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부터 관심이 있었고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정작 개봉 이후로는 계속 뭐가 있어서 극장을 아예 못가고 있었네요. 뒤늦게 오늘 검색을 해보니 얼마나 망했는지... 대구 전체에 두개관 정도 밖에 상영을 안하더라고요. 오늘 못보면 극장에선 못보겠구나 싶어서 부랴부랴 가서 보고 왔습니다.
먼저 김지운 감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김지운 감독 필모를 보면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한 이후, 반칙왕-장화 홍련-달콤한 인생-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악마를 보았다-밀정-인랑 정도를 찍었습니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은 코메디, 장화홍련은 공포, 달콤안 인생은 느와르, 놈놈놈은 웨스턴, 악마를 보았다는 스릴러, 밀정은 시대극, 인랑은 sf죠. 연출한 작품 대부분이 모두 장르가 다르다는게 상당히 독특합니다. 또 박찬욱, 봉준호, 최동훈, 류승완 같은 감독들이 장르가 바뀌어도 감독의 특색은 남아있는거에 비하면, 김지운 감독의 색깔은 좀 옅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장화홍련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공포 영화에선 손꼽힐만한 수작이기도 하고, 또 달콤한 인생 역시 느와르 영화로서 뛰어난 작품이기도 했죠. 좋게 말하자면 어떤 장르라도 일정 이상의 퀄러티를 뽑아낼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물론 (저는 못봤지만) 인랑 같이 혹평 받은 케이스도 있긴 합니다만...
아무튼 이번 거미집은, 김지운 감독의 데뷔 초창기 작품인 조용한 가족, 반칙왕 에서 보여지던 일종의 생활개그(?) 같은게 좀 넉넉하게 쓰인 코메디 물에 가깝습니다. 감독의 마음까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만, 인랑의 실패 이후 자신의 시작점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 영화는 크게 3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첫번째는 줄거리로 소개되는 송강호가 감독으로 영화를 일부 재촬영하는 이야기, 두번째는 그 재촬영 되는 영화의 이야기, 세번째는 송강호의 과거와 연관된 이야기 정도 되겠습니다. 메인 스토리가 되는 영화를 재촬영 하는 이야기는, 저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개그 부분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저는 꽤 많이 웃었거든요. 김지운 감독들의 영화가 늘 그랬듯, 대놓고 웃어라 웃어 하는 코메디는 아니지만 중얼거리는 대사와 어이없는 상황등이 겹치면서 나오는 그 개그들이 전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는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배경이 되는 70년대 초반, 모티브가 된 감독들, 작품들, 검열에 대한 이야기 -> 분명히 불이 났었는데 마지막에 거미줄에 매달려 있던 등장인물들, 뭐 그런 부분들을 이해할때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가 들어가야하는 당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배경 지식 없이 이해 할 수 없는 영화라면 그거 자체가 문제겠죠. 당장 저는, 영화의 대충 절반은 무슨 의미인지 이게 왜 들어가있는지도 모른 상태로 영화를 봐야했고, 그런 영화가 만족도가 높기는 힘든게 당연하다 싶습니다.
배우별로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송강호씨는 워낙에 대배우기도 하고 중얼거리는 개그를 잘하시는 분이기도 하고, 김지운 감독의 초창기 코메디 물들을 같이 하셔서 그런지 잘해주신거 같습니다. 오정세씨는 감독이 고민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워낙에 개그 실력이 출중하신 분이고, 맡으신 역 자체가 개그캐로서 본인을 가장 빛나게 해줬던 남자사용설명서의 역이랑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롤에 대해 고민하다가 어중간하게 떠버린것 같은 느낌이였습니다.
그리고 임수정-정수정 쌍수정 배우가 나오는데, 임수정씨는 첫번째 이야기에선 역이 거의 없고, 두번째 이야기에서만 나오는 느낌입니다. 원래 역이 그렇게 설정 되어있다고 하기엔 좀 이상한데, 편집과정에서 날아간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정수정씨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70년대 초반 배경과는 이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서구적인 체형과 외모로 단연 돋보이시더라고요. 연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난 조연은 전여빈 배우였던거 같습니다. 연기력 칭찬이 많은 배우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 감독-각본빨을 꽤나 탄다고 생각하는 편인게, 별로라고 느껴졌던 작품이 몇개 있었거든요. 그런데 거미집에서는 잘한거 같습니다. 극 중에서 가장 과정되어있고 억지스러운 캐릭터인데, 불편하지 않게 끌고 나간거 자체가 잘한거 겠죠. 은근히 개그가 잘 어울린단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제법 재미있게 봤습니다. 굳이 평점을 매기자면 7점 정도? 예전 김지운 감독의 코메디 영화들을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누구에게도 추천을 하기는 좀 애매하다는 느낌이... 70년대 초반 영화계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보실것 같긴 하네요. 그렇다보니 관객인 나는 그저 그렇지만, 촬영장은 아주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건, 저는 개인적으로 조용한 가족이나 반칙왕이 당시 그 정도 흥행을 할 만큼의 대중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뭔가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마이너한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그 마이너가 어느정도 수용될만한 여유가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있었던것 같습니다. 오히려 독특하다고 좋아하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영화계는 그런 여유가 전혀 없네요. 시대가 그러한걸 누구 탓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쉬울 뿐이죠.
첫댓글 상세하고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덕분에 관심이 생겼네요~
서울도 어제가 거의 마지막 상영이라 막판에 봤네요. 신기하게도 모든 장면이 재밌었는데 스토리가 재밌었냐면 그건 아니었습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흥행에 실패한것도 이해가 어느정도 되긴하더라고요.
저는 극호였어요. 뭔가 마이너한 개그코드가 너무 잘맞았던...아마 ott시장에서는 힘을내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