끝나면 어김없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며 서로에게 욕지거리를 해대고, 집에 돌아와서는 부인과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의 모습, 이런 모습이 자식들을 통해 되풀이하여 그대로 나타난다. 매일 매일이 똑같은 무의미한 인생, 그러나 이것에 대해 누구하나 문제제기를 하거나 바꾸려 들지 않는다. 늘 술에 취해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아버지가 죽고 나자 주인공 빠벨도 아버지와 마찬가지의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빠벨은 술도 마시지 않고 성실하게 공장생활을 하며 독서에 몰두하고 알 수 없는 모임으로 밤늦게 귀가하곤 한다. 또래의 다른 젊은이들과는 다른 성실한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는 오히려 불안하기만 하다.
차츰 외부인들이 그들의 집에 찾아와 빠벨과의 의견교환도 하며 지내게 된다. 술에 취한 남편에게 맞고 살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던 어머니 닐로브나는 처음에는 의심을 하지만 아들의 의지에 찬 논리적인 주장에 차츰 아들이 하는 일이 자랑스럽고 정의롭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는 헌병들과 감시관이 들이 닥친다. 빠벨과 주변인들이 불온문서를 제조한다는 소문 때문에 수색을 하러 온 것이다. 어머니는 눈두덩이가 떨리는 두려움과 모욕감을 느끼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빠벨이 하는 일에 대한 긍지심을 더욱 갖게 된다.
빠벨은 공장촌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법을 쉽게 이야기 해 주고 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 해 주며 사람들에게 차츰 신뢰가 높아져가고 있었다. 그 때 공장촌의 늪지대를 메우는데 필요한 금액을 노동자들의 급료에서 징수하겠다고 하자 비교적 능동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거기서 빠벨이 시위진열의 앞에 서서 지휘를 하려고 하나 노동자들은 금방 생계걱정에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결국 빠벨과 주변인들은 노동자들의 자각과 계몽의 필요성만을 절실히 깨달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빠벨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머니가 왜 그동안 그런 삶을 살았는지, 왜 이렇게 인생이 힘든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머니 나이 40세인데, 그동안의 삶이 삶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버지는 어머닐 때리셨고, 난 이제 아버지가 어머니의 옆구리에 분풀이를 하셨다는 것을 알아요, 자신이 살아오셨던 삶의 울분의 분풀이로 말이지요, 이런 쓰라림이 오랫동안 아버질 괴롭혔건만, 정작 아버진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몰랐어요. 아버진 30년을 일했고, 공장이라고 해야 고작 건물 두 채에 불과할 때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건물이 일곱 개나 되지 않았느냐 말이에요!”
삶에 대해 문제의식은 있지만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아버지나 어머니, 대다수의 노동자와는 다르게 빠벨은 지금의 비참한 현실을 야기한 원인에 대해 정확히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익숙한 삶에 맞선 싸움을 결심하게 된다.
닐로브나는 이번 사건에서 아들의 진취적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아들의 일이 무섭고 두렵다고 느끼던 그녀는 아들에게 긍지를 느끼며 갈수록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던 중 빠벨의 주변인들이 차츰 감옥에 가게 되고 닐로브나를 엄니라고 부르던 우즈베키스탄인 안드레이마저 감옥에 가게 된다. 그리고 아들 빠벨도 감옥에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어머니의 역할이 더욱 활기를 띈다.
결국 연못 복개 공사비 사건과 5. 1 노동절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빠벨은 감옥에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인 법정 최후진술에서 빠벨은 당당하게 자기의 주장을 연설한다. 빠벨은 높은 정치의식을 지니고 이론적으로 무장한, 성숙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로 변화된 것이다.
연못 복개 비 문제로 인해서 동맹파업을 하자는 주장이 노동자들의 동조를 얻지 못하자 자신의 능력에 대해 실망하는 빠벨에게 그녀는 힘을 실어 준다. 그런 빠벨이 헌병에게 잡혀가자 그녀는 증오심으로 가득 찬 채 헌병들 앞에서 침착한 태도로 그들에게 대응한다. 그리고 아들이 감옥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공장안으로 사회주의 유인물을 배포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일이 아들에게 인정받을 것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한다.
닐로브나는 점점 공장안으로 유인물을 배포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맛보는 커다란 기쁨이 그녀의 가슴속에 영원이 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녀는 감옥에서 풀려난 안드레이에게 글을 배우게 되는데 안드레이는 닐로브나가 ‘빠벨의 어머니’만이 아닌 ‘사회주의자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노동절 행사 주도 혐의로 빠벨이 두 번째로 잡혀간 뒤에 그녀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신념은 더욱 확실해진다. 시내의 니콜라이 집에서 살면서 그녀는 노동운동자들에게 심리적 위안이 되어준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이들의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 차 끓이는 일을 맡지만 그 토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는 빠벨의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공장안에서 음식을 팔며 금지된 노동전단을 공장안으로 나른다. 빠벨과 주변인들은 석방 된 후 메이데이에 다른 시위를 준비한다. 빠벨은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에 가입해서 노동절에 파업을 주도하다 투옥돼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 받는다. 재판 도중 그는 감동적인 연설을 한다. 그 연설의 내용을 적은 전단을 가지고 역에 있던 어머니는 경찰한테 들키자 전단을 뿌리면서 힘있게 진실을 외친다.
고리키는 빠벨을 통해 한 평범한 노동자가 의식이 각성되고 노동자 계급의 강인한 전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빠벨에게서 강인한 의지와 명확한 투쟁목표, 그리고 낙관적 신심 등 혁명적 노동자의 본질적 특징을 재현해내고 있다.
리빈이 체포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어머니는 이전의 체포과정을 지켜볼 때와는 다르다. 그녀는 우선 유인물을 전달하러 온 자신의 역할이 들키지 않을지 부터 걱정한다. 그리고 농민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파한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간직하고 있던 자신이 직접 사람들에게 진리를 이야기해 주겠다는 그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들에게 순종적인 어머니에서 남을 감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 여인으로 변화된 것이다.
닐로브나는 아들이 유형판결을 받은 뒤에도 빠벨의 연설문을 뿌리려 시도한다. 그러나 그녀는 경찰들에게 도둑으로 오인 받고 자신은 도둑이 아니라 정치범 빠벨의 어머니이며 자신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녀는 경찰들의 손에 무자비하게 맞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계속 지키며 죽음을 맞이한다.
“피바다를 이루어도 진리는 죽지 않을 것이다......”
억압과 폭력 속에서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 권리, 자유를 깨닫지 못하고 빼앗긴 상태에 있었다는 점에서 닐로브나는 당시 차르 지배하에 있던 대다수의 러시아 민중들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닐로브나가 사회에 눈을 뜨고 노동운동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각성과정 뿐 아니라 러시아 민중의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러시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민중의 하나인 닐로브나가 열성적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러시아 민중들에게 더욱 큰 자극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보통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말하지만 이념적 소설이면서도 선전문학이 되기를 거부하였던 고리키의 재능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 하였다. 정치적 목표가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종종 튀어나오는 유머, 잊을 수 없는 등장인물의 생생한 표현이 어우러져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 감동적이고, 때로는 가슴이 아파온다.
이 소설은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으로 양 극단으로 나뉜 러시아 사회를 조명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