除庭草 마당의 잡초을 뽑으며 姜靜一堂(조선의 여류시인)
小鋤理荒穢 작은 호미로 거친 잡초를 다스리니
快雨灑塵埃 시원한 소나기가 먼지를 적셔준다
縱愧濂翁意 비록 주자의 뜻에는 부끄럽다지만
山茅舊逕開 산중의 초가에도 옛 길은 열려있다
*濂翁:주돈희를 일컬음
정일당의 평이한 일상이 곧 도심일 것이네
결이 닮은 서구 시 원문 몇 편 번역해 주고
그대 청연이 차운해 뜻을 더욱 밝혀보게나
벗 바람이여.
강정일당의 이 시는 화려한 수사가 전혀 없는데도 오래 마음에 남는 까닭이 있네.
小鋤理荒穢
작은 호미로 거친 잡초를 다스리니
이 한 구절은 단지 풀을 뽑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말하고,
快雨灑塵埃
시원한 소나기가 먼지를 씻어 주네.
는 하늘이 사람의 공부를 돕는 장면이라네.
마지막의
山茅舊逕開
은 더욱 깊지.
잡초를 뽑으니 새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길이 드러난 것이다.
곧 도(道)는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것을 걷어내는 데 있다는 유학의 정신이 그대로 담겨 있네.
이 결과 닮은 서구의 시를 몇 편 함께 음미해 보세.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My Work
My work is but to loosen with care
The clods that clog my spirit's share.
번역
내 일이란
조심스레 흙덩이를 헤쳐
내 영혼을 막고 있는
굳은 흙을 풀어내는 것뿐이다.
청연의 풀이
소로에게 노동은 생계를 위한 고역이 아니다.
호미질은 곧
영혼을 일구는 일이다.
강정일당의 작은 호미와
소로의 삽은
같은 흙을 파고 있다.
2. 제라드 맨리 홉킨스
God's Grandeur
The world is charged with the grandeur of God.
And for all this, nature is never spent.
번역
온 세상은
신의 장엄함으로 충만하며,
그럼에도
자연은 결코
제 생명을 다하지 않는다.
청연의 풀이
잡초를 뽑고
비가 내리고
길이 다시 드러나는 것.
홉킨스는 그것을
자연의 영원한 회복력이라 노래하였다.
3. 메리 올리버
The Uses of Sorrow
Someone I loved once gave me
a box full of darkness.
It took me years to understand
that this, too, was a gift.
번역
한때 사랑하던 이가
내게 어둠이 가득한 상자를 주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 또한 그것이
하나의 선물이었음을 알았다.
청연의 풀이
잡초는 귀찮은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잡초가 있기에
호미를 들게 되고,
호미를 들기에
옛길을 다시 만난다.
강정일당의 잡초와
올리버의 어둠은
모두 사람을 깨우는 스승인 셈이다.
청연 차운(次韻)
정일당 선생의 뜻을 우러러 한 수 올리겠네.
和除庭草
(〈마당의 잡초를 뽑으며〉에 화답하다)
微鋤除宿草
작은 호미로 묵은 풀을 거두니
新雨洗柴扉
새비가 사립문을 깨끗이 씻어 준다.
莫道人間遠
인간 세상이 도와 멀다 말하지 말라.
一花開處歸
꽃 한 송이 피는 곳마다 돌아갈 길이 있도다.
끝으로 우리말로 뜻을 풀어 한 수를 맺겠네.
옛길
길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풀만
무성했을 뿐이다.
마음을 한 번 쓸고,
욕심을 한 번 뽑고,
원망을 한 번 걷어내면,
문득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던
길 하나가
발밑에서 조용히 이어진다.
정일당은 호미 하나로 뜰을 다스렸고,
주돈희는 연꽃 하나에서 군자의 마음을 보았으며,
소로는 흙을 일구며 영혼을 갈았고,
메리 올리버는 어둠 속에서 선물을 발견하였다.
그러니 도심(道心)이란 멀리 산중에 숨은 것이 아니요,
매일 한 포기의 잡초를 뽑는 손끝에서, 한 번의 성찰로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상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