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렬 잇기 또는 병렬 잇기
- 이수종
돌아보아야 할 때가 있다
뒤에 두고 온 사연으로
눈가에 물빛 고이며 무엇인지 모를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릴 적 물상 시간에
직렬 잇기 병렬 잇기 건전지실험을 한 적 있다
잃어버린 것 또는 버려둔 것들이
꼬마전구에 켜지듯
엄연하게 살아날 때가 있다
그 얼굴의 내용은 모른다
목차도 없이 본론으로 바로 쳐들어오는
밝은 광채의 현란함이 생의 연명 같다는 생각
나와 극이 다른 것들과의 연결이면 직렬이요
나와 같은 극과의 관계이면 병렬이다
직렬로 이으면 전구가 밝으나 수명이 짧고
병렬로 이으면 오래 사용할 수는 있으나 밝기가 신통치 않다고 했다
내 생은 두고두고
밝기도 시원찮고 수명도 시원찮아 잇기 실험이 잘못된 것 같은데
그때 그 물상 선생님께 이제 와서 해답을 물어볼 길 없다
실험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은 안 해주셨다
생이라는 것은 건전지 잇기라는 설명도 하지 않으셨다
조도에는 아픔이 깊다는 말씀도 없으셨다.
수명과 밝기가 반비례한다는 말도 안 해주셨다
내 생은 그때부터 잘못된 것이 맞다
극과 극이 서로의 극점을 찾다가
극적으로 온몸에 퍼져 있는 통점을 찾아 이으면
직렬 또는 병렬 잇기의 조도가 켜지지만
視界에는 늘 안개주의보가 따라붙는다
직렬 잇기와 병렬 잇기 중 어느 것이 옳았다고
이제 와서 말할 수 없다
ㅡ『모던포엠』( 2012. 12)
ㅡ『화백문학』( 2012.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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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좋은 시는 우리에게 신선한 발견의 기쁨을 제공합니다
한번도 인간관계를 이렇게 되새김질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려
모두가 한 방향으로 차례로 서서 직렬로만 늘어선다면 밝기야 하겠지만 수명이 짧아집니다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같은 방향으로 늘어선다면 오래 버틸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끼리끼리 모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인생에서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게 아니듯이 모임의 성격 또한 그럴 테지요
수명과 밝기가 반비례한다는 것-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모이지 않는다 했던가요?
사상과 이념의 극점에서 서로 상반된 정치현실을 아프게 지켜보고 삽니다
금강산에서 돌아와야 할 고령의 이산가족들 그들의 시계는 지금 얼마나 흐릴까요...
캄캄할지.... 아득할지....
국민통합이니 융합이니 하는 말들이 안개주의보에 갇히지는 말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