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출가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는데 10년 동안 고생해서 그런지 홀가분합니다. 아이들한테 많이 당하기도 했고요. 하하."
지난해 12월 20일 10년간 정들었던 산자연학교(경북 영천시 화북면 소재) 교장직을 내려놓고, 새 임지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 정홍규 신부는 화통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산자연학교는 환경운동가인 정 신부가 2003년 오산자연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대구대교구 대안학교다. 생명ㆍ생태ㆍ평화사상을 기본 이념으로,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려 설립했다.
"대안학교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이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때로 아이들은 어른들 눈에 어리석지만 마음을 열고 끝까지 믿어줘야 합니다. 내 기준에서 그 아이를 보면 화나고 울화통이 터지죠. 그러나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아이의 바닥이 되어줘야 아이들이 큽니다. 사목자로서 저도 많이 성장했어요.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정 신부는 이어 "몸과 영혼이 지친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관계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폐교에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설립한 정 신부는 교장이었지만, 심고 뽑고 다듬고 고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다 했다. 초창기 유치원생과 학생 등을 대상으로 자연생태 체험 프로그램 위주로 산자연학교를 꾸려갔던 정 신부는 2007년 대안 교육기관으로 전환했다. 초등 과정으로 문을 연 산자연학교는 중ㆍ고등 과정을 개설, 최근 경북도교육청으로부터 중학교 학력 인증기관으로 인가를 받았다.
"처음엔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도록 풀어주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정서ㆍ심리적으로 아픈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2박 3일 캠프가 아닌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 신부는 경쟁에서 소외돼 낙오자처럼 행동하는 많은 아이를 만났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못하고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아이들은 마음 붙일 곳이 없습니다. 교육이 공부에 치중돼 있고, 국ㆍ영ㆍ수로 평가받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해 기죽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보석인데…."
정 신부는 학교에서 다양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났다. 스마트폰 없이 기숙 생활을 견디지 못해 일주일 만에 도망간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툰 것을 알고 자신의 아이를 바로 데려간 부모도 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관계성을 믿고, 스스로 해결하고 용서할 여지를 주면 좋은데…. 아이들을 기다려줄 줄 모르고 조급해하는 부모들을 보면 마음이 씁쓸합니다."
정 신부는 "생태계에 책임을 다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이 아이들이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다"며 "부모교육과 지역사회를 동반하지 않는 대안교육은 사상누각"이라고 말했다.
"대안교육은 공교육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닌 보완 관계입니다. 대안교육이 공교육을 쇄신하고 학생들의 다양성, 자유, 끼를 존중해주기 위해 대안학교끼리의 폭넓은 연대가 필요합니다."
정 신부는 산자연학교는 떠나지만 몸과 영혼이 지친 학생들에 대한 연민은 여전하다. 그는 "주교님은 본당에 나가 편하게 지내라고 하시는데, 돈보스코 성인처럼 학교 안 가는 학생들을 위한 직업교육을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ㆍ사진=이지혜 기자
첫댓글 감사합니다.